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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빼앗긴 내 미래

세상에서 가장 황당한 협박이 아닐까?

처음에는 고민했다. 이런 것으로 협박한다니, 지나가던 개도 비웃을 일이라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그녀를 협박한 이유는 아마 '질투' 때문일 것이다. 솔직하게 그렇다. 

아무도 믿어주지 않았었지만, 중학교 때 나는 1년 동안 매일 이어지는 꿈을 꾸었었다.
꿈속에서 나는 오디션 프로의 참가자였고, 치열한 경쟁 끝에 우승까지 이뤄내며 수많은 팬을 거느린 스타가 되었었다.
보통의 꿈이라면 그 내용이 잊히기 마련이겠지만, 그 1년간의 꿈은 늘 현실처럼 선명했다. 

나는 그 꿈이 내 미래를 예지하는 줄 알았지만, 아니었다.
성인이 된 지금의 나는, 음악과 전혀 상관없는 작은 회사의 경리를 보고 있으니까. 
학창시절에는 음악에 매달려보기도 했지만, 현실은 냉혹했다. 나름 외모도 좋고, 노래도 잘한다고들은 하지만...그뿐이었다.
나는 음악과는 인연이 없다 생각하고, 평범한 인생을 살았다.

그러다 몇 달 전, 그 프로그램을 보게 되었다.

[ 대국민 오디션, 울트라 스타 K! ]

새로 시작한 오디션 프로그램의 이름은 물론이고, 방송사와 MC들까지, 내가 어릴 적 꾸었던 꿈과 완전히 똑같았다.

그리고 거기서, 그녀를 보게 되었다.

[ 거리에~ 가로등 불이, 하나둘 씩~ 켜지면~ ♬ ]

내가 꿈속에서 불렀던 똑같은 노래로 예선을 통과한 그녀를. 
처음에는 애써 우연이라고 생각했다. 단지 내 기억이 오래되어 상황을 착각하고 있는 거라고. 데자뷔일 거라고.
하지만 내가 미리 기억해놓은 노래를 그녀가 본선 1회전에서 똑같이 부르자, 상황이 달라졌다.

이건 우연도 아니고 착각도 아니다! 내가 1년간 꾸었던 꿈이 지금 현실로 이루어지고 있다!

문제는, 그 주인공이 내가 아니라는 것이었다. 
그녀는 체형과 외모, 목소리, 자라온 환경까지 나와 달랐다. 하지만 나와 같은 노래를 불렀고, 나와 같은 무대에서 넘어졌고, 나와 같은 점수를 받으며 경연을 진행했다.
꿈속에서는 그녀의 자리에 내가 있었다. 내가 내 목소리로 노래를 불렀고, 사람들은 그녀가 아닌 내 이름을 환호했다. 현실에서는 그 모든 것이 그녀의 차지였다. 

왜? 어째서? 모든 게 똑같은 예지몽인데, 그 주인공만 왜??

나는 극심한 박탈감을 느꼈다. 원래 내게 주어진 미래를 그녀에게 빼앗긴 기분이었다. 그녀를 볼 때마다 화가 났다. 객관적으로 봐도 내가 그녀보다 더 예뻤고, 더 노래도 잘했다. 내게 더 어울리는 자리였다.
그런데 왜? 왜 나는 이 작은 회사에서 박봉으로 경리 일을 하고 있고, 그녀는 오디션 프로의 대세가 되어가고 있는 거지?

나는 뭐라도 하고 싶었다. 하지만 뭘?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기껏해야 미래를 예지하고 신기하단 소리를 듣는 것 뿐, 경리인 내가 오디션 스타로 바뀌는 일은 없다.
그래서 더욱 답답하고 억울했다. TV로 그녀를 볼 때마다 내 눈은 질투로 이글거렸다. 
그때, 황당한 협박 한가지가 번뜩 떠올랐다.

만약에 내가 모든 상황을 미리 예언하고, 이 프로그램은 결과가 정해져 있는 조작 방송이라고 폭로한다면? 
나는 그녀가 어느 콘셉트로 어떤 곡을 부르고, 누구와 붙어서 이기고 올라가는지, 심지어 어디서 넘어지는지까지 다 알고 있다. 이것을 정확히 예언한다면, 누가 조작설을 안 믿을 수 있을까?
꿈에서 봤다느니 뭐니 하는 이야기보다, 훨씬 믿을 만한 이야기이지 않나? 

그렇게 해서 정말 내 예언대로 진행된다면, 그녀는 결국 조작으로 만들어진 우승자라 불리며 욕을 먹게 될 것이다.
혹시 방송국이 내 예언을 신경 써서 결과를 바꾼다면, 그녀는 결국 일반 참가자 수준에서 멈춘다. 그것만으로도 솔직히 나는 만족스러울 것 같았다.

1억. 1억만 받자. 낭비한 내 학창시절에 대한 보상이라고 생각하면 정당하다. 어차피 우승 상금도 3억이고, 대형 기획사와 계약도 예약되어 있는데, 1억 정도를 못 줄까?!

나는 곧바로 그녀에게 연락을 시도했다.
방법은 간단했다. 그녀를 눈여겨보고 있던 기획사 스카우터를 어디 가면 만날 수 있는지 알고 있었으니까.

" 예지몽? "
" 예. 저는 꼭 그녀를 만나야 해요. 제 연락처를 전해주세요. 너무 걱정돼서 그래요. "
" 허~ 참... "

그는 황당한 얼굴로 나를 보냈지만, 머지않아 다시 연락을 해왔다. 내가 예언한 대로 그녀의 곡이 정해지고, 특히 그녀가 실수로 다른 참가자의 안경을 깨트리는 사건을 예언한 게 컸다.

실제 그녀를 만나자마자, 나는 가슴이 울컥하는 걸 느꼈다. 내가 가졌어야 할 모든 걸 가진 여자!
나는 카페에서 그녀와 단둘이 되자마자 협박했다.

" 알겠지? 1억을 주지 않는다면, 나는 당장 온 인터넷에 글을 쓸 거야. "
" ... "

그녀는 황당한 얼굴이었지만, 내 진지한 얼굴은 농담이 아니었다.
미간을 찌푸린 그녀는 가장 먼저,

" ...제가 우승을 한다고요? "
" 아 그렇다니까! "

우승은 생각도 안 해본 것 같은 그녀의 표정이 짜증 났다.

" 그러니까 내게 1억을 마련해줘. 안 그러면 나는 모든 예언을 발표할 테고, 그럼 네가 어떻게 될지는 예상하지? 네 미래를 위해서라도 1억을 내놓는 게 좋을 거야. "
" 아... "
" 솔직히, 나는 내 인생을 네가 뺐었다고 생각하는데, 1억이면 싼 거 아니야? 넌 앞으로 대스타가 되어서 떼돈을 벌 텐데. 나는 네게 꿈을 빼앗기고 구멍가게 경리로 쩌리인생을 살고 있단 말이야. "
" ... "

그녀는 복잡한 얼굴이 되었다. 내 말을 믿는 듯, 아닌 듯.
나는 다음 그녀가 부를 노래와 콘셉트를 죄다 말해주고, 그녀의 대결 상대가 부를 노래와 무대에서 벌어질 해프닝까지도 모두 예언해줬다.
눈이 휘둥그레진 그녀는,

" 아직 아무에게도 말해주지 않았는데, 그 곡을 어떻게...? "
" 몇 번을 말해야 하는 거니?! 어?! "
" ... "

나는 그녀의 대답을 재촉했다. 고민하던 그녀는, 뜬금없이 내 눈을 마주쳐왔다.

" 언니. 언니 말이 사실이라면, 정말 놀라운 인연인데... 우리가 친구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요? "
" 뭐...? "

순진한 얼굴로 말해오는 그 모습을 보는 순간, 나는 울컥하고 말았다.
친구라고? 내 자리를 빼앗아놓고 친구가 되어주겠다고? 스타가 될 몸이 친구가 되어줄 테니까, 1억 같은 얘기는 하지 말란 뜻이야? 그런 거야?

" 장난해?! 내가 너랑, 뭐?! 너랑 친구가 되면 뭐가 달라지는데? 어?! 구멍가게 경리 인생이 바뀌니?! 카드빚이 해결되니?! 어?! "
" 아뇨 저는 그냥 우리 인연이... "
" 어~어! 미래의 스타님께서, 일개 경리랑 친구가 되어주시겠다~? 멀리 보고 판단해라~? 그런 거니? 응? "
" 아... "

나는 비틀렸다. 말을 내뱉으면서도 알 수 있을 만큼, 나는 비틀렸다. 
어쩔 수 없었다. 이 박탈감과 억울함을 참을 수 없었다.

" 필요 없으니까 1억이나 준비해. "
" ... "

그녀는 굳은 얼굴로 바닥만 바라보다가,

" 알겠어요. 그런데 언니 말을 모두 믿을 순 없으니까, 탑텐까지 진출하면 그때 드릴게요. 전 지금도 제가 우승한다는 걸 믿을 수 없거든요. "
" ... "

나는 인상을 찌푸렸지만, 어느 정도 이해가 되는 대답이었다. 확실히 믿기 힘든 이야기니까.

" 알겠어. 탑텐까지야. 그때까지 일어날 일들을 모두 보내줄 테니, 잘 보고 판단해. 네 미래를 위해서 어떤 선택을 하는 게 정답인지. "

굳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는 그녀를 두고,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렵지 않게 1억을 받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머리가 나빠 보이진 않으니, 1억으로 해결할 수 있다면 그래야 한다는 것도 잘 알겠지.

가는 나를 보지도 않는 그녀를 보면서, 나는 입술이 뒤틀렸다. 
탄탄대로의 미래를 알게 되었으니, 얼마나 좋을까? 하늘을 날아갈 것 같은 심정이겠지? 내가 떠나자마자 웃어버리는 게 아닐까?

그러니까 1억 정도는 받아도 된다. 내 미래를 빼앗아간 값으로 1억이라면, 아주 싸다.

.
.
.

" 무슨 말을 하려고 그러나 했더니만, 정말 황당한 얘기를 하는군 저 여자. 미안하다. 괜히 만나게 했구나. "

여자가 떠나자마자, 뒷자리에 몰래 숨어있던 스카우터 사내가 나타났다.
남아 있던 그녀는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 아니에요. "

하지만 사내의 얼굴은 조금 걱정스러워졌다.

" 그런데...저 여자의 말이 사실이라면, 걱정이구나. 앞으로 일어날 오디션 내용을 정말 다 알고 있다면... "

사내는 이미 한번, 정확하게 맞추는 모습을 보았기에 더욱 불안했다.

" 흘려들을 말이 아니라, 만약에 정말로 저 여자가 오디션 프로그램 조작설을 퍼트리기라도 한다면...문제가 심각해질 거다. 저 여자 말대로 1억은 싼값일지도 모르지.. 원한다면 우리 회사에서 도움을 줄 수도 있겠구나. "

사내는 걱정스럽게 그녀를 바라보았지만, 이상하게도 그녀의 얼굴은 평온했다.

" 아니에요. 괜찮아요. "
" 부담가질 필요 없단다. 어차피 네 우승이 결정되어 있다면 "
" 아뇨, 필요가 없어요. "
" 음? "

고개를 흔든 그녀는, 여자가 남기고 간 커피잔을 담담히 바라보았다.


" 제가 중학교 때, 1년 동안 매일 이어지는 꿈을 꾸었었어요. 저는 작은 회사의 경리일을 하고 있었죠. "

" 뭐...? "

" 탑텐이 결정되는 게 3월 1일이죠? 그럼 충분해요. 아쉽네요. 우린 참 좋은 인연이 될 수도 있었는데... "
댓글
  • 복날은간다 2017/04/25 20:36

    흔한 소재도, 어떻게 좀 만지다보면 괜찮아지지 않을까? 싶었는데...흔한 소재는 역시 뻔할 뿐이네요; 신박한 게 안 나와서 죄송합니닷!!
    항상 감사합니다~! 행복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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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앙개 2017/04/25 20:45

    날자가 충분하다는걸로 봐서, 1년간의 꿈중에 3월 1일 이전에 경리가 죽게되나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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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왕오이 2017/04/25 20:46

    오 추천수 0 일때 읽는 행운을.. ㅋㅋ
    주인공이 3월1일 전에 죽는 예지몽을 꾼건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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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dagdha 2017/04/25 22:14

    그것 또한 무스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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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널어쩌면좋니 2017/04/25 23:12

    중간에 뺐었다고 ☞ 뺏었다고 오타가 있네요!!
    오늘도 잘 읽었습니다 !!!늘 감사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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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nebwbxksk 2017/04/26 00:04

    아닙니다   신박합니다 ㅎ
    재밌게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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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쎄스크 2017/04/26 00:15

    멋진 단편 잘 읽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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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뱀돌이♥ 2017/04/26 03:37

    아..  복날님 정말 상상력이 대단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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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질풍의라빈 2017/04/26 09:48

    오...오오오
    재밋어요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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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rague 2017/04/26 12:00

    어떻게 보면 흔한 소재일 수 있는데
    상대방 역시도 예지몽을 꾼다는 설정이 재밌구요
    무엇보다..
    글을 풀어가는 능력이 대단하시네요.
    이런 비슷한 소재로 글 쓰시는 분은 많지만 이런 문장력은 드문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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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눈알꽃 2017/04/26 13:18

    와 재밌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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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내방구향기로와 2017/04/29 03:35

    오와....예상 못했네요 우..대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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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eyess 2017/04/29 03:45

    역시 오늘도 대박이네요!
    경리가 죽게 되는지에 대한 약간은 구체적인 암시가 있었으면 좋겠어요.
    '아쉽네요. 우린 참 좋은 인연이 될수 있었는데..
    그랬다면 2월 28일, 44번 버스 타지말라는 얘기 정도는 해줬을텐데'
    예컨데 이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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