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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 (65)(66) - 사르나트 유적군 녹야원 & 고고학 박물관 ^^^^^^^

새벽에 갠지즈강 일출 풍경을 감상한 후, 우리는 호텔로 돌아와 조식을 먹었다.
바라나시 근교에 있는 사르나트까지는 버스로 약 40분 정도 소요된다.
사르나트는 석가모니가 35세에 깨달음을 얻고 처음으로 설법한 성지이다.
불교의 4대 성지는 석가 탄생지인 룸비니 동산, 깨달음을 얻은 부다가야, 최초 설법지 녹야원, 입멸한 쿠시나가라 이다.


최초 설법지인 녹야원은 불교신자들의 중요한 순례지라고 할 수 있다.
녹야원은 '사슴이 살고 있는 사원'이라는 의미라고 한다.
석가모니가 설법을 하기 위해 처음 이곳에 왔을 때 사슴들이 뛰어 놀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2) 기원전의 중요한 유적지라 그런지 가방 검사가 철저했다.
(3) 굽타 시대의 귀중한 유산인 웅장한 불탑인 다메크 스투파(Dhamekh Stupa) 불탑이다.
높이 약 42m이고 기부의 직경은 약 28m 로 거대한 원통형 전탑이다.
기원전 265년 부터 기원전 238년까지 재위한 아소카 왕은 인도 마우리아 제국의 세번째 왕이다.
무려 기원전 3세기에 불교 왕국의 초석을 다지기 위해 아소카 왕이 건립하였고
서기 3~4세기를 다스렸던 굽타 왕조시대에 재건되었다.
하단에는 마우리아 왕조 시대의 건축양식이 남아 있고 상단은 굽타 양식이다.
꽃과 기하학적 무늬가 있는 벽돌은 전형적인 굽타 양식의 특징이다.

아소카 왕은 부처의 사리를 봉안하기 위해 다르마라지카 스투파(Dharmarajika Stupa)를 세웠다.
1794년 마하라자 궁전 건립 당시 벽돌이 부족하자 다르마라지카 스투파를 허물고 그 벽돌을 건축자재로 사용했다.
스투파를 해체하면서 부처의 사리함이 나왔는데
건축 책임자는 사리를 강에 던져 버리고 보석으로 장식된 사리함만 왕에게 바쳤다고 한다.
다르마라지카 스투파는 현재 원형의 기단만 남아 있다.
(3) 순례를 온 불교신자들은 합장을 하고 경건한 마음으로 다메크 스투파 불탑을 돌고 있다.
(4) 불탑을 돌던 학생들과 선생님.
카메라를 들자 바로 단체 사진 모드로 전환해 주신다.
인도인들의 모델 친절은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다.
(5) 현재 다메크 스투파만 남아 있고, 사원은 이슬람 시대를 거치면서 파괴되었고 사원터만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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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야원2.jpg
녹야원에서 고고학 박물관으로 가는 길에 보이는 공사 현장이다.
인건비가 저렴해서 그런지 장비가 아니라 사람이 땅을 판다.

요즘 우리나라 작업자는 땅을 파는 일은 하지 않는다.
조금만 파도 되는 현장도 당연히 장비를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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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한 님나무이다.
부처님이 들고 있는 나무가 님나무이다.
병원 문턱이 높은 인도의 서민들에게 민간요법의 대표주자로 만병통치약으로 대접 받는 귀한 나무다.
님나무에는 자연 항생제 성분이 들어 있다고 한다.
녹야원4.jpg
녹야원의 남쪽에 고고학 박물관이 있다.
사르나트 유적군에서 발굴된 출토품이 소장 되어 있는 박물관이다.



마우리야 왕조의 제3대 왕인 아소카 왕은 기원전 272~232년에 인도를 통치했다.
아소카 왕은 최초로 인도를 통일한 왕이다.
잔혹한 전쟁을 통해 통일제국을 세웠으나 살육의 번뇌로 불교에 귀의한다.
아소카 왕은 불교 왕국의 초석을 다지고 불법을 널리 알리기 위해 여러 곳에 사원을 만들고 석주를 세웠다.


석주의 위에는 사자 4마리가 서로 등을 마주 대고 앉아 있는 석상이다.
사자 4마리는 사방의 온 천하를 왕이 다스린다는 의미로 왕의 권위를 상징한다.
광대한 통일왕국은 진정한 내적 통합을 위해 작동하는 종교적 신념이 필요하기도 했다.

아소카 왕은 불교 전파를 위해 아들을 스리랑카에 보내고
유럽, 서아시아, 동아시아 등으로 석가모니의 가르침을 전파하고 불교를 적극적으로 포교한다.
막강한 로마제국의 패권이 기폭제가 되어 변방의 종교였던 기독교가 전 세계로 전파 되었듯이
통일 인도의 아소카 왕의 강력한 권력에 힘 입어 불교가 전 세계로 전파되기 시작하였다.




박물관 입구 정면에 있는 아소카왕 석주의 사자상은 보존 상태가 최상이다.
외부에 있던 사자상은 안으로 옮겨졌고 박물관을 들어서면 바로
사자 네 마리가 관람객을 내려다 보며 위용을 뿜어낸다.


사자상을 받치고 있던 석주의 기둥은 파손 된 채로 외부에 남아 있고
기둥 아래 부분에는 왕의 칙령이 명문으로 새겨져 있다.
아소카 왕의 명문에는 불교 교단의 단합을 엄중한 어명으로 천명하고 있다.
사자의 발 아래의 원형 받침대에 새겨진 부조도 세련된 기법으로 표현되어 있으며
네 개의 사자상은 기원 전에 제작되었다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우아하고 정교하다.
아쇼카 석주의 사자상은 인도의 국장 문장에도 들어있고 인도 화폐인 루피에 등장할 만큼
옛 문화의 자부심을 대표하는 인도인들의 소중한 유물이다.

녹야원5.jpg
(4) '나가리'는 7세기 무렵 생겨난 문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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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를 뜻하는 '만'이라는 글자이다.
인도인들은 '만'이라고 부르고 중국인들은 '완'이라 발음하며 일본인들은 '만지'라고 부른다.
'만'자는 기원전 시대부터 여러 종교에서 사용한 흔적이 있다.

나치의 하켄크로이츠 문양과 비슷하기는 하지만 방향이 반대이다.
히틀러는 티벳에서 발견된 유물에서 신비한 힘을 맹신했고
그 유물에 쓰여진 '만'자를 훔쳐와 방향을 비틀어서 나치의 상징으로 삼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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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야원10.jpg
고고학 박물관은 폰은 물론이고 전자 장비, 영상 장비.. 등 일체의 전자제품을 소지하지 못한다.
그런데 무슨 이유인지는 모르겠지만 카메라는 소지가 가능하고 촬영도 가능하다.
보안 시설과 관련 있는 것일까..? 갸우뚱~

갠지즈강 디아 의식에 이어 고고학 박물관에서도 재능기부를 했다.
일행이 골고루 잡히도록 다양한 각도에서 촬영한 후 보정본 20장을 단톡방에 올렸다.
사진 찍는다고 카메라 들고 다니는 사람인데 기회가 되었을 때 기꺼운 마음으로 하면 촬영자도 흐뭇~
보정 노가다가 힘들기는 하지만 사진을 받은 누군가는 잠깐이나마 행복해 할 것 같아 뿌듯한 마음이다.
(웹에 올리는 걸 허락 받았으나 얼굴은 모자이크 했음)
댓글
  • 고향지기 2024/07/06 18:51

    사진도 깔끔하게 담으셨고
    학생들도 선해 보입니다.

    (vMc60s)

  • 고래공주 2024/07/06 19:45

    세계 어디나 아동들과 학생들은 티없이 맑게 웃지요~
    이상하게도 가난한 나라의 어린이일수록 더 밝게 웃는 건 이상합니다.
    더 잘 먹고 더 잘 입고 더 풍족하게 사니 더 행복할 것 같은데 말이죠.

    (vMc60s)

  • 어느날갑자기 2024/07/06 21:01

    역사의 한 줄기를 사진과 함께 읽으니
    역사책 읽는 것보다 더 쏙 들어오는듯 합니다.
    고생하셨어요????????????????????????????????????????????????????????

    (vMc60s)

  • 고래공주 2024/07/06 21:06

    남의 나라 역사도 알고 보면 흥미로운 점이 많지요.
    쏙쏙 들어가셨다니~~ 보람 뿜뿜입니다. ㅎㅎ
    고마워요~~~ ^^

    (vMc60s)

  • 청-산 2024/07/06 21:19

    와 ~ 이거는 돈 입금 시키고 봐야 할것 같습니다 ~
    내 까지만 공짜고 ~ 내 뒤에 분들은 5000₩ 씩 입금하시고 ~ ㅋ
    아이들의 밝은 모습에 저도 예전 수학여행이 생각납니다 ~

    (vMc60s)

  • 고래공주 2024/07/06 21:33

    ㅎㅎㅎㅎㅎㅎ
    맞습니다.
    인도는 외국인 입장료가 비쌉니다요.
    현지인의 10배에서 20배까지 징수합니다.

    (vMc60s)

  • 고래공주 2024/07/06 21:35

    특히 불교신자들은 엄청난 순례지라고 들었습니다.
    두세 부부가 염주 팔찌까지 하신 불교신자였는데 정말 엄숙한 표정으로 관람하셨어요.
    부처님 사리 봉안한 곳에서는 한참 기도도 하시더라구요.

    (vMc60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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