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장. 눈빛이 반짝이는 소녀]
런던에서 대규모의 흑사병이 돌기 시작하면서 아이작 뉴턴은 자신의 고향인 링컨셔로 도망치듯 돌아왔다. 그의 나이는 23세로, 대학 졸업식을 눈 앞에 두고 있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대학교가 임시 폐교를 선언하면서 뉴턴의 졸업도 사실상 늦어지게 되었다.
울즈소프 마을의 모습은 자신의 어릴 적 보았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넓은 초원을 배경으로 작은 오두막들이 군데군데 놓여 쾌적한 곳이다. 특히 날씨가 좋으면 시원하게 부는 바람의 세기와 고향의 냄새는 과거의 시간을 묶어둔 듯 그대로 있었다.
사람이 넘쳐나고 소리가 북적이는 런던에서 알게 모르게 스트레스를 받아온 뉴턴의 기분도, 이곳에 오니 조금은 풀어졌다.
그는 최근 라틴어로 된 책의 초고를 기획하고 있다. 굳이 어려운 라틴어를 쓰는 이유는 자신의 책을 겉으로 핥고 적당히 아는 체 하는 녀석들이 나오지 않길 바랐기 때문이다. 흑사병의 마수가 런던에서 물러날 때까지는 요양 겸 집필의 시간을 가지며 이곳에서 생활할 계획이다.
그는 마을에서 당분간 머물기 위해 작은 집 하나를 세 들었다. 집 넓이가 넉넉하지는 않았으나 집필 및 연구 목적으로 사용할 탁자 하나, 사람 두 명이 앉을 수 있는 크기의 식탁과 의자 둘, 주방, 작은 벽난로까지 하나 있었다. 넓다란 앞마당도 있었다. 런던에서는 구할 수 없는 집이었다.
뉴턴은 마부로부터 가방을 받아들고 집에 들어가 짐을 탁자에 하나하나 올려놓았다. 수백 장의 종이, 잉크가 가득 담긴 병 세 개, 펜, 그리고 가루를 낸 납, 구리, 돌, 유리, 용해액, 플라스크……. 지구본과 수많은 책.
“잠깐.” 뉴턴이 플라스크를 들고 뚫어지게 쳐다보다가 말했다.
“하아. 금이 갔잖아.”
뉴턴은 플라스크를 그대로 들고, 바깥에서 기다리고 있는 마부에게 다가갔다.
“이보시오. 내 물건에 금이 갔잖소. 조심히 다뤄달라고 당부했는데.”
상대는 나이가 열 살은 더 많아 보이는 마부였지만 뉴턴의 태도에는 거침이 없었다.
“변상 해주셔야겠소. 아니면 마차 이용비를 까거나.”
마부는 난색을 표했다.
“그게 깨져 있었던 물건인지, 제가 싣고 가다가 깨졌는지 어떻게 압니까.”
“깨졌으면 진작에 버렸지. 내가 내 실험 도구를 관리하지 않을 거라 생각하시오?”
뉴턴과 마부가 실랑이를 벌이는 동안, 여자 두 명이 뉴턴을 찾아왔다. 나이 든 여자는 뉴턴이 미리 고용한 가정부였지만, 뉴턴과 나이대가 비슷해 보이는 여자는 모르는 사람이었다.
“안녕하세요, 선생님.”
가정부는 미안한 웃음을 띄고 있었다. 뉴턴은 묻는 대신 찡그린 표정으로 의문을 표했다.
“제가 개인적인 사정이 생겨서, 유감스럽게도 일을 못 하게 되었어요, 선생님.”
뉴턴은 이마를 쥐었다. 가정부는 재빨리 옆에 서 있는 여자의 등을 두드렸다. 여자가 한 발자국 앞으로 나오자, 뉴턴은 마찬가지로 한쪽 눈썹만 치켜 올렸다.
“캐서린이라는 아이예요. 이 애도 저희 쪽 사람인데, 싹싹하고 고분고분해요.”
캐서린은 눈을 반짝이고 있었다.
“그렇게 보이진 않는데.”
“안녕하세요, 선생님!”
캐서린이 대뜸 인사하자 뉴턴은 눈을 찡그렸다. 저 여자를 가정부로 들이면 괜히 일이 귀찮아질 것 같았다. 하지만 다른 가정부를 다시 찾아 고용하는 것은 더 귀찮은 일이었다. 혼자서 집안일을 하는 것은 더더욱 귀찮은 일이었다.
뉴턴은 다시 마부를 보았다.
“아무튼, 난 이 물건 값을 꼭 받아야겠소. 내가 이걸 깰 원인이 어디 있겠소?”
마부는 안 된다고 잡아뗐다.
“그거, 제가 낼 게요!”
캐서린이 끼어들었다. 뉴턴은 캐서린을 힐끔 돌아봤다.
“그 쪽이 왜?”
“그냥요!”
“세상에 그냥은 없어. 이유가 있겠지.”
“선생님이 좋으니까요!”
“난 그 쪽이 싫어.”
뉴턴은 마부를 보았다. 마부는 팔짱을 끼고 굳은 표정을 감추지 않았다. 뉴턴은 한숨을 쉬었다.
“좋을 대로 해.”
캐서린은 영국에서 명망 있는 귀족 가문의 외동딸이었다. 하지만 그녀의 기억에서 행복한 가정은 거의 없다.
캐서린이 세 살도 되지 않았을 때, 영국에서는 왕당파와 의회파 사이의 내전이 일어났다. 그 때 아버지를 잃었고, 내전 과정에서 아버지가 관리하고 있었던 농민들까지 들고 일어나 가문은 인력도 재산도 잃고 말았다. 이제 막 젖을 뗀 캐서린을 안은 어머니는 지방으로 피신하여 전전긍긍 하며 살았다.
어머니는 해본 적 없었던 ‘노동’이란 것을 겪고, 씀씀이를 최대한 줄이며 생존을 위한 삶을 살아야 했다. 그 과정에서 세상 물정을 모르고 기술도 없는 그녀는 사람들에게 데여 상처 받곤 했다.
그러나 교양과 기품을 갖고 살았던 과거가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하나밖에 없는 딸 캐서린을 위해 어머니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했다.
캐서린은 어릴 적부터 호기심이 많았고, 누가 강요하지도 않았으나 자신이 알게 된 지식들을 보물처럼 간직할 줄 아는 소녀였다. 아침이 되었을 때 하늘에 뜨는 저 눈부신 공은 뭐라고 부르는지, 밤이 되면 왜 공의 생김새가 달라지는지, 들판에 피는 예쁜 꽃들은 무슨 이유로 존재하는지를 어머니에게 들었고……. 알 때마다 즐거워 했다.
그러나 캐서린은, 자신이 아는 것보다 더 많이 알고 싶어 했다. 당시 마을의 여자 아이들 중 글자를 읽을 수 있는 아이는 캐서린 뿐이었다. 어머니는 자신의 입을 것과 먹을 것을 아껴가며 캐서린에게 책을 사다주곤 했다.
그러나 캐서린의 어머니는 지금 세상에 없다. 캐서린이 10살 생일을 맞이했을 때, 어머니는 유독 기침을 많이 하기 시작했다. 당시에는 정확한 병명도 없었던 결핵이 그녀의 호흡을 망가뜨리기 시작한 것이다.
침대에 누워서 기침을 연신 토하는 어머니를 보며, 캐서린은 어머니가 더 이상 자신을 책임져줄 수 없을 것임을 직감했다. 캐서린은 일이라는 것을 시작했다.
캐서린이 15살 생일을 맞이했을 때, 어머니는 이미 세상을 떠나 있었다. 어머니와 함께한 공간이었던 집은 이제 무의미해졌다. 캐서린은 하숙집에서 다른 여자 아이들과 함께 살며 가정부 일을 했다.
그렇게 3년이 더 흘렀고, 이젠 일에도 능숙해져서 가사에 관한 것이라면 못 하는 일이 없었다.
하지만 노동으로 점철된 8년의 시간도 그녀의 천성을 해치진 못했다. 아주머니가 대학생의 가정부 의뢰를 맡게 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캐서린은 눈을 반짝이며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아주머니에게 부탁했다.
“보수로 받는 돈을 열 개로 떼어서, 하나를 아주머니에게 그냥 드릴게요. 그러니까, 제가 그 일을 하게 해주세요.”
소액이지만 불로소득이 들어온다는데, 싫어할 이유가 없었다.
캐서린은 하루 12시간을 일하며 1페니를 벌었다. 종이 한 장을 살 수 있는 돈이었다. 캐서린은 최소한의 생활비를 제한 나머지는 꼬박꼬박 저금했다. 그렇게 몇 년을 일하며 저금한 돈이 200펜스에 달했다. 1년은 일하지 않아도 살아갈 수 있는 돈이었다.
그러나 캐서린은 일을 멈추지 않는다. 그 돈으로 깨끗한 옷을 살 수도 있었고, 더 많은 빵을 사서 먹을 수도 있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 모으고 모으다 보면 언젠가 자신에게도 ‘배울’ 기회가 왔을 때 사용할 수 있다는 기대감 때문이었다.
그런데 대학생의 가정부로 들어간다고? 절대 놓칠 수 없는 기회였다. 심지어, 학비를 쓰지 않고도 배울 수 있을지 모른다!
“옷감이 많네요. 빨래부터 해야겠어요. 그리고 무슨 음식을 좋아하세요? 아, 그 전에 먼지 쌓인 이 공부터 닦아도 될까요?”
“천천히, 하나씩 물어봐. 그리고 지구본은 건들지 마.”
“지구본이요?”
“네가 손 올리고 있는 그 공.”
“아, 이걸 지구본이라고 불러요? 그런데 이게 무슨 물건이에요?”
“이 세상의 생김새를 표현한 물건이다.”
캐서린은 입을 벌리고 그대로 굳었다. 뉴턴은 두 종류의 사람을 싫어했는데, 여자, 바보 같은 사람이었다. 그리고 캐서린은 둘 다였다.
“하지만, 이거, 동그랗잖아요. 하늘에 뜬 태양처럼.”
“지구는 모르면서 태양은 아는 건가. 지식이 편향돼 있군.”
“이거, 동그랗잖아요?”
“그렇지.”
“사람이 위에 서면 미끄러질 텐데요?”
“안 미끄러져.”
“왜요
그렇다면 탭은 자작이야
다이와스칼렛 2021/06/04 02:22
그렇다면 탭은 자작이야
다이와스칼렛 2021/06/04 02:28
그래서 다음은?
Dr.Kondraki 2021/06/04 02:29
일단 감상 전 추천부터 넣고 볼게요
Dr.Kondraki 2021/06/04 02:34
저와는 다소 다른 방식의 글을 쓰시는 분 같군요
먼저 캐서린 말입니다, 굳이 성씨를 감출 필요가 있나요? 아이작 뉴턴은 성씨로 부르는데 캐서린은 이름으로 부르고 있으니 읽는 내내 위화감이 오는 기분입니다. 저라면 뉴턴 씨, ■■■ 양으로 호칭을 통일했을겁니다. 굳이 이대로 가고 싶다면 "캐서린이라고 불러주세요!" 같은 대목만 넣어도 충분하겠죠.
다림 2021/06/04 02:35
오 그렇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