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은 참호로 나아가고 싶어했다. 그는 이미 30분을 헬멧을 쓰고 진흙을 뚫고 걸었고, 장성들과 호위에게 둘러싸여 있었지만 계속 가야한다고 말했다.
전선의 반대 쪽에서는 러시아인들의 움직임을 볼 수 있었으며, 2주전에 3명의 우크라이나 군인들을 죽인 저격수들의 사정거리에 있었다.
그러나 볼로디미르 젤렌스키는 멈추기를 거부했다.
"우리의 사내들이 바로 저기 있죠, 그렇죠?"
대통령은 이제 돌아가야 한다고 주장한 그의 장성중 한명에게 그렇게 물었다.
"그들은 제가 여기까지 왔다는 것을 들었을 것이고, 그들을 보러가지 않는다면 그들은 실망할 것입니다."
그리고 젤렌스키는 내 쪽으로 시선을 잠깐 돌렸다가, 몸을 돌려 덤불 속을 헤치고 나아갔다.
그 행동은 나를 궁금하게 했다. 그건 연기였을까? 우리는 이전에 인터뷰를 하기위해 만난 적이 있었다.
첫번째는 2019년 봄, 젤렌스키의 코미디쇼 뒷무대였고 그는 우크라이나의 대선을 위한 문샷 캠페인을 진행중이었다.
그리고 우리는 겨울에 키이우의 대통령 행정부에서 다시 만났고, 그는 반쯤 농담으로 그가 도망치고 싶은 도금된 요새라고 묘사했다.
하지만 작년 4월에 전선에서 이런 여정을 한 건 내가 그가 그의 군대와 함께 있는 것을 처음 본 것이었다.
전직 배우가 총사령관의 역할을 하는 것이었다. 전적으로 동의되는 일은 아니었다.
그러나 위험은 매우 구체적이었다. 젤렌스키가 대통령이 되었을 때, 우크라이나는 이미 5년 이상 러시아와 전쟁을 치르고 있었다.
사망자는 13000명에 달했고, 대부분은 전선에서 야간 사격이나 포격에 의한 것이었으며, 쌓인 눈물이 한때 형재였던 국가들 사이에 흘렀다.
그때 그 누구도 곧 전쟁이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악화되리라 생각치 않았다.
하지만 전선에서 우리의 여정동안 젤렌스키는 러시아 군대가 이미 국경 반대쪽에서 수만명이 밀집해 있음을 알고 있었다.
"그들은 우리가 두려워하기를 바랍니다."
그는 나에게 여정 말미, 키이프로 대통령 전용기로 돌아가는 도중에 이렇게 말했다.
"그들은 서방으로 하여금 러시아의 강력함과 힘에 두려워하기를 바라죠. 그건 여기서 그다지 비밀도 아닙니다."
젤렌스키는 자신의 공포를 내보이는 것이 러시아에 놀아나게 되는 것임을 이해하고 있었으며, 그럼에도 그는 침공의 위협이 그를 두렵게 한다고 인정했다.
"가장 두려운 것은 그들이 원하는 것이 끝나지 않을 것이라는 겁니다."
국경에서 군대를 보여주고 그는 그렇게 말했다.
"더 광범위한 군사적인 계획이 있을수가 있습니다."
그로부터 10달이 지나서, 2월 24일 이른 아침에 러시아는 그 계획을 실행에 옮겼다.
블라디미르 푸틴은 그의 군대에게 우크라이나를 "탈나치화"하라고 명령했으며, 그가 고른 용어는 우크라이나 역사상 첫 유대인 대통령을 내쫓고,
그 자리에 러시아에 충성하는 정부를 세우겠다는 것이었다. 이 침공은 젤렌스키에게 다른 역할을 부여했으며,
처음에는 그에게 맞지 않을 것이라고 여겨졌던 것이었다. 그의 친구들과 조언자들은 나에게 젤렌스키는 마음이 약하다고 말하곤 했다.
그는 배우의 숙명을 겪고 있었다, 갈채를 받고, 사랑을 받는 것을 버텨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그가 페이스북을 보게 하지 않도록 합니다."
한 조언자는 나에게 그렇게 말했는데, 왜냐하면 모르는 사람들에게 받는 비판적인 말이 그를 우울하게 할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러시아의 폭탄들이 우크라이나의 도시들로 떨어지고, 군대가 수도를 포위하기 위해 움직였을때, 대통령은 변화를 겪었다.
우리의 눈으로 볼때, 대부분의 서구의 정치가들이 싸우는 법을 오랫동안 잊어버렸기에 처한 그러한 어려움을 그가 겪으리라고 생각했다.
가끔 민주주의를 죽이고, 폭정을 하는 것이 요구되었던 싸우는 법 말이다.
젤렌스키는 그의 사람들로 하여금 국가를 지키도록 소집했을 뿐 아니라,
그들로 하여금 러시아의 군사차량에 화염병을 던지고, 탱크의 길목에 서있도록 용기를 불어넣었다.
또한 그는 일주일 전만 하더라도 불가능한 것으로 보이는 방법으로, 세계의 민주주의를 덧칠했다.
변화는 순간적이지 않았다. 침공 이틀전에 서구의 지도자들은 여전히 분열되어 있었고, 러시아의 침공에 대한 제재에 동의하지 않았다.
독일, 헝가리, 이탈리아는 처음에 이러한 방법들을 누그러뜨리기를 원했다. 그리고 젤렌스키는 그들에게 연락을 걸었다.
침착하지만 단호하게, 그의 창백한 얼굴은 수염에 덮여 있었다. 그는 자유세계의 지도자들에게, 그들이 살아있는 자신을 보는 것은
이번이 마지막일 수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통화 이후 영상연설에서 이렇게 말했다.
"적들은 저를 첫번째 타겟으로 삼았습니다. 두번째 타겟은 제 가족입니다."
그러나 젤렌스키는 그의 수도에 남기로 결정했고, 이러한 용기있는 행동은 이미 역사의 흐름을 바꾸었다.
이는 미국과 그의 동맹국들이 분개하도록 만들었고, 러시아에게 예상하지 못했던 제재들을 부과하도록 했다.
루블화를 박살내고, 그들의 경제와 남은 세계와의 관계를 끊어버렸다.
파시즘에 의한 전쟁 이후 한동안 이와 거리를 두어 동맹들을 좌절시켰던 독일은, 군사비에 1000억달러 이상을 쏟아붓기로 결정했다.
스위스는 분쟁국을 돕지 않는다는 그들의 중립의 전통을 깼다. EU는 수십년간의 내부에서의 저항을 깨고
우크라이나가 그들의 회원으로 가입하는 절차를 밟는데 동의했다.
침공 6일째날, 젤렌스키는 유럽의회에 영상을 통해 연설을 했다.
"여러분이 우리와 함께 한다는 것을 증명해주십시오."
그는 통역 와중에 눈물을 쏟아낸 통역가를 통해서, 대통령의 말을 전했다.
"여러분이 우리를 저버리지 않을 것임을 증명해주십시오. 여러분이 유럽인들임을,
또한 삶이 죽음을 이겨낼 것이고, 빛이 어둠을 이겨낼 것임을 증명해주십시오."
한 사람이 말했듯이, 그건 찰리 채플린이 윈스턴 처칠로 변한 순간이었다.
젤렌스키는 이제 그의 시간을 지하에서, 벙커와 지하실에서 보내며, 자주 소셜미디어를 통해 국가의 영혼을 끌어올리고 있다.
한 비디오 메시지에서, 그는 그의 군대 몇몇과 식사를 같이했다. 빵, 살라미, 청어, 인스턴트 커피였다.
그를 둘러싼 사람들은 대부분 오래된 친구들이었으며, 연예계에서부터 그를 따라왔으며, 대통령 관저도, 그리고 전쟁까지도 따라왔다.
"이곳에 있는 그 누구도 실수가 아니었습니다."
그의 주요관리중 하나인 Andriy Yermak은 침공 7일째 되는 날 벙커에서 나에게 그렇게 편지를 썼다.
1978년에 태어나 미래에 대통령이 될 그는 노동계층의 유대인 가족에서, 우크라이나의 가장 큰 제철소의 그림자가 있는
크리이프 리("구부러진 뿔")라는 도시에서 태어났다. 이 나라의 많은 사람들이 그런 것처럼, 그의 부모들은 집에서 러시아어를 썼다.
우크라이나의 거의 모든 유대인들이 그런 것처럼, 가족은 제2차 세계대전동안 비극을 겪었다.
붉은 군대에서 포병 소대를 지휘했던 젤렌스키의 할아버지는 홀로크스트에서 그의 아버지와, 3명의 형제를 잃었다.
소련이 1991년에 무너지자, 젤렌스키의 고향은 그가 불렀듯이 "강도들의 도시"가 되었고, 경제는 급추락을 겪었다.
길거리에서 벗어나고자, 그는 17살에 스케치 코미디 극단에 가입했으며, 그의 친구들과 함께 우크라이나와 또 이후 러시아에서 공연했다.
극단은 Kvartal 95(구역 95)라는 그들이 자란 곳의 이름을 붙인 프로덕션 회사로 자랐다.
"힘든 곳이었습니다. 모두들 탈출하길 절박하게 바란 곳이었죠."
젤렌스키의 오랜 친구이자 비즈니스 파트너인 Vadim Pereverzev는 그렇게 말했다.
"그것이 우리의 주된 동기였습니다."
Kvartal 95의 사무실은 이제 키이우의 중심지에 3층짜리 건물을 점유하고 있으며, 시티의 파노라마의 전망을 볼 수 있다.
그 벽은 그들이 만들어낸 영화 포스터들로 뒤덮여 있고, 대부분 미래의 대통령이 주연을 맡은 로맨틱 코미디이다.
젤렌스키는 또한 패딩턴의 우크라이나판 곰 목소리를 빌려주기도 했다. 그는 우크라이나판 Dancing With the Stars에도 나와
출연자(그가 우승했다.)이자 프로듀서로 일했다.
그의 가장 큰 성공은 2015년에 첫 방송된 국민의 종이라는 시트콤이었다. 이 쇼는 엉뚱한 전제에서 시작된다. 젤렌스키는 고등학교 역사교사로 나오는데,
부패에 반대하는 연설을 쏟아냈으며 이는 학생중 한명에 의해 찍혀서 유투브에 올라가게 된다.
이 영상은 선거 전날 빠르게 퍼졌고, 부도덕한 엘리트들에 대한 반대의사로 투표자들로 하여금 이 교사를 국가의 대통령으로 뽑게 만들었다.
이 쇼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모두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으며, 2019년에 이는 젤렌스키가 정치로 진출하게 만들었다.
새해 전날 유투브에 올라온 동영상에서, 그는 크리스마스 트리 옆에 서서 어떻게 우크라이나의 행정부를 이끌어 나갈 것인지 그의 의도를 밝혔다.
전통적이지 않았던 그의 캠페인에 유권자들은 매혹되었다. 젤렌스키는 정당을 창설하는데 참여하거나, 논의하지 않았다.
대신 그는 계속해서 그의 코미디 쇼를 진행했다. 보드빌과 정치 풍자를 곁들인 그것은 항상 최상의 맛이진 않았다.
(어느 쇼에서는 젤렌스키가 그의 성기로 피아노로 유대 민속음악을 연주하는 척하기도 했다.)
그 공연이 대선기간에 키이우에 공연되었을때, 시티의 가장 큰 콘서트 홀은 평균 우크라이나의 한달 수입만큼이나 비싼 티켓 가격에도 불구하고 가득 찼다.
그룹 멤버들은 뒷무대에서 파티를 열었고, 젤렌스키가 당선되면 내각의 어느 자리를 그들이 얻게될지 궁금해했다.
"제가 생각하기에 전 꽤 괜찮은 국방장관이 될 것이라고 보았죠."
Alexander Pikalov라는 코미디언은 나에게 플라스틱 컵에 위스키를 따라주면서 말했다.
쇼 이후 탈의실에서, 젤렌스키는 정치나 외교 문제에 대해 논하는데 관심이 별로 없었다. 그는 대신 이러한 약속을 했다.
"우리는 해나갈 것입니다."
그의 프로덕션 회사는 국민의 종 3번째 시즌으로 포장되어 있었고, 젤렌스키의 역할은 우크라이나를 폐허에서 구하는 것이었다.
그건 당선 며칠전 넷플릭스에 공개되었고, 유권자들로 하여금 선거에 가기전 시즌을 볼 수 있는 시간을 주었다.
"다른 누구도 이와 경쟁할 방법이 없죠."
젤렌스키는 탈의실에서 나에게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가 맞았다. 유권자들의 거의 3/4가 결선투표에서 그에게 표를 주었다. 그의 캠페인은 국가 모든 지역을 휩쓸었고,
심지어 친러시아 지역까지도 포함되었다. 그 5월, 그가 그의 시트콤에서 이름을 따온 젤렌스키의 새로운 정당은 의회 다수석을 확보했으며,
우크라이나 역사상 행정부와 입법부를 동시에 장악하게 되었다.
젤렌스키가 대통령이 되고 제일목표로 삼은 것은 러시아와 평화를 가져오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는 우크라이나의 가장 주요한 동맹국에게 장애물을 만났다.
그의 임기 두달만에 미국은 우크라이나에게 거의 40억 달러를 지원하던 것을 중지했고, 이는 나라의 국방비를 깎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미국의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는 우크라이나인들로 하여금 조 바이든에 대한 부패라는 그의 주장을 입증해주길 원했고, 그는 군사지원을 수단으로 사용했다.
2019년 7월, 전화통화에서 트럼프는 젤렌스키에게 그러한 엉터리 주장에 대한 조사를 발표해서 "우리에게 성의를 보이라"고 말했다.
그러한 협박시도는 트럼프가 하원으로부터 첫 탄핵시도를 당하게 했고, 우크라이나의 외국 협력자들에 대한 젤렌스키의 신뢰를 꺾게 만들었다.
"전 아무도 전적으로 믿지 않습니다."
그는 그해 12월에 그의 사무실에서 나를 만나서 그렇게 말했다. 며칠뒤, 그는 1차 평화협상을 위해 푸틴을 만나야 했다.
그의 기대치는 낮았지만, 전쟁을 확대시키기는 것을 막기위해 무엇이든 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러시아는 동부 지역을 2014년에 점거했고, 그는 이것이 수많은 우크라이나 군인들의 목숨만큼의 가치가 있지는 않다고 말했다.
"전 그들을 그곳에 보낼 수 없습니다. 어떻게 그러겠습니까? 그들 중 얼마나 많은 이들이 죽겠습니까?
수만명일 것이고, 그 다음에는 전면전이 시작될 것이며, 우크라이나에서 전면전이고, 유럽으로 확대될 것입니다."
푸틴과의 대화는 어떠한 결과도 만들지 못했다. 러시아는 동부 우크라이나의 분열된 지역의 통제권을 넘기기를 거부했고,
키이우의 정부도 모스크바의 정권이 요구하는 지역들을 넘기기를 거부했다.
곧 코로나 사태가 터졌고, 젤렌스키는 서방의 그의 동맹들로부터 백신을 공급받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그는 푸틴이 우크라이나에게 제공한다는 러시아산 백신을 받을수도 없었는데, 키이우는 이것을 모스크바의 정보전의 수단으로 보았다.
많은 유권자들은 이를 다르게 생각했다. 2020년 말, 젤렌스키에 대한 여론은 추락해서 몇몇 조사에서는 20%였으며, 1년 전보다 70% 넘게 하락했다.
우크라이나 정부는 그다음 정치적인 논쟁에 집중해야 했고, 이전 러시아 정치인들과 다른 국내 상대들을 상대해야 했다.
가장 큰 목표는 푸틴의 절친한 친구인 빅토르 메드베추크를 감금하는 것으로, 우크라이나 의회에서 가장 큰 야당을 구성하고 있었다.
국가는 메드베추크의 가족의 자산을 동결했고, 이후 그를 자택연금시켰다. 심지어 젤렌스키의 가장 우호적인 동료들조차 이러한 결정에 실망했다.
"이는 법치주의에 의문을 가져다 주었습니다."
젤렌스키의 대선 캠페인을 함께 이끈 Dmytro Razumkov는 나에게 10월에, 그가 의회에 연설하기 몇시간 전에 이렇게 말했다.
푸틴은 그의 친구 메드베추크가 감금된 것에 분노해서, 이를 "명백한 정치권의 숙청"이라고 불렀다.
그는 수천명의 러시아 군대를 국경에 "대규모 훈련"이라며 보내는 것으로 대응했고, 그들은 대부분 2021년까지 있었다.
포격과 저격이 전선에서 증가했고, 미국은 사태가 급격히 가는 것을 경고했다. 심지어 침략도 말이다.
그럼에도 젤렌스키는 침착함을 유지하고자 했다. 4월 초에 우리가 전선을 방문했을때, 그는 그들이 베트남이라고 별명을 붙인
(그들이 영화에서 본것과 같은 진흙과 늪이 있는) 참호에서 군대와 이야기하는데 거의 1시간을 소모했다.
우크라이나 군대의 최고 사령관인 Ruslan Khomchak 장군은 대통령을 그의 병사 3명이 2주전에 매복에 당해 살해당한 장소로 데리고 갔다.
"그 공격은 아무런 전략적 이유가 없었습니다. 그들은 이 소년들을 그저 냉정하게 쏴버렸을 뿐입니다."
Khomchak은 그렇게 말했다.
나에게는 놀랍게도, 젤렌스키는 그들을 위해 복수하겠다는 맹세를 하지 않았다.
대신 그는 이 진흙탕을 지키느라 병사들을 희생시키는 것이 현명한지 물었다.
우크라이나는 2018년 젤렌스키가 당선되기 1년전 맹렬했던 공세로 이 땅을 차지했다.
"누군가한테는요, 이건 우리가 강한 사내들이라는 의미기 때문입니다."
그는 우리가 무장된 차량 뒤로 가기전에 그렇게 말했다.
"다른 이들한테는 그들의 아들들이 집으로 돌아오지 못한다는 의미기도 합니다."
대통령은 그러한 거래를 계속 해나갈 의도가 없었다. 그의 군인들의 목숨, 그는 말했다. 그에게 이런 전장의 어떠한 고철더미보다 그들이 더 가치가 있다고.
크렘린에서는 이에 전적으로 동의하지 않았다. 겨울초에, 70000명으로 추산되는 러시아 군대가 우크라이나 국경으로 모여들었다.
할로윈 근방에, 미국 정부로부터 오는 경고는 더욱 격심해졌다. 키이우와 워싱턴에서의 만남에서,
미국 정보부 요원들과 외교관들은 젤렌스키의 팀에게 러시아의 침공이 임박했음을 설득하고자 했다.
"그들은 확률이 80%라고 했습니다."
지난 가을에 이러한 브리핑들을 받은 젤렌스키의 한 외교 조언가는 이렇게 말했다. 미국인들은 그들의 추산치가 사실임을 뒷받침했다고 조언가는 말했고,
인공위성의 이미지들은 러시아의 군대가 국경에 모여있음을 보여주었으며, 또한 도청된 통신들은 러시아가 침공을 준비하고 있음을 알려주었다.
그러나 젤렌스키와 그의 내각은 침공이 임박했음을 믿지 않았다. 우크라이나 국경수비대는 그에게 전쟁이 2014년에 시작했을때보다
그들의 공격 가능성이 높지 않다고 보고했다.
"우리는 검은 백조 이론에 대해 말하는 것입니다."
젤렌스키의 연락 조언자인 Iullia Mendel이 이렇게 말했다.
"그 누구도 이것이 일어날 것이라고 믿을수 없었어요."
2월 24일 아침, 푸틴과 젤렌스키가 모두 TV에 나와 그들의 각기 나라들에게 침공명령 이전 최후의 연설을 했다.
그들의 대조는 이보다 더 극단적일 수 없었을 것이다. 푸틴의 연설은 위협과 함께했으며, 그가 우크라이나에게 한 주장은 현실과 동떨어져 있었다.
그는 그가 전국에 대한 "탈군사화와 탈나치화"를 목표로 하는 "특별 군사작전"을 명령했다고 했다.
그건 서약이었다, 주권국가의 정부를 무너뜨리고, 서방에 있는 러시아의 가장 큰 이웃의 군대를 무너뜨리겠다고 말이다.
푸틴은 또한 우크라이나의 방어를 위해 오는 그 어떤 "외부의 군대"에게도 차가운 위협을 가했다.
"이는 당신들의 역사에 한번도 적혀본 적이 없는 그러한 결과를 가져다 줄 것이다."
젤렌스키는 그의 연설에서 러시아 인들에게 직접 이야기하길 선택했다.
그는 그가 오늘까지 침공을 피하기 위해 푸틴과 연락하려고 시도했음을 이야기했지만, 크렘린이 그를 무시했다고 했다.
그리고 그는 러시아 국영방송에서 나오는 프로파간다를 반박하고자 했다.
"여러분은 이 불길이 우크라이나의 자유를 가져다올 것이라고 들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크라이나의 사람들은 이미 자유입니다.
우리를 공격하면서, 여러분은 우리의 얼굴을 보게될 것입니다. 우리의 등이 아니라 말입니다."
러시아의 공격은 아침에 우크라이나의 도시들에 로켓들이 떨어지면서 시작됬다.
군대들은 국경을 걸쳐 다양한 방향으로 쏟아져 나왔고, 북부에서는 수도를 장악하고자 키이우를 향해 밀고 들어갔다.
젤렌스키는 대통령 관사에서 그의 가장 가까운 조언자들과 자리를 잡았다. 그의 주요 인사였던 Yermak은 그 순간을 명확히 기억한다.
"그러한 모든 노력에도 불구하고, 가장 무서운 일이 일어났다는 것을 우리가 깨달았을때, 모든 것을 극도로 날카롭고 명백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는 나에게 이렇게 썼다.
"우리는 여기에 있습니다. 그들이 여기에 있습니다. 그들은 우리를 공격했습니다. 우리는 방어하고 있습니다. 진실은 우리 편에 있습니다."
이는 우크라이나에게 정보전에서 명백한 이점을 안겨다 주었고, 젤렌스키의 무대의 재능은 강력한 무기가 되었다.
러시아의 스파이들이 퍼져서 네오나치들이 우크라이나의 아이들을 인간방패로 쓰고 있다고 했지만, 젤렌스키는 소셜 미디어에 수많은 포스트로 이를 반박했고,
그의 사람들에게 진실하고, 그의 영화에서 보듯이 거친 목소리를 듣게 했다. 그는 그들과 가까이 있는 것처럼 보였고, 그는 실제로 그랬다.
젤렌스키는 미국이 그를 안전지대로 탈출시키겠다는 제안을 거부했다. 그는 미국인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난 총알이 필요합니다. 탈것이 아니라."
대통령이 키이우의 중심의 정부에서 후퇴하지 않았다. 그는 방탄조끼를 입지도 않았다. 사진과 비디오들은 그가 티셔츠만 입고 포위된 국가의
친숙한 방에, 인디고 카펫과 무거운 샹들리에와 함께 있음을 보여주었다. 내가 그를 만났고, 그의 관료들이 그의 임기를 시작했던 곳 말이다.
지금은 층들마다 모래주머니가 쌓여있고, 군인들이 돌아다닐 뿐이며, 근처에 떨어질 러시아 폭격에 아주 작은 방호만 제공한다.
젤렌스키의 팀이 나라 전역에서 보았을 좌절을 생각해보자. 아이들을 포함한 수많은 사상자들, 포격이 거주지 근방에 쏟아졌고,
미사일이 키이우의 TV 타워에 직격했으며, 또 다른 미사일은 동부 하르키우의 중앙 광장에 떨어졌다. 그러나 러시아의 공격에 대한 모든 보고에서,
우크라이나인들이 그들의 땅에 버티고 서서 러시아 무장차량들을 파괴하고, 탱크와 전쟁포로들을 노획하고 있다는 소식이 있다.
이제 군사 전문가들에게는 푸틴이 우크라이나인들의 저항능력과 저항의지를 잘못 판단했음이 명확해졌다.
미국 상원 국방정보부에 따르면 미국 정보부는 러시아 군인들의 사기가 땅바닥에 있음을 밝혔다. 침공 4일째 되는 날에, 젤렌스키는 그의 동료들중 몇을
푸틴의 남자들과 첫 평화회담에 보냈다. 크렘린이 그들의 요구를 낮추고자 하는 신호를 보여주지 않았는데도, 그들은 계속 대회하는데 동의했다.
서방에서 우크라이나로 지원이 쏟아짐에 따라, (러시아의 탱크와 전투기들을 파괴할 수 있는 보병 개인화기들을 포함해서)
푸틴은 그의 장군들에게 러시아의 핵무기들이 비상체제에 들어가도록 명령했다.
2월 마지막 날, 젤렌스키는 정부의 카메라에 나타나서 EU에 가입하는 공식 신청서에 사인했다.
"우리의 목표는 모든 유럽인들과 함께 하기를, 가장 중요한 것은 동등한 위치에 있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저는 이것이 공정하다고 확신합니다. 저는 이것이 가능하다고 확신합니다."
20년간 EU 지도자들과의 좌절스러운 대화 끝에, 갑자기 우크라이나인들은 이 블록에 가입하는데 도달한 것처럼 보인다.
유럽 위원회 회장인 Ursula von der Leyen은 기자들에게 같은날 우크라이나는 "우리중 하나이며, 우리는 그들이 유럽연합에 들어오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전쟁이 일어난 일주일이 끝나가면서, 40마일의 러시아 군대 행렬은 키이우로 향하고 있다.
그러나 젤렌스키의 조언자들은 나에게 그들의 투지가 여전히 높다고 확신시켰다.
"우리는 어떠한 대가를 치르더라도 이뤄낼 것입니다. 우리의 자유. 우리 국가의 생존. 그러니 우리는 우리의 한계를 넘어서서 일하고 있습니다."
Yermak은 나에게 그렇게 썼다.
그의 군대를 지휘하는 것과 떠나서, 대통령의 날은 전세계에서 오는 지원 전화로 가득차있다.
일본, 노르웨이, 이스라엘, 인도의 총리. 폴란드, 프랑스, 미국의 대통령들. 네덜란드의 왕과 왕비, 이스탄불의 세계 총대주교, 심지어 교황까지 말이다.
모든 지원약속과 안전을 위한 기도에서, 우크라이나와 그의 리더는 그들의 역할을 공격의 피해자를 초월하게 된 것으로 보인다.
그들은 우리 모두가 꿈꾸는, 가지고 싶어하는 그러한 꿋꿋함을 보여주는 예시가 되고 있다.
그러한 종류의 용기에 거짓은 없으며, 우리가 이를 가장 필요로 한 시기에 이것을 가지게 되었는지는 의심할 이유가 없다.
젤렌스키에게 있어서, 2월 25일 침공 둘째날 밤에 그러한 용기를 가졌다.
그는 그의 관사 밖으로 걸어나와, 차가운 겨울 바람에서 그의 가장 가까운 조언자들에 둘러싸여, 그의 휴대폰으로 영상을 찍으며 짧은 메시지를 남겼다.
"우리가 이곳에 있습니다."
루리웹-9439929728 2022/03/06 18:54
진짜 멋지네
LibertyCityPD 2022/03/06 18:58
전직이 코미디언이라는 이유만으로 많은 사람들이 그를 얕잡아봤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번 일을 통해 직업만으로 그 사람을 평가하는 것은 크게 잘못됬다는 것을 증명할 수 있다.
LibertyCityPD 2022/03/06 19:00
그리고 이 와중에 트럼프의 또 다른 빅똥이 발굴되고 있다.
트황상은 무슨
이즈라넴 2022/03/06 19:00
진짜 사나이는 곰같은걸 타는게 아니다. 필요하다고 생각할때 망설임없이 나아가는 것이 사나이다.
칼라이트 2022/03/06 19:02
진짜 영웅이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