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홍도의 풍속화에서 묘사된 주막
신윤복의 풍속화에서 묘사된 주막
사실 우리가 알고 있는 주막, 그리고 주막에서 일하는 주모의 존재는 역사가 그리 오래된 것이 아니었음.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주막의 형태가 본격적으로 등장하기 시작한 것은 임진왜란, 병자호란 이후인 17세기부터였으니까.
물론 고려시대나 삼국시대에도 술집의 형태는 존재했지만, 조선 후기의 주막처럼 복합적인 형태를 띄는 것은 결코 아니었고.
그리고 18세기부터는 조선의 화폐 경제가 발달하기 시작하고 농업 생산량이 증대되고 부농들이 등장하기 시작하면서 조선 8도 곳곳에는
보편적으로 주막이 자리잡기 시작했음. 이렇듯 주막의 본격적인 등장은 화폐 경제의 발달하고 농업 생산량이 증대됨으로서 시작됐고.
그렇기 때문에 한반도의 역사에서 주막은 잉여 식량의 유통과 화폐의 활발한 유통이 없이는 결코 등장할 수가 없는 것이었음.
그래서 사실 주막의 역사로만 보자면 식량과 화폐의 유통이 활발하게 이루어진 역사가 더 길었던 중국이 더 앞서있는 것이 사실이기도 했고.
그래서 고려 시대나 삼국 시대를 다룬 한국의 사극들에서 조선 후기 형태의 주막이 등장하는 모습도 종종 볼 수가 있는데, 아주 전형적인
고증 오류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음. 그런데 사실 왠만한 사극들이 이점에 대해서는 별로 고증 오류라고 못 느끼는 부분 중에 하나지.
이것도 고증오류로 유명하지만 별로 딴지가 없지..
일종의 타협안같은거라고 생각하는게 편한듯
근처 주민집가서 하루 의탁하는거 일일히 넣기도 그렇고 하니
지우수드라 2022/06/02 19:57
이것도 고증오류로 유명하지만 별로 딴지가 없지..
Oasis_ 2022/06/02 19:57
그럼 혹시 여관의 역할을 하는 다른 상업시설이 있었어?
아니면 종교시설이나 지역유지가 그런역할을 한거야?
참사관[Counsellor] 2022/06/02 19:57
일종의 타협안같은거라고 생각하는게 편한듯
근처 주민집가서 하루 의탁하는거 일일히 넣기도 그렇고 하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