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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친이 오유한다고 할 때, 일베랑 다를 거 없다고 생각했다

 

나 30대 여자.

 

남친이랑 사귄 지 얼마 안 됐을 때, 

어쩌다 정치 얘기가 나왔는데

내가 남친한테 장난으로

"오빠 일베해?" 라고 물었다.

그랬더니 남친은 광분하면서 

"미쳤어? 나 좌빨이거든?" 라고 대답했다.

 

그러면서 본인은 커뮤를 딱 하나 하는데,

그게 '오유'라고 하더라.

20대 초반부터 30대 중반될 때까지 꾸준하게 한 게 오유이며,

이거 절대 이상한 사이트 아니라고도 덧붙였던 기억.

 

난, 오유란 건 들어본 적도 없고, 

그러니 당연히 뭐 하는 사이트인지 몰랐다.

커뮤를 안 하는 나에게는 막연히 두려움이 있었고

일베랑 뭐 다를게 있겠나 싶은 생각도 했던 게 사실이다.

 

 

그런데 헤어진 지 일주일 조금 넘은 오늘,

자려고 누웠는데 문득 오유가 생각나더라.

그 남자 참 이 사이트 열심히 봤었는데...하는 생각.

뭐가 그리 재미있는지 혼자 열심히도 웃었는데.. 하는 기억.

그래서 접속해 봤다.

 

막상 가입하고 이것저것 눌러보니

생각보다 재미있고 웃긴 게 많네.

사람들 참.. 뭐랄까... 동글동글하다.

어떤 건 내용이 재미있기 보다, 

별 것도 아닌 걸로 히히덕거리는 댓글들이 귀여워서,

그래서 나도 같이 웃었다.

 

웃다가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더라.

솔직히 같이 있을 때 커뮤 들어가서 노는 거 정말 꼴 보기 싫었는데..

나랑 같이 있을 때 피파 오토돌리느라,

피파 선수키우기인지 뭔지 하느라 

새벽까지 정신 팔려있는 것도 솔직히 서운했었는데...

그래도 잔소리하거나 싫은 티는 안냈지만, 

지금 생각해보니 마음 속으로도 섭섭해하지 말걸 그랬다.. 싶다.

그리 이상한 사이트도 아니었는데.

퇴근 후에, 주말에, 게임 좀 할 수 있었던 거였는데....

더 넓은 마음으로 이해해줄걸...

나는 다 괜찮으니 마음껏 하라고 속시원히 말해줄걸.

 

그랬으면 오빠가 안 떠나갔을까.

내가 애교를 조금만 덜 부리고,

조금만 성숙한 마음으로 오빠를 이해했더라면

그랬더라면 그날 나를 그렇게 버리지 않았을까.

아닌가.

애교가 문제가 아닌가.

게임이나 오유가 문제가 아닐지도 모르겠다.

그냥, 그렇게 쉽게 헤어질 정도로

오빠가 나를 안 사랑했을지도 모르지.

그래서 짜증의 역치가 높지 않은 사람에게

내가 그날 또 징징대서.

그래서 나를 떠나갔을지도 모르지.

내가 오빠 성에 찰 만큼 예쁘지 않아서,

내 성격이, 내 능력이, 전부 다 오빠 기대에 못 미쳐서,

그래서, 그래서 나를 버린걸지도 모르지.

너는 참, 누가봐도 능력있고, 멋지고, 착한 남자였으니.

 

여기보니까 참.. 글들이 많다.

지금은 새벽 2시고. 너는 잘 테고.

업데이트가 참 자주 되는 걸 보니

내 글은 묻히고 묻혀 오빠가 이 글을 볼 일은 없겠지만,

오히려 그래서 더 속편하게 할 말을 적어본다.

 

이런 기분이구나.

차이면 이런 마음이 되는 구나.

매 분 매 초마다, 오빠가 마지막으로 한 말이 나를 죽이고,

불면에 빠지게 만들고, 끊임없이 자책하게 하고,

시간을 돌리고 싶게 하고, 꿈에서라도 보게 해달라고 기도하고,

사람이 참, 이렇게 되는 구나.

끝간 데 없이 형편없는 여자가 되는구나 내가.

 

오빠.

매일 머리 크다고 놀려서 미안해.

오빠 머리 좋은 거 다 알면서 매일 바보라고 놀려서 미안해.

그렇게 게임 좋아하는데 왜 피파 7연패 하냐고 놀려서 미안해.

오유 일베랑 다를 거 없다고 생각해서 미안해.

 

미안한데.. 너무 미안한데..

그래도 딱 한 번만 더 보고싶다.

그 한 번만에 매일 하루하루를 더해,

계속계속 다시 보는 사이가 되고 싶다.

 

이렇게 오빠 좋아하는 사이트 들어와서

이러고 있는 내가 참 웃기겠지만,

서로 사랑을 주고 받았던 남자를

하루 아침에 짝사랑하게 되어버린 내 처지를 조금이라도 이해한다면,

그냥 웃어넘겨주라.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해주라.

 

사랑해.

사랑해.

 

 

댓글
  • 민물고기 2022/02/11 02:36

    앞으로 오전 9시까지 글들이 안올라옵니다... 볼 수 있겠네요!

    (cC9n3q)

  • 찡찡어뭉 2022/02/11 02:39

    토닥토닥

    (cC9n3q)

  • 손칼국수 2022/02/11 03:06

    글에 묻혀 뒤로 내려가는 글을
    추천해서 베스트로 보내 아예 모아두는
    시스템이 있지렁~
    이글은 뒤로 밀려도 오빠야가베오베랑 베스트 먼저 챙겨보는 오유인이기를~
    파워추천드림.

    (cC9n3q)

  • 술과나 2022/02/11 03:09

    제발 봐달라고,. 작성하신거군요 추천합니다.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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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예래원전팀장 2022/02/11 05:29

    추천 꾸욱~

    (cC9n3q)

  • Luv_ 2022/02/11 06:15

    내가 보내쒀~!!
    오빠야는 베스트를 먼저보는 오빠여야만 한드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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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kip 2022/02/11 06:46

    추천도 반대도 잘 하지않지만
    떠난 사랑에 대한 미련은 인생에서 지금뿐임을 알기에
    그 후회로 점철될 구질함과 자책을 응원합니다.
    이 글이 어떤결과로 맺음되어도,
    너무 슬퍼하거나 자신을 다그치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남들도 다 그럽니다.
    그저 행동하지 못함을 후회할 뿐이죠.
    인생은 하고 후회한 것과 못하고 후회한 것 중 후자가 압도적으로 미련이 남습니다.
    진심으로 글쓴이의 그 용기를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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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큐버스 2022/02/11 06:47

    헤어졋다면 아군이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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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정곡 2022/02/11 06:50

    머리가 크면 치매 확률이 좀 낮다고 하더이다

    (cC9n3q)

  • 나오코 2022/02/11 07:04

    여기서 이러시면 곤란합니다 호갱님

    (cC9n3q)

  • shoguwary 2022/02/11 07:15

    추천을 안 누를 수가 없넹

    (cC9n3q)

  • 탈모사냥꾼 2022/02/11 07:25

    이때는 원래 이런거지

    (cC9n3q)

  • 여우징 2022/02/11 07:27

    추천

    (cC9n3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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