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보다 조금 바쁜 날이었다.
토카이 테이오와 메지로 맥퀸의 스피드 트레이닝을 마지막으로 오후의 트레이닝 일과를 모두 끝낸 트레이너는, 평소보다 조금 이른 시각에 저녁 식사를 했다.
원체 바쁘게 사는 그였기 때문에, 식사 시간도 보통 30여 분을 넘기지 않는다. 그것도 말이 좋아 30분이지, 실제로 밥을 위장에 욱여넣는 시간만 생각하면 15분 정도뿐이리라.
평범하게 생각한다면 한 시간 정도의 식사 시간은 보장받아야 하건만, 담당 우마무스메들의 관리 및 중앙 트레센의 기타 여러 업무까지 해야 하는 트레이너의 측면에서 보자면, 그 정도의 시간은 충분히 사치일 수 있었다.
비단 그뿐만이 아니라 중앙 트레센의 다른 수많은 트레이너가 비슷한 처지이리라. 그런 트레이너들 사이에서도 유독 바쁘다는 점은 눈을 돌려 모른 체 하는 것이 정신건강에 좋으리라.
그렇게 저녁 식사를 대강 마치고 사무실로 복귀하니 오후 여섯 시, 책상 위에 대충 널브러져 있던 서류들을 정리하고 작성하다 보니 어느새 20여 분이 더 지나갔다.
시간 참 빠르다, 투덜거리며, 그는 냉장고에서 물병을 꺼내어 목을 축였다.
하지만 그런 잠깐의 여유조차 허락할 생각이 없었는지, 그의 휴대폰이 부우웅, 여러 번 진동한다. 그는 눈살을 찌푸렸지만, 그래도 전화를 안 받을 수는 없었기 때문에 작은 한숨을 내쉰 뒤, 휴대폰을 들고 발신인을 확인한다.
“……아.”
아그네스 타키온의 트레이너, 그 이름을 화면에서 확인하자, 잊고 있었던 일이 순식간에 떠올랐다. 시계는 6시 25분을 가리키고 있었고, 다른 트레이너들과 미팅하기로 한 것이 6시 30분이다.
늦었다. 지금부터 미팅 장소까지 전력으로 달려간다고 하더라도 5분은 걸린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다행인 것은, 길게 할 미팅은 아니라는 점이지만…어쨌든 본인이 하자고 해 놓고서는 본인이 망각하고 있었다는 점은 분명한 실책이다.
하여간, 원체 바쁘다 보니 정신이 없다. 고개를 내저으며 통화 버튼을 누른다.
그리고 그의 예상대로, 아그네스 타키온의 트레이너가 미팅 있는 거 기억하고 계시냐고 묻는다. 약간은 웃음기가 묻어 있는 후배의 목소리에, 그는 쓴웃음을 지으며 바로 가겠다고 답변한다.
통화를 종료하고, 책상 위에 아무렇게나 놓여 있는 노트북을 챙긴다. 그러다가 잠깐, 싱크대 위쪽 선반에 놓인 여섯 개의 머그컵을 잠시 바라보았다. 삼십 분 정도 후에 쳐들어올 담당 우마무스메들이 머릿속에 떠올랐기 때문이다.
분명, 그의 담당 우마무스메들은 언제나 같은 티타임을 요구할 테지만, 안타깝게도 오늘은 무리일 것이다.
미팅이 끝나고 사무실에 도착하면 일곱 시가 조금 넘을 텐데, 사무실 문은 열어두고 간다 치더라도 여유롭게 차를 준비할 수는 없을 테니까 말이다.
뭐, 컵이라도 꺼내놓고 가면 알아서 마시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하며 선반에서 컵을 꺼내려고 남은 손을 뻗으려는 찰나,
“……?”
똑똑, 문을 노크하는 소리가 들렸다. 담당 우마무스메들이 예상보다 일찍 찾아온 것일까 생각해 보았지만, 이내 그의 방문객의 정체가 드러난다.
“트레이너 씨, 계시나요?”
“아, 타즈나.”
이사장 비서, 하야카와 타즈나가 문밖에서 고개를 빼꼼 내밀며 이쪽을 쳐다보고 있었다. 한 손에는 서류가 한 뭉치 가득 들려 있었고, 다른 한 손으로는 특유의 녹색 모자를 고쳐 쓰고 있는 모습이었다.
“평소보다 조금 일찍 찾아왔네.”
“전달해 드릴 것이 조금 많이…있어서요.”
“이런.”
혀를 쯧, 하고 찬다. 하야카와 타즈나에게 인계받아야 할 서류들이 제법 있는 모양이었지만, 지금은 미팅 쪽이 우선이다. 곤란한 표정으로 그는 하야카와 타즈나에게 통보한다.
“미팅에 늦어서, 서류는 책상 위에 두고 가 줘. 미팅 끝나고 확인해 볼 테니까.”
“아…그런가요. 어쩔 수 없네요.”
괜스레 시무룩해지는 하야카와 타즈나의 표정에, 그는 속으로 쓴웃음을 지었다. 토키노 미노루의 이름으로 달리던 시절부터, 의외로 얼굴에 감정이 다 드러나는 녀석이었지.
그런 옛 담당 우마무스메이자 현 직장 동료에게 그가 해줄 수 있는 것은, 작은 감사를 표하는 것뿐이었다.
“그래도 서류 가져다주려고 일부러 찾아와 줘서 고마워. 이사장 그 꼬맹이한테 받으러 가는 것도 일이거든.”
“딱히…서류 때문만은 아닌 거, 아시잖아요.”
“…….”
알아도 모른 척, 모르면 모르는 것. 이것이 그가 오랜 세월 중앙 트레센에서 트레이너로서 버틸 수 있는 최고의 비결이었다.
그렇기에 이번에도, 옛 담당 우마무스메의 마음을 모른 척 눈을 돌리며 무정하게 한 마디 툭 던진다.
“너도 학생들이랑 티타임이라도 즐기고 싶어서 그런 거지?”
“……뭐, 아예 틀린 말은 아니네요.”
정확하게는 트레이너 씨가 있는 티타임을 즐기고 싶은 거예요, 라고 하야카와 타즈나는 속으로 투덜거렸다. 물론 그녀가 말하지 않아도 트레이너 씨는 이미 짐작하고 있으리라. 눈치 하나만큼은 귀신같이 빠른 사람이니까.
그러니까 가끔은, 하야카와 타즈나 쪽에서 한 걸음 적극적으로 나가는 것도 나쁘지 않으리라. 그런 생각으로 그녀는 후후 웃으며 트레이너 씨에게 말한다.
“그런 의미에서, 트레이너 씨가 돌아오실 때까지 기다려 볼까 하는데요.”
“적어도 30분은 걸릴 텐데.”
“뭐 어때요. 옛날에도 종종 트레이너 씨를 기다리곤 했다고요?”
“그때는 학생 때고, 지금은 직장인이잖아…너 한가하냐.”
“트레이너 씨를 기다릴 시간은 있으니까요♪”
“……마음대로 해.”
피식 웃으며 그는 문 쪽으로 걸어갔다. 더 이상 지체했다간 미팅에 제대로 늦어버릴 것이다. 게다가 어차피 그가 아는 토키노 미노루는 고집불통에 제멋대로이기 때문에, 그가 기다리지 말라고 해도 그녀가 원한다면 반드시 기다릴 것이기 때문이다.
괜히 힘을 뺄 이유가 없는 것이다. 게다가 담당 우마무스메들을 위해 사무실 문을 열어놓고 가야 하는데, 하야카와 타즈나가 그 공간을 지켜 준다면 딱히 나쁜 것은 없기 때문이다.
하야카와 타즈나 또한, 트레이너 씨가 이렇게 순순히 알겠다고 할 줄은 몰랐는지, 눈을 동그랗게 뜨며 트레이너 씨를 바라본다. 그러다가 이내 트레이너 씨를 지나쳐 그가 매일 앉아 있는 그의 자리로 다가간다.
“그러면, 여기에서 기다리도록 할게요.”
“…….”
하야카와 타즈나가 그의 자리에 천천히 앉았고, 그는 살짝 눈살을 찌푸렸다. 아무래도 자기 자리에 다른 사람이 앉는 것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 사실을 하야카와 타즈나도 알고는 있지만, 그래도 본능을 이길 순 없는 것이다. 트레이너 씨의 자리를, 토키노 미노루의 향으로 전부, 덧씌워 버리겠다는 강렬한 본능.
그런 하야카와 타즈나를 잠시 차분히 응시하다가, 그는 좋은 생각이 났다는 듯이 입꼬리를 올린다. 그러더니 능글맞은 미소와 함께 하야카와 타즈나에게 작은 부탁을 건넨다.
“어차피 여기에서 할 거 없으면…나 대신 차 준비를 좀 해줄 수 있어?”
“차…말인가요?”
“말했다시피 지금부터 미팅하고 오면 일곱 시는 넘을 것 같아서, 다른 애들이 그 전에 올 텐데 아무것도 준비되어 있지 않으면 조금…그렇잖아. 마침 네가 와 줘서 다행이네.”
“제가 일찍 와서 다행, 인 거네요. 헤헤.”
그래도 자기를 필요로 한다는 트레이너 씨의 말투에, 하야카와 타즈나의 입꼬리도 살며시 올라간다. 의외로 쉬운 여자다, 속으로 쓴웃음을 지으며 트레이너 씨는 말을 이어간다.
“선반에 컵 있으니까 꺼내면 되고, 그 옆에 찻잎 있으니까 냉장고에 있는 물 끓여서 우려내면 돼. 선반 위쪽 칸에 쿠키 있으니까 꺼내두면 되고.”
“후후, 어려운 일은 아니네요.”
“컵은 선반에 놓인 순서대로 배치해 두면 돼. 오른쪽부터 루돌프, 아르당, 테이오, 맥퀸, 사토노, 그리고 키타산 블랙이 쓸 거야.”
“그 아이들, 각자의 컵이 있는 거였어요?”
“거의 매일 오다시피 하니까, 개인 컵을 준비해 뒀지.”
“흐응…….”
나 때는 트레이너 씨가 이런 복지, 전혀 해주지 않았는데. 세월이 지나면서 토키노 미노루가 하야카와 타즈나가 되었듯이, 트레이너 씨도 많이 변한 것이리라.
“아, 그리고 정말 미안한데…내 것도 부탁할 수 있을까.”
“트레이너 씨의 것이라면…차 말씀이신가요?”
“맞아. 내 건 커피로 부탁할게. 서랍에 보면 커피 믹스가 있을 거야.”
담당 우마무스메들은 차, 본인은 커피. 명확하게 아이와 어른을 나누는 것 또한 트레이너 씨답다면 트레이너 씨답다. 이곳에 하야카와 타즈나의 컵이 있었더라면, 트레이너 씨와 같이 커피를 한 잔 나눌 수 있지 않았을까, 괜스레 아쉽다는 생각이 든다.
“알겠어요. 트레이너 씨 것은 따로 준비해 둘 테니까, 안심하고 다녀오세요.”
“……고마워. 부탁할게, 타즈나.”
하야카와 타즈나에게 미소로 감사 인사를 건네곤, 트레이너 씨는 노트북과 함께 사무실을 급하게 뛰쳐나갔다.
달칵, 하고 사무실의 문이 닫히자, 하야카와 타즈나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무래도 트레이너 씨의 의자에서 그의 온기를 조금 더 맛보고 싶긴 했지만, 아이처럼 어리광 부릴 나이는 아니기 때문이다.
게다가 트레이너 씨의 작은 부탁도 있으니까 말이다. 삼십 분이 적은 시간은 아니지만, 그의 담당 우마무스메들이 조금 일찍 찾아올 가능성도 염두에 두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그녀들이 오기 전에 차를 준비해 두려면, 지금부터 시작하는 것이 맞기 때문이다.
선반에서 여섯 개의 머그컵을 꺼낸다. 그리고 트레이너 씨의 언질대로 선반에 놓인 순서 그대로 손님맞이용 책상 위에 하나씩 올린다. 가만히 보니 여섯 개의 컵 모두 각 우마무스메의 개성이 조금씩 들어가 있어 제법 귀엽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다음, 냉장고에서 생수통을 꺼내어 커피포트에 넣고 전원을 켠다. 그리곤 물이 끓는 동안 선반 위쪽에서 쿠키를 꺼내어 컵 뒤편에 있는 작은 그릇에 정갈히 담아 여섯 개의 머그컵 옆에 놓아둔다.
그러는 동시에 찻잎을 꺼내어 찻주전자에 조금 덜어 놓고, 팔팔 끓고 있는 커피포트의 물을 조금 식히기 위해 가만히 내버려 둔다. 너무 뜨거운 물로 차를 우리면 맛이 없다고 트레이너 씨에게 들은 적 있기 때문이다.
“커피…커피가 어디에 있지…?”
그리곤 트레이너 씨의 특별 주문인 커피를 찾기 위해 서랍을 열었다. 하지만 커피 믹스가 보이지 않아 잠시 눈을 굴려 서랍 안쪽을 자세하게 살펴본다.
“이건 어쩔 수 없으니까요~♪”
그러나 눈에 보이는 곳에는 트레이너 씨가 말한 커피 믹스가 없어서, 부득이하게 트레이너 씨의 서랍에 손을 넣고 안쪽을 더듬어가며 커피 믹스를 찾는다.
그러다가 손에 바스락거리는 비닐의 감촉이 느껴지자, 살며시 승리의 미소를 짓는다. 서랍 안쪽 깊숙하게 있었기 때문에 눈으로는 안 보였구나, 그렇게 중얼거리며 금색의 커피 믹스 봉투를 꺼내 든다.
“조금 더 좋은 것을 드셔도 되는데.”
일본 브랜드의 커피 믹스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하야카와 타즈나는 트레이너 씨의 커피 믹스가 어떤 브랜드인지, 어느 정도의 가치인지를 대강 안다. 그야, 트레이너 씨가 토키노 미노루를 담당할 때부터 종종 마셨던 것이니까. 찾아본 적 없다면 분명 거짓말이겠지.
그러나 한편으로는 원체 바쁘시니까 커피를 직접 내려 드실 시간은 없다는 것을 깨닫는다. 커피 믹스를 타 먹는 시간도 어찌 보면 사치일지도 모른다.
그러니, 하야카와 타즈나가 조금 더 신경을 써 줘야 할 것이다. 담당 우마무스메 아이들이 트레이너 씨 신경 쓰는 것이 눈에 티가 날 정도이긴 하지만, 아무래도 애들은 애들이다. 어른의 배려심을 잘 모르는 나이대이기 때문에…어른인 하야카와 타즈나가 조금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
그래, 이번 주말에 백화점에서 트레이너 씨에게 선물할 커피머신과 좋은 원두를 하나 사자. 맨하탄 카페에게 물어보면 분명, 트레이너 씨에게 맞는 최고급 원두를 추천해 줄 것이다.
물론, 기계만 있다고 해서 트레이너 씨가 커피를 내려 드실 리가 없다는 것을 잘 안다. 그러니까 하야카와 타즈나가 매일 이 시간에, 트레이너 씨를 만나러 오는 이 시간에, 커피 한 잔 정도 내려 드릴 생각이다.
그런 것쯤, 다른 아이들과는 다른 한 걸음, 하야카와 타즈나에게는 그리 어렵지 않은 일이다.
이사장 비서라더니, 트레이너 씨의 비서 역할도 조금, 알게 모르게 겸하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트레이너 씨가 부탁한 커피 믹스를 사용해야 할 차례다. 차와는 달리 커피는 뜨거운 물을 사용하는 편이 좋기에, 살짝 온도가 내려간 물은 찻주전자에 넣고, 새로운 물을 꺼내어 다시 한번 커피포트에 넣고 끓인다.
증기가 팔팔 피어오르고, 하야카와 타즈나는 트레이너 씨의 컵에 커피 믹스를 뜯어서 집어넣는다. 그러면서도 설탕을 전부 넣지 않고 적당히, 절반 정도만 넣는 것을 잊지 않는다. 트레이너 씨도 이제 마냥 젊으시기만 한 건 아니니까…당분 조절에 신경 쓰셔야 할 나이니까.
그래봐야 하야카와 타즈나와 몇 살 차이 나는 것은 아니지만, 어쨌건 트레이너 씨가 조금 더 나이가 많으니까. 하야카와 타즈나로서는 약간 더 신경을 쓰는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며 이런저런 준비를 하다 보니, 어느새 시계가 거의 일곱 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조금 있으면 트레이너 씨의 담당 우마무스메 아이들이 들이닥칠 것이다. 사무실의 조용한 평화가 깨지고, 하야카와 타즈나의 작은 여유도 끝나는 것이다.
그래도 조금만 더 있으면, 트레이너 씨가 돌아오신다. 담당 우마무스메 아이들과 약간의 대화도 하고, 이사장 비서가 가져온 서류도 살펴보며, 그러면서 자신을 기다리던 하야카와 타즈나와 시답잖은 대화도 하는…그런 소중한 시간을 보내는 것이다.
하지만 아직, 그 시간을 만끽하기 전에 해야 할 일이 있다. 펄펄 끓어오른 커피포트의 물을 트레이너 씨의 컵에 붓는다. 그리곤 고개를 돌려 컵을 휘휘 저을 무언가를 찾아보았지만,
“어라, 티스푼이…….”
있으리라 생각했던 티스푼이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면 트레이너 씨는 지금껏 무엇으로 커피를 저었단 말인가. 설마 커피 믹스 봉투로…아니, 그건 조금 너무 아저씨 같잖아. 이해가 되지 않아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백화점에서 티스푼도 하나 사 두자, 중얼거린다.
그러면서 어쩔 수 없이 선반에서 젓가락을 하나 꺼내어 채 녹지 않은 커피를 살살 저었다. 나중에 설거지도 한번 해 드려야겠지, 이렇게 트레이너 씨의 사무실에 방문할 핑계를 하나하나 만들어가는 것도 제법 나쁘지 않다.
그러다가 문득,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트레이너 씨의 머그컵이 눈에 들어왔다. 트레이너 씨는 생각보다 뜨거운 것을 못 드신다. 고양이 혀…는 아니지만 뜨거운 커피보다는 조금 식은 편을 선호하신다.
살짝 식혀 두는 것이 좋겠지, 중얼거리며 고개를 숙여 트레이너 씨의 머그컵을 바라본다. 그리곤 천천히, 그러면서도 토키노 미노루의 작은 애정을 담아 후― 후一. 두어 번 바람을 분다. 괜스레 낯 뜨거운 느낌이 든다. 거울을 ㅂㅈ 않아도 얼굴이 빨갛게 물들어 있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었다.
동시에, 조금은 짓궂은, 그러면서도 바보 같은 트레이너 씨에게 딱 알맞을 법한 장난이 머릿속에 떠오른다. 정말 할 거야? 내면의 토키노 미노루가 속삭인다. 하지만 그렇게 묻는 신마 또한 하야카와 타즈나의 답을 이미 알고 있으리라.
당연하지, 이런 기회는 흔치 않으니까. 트레이너 씨 모르게 한 번쯤 곯려줘도 괜찮잖아. 그 옛날의 토키노 미노루라면 하지 못했겠지만, 하야카와 타즈나는 어른이니까. 그때와는 다르니까.
오른손잡이인 트레이너 씨는 이렇게 컵을 잡으시겠지, 하야카와 타즈나 또한 오른손으로 자연스럽게 컵을 쥐고, 그녀의 입가로 들어 올린다. 불그스름한 입술을 달싹이며, 마지막으로 할까 말까, 의미 없는 고민을 한다.
그러다가 결심을 굳히고, 트레이너 씨의 머그컵, 트레이너 씨가 입을 댈 것으로 생각되는 곳에, 그녀의 부드러운 입술을 살며시 포갠다.
쪽―, 하는 소리. 아무에게도 들리지 않았을, 그래야만 할 소리였다. 트레이너 씨가 커피를 마시면, 하야카와 타즈나, 그리고 토키노 미노루와 간접 키스를 해버리게 되는…그런 작은 함정.
트레이너 씨는 아무것도 모른 채, 하야카와 타즈나의 타액이 묻은 컵을 입에 대고, 커피를 한 모금 한 모금…목구멍으로 넘기시겠지. 그래, 아무것도 알지 못한 채로, 자신이 덫에 걸렸다는 사실조차 모른 채로.
그런 생각을 하니 몸이 오싹 달아오르는 느낌이었다. 그러나 그런 황홀감도 잠시, 이내 평정과 침착을 되찾은 하야카와 타즈나는, 트레이너 씨의 머그컵을 그의 책상, 손에 닿기 가장 좋은 곳에 내려놓는다.
그와 동시에, 시곗바늘이 일곱 시를 가리켰고, 약속이라도 한 듯이 사무실 문이 철컥, 열렸다. 뭐, 트레이너 씨의 담당 우마무스메 애들이겠지, 속으로 여유롭게 피식 웃으며 트레이너 씨의 자리에서 걸어 나온다.
동시에 첫 번째로 들어온 사토노 다이아몬드가 곧바로 소파 위로 점프하고, 뒤따라 들어온 키타산 블랙 또한 질세라 사토노 다이아몬드의 옆자리로 점프를 한다.
그런 철없는 아이들의 행동에 심볼리 루돌프는 곤란한 듯이 어깨를 으쓱였고, 눈치 없는 토카이 테이오 역시 소파로 점프를 하려다가 메지로 맥퀸에게 제지당한다.
그리고, 메지로 아르당이 누군가와 대화하며 사무실로 들어온다. 그래, 그녀가 마지막은 아니었다. 그 뒤에, 트레이너 씨가 노트북을 든 채로 메지로 아르당과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중요한 이야기는 아닌, 어찌 보면 조금 사적일 수도 있는 이야기들이었다. 토키노 미노루가 그러했던, 트레이너 씨와의 시시콜콜한 이야기. 그것을 지금은 메지로 아르당이, 그리고 트레이너 씨의 다른 담당 우마무스메들이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것이었다.
“다녀오셨어요, 트레이너 씨. 일찍 오셨네요?”
하지만 괜찮다. 하야카와 타즈나는 웃으면서 트레이너 씨를 반긴다. 트레이너 씨의 개인 공간에서, 그에게 ‘다녀오셨어요’라고 말할 상황이 얼마나 있겠는가. 마치…그래, 트레이너 씨를 온종일 기다린 아내 같은, 그런 말 한마디.
하야카와 타즈나의 말에, 트레이너 씨는 잠시 메지로 아르당과의 대화를 멈춘다. 그리곤 하야카와 타즈나를 향해 미소를 지어 보이며 대답한다.
“미팅이 조금 빨리 끝났어. 오는 길에 애들 만나서 같이 와버렸네.”
“후후, 부탁하신 커피, 준비해 두었답니다.”
“고마워, 타즈나.”
메지로의 두 아가씨가 눈살을 찌푸리며 하야카와 타즈나를 보았지만, 그녀는 여유롭게 웃어넘긴다. 그런 것보다, 자리에 앉으신 트레이너 씨가 머그컵을 잡는 것이 더 신경 쓰였기 때문이다.
트레이너 씨가 컵을 입가에 가져다 댄다. 하야카와 타즈나가 입술을 포갰던, 바로 그 자리다. 그곳에 트레이너 씨의 입술이 닿았고, 천천히 커피를 한 모금, 마신다.
하야카와 타즈나의 얼굴이 살짝 달아오르는 것은, 어쩔 수 없는 본능이리라. 그리고 트레이너 씨는 그 사실을 모른다. 커피의 달짝지근한 맛과 고소한 향을 즐기며, 하야카와 타즈나가 손을 써 두었다는 것은 꿈에도 모른 채, 다시 한 모금 마시고 있다.
다른 아이들이 사무실에 있건 말건, 하야카와 타즈나는 더 이상 신경 쓰지 않는다. 자신이 머그컵에 새겨 둔 작은 애정이, 트레이너 씨의 입으로 들어간 것이다. 올라가려고 씰룩대는 입꼬리를 가까스로 억누르며, 하야카와 타즈나는 황급히 트레이너 씨의 책상에서 멀어진다.
“돌아가려고? 서류 보고 있으니까 잠깐만 기다려 줄 수 있어?”
그것을, 하야카와 타즈나가 업무로 복귀하는 것으로 판단했는지, 트레이너 씨가 그녀를 불러 세운다. 하지만 그런 것 때문이 아니었기에, 천천히 고개를 가로젓는다.
“아뇨, 잠깐…바람이나 쐴까 해서요.”
“하하…사람이 많아지니 조금 덥긴 하네.”
그렇게 말하며, 트레이너 씨는 사무실 에어컨의 온도를 조금 내린다. 그런데도 하야카와 타즈나의 열기를 식히기에는 터무니없이 모자라다.
“금방 돌아올게요.”
“그래. 서류, 처리해 둘게.”
토카이 테이오와 키타산 블랙을, 심볼리 루돌프가 어르고 달랜다. 사토노 다이아몬드와 메지로 맥퀸은 그것을 옆에서 구경하며 차를 즐기고 있었다. 메지로 아르당이 눈살을 찌푸리며 트레이너 씨와 하야카와 타즈나를 번갈아 바라본다. 그 모든 것들을 뒤로한 채, 하야카와 타즈나는 사무실을 나선다.
달칵, 문이 닫히고, 바깥의 뜨겁고 습한 공기가 그녀의 폐를 찌른다. 하지만 이게 좋다. 머그컵에 입을 대는 트레이너 씨를 계속 바라보고 있노라니, 이것보다 더욱 가슴이 뜨거워지기 때문이다.
그렇게 고양되었기 때문일까, 하야카와 타즈나는 그녀답지 않게, 메지로 아르당이 중얼거리는 소리를 듣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모를 줄 아셨나…노골적이네요.”
메지로 아르당이 혀를 찬다. 트레이너 씨는 아무것도 모른 채로 커피를 즐긴다. 하야카와 타즈나는 복도를 잠시 걷는다.
여름의 공기는, 숨이 막힐 정도로 축축했다.
평화로운 중앙 트레센의 어느 날이었다.
==========
생각해보면 토키노 미노루가 들어가는 모든 글은 괴문서가 아닐까
나중에 아르당이 복수......하겠죠??
또 다시 피바람이..
KaidoHKS
2024/07/26 00:19
나중에 아르당이 복수......하겠죠??
메에에여고생쟝下
2024/07/26 00:25
또 다시 피바람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