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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를 위한 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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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 전, 처음 너를 데려왔을 때 사진을 오랜만에 꺼내어 봤어.
정말 작고 하얗고 활기찼던 너.
낯선 곳으로 갑자기 긴 시간 옮겨져 왔는데도 바로 골골거리며 제 집마냥 활개치며 누나 형들 괴롭히던 너.
부산까지 너를 데리러 갔는데, 작은 꼬마가 널 놓아주기 싫은 듯 애처롭게 아쉽게 보며 널 건네주더라.
그럴만 했어. 넌 정말 작고 정말 하얗고 정말 너무너무 귀여웠거든.
정말 천사같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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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깜짝할 사이 무럭무럭 자라더니
아직도 애기같은 푸른 눈동자는 그대론데
덩치만 커지고 털만 온통 새까매지던 너
새하얀 털에 붙인 생크림이란 이름이 무색하게 새까매져
늘 농담 반 진담 반으로 탄크림이라고 놀려댔던 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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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살 차이 나는 형이랑은 어떻게 그렇게 사이가 좋은지
떨어져 지내는 걸 보기 힘들고
아니, 사실 넌 세상 모든 것들을 사랑했지
네가 싫다고 싫다고 진절머리 내고 때론 하악질까지 하는 큰누나를 항상 졸졸졸 쫓아다니고
집에 누가 오기만 하면 아무리 낯선 사람이더라도 착 달라붙어 놀아달라고 골골거리며 애교를 부리고
내가 아무리 아무리 밀어내고 귀찮아해도 무조건 내 옆에서 착 달라붙어 그르렁거리며 잠을 청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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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며칠 전까지만 해도 넌 평소와 다름없이 딱 달라붙어 그르렁거리고 놀아달라고 보챘고

난 일에 지쳐 그런 널 밀어내며 귀찮아했었지

바로 지난주까지만해도 그랬었어


그릇에 사료를 붓자마자 달려와서 한 입, 옆 그릇에 부으면 이동해서 또 한 입, 그렇게 이동하며 먹다가

옆에 누나와 형이 와서 먹기 시작하면 기어코 파고들어 그 그릇을 차지해서 먹고

간식 나누어 주면 다들 어느정도 먹다 떠나도 기어코 남아 모든 그릇을 설거지했나 착각할 정도로 식탐이 많던 너

그런 네가 밥 먹는 모습을 못 본지 1주 째

그냥 내가 일찍 나가서 늦게 들어오니 밥먹는 모습을 못보는가 보다 했어

근데, 네가 내 옆에 오지도 않고 침대 협탁 옆, 침대 한구석, 화장실 앞 매트

세 군데에만 움직임 없이 웅크리고만 있단 걸 안 것도 1주 째

걱정되서 몰래 너한테만 간식을 줬더니, 세상 맛있다는 듯이 먹던 너

그래서, 조금 안심했었어.

근데 어제, 아무래도 너무 기운이 없는게 걱정되서 밤에 널 안아들고 침대에 들어갔더니

2분만 견디고 늘 도망가던 애가 1시간째 내 옆에 가만히 조용히 그릉거리고 있네.


병원에 가면서도 그냥 긴 털에 더위를 탔다거나, 요새 스트레스를 좀 받았다거나,

아님 형이랑 싸워서 삐져 있다거나, 정말 최악의 경우 가벼운 병이겠거니 했어.

근데, 증상을 듣고 엑스레이를 찍어 보신 의사 선생님이

위에 아무런 음식물이 없다고 할 때 충격과 미안함에 눈물이 고였어.

이 식충이가 밥 먹는 모습이 안 보일 때 그냥 바로 데려올걸. 왜 그냥 내버려뒀지. 왜.


근데, 근데

의사쌤이 혈액검사 결과를 보더니

너 아프대. 많이 아프대. 아주 많이.

아주 아주 아주 많이 아파서, 너 오래 살기 힘들 거래.

우리 사랑하는 막냉이, 복막염이래.

정말 꿈에도 상상하지 못한 단어가 의사선생님 입에서 나오는데,

현실 같지도 않고 믿고 싶지도 않아 멍하니 이동장에 숨어 있는 너를 쓰다듬으며 화면에 떠 있는 차트만 봤어.

의사선생님이 뭐라고 하시는지 솔직히 귀에 잘 안들어왔어.

우리 막내, 내 옆에 아직 있는데. 아직 이렇게 따뜻하고 귀엽고 사랑스러운데.

널 곧 떠나보내야만 한대.


의사쌤이 약간의 오진 확률에 걸어보자고 지어주신 약을 들고, 아무 생각 없이 집으로 돌아왔어.

오자마자 너만 데리고 방에 들어와 간식을 이만큼 꺼내줬어.

아픈데, 그래서 아무것도 못 먹고 있었는데, 깨닫지 못한 내가 너무 미웠어.

그렇게 좋아해서 몇 개나 먹어치우던 챠오츄르를, 딱 하나만 먹고 더는 거부하는 널 보며 엉엉 울었어.

제발, 신이시여, 이게 현실이 아니길.

제발, 신이시여, 이게 현실이 아니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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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막내, 아프질 않길

오진이어서, 의사쌤이 지어준 약 먹고 금방 떨치고 일어나서 늘 그랬던 거 처럼 엄청 귀찮게 굴길

늘 지금처럼 이쁘고 사랑스럽고 또 귀찮은 막내 노릇 하길

기도해주세요....



크림아, 누나가 진짜진짜 너 사랑해.

제발 누나랑 오래오래 같이 있자. 사랑해.



댓글
  • 찹쌀떡집사 2017/06/10 01:15

    집사 맘 찢어지지 않게 엄살도 좀 떨고 아픈 티도 팍팍 내지 그랬니 ㅠㅠ 가여운 것아

    (HvMGqj)

  • 찹쌀떡집사 2017/06/10 01:20

    고령묘를 키우는 입장에서 이런 소식을 접하게 진짜 남에 일 같지 않아요. 일단 맘 추스리고 최선을 다해봐야죠. 안될때 안되더라도 미리부터 용기 잃지 말아요 힘내세요.

    (HvMGqj)

  • forlax10g 2017/06/10 02:24

    힘내세요!

    (HvMGqj)

  • 뿌잉뿌잉작전 2017/06/10 02:24

    사랑둥이 냥이 부디 괜찮기를..

    (HvMGqj)

  • 지슝슝이 2017/06/10 03:42

    아직은 가지마 크림아..ㅠㅜ 누나가 더 잘해준대잖아
    얼마나 잘하나 봐야지 가지마 크림아..아프지마

    (HvMGqj)

  • BrainFreeze 2017/06/10 04:48

    ㅠㅠㅠㅠ

    (HvMGqj)

  • 오도리햇반 2017/06/10 10:19

    어떡해요진짜ㅜㅜ
    아침부터 눈물바람하네요ᆞᆞ

    (HvMGqj)

  • 카토리싱고 2017/06/10 12:14

    같이 아파해주셔서 정말 감사드립니다.
    평소에 절대 못 들어오게 해서 문만 열리면 들어오려 애쓰던 방에 데리고 들어와 쓰다듬어주고, 간식도 주는데
    간식도 완강히 거부하고 품에서 빠져나가 문앞에서 낑낑대네요...
    뭐라도 먹여야하니 약을 섞은 간식을 억지로 입에 넣어줬더니 그마저 거의 뱉어내다시피 합니다...
    병원에 가서 약 먹일 주사기 받아와야겠어요...
    동물은 갈 때가 되면 춥고 어두운 구석으로 피한다는데.. 평소엔 가지도 않던 구석자리만 골라 누워있는 걸 보니 진짜 마음이 찢어집니다...

    (HvMGqj)

  • 스콰트200 2017/06/10 14:03

    쾌차하라고 염원해 드릴게요
    힘내요

    (HvMGq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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