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이유를 영화 황산벌에서 설득력 있게 아주 잘 풀어주었는데, 백제의 중앙 집권화는 신라보다 미약했고, 귀족들의 세력이 신라보다 더 강했기 때문에
이에 대한 알력 다툼으로 인해서 빠른 시간 안에 수만명 규모의 대군을 편성하지 못했음을 아주 잘 보여줬지. 그래서 겨우 마련한 병력이 결사대 5천이었고.
실제로 얼마 전까지만 해도 백제의 의자왕은 신라의 성 40여개를 빼앗고 신라에서 가장 중요한 요충지라는 합천의 대야성까지 함락시킨 상황이라서
신라는 절체절명의 위기에 몰려있었음. 그만큼 국력도 백제가 우위에 있었고. 괜히 김춘추가 당나라와의 외교에 국운을 건 올인을 했던 것이 아니거든.
실제로 예전에도 백제와 신라가 엄청 투닥거리며 싸울 때도 병력의 규모가 5천이 안되는 경우가 많았음. 죄다 1천명 ~ 3천명 규모의 전투였다는 기록이
사서에 기록될 정도였으니까. 반대로 말하자면 신라가 5만명을 동원했다는 것은 그만큼 신라 국왕이 할 수 있는 권한이 백제의 왕보다는 더 많았다는 거지.
신라가 5만의 대군을 동원했다는 것은, 말 그대로 나라 전체의 명운을 걸고 올인을 한 것이나 다름 없었음. 싸울 수 있는 왠만한 성인 남성들은 죄다 끌어모았다는 얘기지.
반대로 중앙 집권이 신라보다 상대적으로 미약했던 백제의 입장에서는 귀족들의 세가 쎄서 신라만한 대병력을 차출하기에는 시간이 많이 필요할 수 밖에 없었고.
저걸 감안해도 백제 중앙군이 닥닥 긁어서 5천이라는건 뭔가 말이 안되고.
보통은 백마강으로 들어오고 있는 당군쪽으로 주력으로 보내고 남은 병력이 5천인걸로 보고 있드라.
저걸 감안해도 백제 중앙군이 닥닥 긁어서 5천이라는건 뭔가 말이 안되고.
보통은 백마강으로 들어오고 있는 당군쪽으로 주력으로 보내고 남은 병력이 5천인걸로 보고 있드라.
그리고 신라의 경우도 5만이 전부는 아닐 가능성이 크다고 하더라고.
거기에 백제 지방 세력들의 병력의 집결이 겐세이를 당한거지 중앙군의 소집은 비교적 빨랐던거 같더라고.
그런데 이에 대해서 남아있는 기록들을 가지고 유추해 볼 수 밖에 없으니까 그건 어쩔 수가 없는 부분이지.
게다가 양면전쟁이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