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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겁 많은 택시기사 두석규

택시기사 두석규는 백미러를 힐끔거렸다.

뒷자리에 탄 아가씨가 이상했기 때문이다. 
말이 없는 손님일 경우에는 대부분 스마트폰이기 마련이다. 한데 그녀는 무표정으로 앞만 응시하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무언가를 골똘히 생각 중인 것 같지도 않았다.

두석규는 이 손님이 무서웠다. 특히나, 그녀의 긴 생머리가 이상하게도 꺼려졌다. 그는 1년에 한 번씩은 꼭 점집을 찾을 정도로, 귀신 같은 걸 잘 믿는 편이었다.

' 점쟁이가 올해는 여자를 조심하랬는데.. '

그는 조금 후회됐다. 최근 돈이 궁해서 깊은 밤까지 마지막 손님을 태웠지만, 이런 손님인 줄 알았다면 그냥 퇴근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가 어떻게 알았겠는가? 택시기사들 사이에 떠도는 무수한 귀신 목격담들 속에는, 가게에서 걸어 나온 귀신은 없었다. 전부 길가에 서서 손을 흔드는 여자들이었지.

두석규는 말이라도 걸어볼까 싶었다가 마음을 거뒀다. 만약 저 표정으로 대답까지 없다면 더욱 무서울 것 같았다. 그냥 신경 쓰지 않으려고 애쓰며 목적지까지 운전만 했다. 
도착 후 미터기 요금은 2만 원. 두석규는 일부러 눈을 마주치지 않고 상체를 뒤로 돌렸다.

" 다 왔습니다. "

그는 어서 이 여자가 돈을 내고 사라져주기를 바랐지만, 

" 아저씨.. 지금 돈이 없어요. 들어가서 가지고 나올게요.. "
" 아.. "

평소의 그였다면 인상을 찡그리며 한소리 내뱉어야 할 순간이었지만,

" 아 예에..그러세요.. "

두석규는 아가씨가 차에서 내려 집으로 들어가는 모습을 보며 갈등했다. 그냥 돈을 포기하고 도망갈까?
차마 그럴 순 없었다. 안 그래도 최근 돈이 궁해서 몸을 혹사하는 중이었는데, 2만 원은 그에게 큰돈이다. 

하지만 그녀는 15분이 지나도록 나오질 않았다. 두석규는 그 집의 대문을 바라보며 갈등하다가, 차에서 내렸다.

" 실례합니다- "

조심스럽게 대문 너머로 사람을 불러보는 두석규. 잠시 뒤,

" 누구십니까- "
" 아, "

대문을 열고 한 중년 여인이 나타났다. 두석규는 사정을 설명했다. 
한데, 여인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으며,

" 그게 정말인가요? 제 딸을요? 며칠 전에 죽은 제 딸을 정말로 태웠단 말이에요? "
" 예?? "

그 아가씨가 죽었다고? 두석규는 순간 소름이 돋으며 한기가 올라왔다. 당황하며 자세한 정황과 아가씨의 생김새를 설명하자,

" 제, 제 딸이 맞습아요..! 어떻게 이런?! 어떻게! "

여인은 부들부들 떨더니, 눈을 부라리며 물었다!

" 제 딸을 태운 곳이 어디예요?! 어느 가게에서 나왔다고 했어요?! "
" 네? "
" 지금 제 딸을 죽인 새끼가 도망가서 잡지도 못하고 있다고요! 제 딸이 그놈을 잡아달라고 나타났나 봐요! 어느 가게예요?! 예?! 그곳으로 저를 데려가 주세오! "

두석규는 당황했지만, 여인은 막무가내였다. 제발 딸의 원한을 풀 수 있게 도와달라며, 요금을 2배로 준다고까지 했다.
귀신이 관련된 일에 엮이기 싫었지만, 도저히 거절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어쩔 수 없이 두석규는 그녀를 택시에 태웠다.

" 하나뿐인 우리 소중한 딸을 죽이고 도망간 그 새끼...! 내 손에 잡히기만 해봐...! "

여인은 가는 내내 이를 갈았다. 이윽고 두석규가 아가씨를 태웠던 가게 앞에 차를 세우자,

" 어디 가지 말고 여기서 기다려주세요! 내가 가서 그놈을 데려올 테니, 경찰서까지만 같이 가주세요! " 
" 아 예에.. "

여인의 거친 기세에, 두석규는 차마 지금 요금을 내달라고 하지 못했다.
왠지 익숙한 기다림이 다시 시작되기를 10분, 그리고 20분. 

" 뭐야...? "

들어간 여자가 깜깜무소식이자, 두석규는 할 수 없이 다시 택시에서 내렸다.
그는 조심스럽게 가게 안으로 들어섰는데, 이상하게도 소란이 느껴지지 않았다.

" 실례합니다-? "

두석규가 조심스럽게 외치자, 가게 안쪽에서 중년 남성이 나타났다.

" 누구십니까? "
" 네? 어- 그러니까, 저는... "

의혹에 찬 얼굴로 사정을 설명하는 두석규. 한데, 이번에도 남자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리는 게 아닌가?

" 우, 우리 아내를 태웠다고? 그게 정말입니까? 며칠 전에 죽은 우리 아내를 태웠단 말입니까? "
" 네?? "

순간, 두석규는 온몸이 덜덜 떨리며 한기가 솟았다. 그 아줌마도, 며칠 전에 죽은 사람이었다고? 
믿을 수 없어서 두 번 세 번 설명해보지만,

" 마, 맞네! 맞어! 코에 있는 큰 점! 죽은 우리 아내가 맞아! 우리 딸이 죽고 나서, 너무 힘들어 스스로 목숨을 끊었던 우리 아내가 맞아! "
" 으...으...! "

온몸에 소름이 돋은 두석규의 몸이 이상하리만치 덜덜 떨렸다. 그 상태로 남자의 얼굴을 바라보자, 떨림은 더욱 심해졌다.
남자는 울 듯한 얼굴로 한탄했다.

" 아이고 이 사람들아! 얼마나 원한이 심했으면 귀신으로까지 나타나나 이 사람들아! "

그 얼굴을 보며 한기에 몸서리치던 두석규는 끝내, '풀썩!' 다리가 풀려 주저앉았다.
놀란 남자가 그를 부축하자, 두석규는 덜덜 떨리는 손을 들어 보이며 부탁했다.

" 서, 선생님.. 제가 지금 도저히 차를 운전할 수 있을 것 같지가 않습니다.. 저 대신 운전 좀 해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
" 예? 아니 그게 무슨.. "
" 부탁드립니다.. 대신 따님과 아내분의 요금은 받지 않겠습니다.. "
" 으음.. "

남자는 딸과 아내를 태워준 두석규의 부탁을 거절할 수 없었다.
결국, 택시에 오르는 둘. 뒷자리의 두석규는 여전히 한기에 몸서리치고 있었다.

" 선생님.. 제 목적지는... "

.
.
.

남자는 두석규가 말한 그곳에 택시를 세웠다.

" 경찰서? 여기는 왜...? "

남자가 의문에 찬 얼굴로 두석규를 돌아보자,

" 여기서 잠시만 기다려주십시오.. 볼일 좀 보고 금방 돌아오겠습니다.. "
" 예? "

남자는 경찰서로 들어가는 두석규의 뒷모습을 찜찜하게 바라보았다. 
한데, 

" 뭐야...? "

금방 돌아온다던 두석규가 15분이 넘도록 나타나질 않았다. 참지 못한 남자가 택시에서 내리려던 그때, 경찰서의 문이 열리며 경찰관이 나타났다.
곧장 다가온 경찰관은 택시의 창문으로 고개를 숙였다.

" 무슨 일이십니까 선생님? "
" 예? 아~ 그게, "

남자는 경찰서 안으로 들어간 두석규에 대해 설명했지만, 경찰은 모르는 얼굴로 눈만 끔뻑거렸다. 답답해하던 남자는, 마침 앞에 붙어있던 택시기사 면허증을 빼 들었다.

" 아! 이 사람이 아까 안에 들어갔습니다만. "
" 으음..? "

유심히 그 사진을 살펴보던 경찰관은 곧 눈이 휘둥그레지며,

" 어어? 이 사람 오늘 죽었다던 그 사람 같은데? "
" 예? "
" 맞네! 집에서 자살한 그 택시기사! 유서에 뺑소니를 친 죄책감 때문에 자살했다고 남긴 그 아저씨네! "
" 뺑소니...? 지금, 뺑소니라고 했습니까? "

남자는 귀신에게 홀린 듯한 얼굴로 두석규의 면허증 사진을 바라보았다. 왜인지, 울 것 같은 표정이었다.
댓글
  • 복날은간다 2017/07/17 00:39

    유명한 택시기사 이야기를 한 번 소재로 써봤네요. 궁리를 굉장히 많이 해봤는데  쉽지 않네요 흐하하;
    항상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행복하세요! 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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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벚꽃향기 2017/07/17 00:45

    경찰 : 사장님 일단 진정하시고요...
    두석규라는 택시기사를 태웠다는 곳까지 함께 가봅시다. . . (무한루프)
    ㅋㅋㅋ
    그럼결국 택시가 잘못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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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lovelyrita 2017/07/17 00:46

    기발한 반전에 반전에 반전 너무 좋아요~~ 항상 응원합니다^^ 이번에도 참신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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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넌내게참달아 2017/07/17 00:53

    흐어어 반전이네요.. 처음엔 택시기사를 타켓으로 범죄를 저질를줄 알았는데
    잘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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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VeritasLxmea 2017/07/17 01:40

    좋아요 이런거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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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mastermind 2017/07/17 03:23

    귀신붙은 택시는 연비운전을 했을까 안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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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가가 2017/07/17 05:46

    한석규
    두석규
    세석규 인디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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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인1파닭 2017/07/17 05:57

    ㅋㅋㅋㅋㅋㅋㅋ신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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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이내린미모 2017/07/17 08:17

    으앜ㅋㅋㅋㅋㅋ루프물인가요? 신선합니다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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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으헑 2017/07/17 17:14

    맨 처음에 탓던 아가씨가 그 뺑소니로 죽은 피해자였으면 어땟을까요 ㄷ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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