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 양제' 하면 '대운하'라는 공식이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져 있을 정도로 수 양제와 대운하는 뗄레야 뗄 수가 없는 관계인데.
사실 수 양제가 완공시켰다는 이 대운하는 시대의 한계상 기술력의 부족으로 인해서 운하의 기능을 100% 수행할 수가 없었음.
왜냐하면 수 양제가 완공한 대운하는 당시에 갑문을 설치하는 토목 기술이 없어서 계절과 바람의 영향을 크게 받았고,
순풍이 아니면 배가 멈추는 일도 다반사였을 뿐더러, 아예 배를 못 쓰는 절기도 있었기 때문임.
그래서 수 양제의 대운하가 100% 제 기능을 발휘하게 된 것은 갑문 기술을 개발한 송나라 때나 되어서였음.
하지만 이 수 양제의 대운하는 종말을 고하게 되었는데, 금나라에 의해서 남쪽으로 쫓겨간 송나라 때문이었거든.
송나라 조정이 수도인 카이펑을 버리고 양쯔강 이남으로 도주하면서 금나라 군사들이 수 양제의 대운하를 이용해서
대거 남쪽으로 쫓아내려올 수 있다는 이유로 운하를 폐쇄하면서 급하게 토사로 운하를 메꿔버렸기 때문이고.
이렇게 수 양제의 대운하는 운하가 있었다는 흔적만 남긴채 송나라 떄를 마지막으로 역사 속으로 사자리게 되었지.
그래서 지금까지 남아있는 중국의 대운하는 원나라 때부터 공사를 시작해서 명나라 때에 완전하게 완공이 된 명나라의 대운하임.
호수와 호수를 적절하게 이으면서 갑문을 군데군데 설치했기 때문에 현대인 지금까지도 운하로서 잘 쓰이고 있는 것이 명나라의 대운하지.
한반도도 운하를 만들거면 옛날에 만드는게 나았을텐데
그땐 물류를 대부분 수운으로 운송하니까 4대강을 하나로 연결하면 한양으로 빠르게 이송이 가능함
근데 그런 대규모 토목공사하는 왕이 있으면 100% 쫓겨났을듯 ㅋㅋ
저러다 나라 망한다!→망했음.
땅이 좁은 나라도 운하 만드는게 쉬운게 아닌데
저 땅덩어리 넓은 중원 국가가 그것도 전근대 시절에 완성한거 자체가 진짜 용한듯
개미떼처럼 사람을 갈아넣으면 어떻게든 되겠지...
강이 엄청 넓거나 운하를 파서 그런지 우한 같은 내륙도시도 항구가 있더라.
땅이 좁은 나라도 운하 만드는게 쉬운게 아닌데
저 땅덩어리 넓은 중원 국가가 그것도 전근대 시절에 완성한거 자체가 진짜 용한듯
저러다 나라 망한다!→망했음.
개미떼처럼 사람을 갈아넣으면 어떻게든 되겠지...
명대 지은건 명때도 잘만 써먹음 ㅋㅋㅋㅋㅋㅋㅋ
한반도도 운하를 만들거면 옛날에 만드는게 나았을텐데
그땐 물류를 대부분 수운으로 운송하니까 4대강을 하나로 연결하면 한양으로 빠르게 이송이 가능함
근데 그런 대규모 토목공사하는 왕이 있으면 100% 쫓겨났을듯 ㅋㅋ
사실 실험삼아 아주 짧은 구간에 운하한번 파볼려고 한 흔적이 있다고 하던데
하필 그 지역이 중근세 기술력으론 불가능한 지역이였다고.....
조선왕조 같은 경우는
통치 이념상 작은 정부를 지향했어서
큰 공사 같은거 잘 안할려고 했지...
일단 우리나라 국토 대부분이 화강암질이라서 중세 기술로는 만드는 것 자체가 에바세바였을 듯
지질적, 지형적으로 힘들거 같은데 어떠려나
가카가 퇴임 이후에 감방으로 쫓겨난 이유가 있구나...
에당초 고려시대까지 지방은 호족이 통치권 쥐고있고 조선은 작은정부를 추구해서 대운하같은 국책산업 안했을거임
인천 계양구 부평구쪽의 굴포천이 조선시대때 판 인공하천이지.
계양산쪽에 피고개가 원래 운하 팔려고 하다 실패한 곳이고.
한국 특
단단한 화강함지대
어디에나 있는 산
여름에만 몰려오는 강수
운하 짓기 좋은 땅은 아님 ㅋㅋㅋㅋ
아무리 세도정치 이후라지만 꼴랑 경복궁 복원하다가 경제 말아먹은 전근대 조선에서 그런 토목공사를 벌였다가는....
화강암
진지빨고 말하면 화강암 지형이라서 어려움.
충청남도 쪽에 짧은 거리의 운하 만드려는 시도를 여러 번 했다가 망했던거로 기억함.
강이 엄청 넓거나 운하를 파서 그런지 우한 같은 내륙도시도 항구가 있더라.
심지어 우한은 양쯔강 하류가 아닌 중류에 위치해 있는데도 말이지.
우한이 옛 삼국지의 형주 쪽 땅이야.
나는 우한이 중국 교통 중심지에 중국 군수군 사령부가 있다는건 알아도 삼국지는 몰라.
고구려가 안 망했으면 금나라도 안 생기고 그러면 수양제의 운하도 멀쩡했겠네.
고구려 멸망의 나비효과인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