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결코 친절한 구보씨는 아니다.
나의 친절은 주제넘은 것이고, 가끔 해프닝처럼 발생한다.
그러나 구보씨처럼 시간만 나면 청계천을 걷는다.
걷기엔 겨울이 좋다.
구보씨는 지팡이를 들었지만 난 언제나 사진기다.
집에서 나와 청량리, 제기동 경동시장을 지나
동대문 구청에서 천호대로를 건너 천변으로 내려 간다.
눈부신 빛이 졸졸거리는 냇물을 희롱하고 있는 것을 즐기며
난시가 된다. 기꺼이. 어떤 환상을 그리며.
어제 전시가 끝났다. 사서 고생했다.
아니, 부탁하지도 않았는데 오지랖 넓게 나섰다가
팜플릿을 만들고 급기야 전시장 지킴이 자원봉사를 했다.
누군가의 희생은 필요하지만 오지랖은 희생이 아니라 바보짓이다.
남은 건, 겨우 가라앉혔던 허릿병.
구보씨처럼 청계천을 걷는다.
뒤틀린 허리는 바로 세우려고 애를 쓰며.
나도 지팡이를 하나 살까? 그럴 나이도 됐잖아.
하긴 구보씨는 20대 청춘에 폼으로 지팡이를 들었지만.
다들 지 잘난 맛에 사는 건 맞다.
나도 그게 없었다면 잘난 척 나서지 않았을 거다.
힘들고 지루한 일주일을 갇혀서 보냈지만
얻은 것도 있다. 허리병 말고, 돈으로 살 수 없는 것.
멀리 지방에서 올라 온, 처음만난 회원인데 꽤 멋진 사람이다.
전시장 지킴이를 안 했다면 만나지 못했을......
그리고,
전시된 사진을 두루 두루 비교해보며
"걸어두고 늘 보기 좋은 사진"은 어떤 사진일까? 찾아도 봤다.
한지에 프린트하고, 족자를 한 내 사진이
비싼 액자로 치장한 화려한 사진들 속에서
얼마나 품격을 지키는지 보았다. 역시 눈에 잘 안 띈다.
조용하고, 소박한 모습으로 다소곳이 숨어있다.
그래, 내가 바라는 거야. 잘난 것 없는 나랑 닮았잖아?
치장해서 매력 있게 보이는 것보다
초라하지만 스스로 품위를 지키는 것도 좋아.
새벽 3시에 잠에서 깨서 허리가 아파 뒤척이다가
글을 쓰다. 지난 2월에 펜탁스 645로 찍었던 사진을 꺼내서.
https://cohabe.com/sisa/22690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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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킴이 얼마나 힘든지 알아요 ㅠ ㅜ
정말 고생 많으셨어요
누군가는 해야할 일인데 자청해서 한다는 게 쉽진 않지요
잘난 맛 아니고 좋으신 분.. 글에서 느껴집니다
허리병 푹 쉬고 얼른 나으시길
전시 축하드립니다
좋은 사진과 함께하는 진솔한글 잘 봤습니다 얼런 쾌차하시기 바랍니다~^^
사진은 촛점이 꼭 맞아야한다고 생각했는데 제 고정관념을 바꿔주시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