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 나는 아직 한질도 완결 못내고 연재중인 한낱 신참 작가 나부랭이니까.
그냥 적당히 넘겨들으면 됨.
1.
활협전 스토리를 파면 팔수록 비극의 요소를 정말 정석적으로 잘 사용하고 있음.
전통적인 의미에서 비극이란
영웅이 어쩔 수 없는 요소(대표적으로 운명)에 의해서 파멸적 운명을 맡게 되는 것인데.
이 비극을 끌어 올리는 가장 중요한 요소가 하마르티아 라는 것임.
올드보이를 예로 들면
오대수는 경솔한 말과 쉽게 화를 내는 등의 가진 결점을 가졌음.
하지만 그러한 결점이 그의 인생을 몰락시킬만한 큰 결점이냐 하면 사실 그정도는 아니었거든. (이거 중요해)
하지만 그 경솔한 말이 스노우볼링을 일으켜서 몰락의 시발점이 되고 비극적인 삶을 살게 되지.
우리가 여기서 오대수를 경멸하는게 아니라 그의 비극을 안타까워 하는 것은 그의 결점은 의외로 보편적이고 사소하지만 그러한 결점으로 인해서 파국에 치닿는 다는 게 중요해.
그럴만 했지만 그정도는 아니었던 결점.
이제 다시 활협전을 볼까?
활협전의 비극의 시작은 당문이 힘이 없는 영세한 문파였다는 데에 있음.
뭐 영세한 중소 문파는 하나 둘이 아니지만 그래도 당문은 한 때 중원에서도 손꼽히는 명문 문파였다는게 문제지.
그것까지는 괜찮아.
그러면 인물들을 보자고
재능은 있지만 외모와 처지로 인해 그 재능을 발휘하지 못하던 조활이 있지.
대사형은 정말 뛰어난 인물이고 술수에 능란한 인물이지만 생각해보면 굉장히 독선적인 인물이야.
물론 그것이 문파를 위한 길이긴 하지만 그 독선으로 인해서 예기치 못한 사고가 벌어지고 결국 사망하게 되지.
이사형은 잠시 넘어가고
삼사형을 보자고.
그는 인품도 학식도 훌륭한 인물이지만 가장 중요한 무력에서 한참 뒤떨어지는 인물이야. 그는 관리자로서 일을 도맡아 할 순 있지만 그외에 무림인으로서의 강한 힘을 가지지 못해 상황에 끌려다니지.
사사형은 애초에 돈을 중요시 하는 인물이고 언젠가 당문을 떠날 작정이었음. 그는 돈을 번다는 중요한 일은 하지만 위치로도 힘적으로도 크게 부각되지 않음. 삼사형과 비슷한 입장이지만 다른 점이 있다면 당문을 떠나는 게 정해진 인물이란게 다르지.
소사매는 지극히 수동적인 인물이야. 힘을 가졌지만 의지가 없는 인물이지. 소사매는 누군가가 이끌어줘야 하는 인물이고 결국 권위에 굴복하는 인물이야.
당중령은 이 서사안에서 제일 무력한 인물이야. 힘이 있기는 있지만 지병으로 인해 그 능력을 발휘하지 못하니까. 그는 당문 안에 머물러야 하고 그렇기에 문제를 해결할 능력이 있음에도 나서지 못함.
이러한 각 캐릭터들이 가진 결함들이 사건을 비극에 고정되도록 필연적으로 만듬.
무력한 주인공.
독선적인 대사형.
사건을 해결하지 못하는 삼사형.
수동적인 소사매.
이상적이지만 힘을 쓸 수 없는 장문인
이들은 결국 상황에 맞추어 악수를 반복하게 되고 독자들은 그런 선택을 어쩔 수 없는 것, 정당한 것으로 여기게 되지.
왜냐하면 우리는 그 과정을 초반부 부터 충분히 맛봤으니까.
이 이야기는 어떤 영웅적인 면모에 의지하는 신화가 아닌 각 인물의 결함과 그 극복에 초점을 맞춘 비극임. (적어도 초회차에서는)
2.
독자들은 자연스럽게 조활의 두가지 목표를 받아드리게 됨.
당문의 부흥(+입실 제자 되기) 그리고 소사매와의 결혼.
이러한 꿈 두 가지는 초반부에 빠르게 좌절 됨.
당문의 부흥은 빚 때문에 어렵고
소사매는 대사형과 결혼하기로 결정되었으니까.
독자들은 순식간에 목표를 잃게되는 거지.
여기서 조금 더 참을 성 있는 독자들은 이후의 것을 더 보려 할거야.
조활의 절망했던 것처럼 독자도 절망했지만.
독자가 절망을 이겨내고 행동한다면(그 이후의 행동을 보려고 한다면) 조활을 독자의 손에 따라 계속 움직이니까.
이때 독자와 조활은 강한 일체감을 가지게 됨.
그러면서 주인공의 능력과 문파의 힘이 나날히 강해져가는 걸 느끼고 그런 성장을 느끼게 할 이벤트가 계속 발생하지.
주인공은 그럴수록 더욱 조활에게 몰입하고 조활의 행동에 집중하게 됨.
고난 -> 노력을 통한 고난의 극복.
이러한 피드백은 독자로 하여금 긍정적인 기분과 강한 일체감을 줘.
하지만 문제는 시간이었음.
만약 더 많은 시간이 있었더라면 어땠을까.
시간을 빠르게 흐르고 우리가 목표를 향해 다음 스탭을 밟으려 할 때 사건들이 연이어 벌어지지.
남궁세가에 니교가 습격하는 사건.
당문 습격
무림대회
그리고 당문의 운명.
으로 이어지는 거대한 사건들의 연속
사건은 우리를 기다려주지 않고 우리가 목표로 하는 수준의 강함에 도달하기엔 시간은 촉박하고 능력도 부족해.
이따른 극복하기 힘든 장애물 앞에서 드러나는 것은?
아까 1. 에서 말했던 하마르티아. 즉 결함이지.
모든 캐릭터들은 그 결함으로 인해 자신들이 원하는 걸 하나 둘 잃게 됨.
우리는 조활의 시점에서 그 문제들을 마주하게 되고 결국 운명 앞에서 패배하게 되는 결말을 맞음.
하지만 독자가 이 상황을 포기할 때 이번엔 역으로 조활이 포기하지 않음.
위 루트를 통해 깊이 몰입했다면 조활에 행동에 우리가 따라가게 되는 거지.
조활과 독자의 선택이 일치되는 것.
그렇기에 파멸로 향하는 당문의 길에 우리는 함께 하는 거지.
독자와 조활 둘 다가.
조활의 재능이나 얼굴을 비정상적인 수준이지만 사실 조활이란 인간의 내면은 정말 보편적이거든.
가족을 사랑하고 사랑하는 여자의 마음을 얻고 싶고 명예로운 대협이 되고 싶다.
순박할 정도도 깨끗한 욕망이지.
이런 욕망은 보통의 사람들이라면 다 가지고 있는 것이니까 더더욱 몰입이 풀리기 힘들거야.
위 과정을 통해서 우리는 비극을 직접 맛 봤고 엔딩까지 가더라도 독자들은 절망하지 않아.
왜?
우리는 우리가 한 실수를 알고 있으니까(+역천점수)
다음 회차에서는 더 잘할 수 있다는 생각으로 새로운 플레이를 시작하는 거지.
우리가 포기하지 않는 한 조활을 포기하지 않고
우리가 실패를 기억하는 한 행복한 엔딩을 볼 수 있어.
그런 믿음이 바로 희망인거고 희망이야 말로 가장 큰 동기가 되지.
난 이 시나리오 작가가 정말 스토리 공부를 많이 한 사람이구나 느꼈음.
나 따위가 이런식으로 분석했지만 저건 큰틀만 본거고 디테일하게 캐릭터 하나하나 파고들면.
이 캐릭터는 이렇게 해서 매력적으로 보이고 이 캐릭터는 의도적으로 이렇게 만들었구나.
계속 배우게 되니까.
물론 모든 부분이 완벽했다는 건 아니야.
개인적으로 아쉬웠던 부분도 있었고.
그럼에도 활협전은 훌륭한 무협 게임이고 이런 스크립트를 짠 작가가 정말 존경스러워.
이런 식의 분석한 글은 없는 것 같아서 내가 한번 써서 올려봄.
좀 두서 없이 쓴 것 같아서 좀 아쉽네.... 비난 빼고 비판은 언제든 환영임.
Kagisa
2024/08/13 23:20
내가 좀 삐뚤어져서 소사매 이해가 힘들었는데 수동적인 인물이 맞구나 위치상 가장 활약하고 노력해야 할 위치인데 아무것도 안 하고 혼인조차 시키니까 할게요 이러고는 나중가선 가기 싫었다고 우는거보고서 이해도 못하겠고 그냥 자기 가문 버린 무책임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타로 봐드림
2024/08/13 23:21
당시 시대상을 감안하면 소사매가 모범적인 숙녀이긴해서....
나는 그런 걸 감안하고 봤거든.
아알호메프
2024/08/13 23:34
이런 시선으로 보는 것도 재밌네.....ㅊㅊㅊㅊ