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는 프랑스 혁명 : 1792년 8월 10일 봉기
온갖 총칼로 무장한 군중들이 튀일리 궁을 에워싸기 시작했다
이들은 그저 일자무식 단순히 성난 군중이 아니다.
프랑스의 공화제를 견제하려고 전쟁을 일으킨 이웃 제국의 화마에
프랑스 대혁명의 성과가 물거품처럼 사라질까 두려워진 민중들이 저지른 자기 방어 행위였다.
민중의 분노와 공포가 루이 16세가 머무는 왕궁을 포위할 무렵 국왕의 직속 근위대조차 달아나는 판에
끝까지 남아 왕궁을 사수하던 이들이 있었는데
스위스 용병, 그것도 프랑스의 국왕을 지키는 스위스 근위대 786명이었다.
(루이 16세)
"다 끝났소. 그대들은 여태까지 충분히 프랑스 왕가를 충실히 섬겨왔소. 이제 그대들의 임무는 끝났으니 이만 떠나도 좋소."
아무리 왕가를 섬기는 정예 용병 수백명이라 하더라도 무장한 군중은 수만 명에 달했기 때문에
이들로썬 저항한들 의미가 없었기 때문에 루이 16세는 그들에게 떠나도 좋다고 말한다
하지만...
"... "
(혁명군)
"헤헤 선생님들 들었져? 저희도 딱히 외국인 용병한텐 원한도 없어요. 그냥 궁전에서 싸게싸게 병력 빼주시기만 하면... 네?"
"... "
"??? 저기요 제 말 들었죠?"
"내 말도 들은 거 맞지?... "
"우리는!!!!!!!!!!!!
스위스 용병대다!!!!!!!!
스위스 용병은 목숨이 붙어 있는 한 결코 무기를 버리지 않아!!!
우리는 절대 도망치거나 항복하지 않을 거다!!!"
"???"
"목숨이 다하는 그 순간 까지 싸워라!!"
결국 스위스 근위대 786명 전원 전사
하지만 그 과정에서 군중 역시 수백명이 죽었기 때문에 민중은 아무런 원한 관계가 없던 스위스 근위대에게 분노를 쏟았는데
몇몇 아녀자가 근위대의 시신에서 고환을 잘라낸 뒤 흔들어 대는 기록이 남아있는 등 그들에 대한 증오가 하늘까지 치솟았다.
왜 그랬을까?
전투를 즐기는 전투광이었을까?
아니면 그렇게라도 목숨을 바쳐서 저 하늘처럼 드높은 국왕에게 충성심을 보여주고 싶었던 걸까?
아니면 그저 멍청했던 걸까?
스위스는 면적 41,285km² 의 작은 나라다. 고작 해봐야 경상도보다 조금 큰데다,
그리고 그 작은 나라 주위에 있는 것은 더럽게 높은 산맥 뿐이라
넓은 논밭을 통한 농업도 강이나 바다를 통한 상업도 불가능.
금융업이나 시계 같은 정밀 제조 산업이 제대로 발달하는 것은 한참 뒤의 일이다.
그래서 그들은 용병을 업으로 삼아 일하며 가족과 나라에 보탰다.
그리하여 스위스 용병이 신뢰를 저버린다는 것은 나라와 가족에 대한 신뢰를 저버리는 것
그리고 내 이웃과 형제자매들의 수입이 끊긴다는 것이었다.
이들의 위상이 한창 전성기일 때 여러 군주, 영주들이 이들을 고용했는데
때로는 아버지와 아들이 서로 적으로 만나 장창을 겨누고 서로를 찔러 죽이기도 했다
코 앞에서 제 손으로 가족을 친구를 이웃을 죽이는데
이들에게 처음부터 어떤 어설픈 전장이든 어떤 전멸이 분명한 전투던 물러설 곳이 존재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리고 용병은 아직까지도 이어진다
대표적으로 교황청에서
Dr.Kondraki 2022/03/01 03:40
그리고 용병은 아직까지도 이어진다
대표적으로 교황청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