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무공 이순신은 깐깐한 원리원칙에 FM스러운 모습으로 정도가 아닌 건 결코 가지 않는 사람이었는데,
무의공 이순신의 경우에는 몇 차례 뇌물을 받은적이 있었기 때문에 이 부분에서 말이 좀 나온 사람이긴 했음.
그래서 원리원칙주의자에 철저한 FM이었던 충무공 이순신과 가장 달랐던 점이 바로 저런 부분이었지.
다만, 원균과 비교하기가 미안할 정도로 비록 뇌물 수수 건이 몇 건 있긴 했어도 할 때는 확실히 하고
싸울 때는 확실히 전공을 세우는 사람이 바로 무의공 이순신이었음. 충무공과는 동명이인이었기 때문에 사적으로도 친했고.
참고로 무의공 이순신은 1554년생으로 충무공 이순신모다 9살이 더 어린 사람이었다고 함.
그당시 뇌물은 지금 시점으로 보면 식사대접이나 커피 제공 같은 거였지
아님. 실제로 뇌물 수수 혐의로 탄핵된 적도 있었을 정도임. 그냥 적당히 뒤에서 해먹는 정도였으면 탄핵될 정도까지의 말은 안 나왔겠지.
이순신의 뇌물은 그정도 수준이 아니었음. 실제로 뇌물 수수 혐의로 무의공 이순신은 탄핵까지 당해서 사임했을 정도임.
무과 시험 9수가 맞나? 나는 28살 때 처음으로 무과 시험에 도전했다가 낙방해서 4년 뒤에 무과 시험에 재도전하면서 합격한 것으로 아는데.
그때 저 당시면 뇌물 주고 받는 게 큰 허물은 아니지 않았음? 그러니까 뇌물 수수에 대한 법률은 엄격하게 있었지만, 적발되어도 준 사람은 처벌 받고 받은 사람은 그냥 '왜 그랬어?' '고멘!' 하면서 뭉갠 걸로 알고 있는데.
인간미는 있었군
그당시 뇌물은 지금 시점으로 보면 식사대접이나 커피 제공 같은 거였지
이순신의 뇌물은 그정도 수준이 아니었음. 실제로 뇌물 수수 혐의로 무의공 이순신은 탄핵까지 당해서 사임했을 정도임.
식사가 호텔 스위트룸 대차 수준이었네
충무공이 무과 9수했다고 들음. 그래서 충무공이 나이가 많은거지.
무과 시험 9수가 맞나? 나는 28살 때 처음으로 무과 시험에 도전했다가 낙방해서 4년 뒤에 무과 시험에 재도전하면서 합격한 것으로 아는데.
나도 줏어들은거라서 확신은 못하겠는데. 아무튼 부상당한 상태에서 무과를 봤었다는건 확실히 여러군데서 들음.
??? : 내가 이순신이다!!!
??? : 나도 이순신이다!!!
??? : 왜 이순신이 둘이나 이쓰므리다
당연히 어리겠지
충무공 자체가 그 때 비하면 좀 늦게 출사했었고
충무공이 전라좌수영 통제사 때
무의공은 첨사로 임지를 다스렸을 상황일테니
그때 저 당시면 뇌물 주고 받는 게 큰 허물은 아니지 않았음? 그러니까 뇌물 수수에 대한 법률은 엄격하게 있었지만, 적발되어도 준 사람은 처벌 받고 받은 사람은 그냥 '왜 그랬어?' '고멘!' 하면서 뭉갠 걸로 알고 있는데.
걍 뇌물 아니면 관아에서 뭐든 걸 뭉개는 게 일상이었음. 관아는 지금으로 따지면 구청 쯤 되다 보니...
아님. 실제로 뇌물 수수 혐의로 탄핵된 적도 있었을 정도임. 그냥 적당히 뒤에서 해먹는 정도였으면 탄핵될 정도까지의 말은 안 나왔겠지.
그런 분위기 속에서 뇌물받고 혼난 기록이 있다는것 자체가 존나게 챙겻다는 의미이기도하지
존나 혼냈지만, 능력이 있어서 안고 가겠다는 이야기니까.
그래도 이름같다고 나름 이순신이 챙겨주고 같이놀고했던사람
나중에는 이순신이 총상입자 대신 현장지휘관처럼 위장했던 남자
비록 뇌물같은 잘못은 있지만 제대로된사람 아래에 제대로된 가르침을 받은사람임
참고로 백의종군때나 출소할때 항상 이 무의공 이순신이 기다리고 있었다는 글이 난중일기에 있음
지금의 관점에서 보면 뇌물인데 저 당시 조선에서는 생계활동임 저거 조선특이 월급이 노답수준으로 짜서 저런거 안받으면 굶어
탄핵받을 만큼이면 암묵적으로 봐주는거 이상이란 뜻 아닐까
한자도 똑같았었나
월급만으로는 생활 안되는거 왕도 알아서 어느정도 뇌물은 서로 눈감아줬음
뇌물받은걸 일기장에 써두고 그걸 조선왕족실록 참고자료로 쓰라고 조정에 보내주기도 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