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2때 우리에게 화려한 휴가를 보여주신 역사 선생님께서 자문하셨습니다.
그 당시 내가, 광주에 있었다면
사랑하는 처자식을 가진 가장으로서
그들을 뒤로 하고, 문지방을 넘어 전남도청을 사수하러 사지로 향할 수 있었을까?
선생님의 대답은 무엇이었을까요?
하지만 전 저의 대답은 알고 있었습니다.. 바로 넘지 않았다... 지요.. 내 한 목숨은 아깝지 않으나.. 하고 ja위하며
처자식, 늙으신 부모님을 핑계삼아 대문을 굳게 닫고 총탄이 휘몰아치는 거리, 서슬 퍼런 계엄군을 피해
조용히 집에 머무르지 않았을까요..?
하지만 그 날, 용기있는 시민들은 가족을 뒤로 하고, 그리고 남성들이라면 모두 군필자여서
이 행위가 자살행위이며 계란으로 바위치기라는 것을 누구보다도 잘 알면서도 그 사지로 뛰어들었지요
일베에서는 그들이 예비군 무기고를 습격하였다, 경찰서를 털어 카빈소총을 잡아 군인들에게 발포했다 하며
그들을 폭도라고 부르지만
헌법 위에 군림하고 국민 위에 군림하려는 그 군부를 상대로 총을 들었던 시민들이 있었기에 오늘날 우리가 개돼지가 아님을 확신합니다.
개돼지의 후손이 아니고, 개돼지가 독재자의 통치에 눌려 주어지는 쥐엄열매만 꿀꿀꿀 먹으며 살아가지 않습니다.
그 날의 항쟁이 있었기에 비록 그들은 압도적은 화력에 죽어 없어졌지만, 시체마저 군인들에게 질질 끌려 핏자국이 계단에 길을 내었지만
그 날의 정신만큼은 승리하였다고 확신합니다.
그 어느 군부 세력이 앞으로 쿠데타를 도모하겠습니까? 그 날에는 광주 뿐만이 아니라 전국의 모든 지역에서
깨어있는 시민들의 조직된 힘을 경험하게 되겠지요
그리하여 수 많은 영령들의 피와 땀으로 지켜낸 이 보루를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전 문지방을 넘지 못했을 겁니다.
그러나 그 날, 그 문지방을 넘어선 많은 가장들, 젖먹이를 뒤로 하고, 눈물 흘리며 만류하는 아내를 뒤로 하고
총을 잡고 전남도청을 사수하려던
아니 민주주의 그 자체를 사수하려던 그들의 희생을 오늘 묵념하겠습니다.
아이를 낳고 키우면서 맞는 첫번째 5.18인데요..
님의 글을 보니 더더욱 그날의 그분들에게 감사합니다. 자식,가족들이 가지말라고 그렇게들 붙들고 했을텐데 걱정말라고 되려 다독이며 나갔을꺼아니예요..
전 겁냈을꺼에요. 문지방을 넘으려 하지도 않았을꺼고 나가려는 신랑이 있었다면 날 죽이고 가라고 발악하고 보내지 않았을겁니다. 비겁하지만 그랬을껍니다. 그때를 살지 않았지만 그분들에게 항상 빚지고 산다 생각합니다.
과연 그날에 내가 광주에 있었다면....
국사선생님께서는 당시 시위중 공수부대의 진압에 친구의 희생으로 무등산에서 몇일을 숨어서 지내셨다고 하더군요 그리고 그 친구분은....
시위대도 아닌 시민에게 총을 쏘는 모습을본 국어선생님은 계엄군의 말을 어기고 직업을 잃었다고 하더군요...
장갑차의 소리가 들리고 총을든 무장 공수부대가 광주를포위했다면... 나는 과연 문지방을 나서 민주주의를 외칠수 있었을까...
감사합니다.
저는 못했을 거라 고백합니다.
너무나 작은 마음으로 사는 사람이라서..
작게나마 힘이되는 국민으로써의 길을 걷겠다 다짐합니다.
대한민국은 광주에 큰 빚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서울에서 나고 자랐는데요.
1980년 5월 18일 한참 뒤에야 광주에서 그 일이 있는줄 알았습니다.
그리고 제가 많이 놀랐던건 그 와중에 단 한건의 절도와 약탈같은 범죄가 없었다고 하죠.
진짜 이웃을 지키려는 보통사람들의 피의 댓가로 오늘을 살아가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과 문재인 현 대통령께서도 경상도 분이지만 광주민주화에 헌신했던 분이시죠.
여러감정이 교차합니다.
저같아도 넘지 못하기에
그분들의 희생이 더욱 감사하고
감사할 뿐이지요..
지금에야 할 수 있는 일이라곤
1년중 단 하루라도 영면을 기도하는
일뿐입니다..
부디 영면하시고 전두환은 단죄받기를
그렇게라도 억울한 넋들이 위로받길.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정말 감사합니다.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__)
한 평생 나가자던 뜨거운 맹세
동지는 간데 없고 깃발만 나부껴
일베들을 비롯한 패륜아들과 친일 숭미 유신 독재잔당들은 지금도 폭도라고 왜곡날조하기에 여념이 없고, 이제 그만좀 잊고 당강령에서도 빼고 미래로 나가자며 선동질을 멈추지 않고 있습니다. 그 원흉 전두환이는 오히려 폭도라 큰소리치며 사는 어처구니없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고, 명박이는그 임들 앞에서 부르는 노래마져도 금지시켜버렸었지요. 시민군의 나주반남 지서 총기접수시각 8시를 계엄군 최초 기총 사격 발포시각전인 5시30분으로 기록을 조작하여 먼저 총기를 든 것처럼 날조했다고 어제 뉴스에서 29년만에 밝혀지기도 했지요.
감사합니다. 호국 영령들이시어.
저라면 나가지 못했을겁니다.
글 읽으면서 눈물이 자꾸 나네요.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