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학이나 영어, 고전 같은 공부가 너무 싫었던 내게 부교과목은 학교생활에서 최고의 기분전환 시간이었다.
그때까지 부교과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던 건 미술시간이었기 때문에 3학년이 되어서 드디어 시작된 가정과 수업은 반전체가 기대하고 있었다.
가정과 선생님은 웃는 얼굴이 귀여운 온화한 여성으로 나는 그녀가 금방 좋아졌다.
가정과 교실에 모인 우리들에게 선생님은 말했다.
'지금부터 여러분은 결혼을 해야합니다'
다들 입을 떡 벌리고 있는 모습을 즐기면서 그녀는 이어 말했다.
'같은 반에 이 사람과 함께라면 괜찮겠다, 싶은 사람을 찾아서 파트너로 삼으세요. 파트너를 찾으면 제게 와주시면 됩니다'
사춘기 한가운데 있던 우리들에게 대체 무슨 소릴 하는 걸까 이 사람은.
보통은 꺄악꺄악 거리며 어떤 남자와 결혼할지 수다로 꽃을 피우겠지만 우리반은 9할이 여자였기 때문에 각자 알아서 파트너를 순조롭게 찾아갔다.
내 상대는 같은 동아리 여자친구였다.
이름은 마미라고 하겠다.
마미는 몹시 싫어하는 듯했지만 한쪽 무릎을 꿇고 하는 내 혼신의 프로포즈에 꺾여 결혼해주기로 했다.
밀어부치면 어떻게 되는 법이다.
반드시 행복하게 해줄게.
파트너가 된 우리들이 선생님께 가자 한장의 종이를 받을 수 있었다. 혼인신고서였다.
복사한 것이었지만 처음보는 진짜 서류에 우리는 눈을 마주치고 침을 꿀꺽 삼켰다.
이 혼인신고서에 있는 각각의 빈칸을 매우고 친구로부터 증인 사인을 받은 뒤 다시 제출하라는 말을 듣고 우리는 자리로 돌아왔다.
손에 쥔 볼펜이 무겁게 느껴졌다. 결혼한다는 사회적 책임의 중압이 그렇게 만드는 것이었으리라.
행복하게 살아, 라며 공통의 친구로부터 사인을 받고 완성된 혼인신고서를 보자 감개무량했다.
혼인신고서를 구석구석 빈틈없이 살펴본 선생님은 우리의 결혼을 승인해주었다.
'축하해요, 그리고 이건 당신들의 아이입니다.'
이어서 선생님이 내민 건 유성펜으로 얼굴이 그려진 날계란이었다.
'건강한 사내아이입니다.'
아뇨, 선생님 이건 날계란인뎁쇼, 라고 말을 걸뻔했지만 진지한 그녀의 표정에 입을 다물었다.
'이번에는 이 아이에게 이름을 지어주고 당신들 부부의 아이로 돌보세요.
앞으로 1주간, 둘이서 분담하며 그 아이가 다치지 않도록 하며 매일 집에 데리고 갔다가 등교하면 가정과실 앞에 놓으시면 됩니다.'
아아, 이 계란을 우리 아이라 치고 유사육아 체험을 시킨다는 거구나.
우리가 받아든 조그만 생명은 부리부리한 눈매에 한줄로 그인 입모양이 남자다웠다. 이름은 '다이스케' 로 정했다.
주위를 둘러보니 다들 손에 든 계란의 성별과 얼굴모양이 다 달랐다.
그러나 어떤 부부든지 건네받은 계란을 보는 눈길은 자애로웠다.
성별이나 얼굴은 고르지 못했더라도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받은 아이를 품으면 그건 틀림없이 세계에서 제일 사랑스러운 자식인 것이다.
이래저래 나와 마미와 다이스케 3인가족의 생활이 시작되었다.
다이스케는 우유팩에 솜을 가득채운 특제 침대를 만들어주었다.
푹신푹신한 솜 안에 쌓인 다이스케도 기분탓인지 기뻐보였다.
아침에 다이스케를 가정과에 데려다주는 건 마미, 데리러가는 건 내 일로 정해졌다.
교실에서 터무니없이 먼 가정과 교실까지 일부러 왔다갔다하는 건 귀찮기 그지없는 일이었지만 다이스케가 나를 기다린다고 생각하면 발걸음이 빨라졌다.
그렇게 사흘이 지났다.
다이스케는 우리 생활에서 없어서는 안될 존재가 되었다.
수업이 끝나고 교실에 다이스케를 데리고 온 마미에게 '다이스케 얼굴 좀 보여줘' 라고 졸라댈 정도였다.
하지만 행복한 생활은 갑자기 끝을 맞이하게 되었다.
마미로부터 다이스케가 든 우유팩을 받으려던 내 손이 미끄러지는 바람에 땅에 떨어트리고 만것이었다.
와작, 하는 소리없는 비명이 들렸다.
'다이스케!'
내가 우유팩을 벗겨보았지만 그는 이미 손 쓸 수 없는 상태였다.
마미는 당황하며 다이스케의 안부를 물었다.
나는 '보지 않는 편이 좋아' 라는 말을 남기고 다이스케였던 것을 손에 들고 울었다.
1주일이 지나고 우리는 다시 가정과 교실에 모였다.
반 전체에 있는 20쌍 가까운 부부중에 아이를 지켜낸 커플은 절반에 그쳤다.
선생님은 말했다.
'육아라는 건 상상을 뛰어넘을 정도로 힘든 일입니다. 여러분의 가족도 그렇게 신경을 소모시키며 여러분을 키워주셨습니다.'
아이를 자신의 부주의로 잃어버린 나는 선생님이 하시려는 말뜻이 절절히 와닿았다. 멋진 선생님이었다.
'선생님'
아이를 지켜낸 친구가 손을 들었다.
'이 아이들은 앞으로 어떻게 되나요?'
아이를 꼭 껴안으며 그녀가 말했다.
'팬케이크로 만들어 먹죠'
웃는 얼굴로 대답하는 선생님을 보며 반 전체가 말을 잃었다.
지옥의 조리실습이 시작되었다.
지켜낸 자들은 싫다고 하면서 눈물을 흘리며 아이를 깨트리고
잃은 자들은 선생님에게 새 계란을 받아 각자 팬케이크를 만들었다.
더는 이 세상에 없는 다이스케를 떠올리며 먹은 팬케이크는 약간 눈물맛이 났다.
새콤달콤한 청춘의 추억이었다.
다이스케
고등학교 반친구가 당시 사진을 보내주었습니다.
너무 그리워서 떨릴 정도네요.
안에 살짝 보이는 머리가 깨진 계란이 다이스케
그앞에 저와 마미가 같이 만든 팬케이크입니다!
(마미가 토핑으로 들고온 시폰케이크는 너무 과했다고 선생님한테 혼났습니다)
흑흑 우리 아들 맛있어
어떤목적으로 한건진 알겠는대 팬케이크는 너무하지 않소이까 센세......
눈물이 난 거 치고는 겁나 잘 만들어 먹었는데...
냉장도 아닌 상태로 일주일 지난 계란 먹으면 탈날 거 같은데...
하지만 저것보다 더 낫게 결말짓는 방법이 생각나지 않아..
EX-GFRIEND 2021/12/03 21:20
흑흑 우리 아들 맛있어
콘드라키 2021/12/03 21:21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아니 십발ㅋㅋㅋㅋㅋㅋㅋㅋ
wertddr 2021/12/03 21:21
어떤목적으로 한건진 알겠는대 팬케이크는 너무하지 않소이까 센세......
NTR충 2021/12/03 21:27
하지만 저것보다 더 낫게 결말짓는 방법이 생각나지 않아..
이겜재밌네 2021/12/03 21:29
ㄹㅇㅋㅋㅋ 의미깊고 좋은데 마지막에 팬케이크라니....팬케이크!!
고인물뉴비 2021/12/03 21:21
그 셰프가 만든 맥너겟 짤 가져와!
제뤼 2021/12/03 21:22
눈물이 난 거 치고는 겁나 잘 만들어 먹었는데...
메베 2021/12/03 21:27
냉장도 아닌 상태로 일주일 지난 계란 먹으면 탈날 거 같은데...
가평 두꺼비 2021/12/03 21:28
1주뒤에 잡아먹히는 계란
낭만병늑대 2021/12/03 21:29
어...??
아닌밤중에확실한밤 2021/12/03 21:29
https://youtu.be/XUV863a1Lok
다이스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