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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것도 아닌 날을 축하하며

 

세상은 ↗ 같다.


TV에 나오는 사람들은 전부 웃고 있고, 지하철 밖의 도시는 휘황찬란한데. 어째서 나만 이렇게 고통받는가.


최저임금이나 간신히 받는 직장. 이 쥐꼬리만한 임금으로는 평생을 가도 창 밖에 보이는 집을 마련할 수 없을 것이다.


최저임금과는 대조적인 최대노동. 아침 일찍 출근해서 밤늦게 퇴근해야 하는 신세를 돌이켜보면 일을 하는 것 자체가 멍청하게 느껴진다. 고객은 다 진상새끼고, 상사는 상종 못할 씹새끼다. 그러나 이런 일마저 하지 않으면 생계를 꾸려나갈 수 없으니 더 ↗같다.


지하철에서 내려서 집으로 걸어가는 길. 달에서 가까워서, 달을 보며 출퇴근하는 삶이 살아가는 곳이기에 달동네라고 순화되는 빈민가.


지친 몸뚱이는 가파른 언덕길을 올라가는 것도 버거워한다. 이대로 지쳐 쓰러져 죽더라도 신문 한 줄에도 나오지 않을 미천한 인생이다.


그러나 그래도 이 미천한 인생이라도 연명하기 위해 힘겹게 언덕을 오른다.


가까스로 도달한 집은 지은 지 오래된 빌라. 그마저도 반지하. 올라가는 것은 버겁지만 내려가는 것은 비참하다.


희미하게 뒤섞여 있는 다른 집의 TV소리를 들으며 문을 열면 나를 맞이하는 것은 어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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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속에 드리운 절망과도 같은 짙은 어둠이다.


신발을 대충 벗고, 양말을 벗어 던지고, 집으로 들어가면 오래된 장판이 쩍하고 발바닥에 들러붙어 나를 반겨준다.


쉴 수 있는 시간이지만 반갑지 않은 것은 쉬고난 다음에 다시 일을 가야 하기 때문일 것이다.


쉬는 것도 일을 하기 위함이다.


고통을 준비하기 위한 시간이다.


고통받기 위해서 삶을 사는 것 같다.


끝이 없는 깊은 절망감 속에서 허우적거린다.


이대로 주저 앉아 포기하고 싶은 그때에.


어둠 속에서 무언가가 움직였다.


빛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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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이 피어나고 주위로 퍼져나가 어둠을 밝힌다.


빛의 한가운데에.


그녀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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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하합니다♪ 축하합니다♪ 축하합니다♪”


케이크를 앞에 두고, 평소에는 입지 않는 귀엽고 예쁜 옷을 입고, 즉석에서 지은 단조로운 노래를 부르며, 손뼉을 치고 웃고 있는 그녀가 있었다.


내 아내가 있었다.


“어서와. 오늘도 힘들었지.”


쑥스러운지 얼굴을 붉히면서도 나를 반겨주는 아내.


아직도 상황파악이 되지 않아 멀뚱히 서있자 아내는 볼을 부풀리며 재촉한다.


“아이참! 뭐해. 어서 와서 앉지 않고.”


그녀의 말이 나를 이끌었다. 나는 비틀거리며 그녀의 맞은 편에 앉았다.


간신히 정신을 차린 나는 물었다.


“뭐야? 이거?”


“응. 축하하려고.”


“축하? 뭘?”


나는 열심히 머리를 굴렸다. 오늘이 무슨 기념일이었지? 만난 지 5주년? 결혼한 지 1주년? 생일? 처음으로 키스한 날? 처음으로 사랑을 나눈 날?


혹여 답이 틀릴까 겁을 먹고 고민할 때, 아내가 말했다.


“글쎄. 뭘 축하할까?”


“뭐?”


“딱히 무언가를 염두에 두고 축하한 것은 아니라서.”


아내는 배시시 웃으며 말했다.


“그냥 당신이랑 뭔가를 축하하고 싶었어.”


그렇게 말하며 아내는 잠시 고민하다가 말했다.


“아무것도 아닌 날을 축하할까?”


내 표정이 웃겼나 보다. 내 표정을 본 아내는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하하하하! 그런 표정 짓지마. 생각해보면 모든 기념일도 크게 보면 아무것도 아닌 날이잖아. 그냥 누군가가 의미를 부여해서 기념일이 된 거잖아. 그러니 그 아무것도 아닌 날을 축하해도 되지 않을까?”


무언가 철학적인 말 같았다. 그러나 아내는 그렇게 깊은 의미로 한 말은 아닐 것이다. 그녀는 단지. 정말로 나와 무언가를 축하하기 위해서 이런 말을 한 것이리라.


그녀가 이렇게 바라는데 어떻게 무시할 수 있겠는가.


“이 케익은 어떻게 산거야? 엄청 비싸 보이는데.”


“응. 그냥 점심값 조금씩 아껴서 산 거야.”


“밥은 제대로 먹은 거지?”


“당연하지. 밥 안 먹으면 일 못 하잖아.”


대수롭지 않게 말하지만 나는 그녀가 얼마나 힘겹게 돈을 모았는지 안다. 점심값을 조금씩 아꼈다고 하더라도 기본 점심값이 적다 보니 그 비율은 낮지 않다. 백 원, 이백 원에 반찬의 종류와 수가 휙휙 바뀌는 적은 금액이다.


이 한 번의 축하를 위해 그녀는 오랫동안 감내했을 것이다.


가슴이 먹먹해졌다.


“그리고 짜잔! 선물도 있습니다!”


그것으로도 부족한지 아내는 옆에 있는 상자를 가리켰다.


나는 상자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상자 너머에 있는 것도 보았다.


고이 개어진 아내의 작업복이 있었다.


나보다 일찍 일어나 출근하는 아내는 나보다 일찍 퇴근하고 일찍 잠이 들었다. 원래라면 지금은 자고 있을 시간이었다.


그러나 그녀는 깨어있었다. 나와 함께 축하하기 위해서. 내일 몸이 힘들 것을 감수하고 있었다.


“미안해. 뭔가 좋은 것으로 주고 싶었는데…….”


당당하게 선물이 있다고 말을 해놓고 아내는 조심스럽게 자기변호를 한다. 나는 그제야 내 표정이 일그러져있음을 알아차렸다. 울음을 터트리기 직전의 표정이다.


아내는 내가 자신 때문에 이러는 것으로 받아들인 것 같다. 그러나 아니다.


아내 ‘때문’이 아니라. 아내 ‘덕분’이다.


아내가 죄책감을 가질 이유는 전혀 없었다.


아내 덕분에 나는 울 수 있을 정도로 행복했다.


그 끝없던 마이너스를 상회하는 플러스가 내 곁에 있었다.


“저기……괜찮아? 미……”


아내가 사과하기 전에 나는 아내를 끌어안았다. 아내는 놀란 듯 몸을 굳혔으나 이내 부드럽게 나를 끌어안고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아내의 손길과 아내의 체온과 아내의 냄새와 아내의 사랑이 느껴졌다.


아내가 말했다. 모든 기념일은 크게 보면 아무것도 아닌 날이다. 그러나 누군가가 의미를 부여해서 기념일이 된다고.


나는 아무것도 아닌 인간이지만 아내에게는 특별한 인간이었다. 아내에게 특별할 수 있다면 그 무엇이 필요할까.


포옹을 마친 우리는 거리를 벌리고 서로를 바라보았다.


웃음이 나왔다. 그래서 우리는 웃었다.


우리는 뒤늦게 아무것도 아닌 날을 축하했다.


“축하합니다♪ 축하합니다♪ 축하합니다♪”



세상은 여전히 ↗ 같다.


나 혼자만 고통받는 것 같고 고통받기 위해서 삶을 사는 것 같다.


낡고 좁은 집에서나마 살기 위해 발버둥 치며 사는 삶이다.


그러나 그런 ↗같은 세상 속에서도 내 곁에는 함께 축하를 해주는 사람이 있었다.


그 사람과 함께였기에 나는 축하할 수 있었다.



“축하합니다♪ 축하합니다♪ 축하합니다♪”


아무것도 아닌 날을 축하하며


아무것도 아닌 나를 축하하며


아무것도 아닌 너를 축하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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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리 이 스킨 보고 삘 받은 거 지금까지 간직해오다가 오늘 드디어 써봤음.


그림 없으면 라오 창작물이라는 느낌은 전혀 없지만서도 희리에 대한 애정을 가지고 썼으니 라오 창작물 아님?

 

어쨌든 조강지처는 애정임.

댓글

  • Crabshit
    2021/05/22 00:33

    오 좋아 잘쓰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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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자나열꾼
    2021/05/22 00:34

    아리가또. 자만하지 않고 더욱 정진 하게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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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중성마녀
    2021/05/22 00:42

    그냥 대충 읽으면서 쭉 내리다가 ㅈ토피아인가 했는데 자작 소설이였네.
    정성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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