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진보를 오랜 시간 지켜보면서도 그들이 최후에는 극우 세력과 함께할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친구라 여겼다. 하지만 인터넷은 우리를 단순한 정보 수용자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해주었고, 우리는 진보언론을 통하지 않고도 우리의 의견을 공유할 수 있게 되었다. 정보의 비대칭적 유통이 줄어들면서 단지 같은 적을 공유할 뿐이라는 생각이 점점 커졌고, 이제는 그것이 사실이라는 것을 안다.
진보 언론은 이미 노무현 대통령과 그 지지자들이 자신들의 노선과 같지 않다는 것을 인지했고, 이를 길들이기 위해 노무현 정부를 공격하는데 온 힘을 쏟아냈다. 진보는 자신들이 싸워서 쟁취한 민주주의 열매를 노무현 대통령이 훔쳐갔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르겠다. 노무현 대통령이 임기를 마치고 이명박이 전방위적으로 압박하자 진보 언론은 이에 편승하여 조롱하기 바빴다. 노무현 대통령의 지지자들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우리는 독재와 싸우는데 함께 하며 많은 것을 희생해 준 진보에게 고맙고 미안한 감정을 가지고 있었다. 극우 세력이 크게 축소되고 민주당이 제대로 된 보수가 되면 진보가 다른 한쪽을 맡아 건강한 정당 정치가 이루어지길 바라는 마음이 있었다. 그 마음으로 선거 때 비례표는 정의당에 주었다. 노회찬, 심상정과 단일화에 성공했을 때 흐뭇하게 바라보았다. 한겨레를 구독하면서도 지하철을 탈 때 한겨레를 사다가 두고 내렸다. 극우 세력이 아직 위세를 떨치는데 진보가 부족한 자본과 작은 세력 때문에 소멸할까 걱정하는 마음이었다. 이제 이 어수룩함에 한숨이 날 뿐이다.
군부 독재 시절 그들이 한 일이 없냐고 묻는다면 그들의 공이 크다고 할 것이다. 이명박과 박근혜를 거치면서 진보 언론이 정권의 나팔수였냐고 묻는다면 당연히 그렇지 않다고 대답할 것이다. 하지만 그들이 노무현 대통령과 문재인 대통령에 대해 공정했다고 말한다면 동의할 수 없다.
이번 경선에서 대선까지 논조를 보면 진보 언론이 문재인 대통령을 어떻게 다뤘는지 알 수 있다. 여론 조사 결과로 어떤 제목을 뽑느냐 같이 사소한 것은 귀여울 지경이다. 여론 조사 표본을 가지고 장난치는 것에서 어처구니가 없어지다가 팔사오입에 이르면 이들의 졸렬함에 입을 다물 수가 없다. 이런 악의적인 조작은 개인이 절대 알아챌 수 없다. 이들은 아직도 정보 제공자의 위치를 휘둘러 우리를 조종하려 드는 것이다. 다시 한 번 인터넷 인프라를 구축한 김대중 대통령의 선견지명에 감탄할 따름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하자 진보 언론은 다시 간을 보기 시작했다. 시작은 호칭이었다. 내부 방침이라는 되도 않는 변명을 했다. 우리는 기존의 기사를 확인하며 이 방침이라는 변명이 우리를 반푼이 취급하는 것이라는 것을 알았다. 경향은 청와대 보고와 관련된 소설을 미리 써 두었다가 잘못 올렸다. 한겨레 21은 민주당 경선부터 대선까지 단 한번도 문재인 대통령을 표지로 싣지 않았다. 그리고 문재인 대통령이 표지에 올라온 타임지가 동이 나게 팔리자 부랴부랴 표지에 실었다. 그러면서도 제대로 나온 사진을 선택하지 않았다. 이 문제들은 그냥 ‘미처 신경 쓰지 못했습니다. 앞으로는 주의하겠습니다.’ 하고 넘어갈 일이었다. 우리가 이를 지적하자 돌아온 반응은 “덤벼라, 문빠들” 이다.
문제가 커지자 사과문이 올라왔다. 사과문은 읽어볼수록 납득하기 어려웠다. 그리고 사과문이 올라온 직후 우리는 이 기레기들이 우리를 문재인 대통령에게 맹목적으로 충성하는 개돼지로 여기고 있다는 문구를 SNS에서 발견했고 왜 사과문이 이 따위인지 알 수 있었다. 그래서 우리가 조중동을 읽지 않듯이, 이제 한경오도 읽을 필요가 없어졌다. 선민의식에 젖어 우리를 무지몽매한 개돼지라 여기고 자신들의 뜻대로 조종하고자 하는 기레기들에게 우리 돈까지 요구하는 것은 너무 가혹한 일이다.
그러자 난리가 났다. 진보에 발을 걸친 온갖 사람들이 옹호하기 바쁘다. 버리기에 공이 많다, 사과를 했으니 넓은 마음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이제는 화해를 할 때다, 아직 극우가 시퍼렇게 살아 있다 등, 안쓰러워서 못 볼 지경이다. 하지만 자신들이 무슨 짓을 했는지는 단 한마디도 하지 않는다. 돈은 뜯어내고 싶은데, 사과는 못하겠다는 뜻이다.
그렇다. 그저 표지는 개개인이 다르게 볼 수 있는 것이고, 호칭은 글 쓰는 이에 따라 얼마든지 원하는 대로 붙일 수 있다. 우리가 바보도 아니고 그걸 모를 리 없잖은가. 애초에 우리는 주의나 주고 넘어갈 생각이었다. 이렇게 일을 키운 것은 진보 언론의 치졸함이다. 이제 와서 사과와 변명을 하지만 사과문은 엉망이고 변명은 옹색하다. 그 이유는 우리를 병신 머저리 취급하면서 비아냥거리고 조롱한 것에 대해서는 언급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것을 인정하면 진심으로 머리 숙여 사과해야 하니까. 개돼지들에게 그렇게는 못 하겠으니까.
'내가 잘못한 것은 하나도 없지만, 이 모든 일이 너희 무지렁이들을 계도하지 못한 내 부덕의 소치이다.' 가 무슨 사과문이냐? 사람을 병신 취급해도 정도가 있는 것이다. 저 사과문을 가지고 그래도 사과했으니 너희가 받아야 된다며 진보 언론을 비호하는 의견은 가소로울 따름이다. 노무현 대통령에게 감시를 외쳤던 민주시민은 어디 갔냐고 조롱하는 기사를 보며, 이것들과는 한 하늘을 이고 살 수 없겠다는 생각마저 든다. 노무현 대통령 서거 얼마 전 ‘비굴이냐, 고통이냐’ 라는 기사에서 마지막 승부수 운운하며 자살을 종용했던 것이나, 서거 당일 ‘시계나 찾으러 가자’는 기사를 반추해보면 새삼스럽지도 않다.
비판적 이성을 갖추라고 훈계한다. 이미 비판적인 이성을 갖추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자신들의 생각만이 진리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권력이 있는 곳에 부패가 있고, 이를 감시하고 고발하는 것이 자신들에게 주어진 소명이라고 합리화한다. 언론인이 가져야할 훌륭한 소양이다. 자신들끼리 모여 우리를 조소하며 천박한 조롱과 비아냥을 쏟아내다가 돈 앞에 진심 없는 사과를 하는 일이 그렇게 훌륭한 소양에서 나온다고 생각하는 사고방식이 놀랍다.
저들이 자신들의 행태를 반성하고 환골탈태하여 한국사회의 한 축을 맡아주었으면 하는 바람에는 아직 변화가 없다. 단지 저들이 그럴 그릇이 못된다는 사실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https://cohabe.com/sisa/23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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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잘 읽었습니다..
저는 언제쯤이면 이런 명문을 쓸 수 있을지..
명쾌하고 잘 읽히는 글입니다.
맞아 맞아 하면서 봤네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 스크랩 합니다
솔직히 이제 대학교육 안받은 사람 찾기가 더 힘들고, 설령 안 받았다 해도 정보가 옛날처럼 제한되는 세상도 아닌데 아직도 선민의식에 빠져있다니..ㅡㅡ
단숨에 읽히네요. 잘 봤습니다.
눈에 쏙쏙 들어오네요.
정말 공감합니다.
잘 읽었습니다.
얼마간 기레기들에 분노하며 입은 내상이 치유되는 느낌입니다. 추추!!
구구절절 맞는 말씀이네요. 다른 커뮤니티에도 올려주시면 좋겠네요
노무현을 위해 그때 아무것도 안한 지지자 중 일부는 스스로 좋은 스피커가 되어놓고 그때와 똑같이 한경오에 동조하며 문빠가 잘못됐다. 헛소리를 하고 있진 않은지 생각하면 소름 끼칩니다. 선동 당했든 나약했든 노무현을 위해 뭘 해주지 못했기에 깨닫고 발전한 우리와 달리 또 발목 잡는 한경오가 가진 의식에 경도되어 노무현 때 처럼 굴려는 그 사람들이 참 가소롭습니다.
글을 읽다가 문득 김대중대통령님이 떠올랐는데
다섯째 문닷 마지막 문장에 딱 나오네요.
긴 글 가파르게 읽어내렸네요.
님 좀 짱이신듯.
와..... 언제쯤이면 이런 글을 쓸 수 있을까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