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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가 본받아야 할 종교 有
하나님 믿으면 천국간다는데
천국가셨으면 축하화환을 보내고 기뻐해야 마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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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교는 창세기를 풀어낼때, 아담과 하와가 살던 에덴동산에서 하와가 뱀과 통정했다고 구라치는 데서부터 아웃이라..
댓글 감사합니다.
특정 종교를 비난 할 생각은 없으나, 비종교인의 시각에선 아담과 하와부터 아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말씀을 어긴 죄는 예수님이 와서 해결했지만, 그 바람피고 O스한 죄는 누구도 풀지못했다! 그래서 문선명총재가 그 죄를 대신 짊어졌다!
이 논리로 문선명 메시아썰을 겁나게 밀어대고, 몇백쌍 합동결혼을 하는 이유가 그렇습니다.. 뱀이랑 O스한 원죄를 풀어주려고..ㅋ
그렇군요. 배워갑니다. 감사합니다..
김정은 저거 레알인가여 ㄷㄷ정으니도 통일교였어 ㄷㄷ
ㄷㄷㄷㄷㄷㄷ
풉 ㅋㅋㅋㅋ
자식이 있는지 모르지만 자녀가 성공해서 외국에 간답니다. 하지만 다시는 얼굴도 연락도 못하고 살아야 한다면 축하하고 기뻐하는게 마땅할까요?
그 외국(천국)에 본인과 가족들이 곧 가서 함께 행복하게 지내지 않는가요?
잠시 떨어져 있을 뿐이죠..
사랑하는 자식과 2~30년 떨어져 얼굴도 못 보고 연락도 못하는데 축하하고 웃으며 기뻐하면서 보내는게 가능하다? 부럽습니다. 난 그렇게 안될거 같던데...
자식이 성공해서 좋은 곳 간다면 내가 슬퍼도 기뻐해주는게 당연한 부모 마음입니다.
또, 저는 외국에 오래 거주하는지라 충분히 말씀하신 예시를 이해하고 있습니다.
어쨌거나 누군가의 죽음에 조롱 섞인 텍스트가 안타까워 몇자 적어 봤습니다.
이거 사실일까? ...나무위키..ㄷㄷ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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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선명은 이스라엘 수도원에 있는 동안 "평양의 어떤 정신 나간 할머니가 자기가 하나님의 부인이라고 한다더라"는 얘기를 들었다. 이 얘기를 듣고 문선명은 평양에 가기로 결심했다고 한다. 또한 문선명은 "평양으로 가라."는 하나님의 계시도 받았다고 한다. 그리하여 이스라엘 수도원을 나온 문선명은 당시 소련군정의 평양으로 갔다. 당시 평양은 동방의 예루살렘[18]으로 불릴 정도로 기독교 뿌리가 깊은 곳이었다.[19]
문선명은 1946년 6월 6일 평양에 도착하여 재림주 타이틀을 걸고 우선 길거리 전도부터 시작했다. 그렇게 신도들이 하나둘 늘어갔다. 그러던 중 기존 기독교 목사들이 "허호빈의 복중교와 유사한 단체의 지도자이며, 이승만의 첩자"라며 문선명을 공산당국 경찰에 고발했다. 그리하여 8월 11일 문선명은 북한 경찰에 체포되었다. 문선명은 유동보안서에서 고문당하고 평양 대동보안서에 투옥되었다. 그러나 11월 21일에 무죄로 풀려났다.
대동보안서에서 풀려난 후, 문선명은 1947년 자신이 '하나님의 부인'이라 주장하는 평양의 '박을용'에게로[20] 갔다. 문선명은 박을용의 옆집으로 이사갔고, 40일간 박을용의 집을 왕래하며 김백문 때처럼 봉사생활을 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박을용이 문선명을 "하나님의 종(從)의 종, 하나님의 종, 하나님의 양자, 하나님의 서자, 하나님의 아들, 하늘나라의 총리대신(總理大臣), 예수님, 하나님의 대상실체"라며 총 8번을 문선명을 증거했다고 한다.믿거나 말거나 그랬더니 문선명이 박을용에게 "그럼 이제부터 나한테 경배하고, 당신이 나를 따르라"고 했다. 그러나 박을용은 이를 거부하며, 되려 문선명에게 행패를 부렸다고 한다. 그렇게 문선명은 박을용으로부터 빠져나와 다시 전도생활로 돌아갔다.
그러던 중 또 다시 83명의 기존 기독교 목사들이 "사회질서를 문란하게 하며, 부녀자의 재산을 갈취하며, 이승만의 스파이다."라며 북한 경찰에 고발해 1948년 2월 22일, 평양내무서에 구금되었다. 이후 4월 7일 공판이 열려 '사회질서문란죄'로 5년형을 언도받아 평양형무소로 이감되었다.
5월 20일 흥남 덕리 특별노무자수용소로 이감되었다가, 2년 후 6.25 전쟁이 발발하면서 UN군의 폭격으로 감옥이 무너져 탈출하였다. 전쟁통에도 평양에 다시 가서 신도들과 같이 남하하려 했으나, 신도들은 모두 문선명을 쌩깠고, 김원필(金元弼)과 박정화(朴正華), 이 제자 2명만이 따랐다.[21] 이리하여 3명이 자전거 하나만 갖고 부산까지 같이 남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