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공부터 5공까지
가톨릭이 민주화운동의 핵심이라 보긴 어렵지만
민주화운동의 최후의 보루
그것은 한국 가톨릭이었다.
원래 교회법(가톨릭 자체 규정)에서는 정치에 크게 관여하면 안된다는 규정이 있기는 하다.
그렇지만 인권 문제에 있어서 정치적인 목소리를 내지 않는 것이
도리어 예수의 가르침을 어기는 것이라 생각한 한국 천주교는
민주화운동의 보루가 되기로 결심한 바 있다
가장 유명한건 아무래도 정의구현사제단이겠으나
정의구현사제단만 나선 것은 아니었다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중간수사 결과가
은폐 조작되었다고 정의구현사제단이 기자회견 할 당시
다른 신문들이 단신 처리할동안
서울대교구는 서울주보(서울 및 수도권 성당 신자들이 매주 봄)에
대문짝만하게 실어서 보낼 정도였다
다시한번 말하지만, 서울 신자들이 보는 주보에 저걸 실어 보낸 거다
민주화운동에서 언론에 의한 여론 형성이 얼마나 중요했는가는
말할 필요도 없다
그리고 이 일은 몇 주 뒤 6월 항쟁으로 이어진다
이런 민주화운동의 앞에는 김수환 추기경이 있었다.
김 추기경이 서울대교구의 제일 큰 결정권자였으니
서울대교구가 민주화운동을 수호해준것은
당연하다면 당연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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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께서 동생 아벨을 죽인 카인에게 물으시니
카인은 '제가 아우를 지키는 사람입니까?' 하고 잡아떼며 모른다고 대답합니다.
창세기의 이 물음이 오늘 우리에게 던져지고 있습니다.
'너의 아들, 너의 국민의 한 사람인 박종철은 어디 있느냐?'
'탕 하고 책상을 치자 억 하고 쓰러졌으니, 나는 모릅니다'
'국가를 위해 일을 하다 보면 실수로 희생될 수도 있는 것 아니오?'
바로, 카인의 대답입니다."
김수환 추기경, 명동성당 강론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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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화 인사를 숨겨준 명동성당
명동성당 앞에는 최루탄이 마를 날이 없었다.
신부들과 수도사들이 힘들어해도
김수환 추기경은 그 앞을 지켜주고 있었다.
그렇게 민주화운동의 불씨가 꺼지지않게
최후의 보루로서의 역할을 묵묵히 했었다
이제와서 설강화가 80년대의 가톨릭을 부정하는 이유는
민주화운동 전체를 부정하고 싶은 자들이
운동의 최후의 보루였던 가톨릭을 욕보이면
그 운동도 욕보일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민주화운동이 성역입니까?'
'착한 안기부 사람도 있지 않겠습니까?'
'픽션인데 시나리오 짜다보면 그럴수도 있는 것 아니오'
그것이 오늘날의 카인의 대답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