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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 쇼핑몰 입사하신 분 글을 읽고...

저도 비슷한 경험을 최근에 해서 썰을 풀어봐요.
선요약:빠른 탈출이 답이다.
저는 해외에 사는데 하이엔드 가구회사의 크리에이티브디렉터(마케팅) 포지션으로 입사했어요. 컨텐츠 생산을 포함한 마케팅 전반을 담당하는, 그 회사에서는 처음 만든 포지션으로 들어갔어요.
서류보고 실무면접에서 수천만원, 억대를 호가하는 원목가구 촬영을 하고,
대표는 10년만에 원목의 색감, 질감, 본인이 원하는 구도를 모두 만족시켰다고 입사는 즐겁게 했어요.
근데 이게 나무가 수종에 따라 색도 다르고 질감도 다르고 완성된 가구를 촬영하는데
가구가 제작하고 시간이 조금만 지나면 색이 변하는데 변하기 전의 색으로 보정하라고 하는데 그 정확한 색으로 다시 보정하는게 진짜 쉽지 않더라구요;;;컴퓨터 옆에 동일 원목 샘플 두고 똑같이 보정해도 "이 나무는 근데 같은 수종이어도 색이 이렇지 않고 다르다"고 재보정 수십번하고...
아무튼,
나무마다 다른 원래 색으로 보정하는거랑
구도, 컨셉 등등 점점 태클들어오는게 많아지더라구요.
이게 딱 명확하게 레퍼런스할만한 브랜드를 집어주면 거기에 맞춰서 방향을 잡아나가겠는데
대표 머릿속에 추상적으로 있는 그 이미지를 잡으라고 하니까 미치겠는거에요.
가만 생각해보니 제가 실무면접에서 만들었던 결과물이 그냥 그 때 사장 맘에 들었던 것 뿐;;;
제가 고급 자동차회사랑 다양한 회사의 경력이 있어서 그것들 포함 스타일이 맞는다고 생각했던 것 같았는데
결국에는 왜 지난 10년간 제대로 붙어서 작업하는 미디어 담당자가 없었는지 이해가 되더군요.
확실하게 원하는 방향이 없고 추상적으로 머릿속에 있는 방향마저도 방향성없이 중구난방이다보니 도저히 못해먹겠더라구요.
출근도 자율, 높은 샐러리 다 제끼고 관뒀네요.
아주 최근에도 타도시의 한 회사 광고촬영도 그쪽 마케팅팀과는 잘 아이디어협의가 되서 촬영 끝마쳤는데 부사장선에서 본인 머릿속에 있는 이미지랑 안맞는지 자꾸 재촬영에 무한 재보정이 들어와서 사장이랑 디렉터선에서 그냥 이정도만 해주고 끝내달라고 부탁해서 그렇게 찝찝하게 끝냈네요.
사진, 영상이 굉장히 주관적일 수밖에 없는 영역이다보니, 차라리 까탈스러워도 자기가 뭘 지시하는지 정확히 알고 그 분야에 대한 지식이 충분하면 매끄럽게 일이 진행이 되는데 쥐뿔도 아는것도 없고 그와중에 본인이 정확히 뭘 원하는지도 모르면 진짜 돌겠더라구요.
그래서 결론은 3달만에 관뒀어요. 도저히 못해먹겠더라구요.
반면에, 5년 넘게 같이 일하는 패션회사는 제 스튜디오, 라이프스타일 사진, 영상 모두 제 비전과 방향에 만족하고 본인들이 원하는 비지니스와 마케팅의 방향에만 맞으면 "너가 전문가니 너가 알아서 예쁘게 해줘"마인드여서 서로 즐겁게 잘 일하고 있네요.
일하다보면 흔하게 만나는 클라이언트의 유형이지만 저같은 경우는 최대한 이론, 기술, 비지니스적으로 이해를 시키고 이해하고 같이 팀으로 잘 일할 수 있으면 하는데 그게 아니면 바로 손절합니다. 장비, 소품 등의 지원은 미흡해도 어떻게든 그 안에서 만들어나갈 수 있는데 본인이 뭘 원하는지도 제대로 모르면 답이 없어서...

댓글
  • Port.9 2021/07/28 04:29

    뭔가를 실행하는 입장에서보면 결과물을 볼 때만 이야기하는게 참 사람을 힘들게하죠.
    다시, 다시, 다시.. 아예 공백이면 채워주면 되는데 이건 뭐 ㅎ...
    비할건 아니지만 저도 현 직책이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인데 반갑네유 ㄷㄷㄷ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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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숨쉬는게제일쉬웠어요 2021/07/28 05:15

    예전 회사 사장이 딱 그랬어요
    앞뒤 없이 "쌈박하게!있잖아! 딱 그런거 하나 만들어봐!"
    그래서 아니 도대체 쌈박한게 뭐냐? 어떻게 해달라는 거냐?
    라고 물으면 " 그걸 알면 내가 했지 전문가인 니가 잘 알아서 해야지??" 라고 반문하던 사장이 떠오르네요 ㅋ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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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Nay] 2021/07/28 07:32

    업종은 다른데 읽다보니 매우 공감되는 부분이 있네요
    갑이 지가 시키는 일에 대해서 잘 모르니까 추상적으로 일 던져놓고 지는 수정만 하려고 하는데 그게 무한반복... ;;; 참고로 사무직입니다만 그렇네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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