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의 현명한 사람들, 철학자들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말라" 라는 말을 남겼다.
그 사람들은 삶에 통달해 그것을 두려워하지 않았을 수도 있으나
사람 백 명을 모아두고 죽음이 두려운가? 물어보면 백에 백은 그렇다라고 말할 것이다.
교과서에도 실려있듯 모든 사람은 죽는다.
그러한 대전제는 단지 때의 차이일 뿐, 누구나에게 평등하게 다가온다.
그것이 무엇인지도 모른채로 한 발짝 한 발짝 다가가야만 하는 일 만큼 공포스러운 것도 없다.
그 때, 머리 속을 스쳐 지나가는 한 문장이 있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데카르트 사상의 모든 것을 축약해 놓은 장엄한 한 마디다.
나는 이것의 의미를 알고 진정으로 감동할 수 밖에 없었다.
데카르트는 만약 세상에 악마가 있어서 자신을 속이고 있다면,
그로 인해 내가 속고 있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있다면 이 세상에 진리란 있는 것인지 탐구한 사람이다.
그 작업을 위해 그는 세상의 모든 것을 의심했다.
심지어는 '1 + 1 = 2' 라는 자명한 수식조차도 악마의 농간으로 착각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며 부정했다.
그러나 그가 딱 하나,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 있었다.
설령 그가 속고 있더라도 자신의 주변을 끊임없이 의심하는 존재,
환상일지라도 주변을 인지하며 생각하는 그 자신은 도저히 부정할 수 없었던 것이다.
다시 말해 그의 명언은
"나는 생각한다, 그리고 그것을 인지하는 또 다른 내가 있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
라는 말로 변주가 가능할 것이다.
우리는 타인의 죽음으로부터 자신이 언젠간 죽을 것이라는 사실을 유추해 낼 수 있다.
그러나 데카르트적 사고방식에 따르면
우리는 죽는 순간 죽음을 인지하는 또 다른 나조차도 사라지기 때문에 그것을 인지 할 수 없다.
이것은 마치 완전히 검은, 그 이상으로 검다는 말로는 형용할 수 없고 관찰할 수도 없는 깔끔한 단면과도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들은 모르는 것을 모르는 채로 두지 않고 죽음이라는 이름을 붙여 억지로 봉합한 후 그것에 관심조차 주려 하지 않았다.
그러나 실체는 영원히 인지 할 수 없는 '무無' 이자 경험할 수 없으므로 우리의 인생에선 끝은 없는 것과 같은 말이다.
강등이란 실로 이와 같다.
강등을 당한 자는 말이 없다.
우리는 강등 당한 사람을 위해 깊은 묵념을 올리나 정작 그 사람은
영원히 그 시간 속에, 자신의 강등조차 알지 못한 채 깔끔히 잘린 단면처럼 그 시간에 보존되는 것이다.
이로써 우리는, 강등이 있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 한들
마음 속에 찬란히 빛나는 촛불을 들고 강등이란 이름의 삿된 어둠을 물리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아닌가? 아님말고
사실 잘 몰?루
쫄보쉑이 혓바닥만 길기는 ㅋㅋㅋ
안짤릴만한거만 올려놓고 쫄보쉑
암만 명언같이 써도 잘리는건 잘리는거야
사렌마마 2021/11/26 16:14
사렌추
바이스 드래곤 2021/11/26 16:15
탕!
겨울엔감귤이지 2021/11/26 16:15
어....뭐라고?
형이야형 2021/11/26 16:23
건강한 사내로군
아디아 2021/11/26 16:15
암만 명언같이 써도 잘리는건 잘리는거야
BakerStreet221B 2021/11/26 16:15
쫄보쉑이 혓바닥만 길기는 ㅋㅋㅋ
Dr.Kondraki 2021/11/26 16:19
일침놓는애들 개웃김
지들은 아무것도 안하는데 작성자 수위 약하다고 쫄보임
선 넘으면 뿅뿅 안 넘으면 쫄보
결국 너도 나처럼 닥치고 있으라는 결론임
송뽕 2021/11/26 16:22
안짤릴만한거만 올려놓고 쫄보쉑
Blue_Mouse 2021/11/26 16:22
쫄보뇨속
루리웹-3595707656 2021/11/26 16:22
죽은자는 말이 없다.
루리웹-1941060641 2021/11/26 16:22
안짤릴만한거만 올리네
슈퍼 겁쟁이 녀석!!
계란으로가위치기 2021/11/26 16:22
세줄요약좀
테셴공작 2021/11/26 16:23
아무리봐도 심신이원론이 아닌데?
이건 스피노자의 거시기와 마음이 하나인 일원론이야!
DDOG+ 2021/11/26 16:23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