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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생 당시 나는 화약에 미쳐있었다
아니
폭발에 미쳐있었다
때는 또 15여년 전 여름
나는 옆옆동네 초등학교에서 정기적으로 열리는 과학영재 특강에 합격해
방과후마다 버스를 타고가 실습을 했다
옛날엔 이런 방과후 거시기가 많았다.
그림영재, 피아노영재, 과햑영재, 로봇영재
뭐그리 영재가 많은지. 확실히 나도 영재였다 자부할 수 있다
분야가 조금 반사회적이었을 뿐
그 날 수업은 드라이아이스랑 페트병으로 실로폰을 만드는 실험이었다.
실험방법은 다음과 같다
1. 페트병에 물을 *소량*넣는다
2. 안에 드라이아이스를 *매우 조금*넣고 천천히 페트병의 표면에 굴린다
3. 다 언게 *확인되면* 뚜껑을 닫고 뚱땅뚱땅 두들겨 실로폰 실습을 하면 끝
과학실험이라고 하긴 뭐한 거였던거같지만
무튼 우리 팀은 맨 뒤에 배치되어있었기에 다른 팀이 돌아가며 드라이아이스를 넣는 것을 기다리고있었다
여기서 문제가 발생한다
근데 시벌롬들이
이 탐욕의 촉법소년 연놈들이 드라이아이스 덩어리를 다 써버리고
우리 조에 돌아왔을 때 드라이아이스는 가루만 남아있었다
이 좋같은 드라이아이스를 가루로 드셔보시겠습니까?
우리는 이걸 유리막대로 슬슬 긁어모아 페트병에 3등분해보기로 의견을 맞췄고
실험종료시간이 다가오니 빨리 얼어버리라고 물도 몇배나 더 넣었다
물이 적을수록 빨리 얼고, 드라이아이스를 덜 썼겠지만
왜 우리는 이런 생각을 했는가?
초등학생=어리석음
집단지성=틀려먹음
초등학생의 집단지성=어리석게 죽기 딱좋음
우리는 이미 삼도 리버에 발을 담그기 시작했다
그렇게 완성된 병을 최대한 힘을 주고 섞어도, 실로폰은 커녕 살얼음 하나 생기지 않아 불만이 가득 차버렸지만
마지막에 보고서를 써야 했기에 우리는 아직 얼음이 기화중인 페트병 세개를 전부 꽉 잠궈
선생님이 보라는 듯이 힘차게 뚱땅뚱땅 두들겼다
말했다시피 잠긴 뒤에도 드라이아이스는 페트병 안에서 순식간에 기화중이었고
일이 터졌다
눈 앞에서 얼다 만 페트병은 되다 만 대가리인 내 앞에서 뻥! 소리를 내며 폭발했고
나는 면상으로 압축 이산화탄소+폭음+페트병 파편을 올곧게 받아버렸다
충격을 받은 나는 대리석 바닥에 뒷머리를 빻으며 정신이 날아가버렸다
대략 스무명 가량 있던 교실은 순식간에 일어난 화약 미함유 친환경 폭탄테러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아수라장이 되어버렸다
학생들은 출구로 존나 뛰며 울고 소리질렀다
선생님은 애들을 진정시키려고 마이크에 호소했지만
그순간 두번째 폭탄은 선생님의 마음도 몰라주고 눈치없이 뻥!
괴담 속에 단골로 등장해주는 학교 아래 공동묘지에서 잠자던 유령들은
이제 양기도 모잘라 벽력탄도 쓰나 시름했을 것이다
그러나 아직도 하나의 사제폭탄이 남아버린 상황
특히 겁도 없고 싸가지도 없던 우리 조원 2번은 도망가는 것을 관두고
싸늘하게 쓰러진 내 앞에 있던 페트병을 집어 냅다 창문밖으로 던진 뒤 대피했다
상황이 진압될때까지 난 아무도 구하지 않아 대리석과의 차가운 교감을 계속하고있었다
나 좀 데려가 의리없는 새끼들아...
사건이 종결되고, 보고서는 커녕 시말서를 쓰게 된 선생님의 캄캄한 낯빛을 뒤로 한 채
우리는 일찍 하교하게되었다
그렇게 밖으로 나가려던 순간 세번째 폭탄이 운동장 한가운데서 뻥!!!!!
그건 아마, 조기하교하게된 우리를 기리는 축포가 아니었을까?
그 이후 나는 과학영재학급을 가지 않았다
우리 암흑과학영재클럽은 수명이 그리 길지 않았던 것이다
요즘에도 나랑 비슷한 짓을 하는 놈들이 있나 싶어 검색해보니
여전히 초딩들이 이런 걸 만드는 사례가 있다고 한다...
이런 애들을 보게 된다면, 내 조언 하나 해주고 싶다
"그건 이미 내가 15년전에 거쳐간 길이다"
과학실험은 절차와 용법을 지켜라
뒤지기 싫으면
넌 이거 달고다녀도 아무도 뭐라고 안할거같아..
화약 없이도 사제폭탄을 만들어내다니 과연 폭탄마..
엄호야
2022/08/11 21:47
넌 이거 달고다녀도 아무도 뭐라고 안할거같아..
침묵군
2022/08/11 21:48
화약 없이도 사제폭탄을 만들어내다니 과연 폭탄마..
Tanova
2022/08/11 21:48
무서우면서도 웃기네.
Wa!SANs!
2022/08/11 21:49
일반페트라 쉽게 터졌나보네 콜라처럼 밑바닥 발있는거면 잘 안터지는데
마왕 제갈량
2022/08/11 21:49
화약이 없는 곳에서 이 정도의 폭둔을...!!
페렛
2022/08/11 21:51
펑이요!!
루빅아가님필수
2022/08/11 21:51
선생님 대체 어떻게 살아계세요?
아재개그 못참는부장님
2022/08/11 21:51
이 사람이 나쁜 마음 안먹어서 천만 다행이야.
루리웹-6700932834
2022/08/11 21:51
폭탄마썰 복원해주시는거임?
감사합니다!
유머없는유게이
2022/08/11 21:52
진짜 님 어떻게 살아있음?
Aerial.
2022/08/11 21:52
이건 완전히 폭발 마이스터잖아ㅋㅋㅋㅋ
탕수육부먹빌런
2022/08/11 21:53
잘~터~져요~
M.A. Kim
2022/08/11 21:53
나도 초딩시절에 니트로글리세린 만들고, 중딩때는 요오드화암모늄과 TNT를, 고딩때는 젤리폭탄을 만듬.
룻벼
2022/08/11 21:53
드라이아이스가 은근 무시무시한게 상상도 못한 타이밍에 사고를 침.
저거 물에 넣으면 거품 나오는거 이산화탄소니까 소독 되겠지 싶어서 변기나 세면대에 올려놓고 물 틀지 마라
도기는 급격한 온도 변화에 약하다는 사실을 굳이 20만원 주고 배우고싶진 않잖아
황달사퇴했네
2022/08/11 21:53
님 진짜 궁금해서 물어보는건데 어케 살아있는거임?
공기 청정기
2022/08/11 21:53
그만좀 터뜨려ㅋ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