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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고팠던 시절 가장 생각나는 음식이 있어요.

음식에 관한 사연이라 요게에 써봅니다...
저희집은 아들딸차별이 조금 있던 집이었습니다.
아빠는 일에만 관심이 있으셔서 집안 분위기를 잘 모르셨고,
엄마는 오빠밖에 몰랐어요.ㅎ
같은날 도시락을 싸줘도 제 도시락은 김치들만.. 오빠건 소세지, 계란말이..ㅋ
가난해서 그런줄 알고 반찬투정도 안했는데 어느날 싱크대에 꺼내놓은 오빠의 도시락을 보고 충격받았었죠.
엄마에게 따지니 "너희 오빤 편식이 심해서 그렇지, 넌 아무거나 잘먹잖아." 라는 대답에 속상해서 혼자 울었죠.
전 고등학교때 반에서 거의 3년내내 1등이었어요.
대학을 너무 가고 싶었는데 돈벌라는 부모님 말에 우리집 형편이 힘든가보다 생각하고 포기했어요.
(만년 꼴찌 생날라리던 오빠는 성적안되는데도 가기싫다는 사람 억지로 2년제대학 겨우 보낸건 안 비밀.ㅋ)
그러다 26살에 공부가 너무 하고싶어 혼자 모은돈으로 타지로 대학을 갔습니다.
집에선 당연히 반대했지만 당시 직장생활을 하면서 눈도 트이고 제 고집도 생겨서 도움 없이 혼자 할테니 방해하지 마시라 선포하고 수시로 대학입학을 하게 됐어요.
돈을 넉넉히 모으지 못해서 1학년 1학기까지만 알바없이 순수히 공부만 할수있었는데 그 시절이 저에겐 제일 행복했던 날이었던것 같아요.
과 1등도 해서 장학금도 받아보고 정말 행복했네요.
그리고 혼자 부담해야하는 학비, 생활비, 방세, 공과금 등에 남은 돈으론 부족해서 알바를 병행하게 됐죠.
수업끝나고 7시부터 새벽 마감까지 한달 60정도 되는 알바비를 받으면 방세 25만원을 내고 나머지 35만원으로 모든걸 해결해야 했습니다.
알바와 병행하니 성적도 다음학기는 2등, 3등.. 장학금은 줄어가서 학비까지 따로 모아둬야 하니 점점더 궁핍해졌어요.
집에는 전혀 손벌리지 않았어요.
자존심이 상하고 독립했으니 이젠 내 힘으로 살아야한다 싶어서 그렇게 버텼네요.ㅎ
너무 우중충한 얘기가 길었죠?ㅜㅜ
요게에 글을 쓴 이유는 옛날 자취방 옆 편의점에서 사먹던 음식이 생각나서에요.
가끔 돈이 없는데도 고기가 너무 먹고픈날이 있었어요.
정육점에서 2천원대 찌개용 고기를 먹기도 했는데 삼겹살같은 제대로 된 부위가 먹고플때요.ㅜ
몇개월에 한번? 큰맘먹고 사던 건데 바이더웨*편의점에서 팔던 냉동 삼겹살, 기억에 4~6천원 정도였어요.
그걸 사서 꿔먹으면 정말 정말 맛있었거든요.
지금도 파는지는 모르겠어요.ㅎ
당시 년도가 2007년, 딱 10년전이네요. 아시는 분 계시려나요?ㅎ
다른 음식보다 그 냉동 삼겹살이 기억에 선명한게 너무 맛있게 먹기도 했고 어느날은 남겨서 얼려둔 고기 손질하다 기름기에 미끄러져서 칼에 엄지를 베었는데 심하게 다쳐서 6바늘을 꼬맸거든요..ㅜㅜㅋㅋ 바봉..
그래서 그런가 요즘 올라오던 자취로 고생하는 분들의 글에 그때 그 고기가 생각나네요.ㅎ
힘든 시절도 시간이 지나니 그때의 제 젊음과 열정이 있어 추억이 되고 그리움이 되기도 하더군요.
그땐 너무 구질구질해서 빨리 지나가기만 바랬는데 환경은 제 인생 최악의 시절일지 모르나, 저란 사람의 내면이 가장 불타오르던 열정의 시절이었습니다.
엄지손가락의 꼬맨 흉터를 볼때마다 잊지않으려 노력해요.ㅎ
댓글
  • redmeat 2017/09/05 09:58

    '아주 옛날 이야기구나.'하고 읽다가 2007이라는 숫자에 놀랐습니다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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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보르보르 2017/09/05 11:03

    저에겐 그런 터널같은 시절은 2002년이었어요.
    정말 끝이 없는 터널인것 같았는데 그래도 걷다보니 그 끝에 빛이 반짝 하더라고요.
    끊임없이 저를 갈아내던 시간이었는데..
    님덕분에 다시 떠올랐어요. 감사합니다.
    아, 좀 더 예리해저야겠어요. 살면서 너무 무뎌졌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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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Dannyboy 2017/09/05 11:13

    앞으로는 다른 사람보다는 님을 위해서 많이..많이. 투자 하시길 바래요.
    가족들이 님에게 손 벌리지 않길 바래요.
    많은 부모들 보면 아들 아들 벌벌 떨면서 키우고 나중에 일 생기면 딸에게 부탁하고 아니면.당당히 달라고.하는 사연이 많은데 원글님에게는 절대로 절대로 없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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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꿀톡끼 2017/09/05 12:11

    엄마가 해주신게 많이 떠오르네요
    물론 세상에 맛난것 천지지만 울엄마가 해주신
    밥이 그리워요 특히 서러울때 춥고배고플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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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애하고싶다! 2017/09/05 12:12

    읽으면서 아 일 정말 열심히 하시겠다
    하고 닉 봤는데 월급뤼팽 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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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크렛 2017/09/05 12:13

    2000년도에 아직 그런 구시대적인 차별 하는 집안이 있다는게 충격이네요..
    그래도 작성자님이 잘 이겨내신거 같아서 다행인듯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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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euskal 2017/09/05 12:15

    바이더웨이라 ㅎㅎ 없어진 이름이네요.
    엄지 상처는 괜찮으시겠죠. 생활력 좋으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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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욕심꾸러기 2017/09/05 12:38

    글이 왠지 차분하고 따뜻한 느낌도 들고.. 어떤 분인가 궁금하기도해서 예전글들 몇개 보구왔어요... (기분 안나쁘셨으면..좋겠어요ㅠ)
    작성자님~ 요리도 잘하는 금손이시궁~
    남편분한테도 넘나 따뜻한 마음 갖고 계시고......ㅎ
    강하고, 또 마음이 아름다우신것 같아요ㅎ
    (글읽으며 나도 이렇게 살아야지! 다짐했어요..! ㅎㅎ)
    맛난거 많이 드시고! 무리는 하지 마시고~!! 이쁜 아가 뱃속에서 잘 키우시면서, 글도 또 종종 써주세용ㅎㅎ
    덧. 아! 담엔 글에 엔터도 좀 쳐주세요ㅜㅜ 그럼 가독성이 더 좋아질거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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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Yuka 2017/09/05 12:40

    정말 열심히 사셨네요.
    고생 많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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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로딩구 2017/09/05 13:13

    정말 멋져요! 멋지게 사셨네요 존경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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