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의 천년 역사와 함께한 궁전터였던
경주의 월성.
2017년 월성 발굴조사 당시 서쪽 성벽 기초에서
남녀 인골 2구가 발견되어
인신공양의 흔적이 발견된 것이라고
대서특필된 바 있었다.
올해 1월, 월성의 서쪽 성벽을 발굴하던 중
2017년에 인골 2구가 발견되었던 그 장소에서
성인 여성의 인골 1구가 추가로 발견되어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가 오늘 그 조사 결과를 언론에 공개했다.
위 짤에서 노란색 사각형 표시된 부분은
2017년에 발굴된 남녀 인골 2구가 발견된 위치이고
그 왼쪽 상단부가 이번에 새로 발굴된
성인 여성 인골 1구의 위치이다.
2017년과 2021년에 인골이 발굴된 곳은
성벽의 기초부 공사가 끝나고
위로 쌓아올리기 시작하는 지점이었다.
발굴에 참여한 전문가들은
기초 공사가 끝난 후 본격적으로 축성하기 전
성벽과 성문이 무너지지 않기를 기원하며
인신공양을 한 것으로 추정했다.
이번에 발굴된 인골은 2017년에 발굴된 인골과 달리
곡옥 모양의 유리구슬을 엮은 목걸이와 팔찌를 찬 상태였으며
키는 135cm 전후여서 당시 기준으로도 왜소한 신장이었다.
또한 이 인골 주변에는 소, 말 등
대형 포유류의 늑골을 위주로 한 동물뼈가 다량 출토되어
제사 음식으로 바친 제물로 여겨졌다.
월성에서 인신공양의 흔적으로 보이는 인골이 발굴된 것은
올해나 2017년이 처음은 아니고,
이번 발굴장소로부터 북서쪽 방향으로 약 10m 지점에서
1985년, 1990년 시범 발굴조사 때
출처 불명의 인골 20여 구가 발견된 적이 있었다.
삼국사기, 삼국유사에는 월성의 축조 시점을
파사 이사금 22년(서기 101년)이라고 기록했는데
동시대 고구려나 백제보다 발전이 뒤처졌던 신라가
월성처럼 거대한 성을 2세기 초에 축조했다는 것에 의문을 가지며
실제 축조 연대보다 끌어올려졌다는 주장이 학계에 끊이지 않았고,
월성 발굴을 주관하는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는
이번에 발굴된 유물들을 전수조사해서
가속질량분석기에 의한 연대 분석을 한 결과
월성의 실제 축조 연대가 문헌보다 약 250년 뒤인
4세기 중엽부터 쌓기 시작해 5세기 초에 완공된 것으로 확인했다.
비록 문헌상 기록보다는 축조 연대가 후대이기는 하지만
월성은 당대 신라의 축성 기술이 총동원된 집약체로서,
연약한 지반을 보강하기 위해 나무 말뚝을 박고
목재와 식물류를 층층이 깔아 기초를 다진 뒤
그 위로 너비 40m, 높이 10m에 달하는 토성을 쌓아
왕성으로서 웅장한 위용을 뽐냈을 것으로 추정된다.
솔직히 우리나라 관습상 수도는 경주인데
헌법재판소가 무리수둔거같음
서울도 뭉게버리면서 하는 거니까...
3세기 경이면
아직 순장풍습 남아있던 시기 아닌가?
전국적으로 순장 풍습이 남아있었고
촌경지 오지 같은 곳에서는 8~9세기까지 인신공양같은게 남아있었다고 하더라
대가야의 지산동 고분군은 무려 40명이 넘는 사람들을 한꺼번에 순장했다고 함
오사마 빈 라덴 2021/09/07 19:57
솔직히 우리나라 관습상 수도는 경주인데
헌법재판소가 무리수둔거같음
데드몽키 2021/09/07 19:58
경주는 대규모로 개발하기에 유적이 너무 많이나오지않음?
H.Barca 2021/09/07 19:59
서울도 뭉게버리면서 하는 거니까...
어둑신 2021/09/07 20:03
????????
-청일점- 2021/09/07 20:05
뜬금없이 그 얘기는 왜 나오는겨
루리웹-4417596103 2021/09/07 19:57
3세기 경이면
아직 순장풍습 남아있던 시기 아닌가?
출근은내일 밤샘은오늘 2021/09/07 20:03
이차돈이 6세기 사람이니
팃대신수건 2021/09/07 20:03
전국적으로 순장 풍습이 남아있었고
촌경지 오지 같은 곳에서는 8~9세기까지 인신공양같은게 남아있었다고 하더라
루리웹-5219400771 2021/09/07 20:05
왕 죽을 때 순장하지 말라고 하는 게 6세기 지증왕 때
바이짘마예스예스 2021/09/07 20:04
대가야의 지산동 고분군은 무려 40명이 넘는 사람들을 한꺼번에 순장했다고 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