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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을 함께했던 절친이 떠나버린 과정
01.
1995년 미대 동기로 처음 만나 2016년까지 초절친이었던 애가 있었어요. 우린 정말 친했습니다. 심지어는 입학도 하기 전인 입학시험때부터 그 녀석을 알아봤었죠. 범상치가 않았거든요. 대학생시절 내내 같이 작업하고 술마시고 이야기하고 전시하고, 군대제대하고도 정말이지 끈끈하게, 참 형제같이 지냈습니다. 하드록, 헤비메탈, 민중가요, 한국민주화운동의 역사도 다 그 친구한테서 알게 되었어요.
02.
졸업을 후 저는 계속 작가생활을 했고, 그 친구는 창업을 했어요. 그 친구의 작은 디자인회사는 짧은 시간에 굉장히 번창해서 어느새 돈 많이 버는 어엿한 사장님이 되었구요. 저는 그런 그 친구가 너무너무 자랑스러웠어요. 여담입니다만 그 친구는 나름 저 몰래 제 첫번째 개인전의 한 작품도 사줬답니다. 저도 나중에 우연히 그 친구 사무실을 방문했다가 방 한 켠에 있던 제 작업을 발견하고서야 알게되었어요. 눈물이 날 만큼 고맙더라구요.
03.
그런데 제가 세번째 개인전을 연 날, 조그마한 술자리에서 그 친구가 작품의 퀄리티와 사이즈에 대해 너무 길게 비평을 하더라구요. 처음엔 그러려니 했지만 그 친구는 필요이상으로 이게 아쉽고 저게 아쉽다며, 마치 교수가 학생 대하듯 크리틱을 이어갔습니다. 만약 제가 그 친구였다면... 힘들게 개인전을 연 친구에게 (게다가 오프닝 날이라면 더더욱) 날선 비판보다는 따뜻한 말 한마디 남기고 일찍 집에 돌아갔을것 같습니다. 하지만 전 그 이후로도 그 친구를 만났어요. 명색이 절친인데 길게 마음 속에 담아 둘 일도 아니지 않습니까. 우린 다시 허물없이 지냈지요.
04.
몇 년 후 저는 해외유학을 떠났고 종종 그 친구와 카톡으로 안부를 물었어요. 문제의 그 날, 저는 당시 최신작을 그 친구에게 보여주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친구가 갑자기 이렇게 말하더군요. "나라면 뒷배경을 다른색으로 칠하겠다" 라구요. 그 말을 듣고 저는 "아, 뭐, 너랑 나랑 생각이 다를 수 있지. 난 이런저런 이유로 꼭 이 색을 썼어야 했거든."이라고 설명을 했었어요. 그에 대한 그 친구의 마지막 대답이 너무 저를 슬프게 했습니다. "그게 바로 너와 나의 감각의 차이야. 그러니 니가 아직 안 뜬거야. 아마 죽으면 뜰지도 모르겠네. ㅎㅎㅎ"
05.
저는 아직도 돈많고 잘나가는 디자인회사 사장님께서 이 가난한 무명작가에게 왜 그렇게 가슴아픈 말을 해댔는지 궁금합니다. 예... 이것이 2016년 여름까지 우리의 이야기입니다. 청춘을 함께 한 절친은 그렇게 허무하게 사라졌습니다. 그 뒤로는 아무 연락이 없구요. 나중에라도 기회가 된다면 한번 묻고나 싶습니니다만, 아마도 우린 다시는 만나지 않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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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하면 찾아올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