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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된 내 노트북 느려터진 것 열었더니

어느덧 애기엄마 됐는데
갑자기 다시 글 쓰고 싶어져서 10년 된 내 노트북 느려터진 것 열었다.
그 안에 내 작업들 쓰다 만 채 덮었던 그대로 여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제목 하나씩 보며 그땐 그랬지. 하며 서글퍼졌다.
 
'당신이 잠든 사이에'
 
라는 제목. 이건 도저히 기억이 안 나는데 뭐지? 연애 소설인가?
아련한 기분으로 더블클릭 했더니 이런게 있었다:
 
 
당신이 잠든 사이에
 

  

“이봐, 일어나라고.”
누군가 어깨를 세차게 흔들었다.
“다 끝났으니까 일어나 봐. 이 멍청아.”
눈을 떴다. 고슴도치가 한심하다는 얼굴로 나를 쳐다봤다. 고슴도치는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주위를 둘러봤다. 잉어, 고래, 기린, 딱정벌레 등이 나를 빙 둘러 쌌다.
“야 이 새끼야, 너 때문에 내 전세금 다 날렸잖아. 이 병신! 잠이 오냐? 응? 이제 어쩔 거야?”
소라게가 분통을 터뜨렸다.
“지금 너만 화 난 거 아니야. 말 좀 가려서 해.”
고래가 잔뜩 억눌린 목소리로 말했다. 윤기 나던 검은 피부에 잡힌 주름이 그의 화를 대변했다.
“X발!”
소라게가 고래를 쳐다보며 보란 듯이 악을 썼다. 그러자 지켜보던 딱정벌레가 조용히 한마디 했다.
“나는 대출받아서 돈 걸었거든. 좀 주둥이 좀 다무시지.”
이게 다 뭔 소리다냐? 트랙 중간지점에서 어떤 섹시한 다람쥐가 건네 준 음료수를 마신 것 까지는 기억이 나는데...
“대체 어떻게 된 건데?”
나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걸 몰라서 물어? 네가 퍼 자는 사이에 거북이가 골인했어. 그 덕에 너한테 판돈 건 우리는 다 쫄딱 망하게 생겼고! 거북이한테 돈 걸었던 다람쥐들만 인생 역전 한 거지. 야, 어떻게 토끼가 거북이한테 질 수가 있냐? 오래 살다 보니 별 일 다 보겠네.”
호랑이가 담배연기를 훅 내뿜으며 말했다. 그럼 그때 다람쥐 년이 준 음료수에...
“이건 사기야!”
내가 외쳤다.
“그건 내가 할 말이다, 이 새끼야! 오늘 너 죽고 나 죽자!”
얼굴이 빨개진 소라게가 집게로 딱딱 소리를 내며 달려들었다. 소라게의 집게가 내 긴 귀를 꽉 꼬집었다.
“아야, 아야! 나도 피해자라니까. 어떤 다람쥐 년이...”
나는 귀를 잡고 비명을 질렀다.
   
 
뭐 이런걸 다 썼는지 웃다가 갓난애기 깨워버렸다. 이런 건 다시는 못 쓸 것같은 나이가 되어버려서 조금 슬프다.

댓글
  • 긍정노력77 2017/08/31 02:06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욕들이 아주 찰지네요ㅋㅋㅋ제목은 뭔가 낭만적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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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기노루 2017/08/31 05:37


    저두 진짜 이 표정으로 읽었어요. 어? 이런 제목 뭐야? 연애이야기 썼을리가 없는데. 엥? 밑도끝도 없이 웬 동물이 잔뜩 나와? 사람 별명들인가? 헐 진짜 동물이었네? ㅋㅋㅋㅋ
    뭔가 쓰던게 잘 안풀렸을때 홧김에 갈긴 느낌인데 정확히 기억이 안나네요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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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방울성게 2017/09/01 11:21

    “이봐, 일어나라고.”
    누군가 어깨를 세차게 흔들었다.
    이렇게 시작하는 거 되게 좋네요. 깔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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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베오베상주녀 2017/09/02 16:33

    재미있을거같은 냄새가 팍팍나는데  다음화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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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뜬금포 2017/09/02 16:37

    삐빅.
    이 글은 성인노루가 아기노루 일 때 토끼에 물아일체해서 쓴 글입니다.
    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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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랑아랑아~ 2017/09/02 16:47

    한참 안하다 다시 시작한 동숲에서
    집앞에서 만난 호랑이 자식이
    너 죽은거 아니었냐고 할때가 생각나는 글이네요.
    사실 오래전이라 호랑이인지 원숭이인지도
    몰겠어요.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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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밥은먹었냐 2017/09/02 17:04

    [더보기] 어디있죠? 못찾겠네 빨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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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기노루 2017/09/02 18:48

    대략 10여년 전 유물을 발굴한거라서요. 저야말로 뒷부분이 궁금한데 과거의 나님이 뭔생각이었는지 당최..ㅠㅠ 언제고 한번 시도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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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칸드 2017/09/02 19:35

    동화 토끼와 거북이 가지고 쓰신 것 같네요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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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똘이형 2017/09/02 21:00

    용궁에서 인어항시대기 이런거 나올기세
    재미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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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다털렷어 2017/09/03 01:12

    다람쥐년이...! 다음얘기 너무 궁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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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울한팽귄 2017/09/03 09:03

    작가로 데뷔하셨으면 대박치셨을듯 합니다.
    글이 술술 읽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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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NaRangNolJa 2017/09/03 09:07

    "잠깐만, 잠깐만 ! 이건 시합의 공정성 위배라고 ! 나는 다람쥐 그 년이 준 음료수를 먹고 정신을 잃었단 말이야 !"
    억울함을 가득 담은듯 내뱉은 나의 말에 소라게는 어이없다는 듯 집게발을 놓았다.
    "아니 , 그 말을 나보고 어떻게 믿으라는거야? 설령 그렇다한들, 이미 돈은 배분된 지 오래라고 !"
    "잠시만"
    성을 내던 소라게의 말을 끊은건 연신 줄담배를 피우던 호랑이였다.
    "만약 그 말이 사실이라면,  말그대로 이번에 열린 내기는 무효가 된다. 또한 이 판에 돈을 넣은 동물이 몇 마리인데 이딴식으로 뒤통수를 친거라면..
    내 가만두지 않을 것이다"
    라고 말하며, 발톱을 날 세우고 거북이 집으로 뛰쳐 달려갔다.
    잠시 멍하니 쳐다보던 나머지는 이내 호랑이의 뒤를 쫓았다.
    "대낮부터 왜그래..."
    "내 덕분에 돈도 많이 벌었잖아... 이리로 와봐..."
    다람쥐 집에서 거북이가 찾아와 서로 꽁냥거리던 모습이 영 꼴보기 싫었던 호랑이가 나무 문을 기세좋게 부숴버렸다.
    쿠당탕, 소리와 함께 판자가 부숴지자 시선이 다람쥐와 거북이에게 꽂혔다.
    "저, 저 X발련 돈에 환장해서 늙은 거북이세끼한테 다리 벌린거봐라 저, 시발거"
    "그만, 그만 진정하고 천천히 이야기를 나눠보자고"
    "돈 건 세끼랑 선수랑 X발 저 지랄하고 있는거면 말 다한거지 뭘 더 봐야하는건데 ! 내가 시발 동물권리보호협회에 다 신고때린다 진짜로 느그들"
    씩씩거리는 소라게의 입에서는 거품이 꼬록거렸고, 그런 소라게를 진정시키는건 고래의 몫이었다.
    그런 모습을 여의치않고 호랑이는 살기를 띄고 천천히, 다람쥐와 거북이에게 다가갔다.
    당장이라도 도망쳐야했을 다람쥐였으나 호랑이의 기세 앞에 그만 얼어버리고 말았다.
    "딱 한가지만 묻는다. 다람쥐, 토끼의 음료수에 약을 탔나?"
    깊은 숨을 내쉬는 호랑이의 입김에 마치 집 안 전체가 얼어붙은 듯 했다.
    불 같이 성내던 소라게조차 그 입김 소리에 거품을 조용히 삼켜냈으니 말이다.
    "아....아니 그런게 아니라.. 그냥 나는 여우가 힘들어 보이길래..."
    더이상 참기 힘들었던 나는 그대로 다람쥐에 뺨을 긁어냈다.
    피가 거칠게 튀었고, 찍찍 거리며 다람쥐가 거북이의 뒤로 숨었다.
    하지만 거북이조차 무서운건 마찬가지였는지 온 몸을 등딱지 안으로 숨겨내기 바빴다.
    쿵, 소리와 함께 호랑이의 발바닥이 거북이의 등딱지를 눌렀다.
    다람쥐와 거북이가 부들부들, 떨면서 호랑이의 눈치만을 보았다.
    고슴도치는 나의 양발을 잡고 진정시켜주고 있었고, 나도 조용히 호랑이의 처사를 기다렸다.
    "사냥개 불러, 판돈 그대로 두고 내기 다시 시작한다. 이번에도 헛짓거리하면 둘 다 죽여버릴 줄 알아"
    그 말을 들은 소라게와 딱정벌레가 호랑이에게 따지려고 했으나 호랑이의 눈빛에 이내 꼬리 내렸다.
    "개같은 년, 목숨 부지한게 다행이라지"
    투덜거리며 집 밖을 나서는 소라게와 조용히 나가는 호랑이를 멍하니 바라보던 다람쥐는 이내 거북이의 몸을 살폈다.
    딱정벌레는 그새 대출 받은걸 아내한테 들킨 모양인지 싹싹 빌고 있었고, 고래는 눈치 보느라 바빴다.
    "하기사, 전세금 날려먹으면 나도 저렇겄다"
    라고 고슴도치는 중얼거리고는 내 손을 이끌고 밖으로 나왔다.
    "너, 이번엔 정말 잘해야해 아무도 믿지마"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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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갤러헤드 2017/09/03 09:25

    결제!!!!! 결제에!!!!!!!!!!(원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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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어떤 2017/09/03 09:43

    ㅋㅋㅋㅋㅋㅋㅋ재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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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다이어트성공 2017/09/03 09:52

    신선하네요 ㅎㅎㅎ 작업 계속 이어서 해 보시는게 어떨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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