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12세기 수세식 화장실
12세기 수도원 수도시설의 저수조
1245년 건설되어 교외의 샘에서 런던 시내로 식수를 공급한 런던 대수도관Great Conduit
파리에서 부자들의 저택은 따로 수백 야드 길이의 도관을 사용해서 집 안으로 생활용수를 공급함
1272년 파리에는 최소 26개의 공중목용탕이 존재했다.
부자들은 개인 욕실을 사용함
요약: 다 있었다
목욕 문화 조져진 시기는 14세기.
흑사병 창궐 이후
목욕 문화가 향략 시설 및 만남의 장소였는데. 흑사병에서 너도 나도 옮겨다니다보니 인간들이 아, 목욕하면 흑사병 걸리나 보다 착각해서 서서히 조져짐.
10세기쯤이면 "아 슬슬 찝찝한데 좀 씻을까" 정도의 인식은 생김
교회에서도 청결 관념은 중요시했고 하니 슬슬 목욕탕 생기고
5~6세기경에 깨강정난 게 너무 많아
교황이 힘 좀 쓰고 대성당과 석조성채가 지어지고 떡장갑 두른 기사들이 랜스 들고 돌격하고 도시에 사람들이 모여 사는 일반적인 중세 이미지가 딱 11-13세기쯤의 모습이지
있었는데요
훈족이 다 부셨습니다
5~6세기경에 깨강정난 게 너무 많아
본문은 13세기를 말하고 있는뎁쇼.
내가 댓글 쓸 때엔 "다 있었다" 부분이 없어서 순수한 질문글로도 보였음
목욕 문화 조져진 시기는 14세기.
흑사병 창궐 이후
흑사병때문에 감염되어서 오히려 안하게됐다는건가?
이 놈들이 목욕탕에서 감염되고 온 후에 사람은 몸을 씻으면 오히려 건강에 안 좋나봐? 거하게 착각하고 안 씻음.
그 시절이면 그렇게 착각할만도하네.... 위생을 신경쓰면 더 안좋아진다고 착각할정도니
왜 결론이 그렇게 나는건데
그거보다는 그냥 사람들이 도시로 몰리면서 도시 능력 초과로 조져진거라고 봐야하지 않나
저러다가 왜 귀족들도 목욕포기하는 문화로 변한걸까
흑사병.
목욕 문화가 향략 시설 및 만남의 장소였는데. 흑사병에서 너도 나도 옮겨다니다보니 인간들이 아, 목욕하면 흑사병 걸리나 보다 착각해서 서서히 조져짐.
흑사병 창궐 이후, 나쁜 공기로 감염되는 것이라 생각함. 그래서 때를 벗겨서 모공을 열면 안 된다. 이런 식의 사고가 생겼다고 알고 있음
그리고 이슬람교가 씻는 걸 강조하기 때문에, 반대로 기독교권에서는 목욕이 동양의 퇴폐적인 풍습... 이런 이미지가 생기기도 했고
13세기면 후반이잖아
10세기쯤엔 어땠을라나
10세기쯤이면 "아 슬슬 찝찝한데 좀 씻을까" 정도의 인식은 생김
교회에서도 청결 관념은 중요시했고 하니 슬슬 목욕탕 생기고
교황이 힘 좀 쓰고 대성당과 석조성채가 지어지고 떡장갑 두른 기사들이 랜스 들고 돌격하고 도시에 사람들이 모여 사는 일반적인 중세 이미지가 딱 11-13세기쯤의 모습이지
수도 한복판에 공중 목욕탕 있었지
것도 황궁 옆에
수도교도 그렇고
오스만 제국 때에도 쓰임?
저 대수도관이 원랜 지름이 절반이었다가 도시가 더 커지면 감당 안 될까바 늘렸다는 거기 맞나? 선경지명 오지네 하고 생각했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