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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이용장애) 전직 국회 보좌진의 공청회 후기

여전히 백수인 이제 아저씨인걸 부정하지 못하는 나이의 전직 비서관입니다.
취업시장이 얼어붙어서 그런지 국회건 밖이건 참 취직하기 어렵습니다.
연휴를 마치고 올라와서 G식백과 게임이용장애 영상을 보게 되었습니다.
굉장히 정리를 잘 해주셨더라고요.
그리고 저도 처음으로 G식백과 영상에 (목소리만 2초 가량) 출연하게 되었습니다.
당시 제가 앉아있던 자리가 YTN 카메라가 잡히지 않던 자리라 목소리만 나갔었는데 그 부분을 영상에 넣어주셨더라고요.
그걸 보니 그날 현장에서 제가 하고 싶었던 이야기 중에 1/10도 못했다는 것도 생각나고,
아무래도 원래 직업이 말보다는 글을 압도적으로 많이 다루는 직업인데다
제가 원래부터 말을 잘 못하는 것도 있어서 다시 생각해보니 너무나도 아쉬운 것들이 많았습니다.
매우 늦었지만 지난 12일 게임이용장애 공청회와 관련해 후기 겸 게임이용장애 질병코드 등재와 관련된 몇몇 생각들을 좀 풀어보고자 합니다.
정말 혹시라도 성회님이 의도적으로 저를 영상에 넣어주신 것이 아닌가 오해하실까봐 미리 말씀드리자면
저는 성회님을 직접 면대면으로 뵌 적도, 육성으로 대화를 해본 적도 없고 연락처도 모릅니다.
그래서 영상에서도 제가 누군지 자막도 넣지 못하셨을 테고요. 누군지를 모르니까.
1. 그날 못다한 이야기들
토론 사회자는 중립성을 유지하기 위해 국회사무처에 계신 분을 초빙했다고 들었습니다.
그 목적은 달성한 것 같은데... 사회보신 경험이 없으셔서 그런지 솔직히 좀 재미없긴 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시간이 너무 촉박해서 하고 싶었던 말의 1/10도 제대로 못한 것 같아 너무 아쉽습니다.
그날 공청회에는 가길 잘했다 생각합니다.
(찬성측의 업적은 아니지만) 정신의학계에서 중독이 이용장애의 개념으로 변화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은 상당히 좋았습니다.
따지고 보면 ㅁㅇ류 의약품도 전문가들의 처방 하에 진통제로 사용된다면 긍정적으로 기능하니까요.
게임이용장애가 없다, 라고 단정지을 수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게임에 빠져 자기절제가 되지 않는 (것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고 이게 정말 치료가 필요하다면 해야죠.
문제는 이미 많은 분들이 지적해 주셨던 것처럼 게임이용장애 질병코드 등재가 중립적인 학문적 고찰을 거쳐 나온 결과가 아니라
특정 집단의 이익 창출을 위해 의사라는 권위와 우리 사회의 반게임 정서를 이용해 몰아가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의혹입니다.
현장에서 찬성측의 논리를 들으면서 이분들은 이미 답을 정해놓고 연구결과를 냈구나라는 확신이 다시 한 번 들었습니다.
지금 제일 이야기가 많이 나오는 2천시간 이야기, 그 자체가 게임에 대한 자신의 편견을 드러낸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자신이 생각하는 긍정적이고 생산적인 활동보다 못하다라는 결론을 이미 낸 것이죠.
게임을 이미 악이라고 생각하고 있으면서, 중립적이라고 믿는 그 자체가 이미 바이어스에 심각하게 빠진 겁니다.
연구과정에서는 게임에 대해 '가치중립적인 여가활동의 일환'으로 접근했어야죠.
그래서 제 첫 질문도 "의학은 법칙이 나올 수 없기 때문에 과학은 아니지만 과학적으로 접근해야 한다.
연구는 중립적으로 이뤄져야 하고 실험을 통해 가설의 오류가 드러났으면 가설을 폐기하는 것이 맞다.
그런데 찬성측의 이야기는 이미 결론을 정해놓고 몰아가는 것 아니냐, 심각한 바이어스(선입견)가 있다." 였습니다.
그에 대해 자신들은 피어체크를 통해 공신력을 확보했다고 답했는데... 이미 바이어스(혹은 의도)를 가진 집단인데
그 집단 내에서 피어체크를 했다고 학문적 중립성이 확보되었다고 볼 수 있는지 더 물어보고 싶었습니다.
두번째 질문은 게임이용장애를 이야기하면서, 게임에 대한 이해도가 너무 부족하다는 점을 말하고 싶었습니다.
ㅁㅇ이 의료 용도로만 매우 제한적으로 사용을 허가하고, 그 외의 사용은 처벌하는 것은 ㅁㅇ이 인체에 미치는 영향이 분석되었기 때문입니다.
게임도 이용장애의 요인이 되려면 게임이 게이머들에게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분석이 되었어야죠.
그런데 찬성측은 추석 연휴를 맞이해 게임사들이 열심히 광고하면 접속 시간을 늘릴 것처럼 말하더군요.
솔직히 이 부분에서 그냥 편견 그 자체구나... 라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제 질문도 "단순히 게임 이용시간을 늘리는 것은 현재 게임 트렌드가 아니다.
당장 WOW의 경우에도 새 확장팩에서 숙제라고 불리는 일일 퀘스트를 삭제했고, 호평을 받고 있다." 였습니다.
이에 대한 답변은 찬성측의 신념 확인이었습니다.
그래도 추석 되면 광고할거고 접속 시간 늘거다.
처음부터 제 질문 자체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것 같으니 당연한 결과이긴 한데...
게임이용장애를 논하고 싶으면 이런 트렌드는 확인했어야 하지 않나요?
시간이 더 있었다면 콩코드를 예로 들면서 대다수의 게이머들은 게임 자체에서 재미를 찾지 못한다면
아무리 게임사가 광고를 퍼붓더라도 그 게임을 선택하지 않으며, 확률형 아이템을 비롯해 게임사에 대해
적대적으로 반응하는 이용자들도 결코 적지 않다는 내용을 더 말하고 싶었네요.
더 나가면 '게임'이라는 한 단어로 묶지만 LOL을 하는 분, 피파를 하는 분, 디아블로를 하는 분, 와우를 하는 분, 블루아카를 하는 분
모두가 다른 컨텐츠를 즐기고 있으며 자신이 플레이하는 게임에 요구하는 포인트도 모두 다릅니다.
이렇게 다양성이 넘치는 집단을 '게이머'라고 통칭하는 것 자체가 무리지 않나 하는 생각이 많이 드네요.
각 장르별로, 각 게임별로 제공하는 경험이 모두 다른데 그에 따라 사람에게 어떤 영향을 주는지에 대한 세부 분석도 해야죠.
이런 준비도 없이 게임이용장애 질병코드 등재를 하려고 드니... 답답합니다.
여기부터는 그날 아예 이야기를 하지 못했던 부분들입니다.
등재를 해야 하는 이유 중에 질병코드 등재가 되어 있지 않아서 적절한 처방을 못한다는 말이 있었습니다.
전 사실 저 부분에서 깜짝 놀랐고 시간이 조금 더 있었다면 무조건 짚고 넘어갔었을 겁니다.
적절한 처방도 못하면서 치료는 왜 한다고 그럽니까?
그리고 적절한 처방은 게임이용장애가 정식으로 등재된 ICD-11의 기준에 맞춰서 하면 되는 것 아닌가요?
정신질환에 대한 낙인효과를 찬성측이 이야기하는 것도 어이가 없었습니다.
맞아요. 아직 낙인효과 있고 정신과에 대한 막연한 공포심이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면 더더욱 게임이용장애 질병코드 등재에도 신중하게 접근해야 되는 것 아닙니까?
오히려 그 낙인은 우리 사회, 특히 학부모들이 가지고 있는 게임에 대한 공포감을 이용한 마케팅에 나선 '전문가'들이 만들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실존하는 상담 치료수요가 있는데 무시할 수 없단 말도 있었죠.
상담 치료수요가 있다고 해서 그게 질병이 되는 것이 아닌데, 이 말을 의사가 한다는게 놀라웠습니다.
제 사례를 예로 들자면, 저희 부모님은 아직까지도 니가 게임만 안했으면 더 좋은 직업 더 좋은 스펙 가졌을 거라고 말씀하십니다.
혹시나 해서 말씀드리지만 저는 저희 부모님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존경하며,

부모님께서는 게임을 접하지 않았던 세대이기 때문에 일어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30년 전에 이런 논의가 있었다면 저희 부모님께서도 우리 애 상담받아봐야 되는거 아냐? 하셨을 것 같습니다.
2. 게이머의 당위성, 비게이머의 당위성
제가 이런 글을 남길때마다 매번 강조하는 내용이 있습니다.
게이머와 비게이머간의 생각 차이는 게이머 여러분들이 생각하시는 그 이상으로 크다는 점입니다.
정말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코어 게이머와 비코어 게이머라고 말하는 것이 맞을 겁니다.
게임을 한 번이라도 접해본 사람들을 '게이머'로 표현하면 우리 국민의 절반이 넘지만,
게임이용장애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있는 분들과 그렇지 않은 분들로 나누면 후자가 다수일 겁니다.
세상의 많은 일들은 논리와 당위성으로 결정되지 않습니다.
게임이용장애 질병코드 등재 반대의견이 논리로 압살하고, 당위성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그것만으로는 막을 수 있다는 보장은 없습니다.
특히 당위성이라는 것은 철저하게 주관적인 가치입니다.
게임에 대해 적대적이고, 우리 애가 게임만 안하면 대성할 것이라고 믿는 부모님들에겐
게임중독 치료가 가능해지는 질병코드 등재에 당위성을 느끼실 수도 있습니다.
오히려 자신이 정의라고 믿는 일을 행하면 선을 넘어도 브레이크가 걸리지 않듯이,
당위성이 있다고 확신해서 비게이머들의 감정을 건드리는 선을 넘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결론은 같은 말을 하더라도 거부감이 드는 사람이 있고 기분좋게 수용하도록 만드는 사람이 있듯이
[우리가 가진 논리와 당위성을, 비게이머들도 공감할 수 있도록 하는 것에 힘을 모으자]가 되겠습니다.
제 자랑도 슬쩍 얹으면서 PR도 할겸 직접 해봤던 일을 예시로 들자면, 저는 확률형 아이템법이 필요한 이유를
"상거래에서 자신이 판매하는 물품의 정보는 판매자가 정확하게 제공해야 하지만 확률형 아이템은 그렇지 않다.
그래서 소비자들이 자신이 구매하는 상품의 기댓값을 알 수 없고, 합리적인 소비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로 제시했습니다.
확률형 아이템의 확률정보 공개를 결정하시는 분들이 확률형 아이템에 대해 모를 가능성이 높기 때문입니다.
저 개인적으로는 확률형 아이템법을 처음 만들었다는 것보다 저 명분을 만든게 더 큰 일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첫 법은 9년 전에 만들었던 거라 솔직히 지금 시점에서 보면 완성도가 조금... 좀 그래요. 당시엔 최선을 다한거긴 하지만.
3. 게임이용장애에 대한 정치권의 관심은?
여러분들이 굉장히 의외로 받아들이실 법한 이야기를 하나 풀자면, 의료계에서 게임이용장애는 정말로 마이너하고 별 관심 없는 주제입니다.
보건복지위원회 의원실에서 일하는 선후배 동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대부분이

'그게 뭐임?' '게임이용장애 그거 질병 등재된거 아냐?'라고 답하고
게임이나 정신의학쪽 이슈에 관심이 있는 분들이나

'그거 정신의학쪽에서 밀긴 하는것 같은데 의료계 전반적으론 별 관심없는 이슈다.'라고 말합니다.

이게 어느 한두명의 이야기가 아니라 제가 아는 여러 의원실에서 공통적으로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보건복지위원회가 보좌진들 사이에서도 전문성이 필요해 하는 사람만 하는 상임위로 꼽히는 곳이라 의미없는 정보는 아닐 겁니다.
질병코드와 관련해서는 통계청을 소관하는 기획재정위원회에서 논의되어야 할 내용이긴 한데 기재위 쪽에선 더더욱 게임에 관심이 없습니다.
통계청 입장에서도 WHO가 ICD에 이미 등재했고, 자기들은 의료분야와 관련된 전문성이 있는 기관도 아닌데,
굳이 이걸 많은 반발을 감수하면서까지 뺄 이유도 실익도 거의 없습니다.
그래서 사실상 질병코드 등재는 확정된 것 아니냐... 는 말이 나오는 거고요.
전반적으로 관심이 있는 몇몇 의원님들은 있지만, 이게 국회 차원에서 중요한 이슈는 절대 아니다라고 말씀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그냥 게임 이슈에 대한 관심이나 이해도도 많이 부족해요.
누가 저한테 이걸 물어보면 전 항상 이렇게 대답합니다.
"게이머와 게임이슈가 표심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것은 인식하고 있지만 딱 거기까지다.
정책을 결정하는 사람들이 게임에 대해 모르는 세대이다보니 뭘 해야 될지 누가 잘 아는지 모른다."
여러분도 잘 아실 이도경 게임전문보좌관이 질병코드 등재를 막을 수 있는 법을 만들었고
기재위쪽 의원실들과 열심히 소통하고는 있습니다만 조금 더 힘이 필요합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한 보좌진이 할 수 있는 일에는 한계가 있고
제가 밖에서건 어떻게 잘 풀려서 다시 돌아가건 해서 힘을 보태도 별반 차이는 없을 겁니다.
위에서 말씀드린 [비게이머도 공감할 수 있도록 설득하는 방법]은 꼭 필요하지만, 솔직히 저도 아직 답을 찾지 못했습니다.
확률형 아이템 같은 경우라면 길이 어느 정도 보이는데 이건 게이머들이 같이 만들어가야 하지 않을까 싶어요.
쓰다보니 너무 길어졌네요.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댓글

  • scama
    2024/09/22 22:30

    흑흑

    (j0uSdX)

(j0uSd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