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 얼굴을 봤으니 죽여야 한다고! "
" 야이 씨! 우리가 살인마는 아니잖아?! "
김남우는 이 상황이 미칠 것 같았다. 이렇게 어이없게 자신의 생과 사가 논의되어야 하는가?
그는 성실하게 살아온 평범한 사람이었다. 어디 아픈 곳 없이 건강했고, 꾸준히 저축도 했고, 다음 주에 개봉할 영화를 기대하고 있기도 했다. 죽음 같은 건 절대 생각해보지 않은 인생이었다.
한데 교통사고도 아니고, 자연재해도 아니고, 단지 화장실에서 잠깐 졸았다는 이유만으로 죽을지도 모른다니?
" 이놈을 그냥 뒀다가 무슨 일이 생기면 어쩌려고 그래?! 우리 얘기도 다 엿들었을거라고! 지난 3년이 아깝지도 않아?! 죽여야 해! "
" 넌 사람을 죽이고 멀쩡히 살 수 있어?! 난 못해! 그리고 시체는 또 어떻게 처리하려고?! "
" 아, 그럼 어쩌자고! 죽일 수밖에 없다니까?! "
순한 사내와 거친 사내. 대립하는 두 사내의 모습에서는 다급함이 느껴졌다. 김남우도 그것을 이해했다. 그들의 사정을 모두 들어 알고 있었으니까.
김남우는 최근, 다이어트를 위해 새벽마다 억지로 일어나 공원을 뛰었다. 그 코스에는 그가 자주 이용하는 공중화장실이 하나 있었는데, 그 위치가 무척 애매했다. 설계가 잘못된 것이 분명할 그곳에 다른 사람이 찾아오는 모습을 여태 본 적이 없었다. 오늘을 제외하고.
공중화장실에서 잠깐 쉬어가던 김남우는 좌변기 위에 앉아 깜빡 졸고 말았다. 밖에서 들리는 소란에 깨어났을 때는, 이미 나갈 타이밍을 놓친 뒤였다. 그도 그럴 것이, 화장실 밖의 두 사내가 곡괭이 질을 해대고 있었기 때문이다.
' 퍽! 퍽! '
" 빌어먹을! 바닥이 너무 딱딱해! "
" 힘 좀 써봐! 교도소에서 운동 안 했냐?! "
김남우가 그들의 대화를 엿들으며 알게 된 사실은, 그들이 3년 전에 25억을 횡령했고, 그 돈을 이곳 화장실 옆에 묻은 뒤 교도소에 갔다 왔다는 것이었다.
알아선 안 될 걸 알게 된 김남우는 최대한 숨을 죽였지만, 재수 없게도 핸드폰이 울리며 들켜버렸고, 곧장 들이닥친 사내들에게 제압당해서 이렇게 죽느냐 사느냐의 신세가 되고 말았다.
바닥에 엎드린 김남우는, 호랑이에게 물려가도 정신만 바짝 차리면 된다는 마음가짐으로 마음을 진정시켰다. 침착하게 사내들이 떠드는 얘기를 가만히 듣고 있다가, 아주 절묘한 타이밍에 불쑥 끼어들었다.
" 그럼 저에게 1억을 주시는 건 어떻습니까? "
" 뭐?? "
두 사내는 잘못 들었나 싶은 얼굴로 돌아보았다.
김남우는 최대한 침착하게,
" 저를 죽이기는 꺼려지고, 그렇다고 그냥 보내기도 찜찜하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차라리 저에게 1억을 줘서 공범을 만드는 게 어떻겠냐는 말입니다. "
" 뭐 이런 미친?! 이 새끼가 지금, 자기 처지가 어떤지를 몰라?! "
두 사내는 어이없는 얼굴이었지만, 김남우는 현란하게 입을 털었다.
" 생각해보십시오. 저를 죽인다 한들, 거기서부터 수사가 시작된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 겁니까? 말씀대로, 시체는 또 어떻게 처리하고요? 마음의 짐은 또 어떻고요? 제가 귀신이 되어 두 분의 꿈자리에 나타나면요? 재수 옴 붙는 거 아닙니까? "
" 뭐라는 거야 이? "
거친 사내가 발길질을 하려 다가왔지만, 김남우는 더욱 빠르게 입을 놀렸다!
" 마침맞게도!! 두 분이 묻은 돈이 25억입니다. 12억씩 두 분이 나누면, 딱 1억이 남지 않습니까? 애매하지 않습니까? 누군 13억, 누군 12억 하다가 싸움이라도 나면요? 아아~ 12억 5천씩 나누겠다는 쪼잔한 말씀은 하지 마시죠. 두 분은 거물이신데! "
" 뭐라는...! "
" 1억! 1억이면 됩니다! 천만 원이라면 제가 딴생각을 품을 수도 있겠죠. 하지만 1억이라면? 누가 1억을 포기하고 정의의 사도마냥 신고하겠습니까? 예? "
" 너- "
" 저는 1억을 받자마자 두 분을 잊고 살겠지만, 두 분은 제 모든 신상명세를 적어가십시오! 그리고 만약에 나중에라도 두 분이 혹시, 잘못되는 날이 온다면? 그때는 공범으로 제 이름을 대세요! 돈은 1억만 받아도, 모든 처벌은 3등분 해서 함께 받겠습니다! "
" 이..이...?! "
거친 사내는 멈칫, 김남우를 발로 차지 않았다. 곧, 뒤에서 고민하던 다른 사내가 중얼거렸다.
" 나쁘지 않을 것 같은데? "
" 뭐야?! 너 지금 이 미친 새끼 말을 지금- "
" 나는 괜찮은 것 같아. 솔직히 12억씩 나눠가지고, 남는 1억을 주는 것 정도는..너도 살인이 좋은 선택이 아니라는 걸 알잖아? "
" 으음... "
두 사내는 서로 심각하게 대화했고, 김남우는 눈치를 살피며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 이윽고,
' 쨍그랑! '
김남우의 앞으로 곡괭이가 떨어졌다.
" 땅 파 이 새끼야! 1억짜리 일이니까 죽을 힘을 다해서 파라! "
순식간에 얼굴이 환해진 김남우는 얼른 곡괭이를 들고 벌떡 일어났다!
" 감사합니다! 역시 거물이십니다! "
곧장 필사적으로 땅을 파기 시작하는 김남우. 셋 중 그 누구보다 열심히 땅을 팠다.
" 새끼! 군대에서 삽질 좀 해봤나 본데? "
" 아, 저 미필입니다! "
" 뭐? 흐하하하! "
셋 사이에 긴장감이 완화되며 웃음도 나올 정도가 되었다.
둘보다는 셋이 나았는지, 빠른 속도로 땅이 패여 꽤 깊은 구덩이를 만들어냈다.
거의 사람 키만 한 구덩이가 만들어졌을 때,
' 텅! '
" 있다! 있어! "
커다란 여행 가방이 드러났다. 빠르게 흙을 치우고 여행가방이 끌어올려 졌다. 함박웃음을 짓는 두 사내와 눈치를 보며 웃는 김남우.
김남우는 이제, 사내들이 약속을 지킬지를 내심 걱정하고 있었다. 그는 조심스럽게,
" 저어 그러면 저는.. 바로 제 가방에 담아서 이대로 영영 사라져드리려고 하는데 말입니다.. "
" 하~ 거 새끼 급하기는! "
가방의 흙을 털던 거친 사내가 피식 웃었다. 기분 좋게 웃으며 번호키를 맞추는 사내.
" 너 이 새끼! 진짜 오늘 로또 맞은 줄 알아라! 목숨도 구하고 1억도 벌고, 진짜 이런 복이 어디 있냐? 넌 진짜 조상이 도운 거야 새끼야~ "
' 철컥! '
마침내 번호를 맞추고, 가방이 열렸다. 한데?
" 어? 뭐야?! 이런 씹?! "
가방이 비어있었다!
깜짝 놀라는 셋! 가방을 활짝 열어 재껴보지만, 안은 텅텅 비어있었다.
" 이, 이게 어떻게 된 일이야?! "
" 뭐야 이게?! 내 돈! 내 돈 어디 갔어 씹할?! "
" ...! "
순간, 김남우의 머릿속에서 경고음이 울렸다. 어쩌면 자신에게 불똥이 튈지도 모른다!
재빠르게 소리치는 김남우,
" 이곳에 돈을 묻었단 사실은 두 분만 아시는 겁니까-?! "
" ?! "
소리가 워낙 컸기에, 패닉에 빠졌던 두 사내의 고개도 김남우에게로 돌아갔다. 다시 한번,
" 이곳에 돈을 묻었단 사실은 두 분만 아시는 겁니까?! 가족들에게 말을 했다거나 하지 않고 말입니다. "
" 다, 당연하지! "
" 미치지 않고서야 누가 그걸 떠벌려?! "
두 사내는 격렬하게 부정했다. 고개를 끄덕인 김남우는 단언했다.
" 그럼, 두 분 중에 한 분이 25억을 독차지하기 위해서 먼저 돈을 빼돌린 겁니다. "
" 뭐? "
" 이, 이 새끼가 지금 무슨 개소리를?! "
두 사내는 발끈했지만, 서로를 한번 쳐다볼 수밖에 없었다. 김남우는 더욱 빠르게 입을 털었다.
" 그럴 수밖에 없지 않습니까? 누가 있어 이 깊은 곳에 묻어놓은 돈만 빼가겠습니까? 두 분 중 한 분 뿐이죠. 그렇다면, 돈을 가져가 놓고 왜 함께 빈 땅을 파러 왔을까요? 혹시, 그분은 이런 생각을 한 게 아닐까요? 깊이 땅을 파다가 가방을 발견하고 정신이 팔려있을 때, 상대를 뒤에서 공격한다면? 죽인 상대방을 그대로 파놓은 구덩이에 묻어버린다면? 어차피 한적한 화장실 앞인데, 시체 썩은 내가 나더라도 누가 신경을 쓸까? "
" ?! "
두 사내의 눈이 흔들렸고, 김남우는 정색하며 단언했다.
" 두 분밖에 모르는 돈이 사라진 거라면, 답은 하나뿐입니다. 둘 중 하나가 범인. 만약에 오늘, 변수인 제가 나타나지 않았다면...지금쯤 한 분은 구덩이 속에 파묻힌 신세가 아니었을까요? "
" ... "
" ... "
침을 꿀꺽 삼킨 두 사내는 서로를 돌아보았다. 서로 말은 하지 않았지만, 이미 둘의 눈빛에는 불신이 심겨 있었다. 생각하면 할수록, 김남우의 말이 정답이었다.
" 그렇군.. 맞는 말이야. 우리 둘밖에 모르는 돈이 사라졌다면, 결국엔 너밖에 없지. "
" ...정말로 그렇게 생각해? 나라고? 네가 아니라 나라고? "
둘은 어느새 서로를 경계하며 자세를 달리했다. 한 사내는 삽을 들고 있었고, 그것을 의식하듯이 곡괭이를 집어 든 다른 사내.
" 너 이 새끼! 솔직하게 말해! 돈을 어쨌어?! "
" 내가 할 말이야! 너 진짜?! 나를 죽이고 돈을 독차지할 셈이었어?! "
" 어디서 허튼수작이야?! 너 이 새끼! "
손에든 장비를 꽉 움켜쥐는 둘!
그때,
' 타다다다닥- '
" 앗! "
" 저, 저놈?! "
김남우가 재빠르게 도망쳤다!
지금이라면, 둘 중 누구도 자신을 쫓아오지 않을 거라 생각한 김남우였고, 그것은 아주 정확한 판단이었다.
헐레벌떡 공원을 가로지르는 김남우. 뒤를 돌아봐도 쫓아오는 이가 없자 천천히 걸음을 줄였다.
흐르는 땀을 닦아낸 김남우의 얼굴은 흥분으로 달아올라 있었다.
무사히 위기를 넘긴 자신의 현명함이 정말이지 놀라웠다. 상황을 돌아볼수록 그랬다. 완전 제갈량의 지략이 아닌가?
자신도 몰랐던 자신의 현명함을 칭찬할 수밖에 없었다. 다만,
" ... "
1억이 좀 아쉬웠다. 만약 정말로 가방 안에 25억이 있어서 1억을 받았다면 어땠을까? 말 몇 마디로 1억을 벌게 되었다면 얼마나 멋졌을까?
1억이면, 자신이 5년 뒤에라도 만져볼 수 있는 금액인가? 그놈들은 고작 3년을 교도소에서 썩는 거로 25억을 벌게 됐으니, 횡령이란 얼마나 남는 장사인가? 우리나라 법이 이래도 되나?
여러 가지 복잡한 생각들을 떠올리던 김남우는 걸음이 점점 느려지더니, 뒤를 돌아보며 멈춰섰다.
갈등하는 표정의 김남우는 어떤 생각을 떠올리고 있었다.
만약, 아까 그 상황에서 자신이 한 사람의 편을 들어준다고 했다면? 1:1로 대치하고 있는 상황에서 자신이 2:1을 만들어주겠다 나섰다면, 1억이 아니라 2억, 3억도 받아낼 수 있지 않았을까? 둘 중 누구라도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제안이 아닌가? 그 상황은 위기가 아니라 기회였을까? 자신이 기회를 날린 걸까?
" ... "
이를 악문 김남우는 결국, 다시 공중화장실로 달렸다!
금세 근처에 다다라 천천히 소리를 죽이는 김남우. 귓가에 어떤 타격음이 들려왔다.
' 퍽! 퍽! 퍽! 퍽! '
설마 늦었나 싶은 생각으로 다가가자,
" 앗? "
두 사내가 모두 멀쩡히 있는 게 아닌가? 그들은 이미 판 땅을 더 깊게 파고 있었다.
잠깐 머리를 회전한 김남우는, 빠르게 상황을 파악했다!
" 그렇군! 속임수였어! 만일을 대비해서 위에 가짜 상자가 발견되도록 묻고, 그 아래에 진짜를 묻어뒀던 거야! "
두 사내의 고개가 김남우에게로 돌아가고,
" 아~놔 저 새끼! "
" 거참... "
그들의 반응을 보며 자신의 판단이 맞았음을 확인한 김남우는 의기양양하게 앞으로 나섰다.
" 히야~ 역시 25억을 아무나 횡령하는 게 아니군요? 하하하! 곡괭이 이리 주시고 쉬시죠? 제가 열~심히 파겠습니다! "
김남우는 히죽거리며 순한 사내의 손에서 곡괭이를 건네받으려 했다.
한데 그는 곡괭이를 놓지 않았다. 대신 한숨을 쉬며,
" 네 말이 맞았네. 네 말대로 그냥 처음부터 죽였어야 했네. "
" 네?? "
갑작스러운 그 말에 당황한 김남우의 몸이 굳을 때, 거친 사내가 삽을 치켜들었다.
" 지금도 늦지 않았어. 어차피 한적한 화장실 앞인데, 시체 썩은 내가 난다해도 누가 신경을 쓰겠어? "
" 어 어어어...! "
당황한 김남우가 뒷걸음질 쳤지만, 이미 삽은 휘둘러지고 있었다-
' 퍽-! '
" 커헉! "
정확한 타격에 김남우의 정신이 아득해졌다. 희미한 시야로, 자신을 내려다보는 두 사내가 보였다.
" 그러게 왜 다시 돌아와가지고..쯧. 죽이기는 싫었는데. "
" 이 새끼가 아까 우리 싸움 붙이는 거 못 봤어? 죽어도 싼 놈이라고. "
마지막 순간, 김남우는 깨달았다.
인생은 게임이 아니구나.
항상 감사합니다! 행복하세요! 안녕히 주무세요! 내일도 행복하세요!
하하하하
역시 김남우는 죽어야 제맛!!!
재밌게 잘 봤습니다!
그런데 제목의 별주부전을 발기부전으로 잘못 봤네요..
인생은 실전이지
"그리고 두명은 웃으며 가방 밑을 팠지만, 이번에도 가방은 비어있었다"
잘읽었습니다! 복날님 채고!!!
그러니까... 두 사내가 김남우를 죽이긴 꺼림칙하니까 꾀임에 넘어가는 척 하면서 도망가게 냅뒀다는 건가...?
ㅎㅎㅎ 자신이 한말에 자신이 당하네요
반전에 반전 ㅎㅎ 재밌었어요 ㅎㅎㅎ
아 바보... 그냥 가서 살지 으이그.... 그놈의 1억 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