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커뮤니티에서 도는 떡밥이 있는데, 한국이 선진국으로 진입하는 지표로 이탈리아를 많이 거론하더라구요. 우리가 이탈리아는 넘었다, 이탈리아가 무슨 유럽이냐? 하는 등등의 이야기들입니다.
그래서 오늘은 이탈리아의 경제에 대해서 이야기를 한번 써보고자 합니다. 전문가는 아니고, 그냥 현지에 좀 거주한 사람이 느끼고 체험한 부분이라고 생각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ㅎㅎ (걍 생각나는데로 두서없이 쓰겠습니다;;)
1. 이탈리아가 지닌 강점
ㅇ 높은 기술력
IT 분야에서는 한국이 높은 기술력을 갖추었고, 삼성 이탈리아 자체가 이탈리아 30대 기업에 속할정도로 큰 회사인데, 그외 기초 물리학이나 화학 같은 분야에서는 이탈리아의 경쟁력이 매우 높습니다.
일단 제약 생산 자체가 한국기업들하고 경쟁이 안됩니다. 셀트리온이 바이오 시밀러로 이탈리아에서 선전하고 있지만, 기존 제약분야에서는 이탈리아 기업들의 경쟁력이 매우 높습니다. 한국 신약개발 건수(약 30건)와 이탈리아 신약개발건수(한해 7,000건 가량 공동개발)에서 차이가 많이 나고, 유럽내에서도 스위스를 제외하면 제약 생산량 1위가 이탈리아입니다. 제약개발 인프라(임상 등)가 괜찮은 편이라 자국내 우수 제약사(메나리니, 키에지)도 많고 국제 제약사들이 이탈리아 생산도 많이 하는 편입니다.
기계과학 분야에서도 명성이 높아서 관련 기업들의 명성도 높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브렘보 브레이크(사실 브렘보는 베르가모 지역에 흐르는 강 이름입니다.)부터 유압펌프, 공작기계, 항공부품 등등 경쟁력이 매우 높습니다. 특히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걸음마 단계인 헬리콥터 관련해서 이탈리아 국영기업 '레오나르도'의 자회사인 아구스타 웨스트랜드에서 생산한 와일드캣이 우리나라 해군에 대잠 헬기로 납품되었었죠.
아구스타는 그 "브루탈레"라는 무시무시한 오토바이를 생산하는 그 아구스타와 뿌리가 같습니다. 사실 개인적으로 오토바이 기술력은 일본이 더 나은 것 같지만 두카티, 아구스타 등이 좀더 명성이 높은 것 같습니다.
ㅇ EU 역내교역
이탈리아의 주요 산업 중 큰 부분을 차지하는 것이 바로 對독일 교역입니다. 무역의 50%이상이 유럽내에서 이루어지고 있고, 이탈리아의 수많은 기계, 부품 업체들이 독일3사에 납품을 하고 있습니다. 사실 세계시장에서 이탈리아와 한국기업은 서로 경쟁상대이고, 더 정확히 말해서 많은 부분에서 이탈리아 기업들이 우위를 점하고 있습니다. 공작기계, 정밀부품 분야에서는 이탈리아 기업들이 전통적으로 한국기업들보다 강합니다. 한국 자동차 부품기업들이 가격 경쟁력을 무기로 독3사에 납품하려 한다면, 이탈리아 부품업체들은 독3사에 고부가가치 위주로 납품하고 있습니다. (예를들어 브렘보라든지..) 한국과 이탈리아 기업들이 기계분야에서 서로 경쟁하는 영역이 겹치지만 유럽에서는 이탈리아기업들이 선택받고 있습니다.
ㅇ 카톨릭
이탈리아가 유럽에서 차지하는 위치는 매우 독특합니다. 일단 전세계 13억명의 신도를 지닌 카톨릭의 총본산인 바티칸이 소재한 나라이고, 이러한 영역은 사실 투명하게 경제지표로 드러나기 어려운 부분이 있습니다. 이탈리아에서 가장 많은 부동산을 소유한 곳은 마피아도 아니고 사실 교회이죠.
대부분의 성당들이 교회에 봉헌된 부분도 있고 그런데, 과학의 시대가 도래하면서 카톨릭의 영향력이 많이 줄어든 것은 사실이나 아직도 많은 경제, 사회적 측면에서 지니는 중요도는 매우 높은 편입니다.
ㅇ 관광
사실 이탈리아 GDP의 13%가 관광에서 옵니다. 그리고 관광은 사실 GDP에 잘 반영되기 힘든 부분이 있습니다. 모든 국민들이 관광으로만 먹고 살지 않지만, 세계에서 가장 많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을 가지고 있는 나라이다보니 관광객들에게 매력적인 곳이기도 합니다. 독일사람들은 알게모르게 이탈리아에 대한 환상을 가지고 있습니다. 음식도 맛있고, 볼 것도 많고, 문화도 다양해서 사실 유럽 내에서도 이탈리아가 관광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높습니다. (다만 외국에서는 런던과 파리를 더 중요하게 생각하긴 하죠)
ㅇ 브랜드 파워
Made in Italy 하나로 해결되는 것들이 많다는 것도 이탈리아의 장점입니다. Made in Italy 하면 고급 명품으로 연결되는 소비자 심리도 한몫 하는데, 이것이 하루 아침에 쌓아 올린 것이 아니라는 것이죠. Made in Germany라고 하면 높은 기술력을 갖춘 신뢰성 있는 물건이라는 느낌에 가깝다면, Made in Italy는 뭔가 성능은 떨어질 것 같지만 고급품? 같은 느낌이 있는 것 같습니다.
이는 이탈리아가 유럽에서 쌓아올린 문화적, 예술적, 기술적 명성의 종합체가 아닌가 싶습니다. 이탈리아가 유럽을 주도했던 적이 2번 있었죠. 첫번째는 로마제국때이고, 두번째는 르네상스 때 였습니다. 특히 르네상스 시대는 유럽의 문화를 변화시켰고, 수많은 이탈리아 천재들이 유럽의 문화를 주도하던 시기였죠. 롤렉스의 고급제품모델명이 그 유명한 이탈리아의 조각가 벤베누토 첼리니의 이름을 딴 '첼리니' 인 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또한 길드조직으로 구성된 산업협회의 전통이 매우 오래된 곳이기 때문에 장인에 대한 존경과 전통을 존중하는 문화가 잘 자리잡고 있습니다. 피렌체의 두오모를 지은 것은 사실 '양모 길드'인 라니에리 들이었습니다. 이런 장인을 대우하는 문화가 있다보니 장인정신이 꽃피울 토양이 잘 조성되어 있고 이는 Made in Italy를 구성하는 하나의 요건이 되었죠. 심지어 FIFA 월드컵도... 이탈리아에서 만들었습니다.
또 세계 29m 이상 메가요트 생산 1위는 이탈리아입니다. 이건 억만장자들이 사는 요트인데, 억만장자들은 돈이 얼마나 들든 고급 인테리어를 갖춘 매력적인 요트를 갖고 싶어합니다. 그래서 한국 기업들이 요트에 대한 기계 물리학적인 기술을 갖추어도 절대 진입할 수 없는 시장이기도 합니다. 이탈리아의 고급 가구와 제노바, 베네치아 공화국을 거치며 발전한 조선기술은 메가요트라는 럭셔리 명품으로 탄생한 것입니다.
2. 그럼 왜 이탈리아 주식시장은 규모가 작은가
ㅇ 자본축적의 시간
한국에서 가장 많이 했던 이야기중 하나가 바로 '축적의 시간'입니다. 이탈리아는 생각보다 기업의 역사가 깊습니다. 예를들면, 파스타 제조업체인 Barilla가 있습니다. 1877년에 설립된 기업으로 연간 매출액이 우리나라 돈으로 5조에 가깝다고 추정됩니다. 이정도 규모의 기업이면 우리나라는 대부분 상장을 했는데, 바릴라는 비상장 기업입니다. 따라서 정확히 얼마를 벌고, 기업의 가치가 어떻고를 시장에 보고할 이유가 없습니다. 따라서 저 5조라는 것도 추정일 뿐이지 정확히 얼마를 버는지 오너만 압니다.
바릴라가 대기업이 되는데 은행차입은 있었겠지만 가업을 물려받는 것이 일상화 되어 있고, 상속세가 거의 없다시피한 이탈리아의 기업문화상 144년의 시간동안 천천히 자본을 축적하여 장기적인 관점에서 기업에 투자해왔기에 굳이 자본시장 상장이 필요없던 것이었죠. 따라서 자본시장 상장여부와 주가총액으로 이탈리아 경제를 판단하기에 수많은 기업들이 상장을 안하고 있습니다.
그저 브랜드 중 하나일 뿐인 페라리가 주가 총액 순위로 10위권이라는 것 자체가 얼마나 주식시장이 이탈리아 경제를 반영하지 못하는 지를 잘 보여줍니다.(물론 매력도가 높은 브랜드이긴 하지만요.)
이탈리아에 안티노리라는 가문이 있습니다. 토스카나의 유력가문이었던 안티노리가 와인 사업을 공식적으로 시작한 것이 1385년입니다. (기록상으로는 1180년) 지금 26대에 걸쳐 운영되고 있고, 티냐넬로 같은 우수한 와인으로 널리 사랑받고 있습니다. 가업을 636년(비공식 841년) 이어온다는 것 자체가 사실 쉬운 일이 아니죠. 안티노리는 지금도 수퍼 투스칸으로 사랑받는 기업이긴 합니다.
이와 비근한 예로 그 유명한 신곡의 작가 '단테'의 후손들도 아마로네로 유명한 베로나 인근의 발폴리첼라에서 와인을 생산하고 있습니다. Serego Aleghieri라는 와이너리인데, 단테가 피렌체에서 추방당하고 라벤나에서 사망하는데, 후손들은 발폴리첼라로 이주하여 1353년부터 와인을 생산하고 있습니다. 제가 알기로는 다른 아마로네 생산기업인 Masi에게 인수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ㅇ 경영권에 대한 보수적 관념과 삶의 가치에 대한 인식
한국 모 대기업에서 치약으로 유명한 마비스를 찾아가서 우리가 1년에 수십컨테이너 수입할테니 많이 만들어서 팔아라고 했는데 마비스 오너가 거부한 사례는 꽤나 유명합니다. 이유는 한 기업을 위해서 그렇게 대량 생산체제를 갖추기 싫다는 것이었습니다. 기업들이 오래되다보니 비즈니스 관계를 돈으로만 보지 않고 장기적인 관점으로 보는 편입니다. 그리고 지금 당장 머리아프고 골치아픈 일들을 피하는 편입니다.
프랑스는 이탈리아와 기업체질이 달라서 프랑스가 이탈리아 기업을 사서 프랑스화 된 기업으로 변모시켜 마케팅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예를들어 이탈리아 고급명품 자전거 피나렐로가 그렇습니다.피나렐로 창업자가 제가 아닌 사람의 친척인데 자전거에 미친사람이었다고 합니다. 다만 가족간 송사가 있어서 결국은 LVMH에 기업을 팔았다 하더군요. 기업을 운영할때도 자기가 좋아해서 하는 경우가 많고 싫으면 관두는 경우도 허다합니다. 이탈리아 사람들이 억지로 뭘 하는 것을 죽어도 싫어하는 사람들인지라 어떨때는 취미에 목숨걸고 매달리는 경우도 많습니다. 아직도 8월 한달은 거리가 텅텅 비고요. 삶을 재미있고 행복하게 사는 것을 돈버는 것보다 중요하시하게 여기는 그런 관점도 기업관이 한국과 많이 다른데 영향을 미치는 것 같습니다.
...
너무 이탈리아에 대해서 좋은 이야기만 썼는데, 워낙 이야기 거리가 많은 나라라 진짜 수박 겉핥기로만 보여드린 것 같습니다.
다음번에는 이탈리아가 왜 개탈리아 소리를 듣는지에 대해서 (단점) 써보겠습니다. ㅋㅋ
좋은글 감사합니다
다음글 기대합니다
예전에 어떤 지인이 이태리 관광 갔는데 버스기사가 운전대에 날씨가 너무 좋아서 떠납니다 이렇게 쪽지 적고 빤스런 했다던데 충분히 가능한 민족성이었나요 ㅋㅋ
좋은 글은 추천
좋은글 감사합니다. 배우고 가요 ㅎ
고퀄글 ㄷㄷ
추천 하려고 로그인 했네요^^
아 이탈리아는 개인 주식투자가가 거의 없습니다. 이점이 시가 총액에 미치는 영향도 큰것 같습니다 ㅎㅎ 주식시장은 말그대로 기업과 은행가들의 영역같은 느낌입니다.
제가 불펜 시스템에 익숙하지 않아서.. 재미있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후속편 기대하겠습니당 ^^
이런 글 정말 좋습니다. 감사.
다음편 기대되는군요
오 너무 재밌습니다. 생활이나 문화적인 면도 써주시면 안될까요?
또 어떻게 이탈리아에 거주하시게 되었는지.. 얼마나 계셨는지.. 지금도 계시는지도 궁금합니다!
마지막 경영에 대한 보수성은 세계화 시대 단점 같아요. 대기업으로 크지 못하고 많은 이태리 명품 브랜드도 프랑스에 넘어가 버렸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