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뻘글저는 올해까지만 살까봐요

우선..우울한 글 죄송합니다
저는 35살 여자이고 고졸(검정고시)이고 무직이에요
저에대해 이야기해드리자면...(글이 엄청 깁니다)
어릴 때 가정으로부터 학대를 당했고 고등학교도 보내주지않아서 일찍이 공장생활했어요.
저는 자존감이 무척낮고 열등감도 심해서 항상 누가 날 무시할까봐..그리고 사람에 대한 두려움이 심해 늘 긴장감을 가지고 살았습니다.
학교 다닐 때도 늘 똑같은 옷 입고 준비물도 자주 못챙겨가고 너무나 가난한 형편때문에 기죽어 있었고 말을 못했어요.친구들과 어울리지 못했고 괴롭힘당해도 저를 보호해줄 사람이 없이 외톨이로 지냈고
가정에서는 엄마와 오빠,언니로 부터 극심한 폭력에 시달렸습니다.학교다닐 때 친구가 한명도 없었어요.어느 순간 어울리는 것 자체가 너무 어색하고 그들과 나는 다른 신분?인 것 같은 느낌.
그러다가 정규고등학교를 가지 못하고 산업체 야간고등학교(일반고등학교인데 따로 야간특별학급이 설치된 곳)에 다녔어요.
그때는 정말 대학가고 싶어서 공장에 오후 5시까지 일한다음 학교에 간 후 9시에 퇴근하면 새벽 3시까지도 공부했어요.사실 학교도 실업계인데 공부를 거의 안가르쳐주는 수준이었습니다.상당히 기초적인 수준의 수업...
그때 제 나이에 그렇게 다니는 경우가 매우 드물었어요.주위 시선도 너무 버거웠고 공장 기숙사에서 살았는데 그것도 엄청난 스트레스였습니다.공장에서는 관리자의 지속적인 성추행이 있었구요.저는 매일밤마다 먹을 것을 잔뜩사와서 개걸스럽게 음식물을 입안에 넣었어요.
(저희엄마가 다른 꼭 필요한 건 안해주었지만 제게 과자같은 먹을 건 잘 사주셨어요.제가 울거나 할 때 먹을 걸 사주었습니다.저는 어릴 때 마음이 아플 때 먹을 걸로 마음을 달랬어요.음식에 대한 집착이 항상 심했습니다.)
제가 다녔던 학교가 실업계인데 그래서인지 저는 공부를 그닥 잘하지 않았는데 저를 너무 모범생취급하더라구요.
공장에서는 일을 못한다..배우는 게 너무 더디다고 그러고 아주 단순한 것도 기억을 못해 바보비슷한 오해?받았고 학교에서는 어떻게 그걸 아냐고..공부잘한다고 머리좋다고 칭찬하는.. 극과극의 상황이었어요.
이상하게 들리실진 모르겠지만 선생님들이 제게 유독 잘해주는 게 너무 싫어지더라구요.시험도 답 다 알려주고 치고 오직 대학가는 것에만 관심을 두시면서 제게 잘해주시구요.공장에서 관리자의 성추행은 계속 심해지고 너무 힘들어서 자퇴했어요.
선생님이 누누이 저에게 하신 말씀이 있는데 돈 아껴써야 한다는 거..대학 다니려면 학비때문에 아르바이트를 해야하는데 저는 써먹을 데가 없대요.그러니 공장에서 번돈
잘모아야한다고...또 자퇴할 때 대학에 꼭 가야한대요
아님 저는 죽도 밥도 안된대요. (모두에게 적용될 수도 있는 말이겠지만...이건 저의 결점을 너무나 잘 아시고 해주는 조언이었습니다)
암튼 그때 일년 반동안 공장다니고 학교다니면서 공부는 정말 열심히 했어요.비록 독학이고 효율적인 학습도 아니었고 시간도 하루에 세시간 정도밖에 못했지만 새벽까지. 그리고 자퇴를 한 후 집에 왔는데...심각한 역기능 가정이어서 집에 와도 스트레스가 심했구요.엄마와도 많이 다투고 언어폭력에 시달렸고
그때 제 나이 19~21살이었는데 저희 집에 자주 찾아오는 (저희 엄마가 많이 의지하는) 보험아줌마는 저를 시골에 결혼못한 노총각한테 소개시켜주려고까지 했고 면사무소 복지담당 공무원은 제가 왜 집에 있냐고 빨리 공장보내라고 했습니다.저는 그때 검정고시와 수능준비하고 있었는데요.
야간고등학교,공장다닐 때는 그렇게 공부 열심히 했는데 공부가 안되더라구요.집중을 전혀 못하겠고 자꾸 드러눕게 되고 밖에 돌아다니게 되고...어느날 갑자기 못일어나겠고 갑자기 이명이 생기더니 심한 어지럼증과 피로감이 생겼는데 며칠지나 괜찮아졌지만 그후 이명증은 계속 가지게 되었어요
그리고 갑자기 집에 찾아온 작은 오빠로 부터 폭력을 당하고 엄마는 그런 오빠편을 들고...그렇게 21살 때 집을 나와 고시원에서 살았어요
그때 고시원에서 수능공부했는데 같이 생활하는 분들이 학생이나 수험생이었어요.공장기숙사, 저희 집에서 느껴보지 못한 평화로움을 경험했습니다.제 인생에서 가장 따뜻하고 안정감을 느꼈던 날들이었어요. 물론 처음엔 무섭고 외로웠지만.다들 착하더라구요.매너있고 제게 다정하고 저와 친해지고 싶어하는 분들도 있었는데 저는 당시 제가 가출?한 사실이 매우 큰일(잘못한 일)로 여겼고 (그후로도 오랬동안 그랬구요)사람들 피했습니다.
이상하게 좋으면 피하게 됩니다.
그리고 제게 큰 결점 중 하나는 제 수준파악을 제대로 못하고 지나치게 큰 이상을 가지고 있었어요.지금 생각하면 내가 미쳤나싶고 얼굴이 확 달아오릅니다.이상한 사람처럼.
무조건 좋은 대학 가고 싶어했어요.근데 공부는 오래못하구요.자꾸 드러눕게 되고 공부를 하려하면 가족에 대한 생각들(고통)이 더 뚜렷해져서 도저히 집중이 안되는 이상한 현상.
수능은 3등급정도 나왔어요.저는 아주 형편없게 나왔다고이렇게 나오면 사람들이 저를 무시하는 줄 알았어요.
그래서 재수하기로 했어요.
돈이 없어서 아르바이트 하려했는데 저를 안받아주더라구요.간신히 서빙자리를 찾았는데 말귀를 못알아듣고 실수를 자꾸하고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도 힘들어서 잘렸어요.
그 후 공장 갔는데 월급 나오기전 돈이 없어서 2틀 굶고 일하기도 하고 길거리에 사람들한테 구걸도 하고 굶었을 때가 많았어요.
무엇보다...공장에도 좋은 사람들 많았지만..
고시원 사람들 분위기와 너무나 다르더라구요.사람들 표정,옷차림,하는 말들...모든 게 낯설었어요.
욕도 막하고 적대감도 강하고 피부에 닿는 느낌이 쎄했어요.가장 무섭고 힘들었던 게 그런 거였습니다.
12시간 일하는 것도 너무 힘들고 자꾸 실수해서 잘릴까봐 너무 불안했구요.그렇게 몇개월 돈 모아서 6개월 수능준비했어요.(공부 열심히 해야하는데 공부에 집중이 안되더라구요)저는 실기보는 학교가려고 했습니다. 제 수준에 안맞는.그리고 수능봤는데 4등급 나오더라구요.실기도 떨어지구요.
그렇게 점수나와서 대학가면 사람들이 날 무시하는 줄 알았어요.꼭 좋은 대학가서 사람들이 날 좋아해주는 상상하면 수능을 또 봐야할 것 같았어요
그래서 대학진학안하고 다시 수능 볼 돈 벌기위해 공장가서 6개월동안 돈 벌었습니다.그리고 또 5개월간 공부해서 수능봤는데 또 4등급.문창과 실기는 또 떨어졌구요.
근데 예상치못한 일이 생겼는데 다시 생계를 위해 돈 벌어야 했는데 그때 경기가 갑자기 안좋아져서 공장들이 채용을 안했어요.그래서 너무 당황해서 아주 작고 영세한 소규모 사업장에 취직했는데요 기숙사는 그곳에서 월세방 구해주었어요.
근데 일이 없다고 자꾸 쉬라하고 저에게 병든 병아리같다고 반장아줌마가 욕하고 저는 당장 돈이 없어서 대학 원서비도 없고..저보고 일을 못한다고해서 잘렸는데 당장 갈 때가 없는 거에요.그래서 직업소개소에 양해를 구하고 짐 맡기고 잘 곳이 없어서 건물 화장실에 들어가 있기도 하고 건물 계단에 앉아있기도 하면서 소개소 아줌마가 소개시켜주는 식당 설거지 그런 거 하면서 간신히 하루하루 버텼어요.
입시 준비할 정신도 여유도 없구요.그때 2년만에 집에 전화했는데 엄마는 여전히 차가웠고 엄마걱정 안했냐.왜 필요할 때만 가족찾냐..돈 빌려줄 사람도 없이 그 나이되도록 뭐했냐고 그러더라구요.집에서 15만원빌렸어요
그 후에 간신히 작은 공장 취직했는데 일반주택가 월세방이 기숙사였는데 관리를 안해줘서 전기도 끊기고 가스도 끊겨서 다 나가고 저혼자 전기 끊긴 방에서 생활한 적도 있어요.엄마에게 돈 갚으니 저는 너무 지치고 힘든데 엄마는 엄마생일에 얼마부치고 어버이 날에 얼마부치라고 사채업자가 돈받아내듯 제게 오직 돈 얘기만 하더라구요.
공장에서 하루도 거의 못쉬고 밤 10시까지 일하기도 하고 그러면서 일하다가 도저히 못다닐 것 같아서 다른 공장갔는데 제게 일을 너무 못한다고 이틀만에 잘리고 다시 짐싸들고 오산에서 수원..평택..용인 이렇게 공장 취직하기위해 돌아다녔어요.
(제가 생각했을 때 아마 이 시기에 제 마음이 거의 다 뭉그러져 버린 것 같아요)
저는 수능준비를 해야하는데 그렇게 자꾸 잘리고 취직이 안되니까 시간만 가는 거에요.그런데 전에 그만둔 공장에서 급여를 안주고 그래서 노동부에 신고까지 하구요.
공장중에 노동강도가 쎄서 사람들이 기피하여 일손이 부족한 곳에 겨우 취직해서 한달 반 정도 일하니 겨우 돈이 모이더라구요 9월 중순에 그만두고 그때부터 또 고시원 들어가서 수능준비했어요.
그때 제가 극도의 좌절감과 우울에 빠졌어요.공부 열심히 해야 하는데 막상 하려니 책상이 나를 밀어내는 것 같고..축축 쳐지고 매일매일 눈물만 나더라구요.열심히하는 것도 안되고 열심히 할 시간도 한달 반밖에 안된다는 사실도 슬프구요.
수능날 아침에 느낌이 서늘하더라구요. 지방 4년제가려고 했지만...어차피해도 또 4등급 나오겠지..기도했어요.어차피 안될 거라면 아예 안되게 해달라구요.
그때가 24살 이번이 마지막 수능이라고 결심하고 봤는데..
제가 왜 그런 실수를 했는지 모르겠어요.
언어영역을 15분 전에 다 풀어놓고 마킹을 하나하나 공들여 마킹하면서 시간 확인을 안했어요.그 마킹하는데 실수하면 안된다고 마킹읃 아주 천천히 했어요.열문제 정도 마킹 남겨두고 종료벨이 울린 거에요.
그렇게 시험 망쳤어요.
다시 수능 볼 엄두가 도저히 안나더라구요.
그리고 다시 공장에 들어갔는데 저보다 한살 어린 대학 졸업 앞두고 동생학비 벌려고 온 친구를 만났어요
같은 기숙사방에서 생활했는데..
저보고 이쁘다고 그러나 슬퍼보인다고 말해주었고 하나하나 다 챙겨주고 낯을 심하게 가리는 저를 배려해주었어요.저보고 대학은 꼭 가야한다고 성격 고칠 수있다고 말해주구요.그 친구는 항상 저와 이야기하고 싶어하고 친하게 지내고 싶어했는데 저는 왜인지 그 동생에게 무심하게 대하고 피했어요
공장에서 제가 없는 자리에서 같이 일하는 언니들이 제가 말을 너무 안한다, 일을 심각하게 못한다고 이야기 나누었을 때..그 동생이 화를 내면서 제가 노력하고 있다고 차차 잘할 수 있다고 말해주었대요.
근데 저는 그 친구에게 도리어 화를 냈고 그 친구는 저에게 언니가 그렇게 말하면 자기 마음은 아프다고 말했지만 저는 그 마음을 봐주지 않았어요.
그 친구가 제가 없을 때 제 일기장을 봤더라구요.
제 일기장 본 날 그 친구 눈이 퉁퉁 부었어요.
다음 날 저 보고 자기도 원래 공부못했다고 열심히 하면 된다고...언니도 열심히 하면 된다고 말했고
저는 그 말이 저보고 애쓰지않았다는 말같아서 화가 나더라구요.그리고 화내고 싸우고....저는 그 친구와 화해하고 싶어 편지를 썼는데 그 친구는 방을 다른 곳으로 옮겼고 결국 만나지 못했어요.
그런 후 많이 울었습니다.그때 25살이었는데
제가 안산에 있는 예대에 (결국 떨어졌지만)문창과 작문실기를 봤었어요.그때 주제가 여러가지가 주어졌는데 그중 꽁트하나가 '10년 후의 나를 길에서 우연히 만났다'였어요
그 문장 뒤를 이어서 쓰는 것인데 그때 순간적으로 어떤 모습이 연상되더라구요.10년 후의 제 모습이..직업도 없고 암것도 없는 모습.지금이 딱 그시기인데 정말 그렇게 되버렸어요.
25살 때,그 친구 그렇게 보낸 후..시험도 다 망친 후
제 안에 모든 빛이 다 꺼진 기분.
항상 계획이 있어야 오늘을 살 수 있기에 그때 저에게 최선은 공무원이 되는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렇지만 항상 걱정만 되었는데 무엇보다 업무를 배우는
것부터 실수없이 볼 수 있을까가 가장 큰 걱정이었어요(저는 adhd증상이 있어요.약을 먹어도 계속 실수합니다)
시험 준비하려면 돈을 모아야하는데 공장에서 실수 엄청 많이 하고 사람들과 어울리지 못해 잘리고 다시 취업하기를 반복하고...그리고 먹을 것에 집착이 심해서 돈낭비를 심하게 하니..돈이 모이질 않는 거에요.
대학에 가려해도 나이와 취업문제가 걸리구요.
취업 잘 되는 곳은 adhd가 있는 제게 너무 역부족일 것이구요.
공장 한 곳에 꾸준히 다니는 것부터가 어려워요.
25살 때 이후로 나 자신이 내가 아닌 기분이 서서히 들기시작했고...어떤 것도 시작할 엄두가 나질 않는 거에요.멀리보고 가기가 어려워졌고 27살 되자 살이 다 벗겨진 채로 얼음장에 들어간 기분...병원에 가서 우울증약을 먹었는데도(지금은 먹지않는데) 삶이 늘 공허해요.
28살 되던 해 진지하게 자살 생각했는데 한강 갈 용기가 나질 않아 접었습니다
돈이 있어야하는데 일 유지가 잘 안되고..돈도 낭비하게
되고 뭘 하려해도 돈 때문에 못하겠구요.
왜 나는 공장에서 밖에 일을 못할까..공장에서도 저를 자꾸 밀어냅니다.공장에 가면 사람들이 제게 던지는 첫질문이 생산직에서 일해보셨어요?라고 물어볼 때가 많았어요.
저보고 몸쓰는 걸 못하는데 왜 몸쓰는 걸 하냐고 가만히 앉아서 하는 일을 하라고 합니다.면접에서도 저같은 성격은 공장에서 못 버틴대요.
무엇보다 사는 게 참 재미가 없네요.모든 게 다 제한이 된 느낌.보이지 않는 감옥에 갇힌 것 같아요..20대부터 공장 다녔을 때 거의 항상 아줌마, 나이많은 아저씨들,중국사람들 속에서 너무 심심하고 또래들이 있어도 제가 좋아하는 것을 공유할 수 있는 사람찾기가 참 어렵네요.
무엇보다 공장의 차가운 환경, 사람들 너무 무섭습니다
사는 게 너무 재미가 없네요.계속 같은 이야기만 반복되는 것 같아요. 더이상 살 이유가 없는 것 같고 희망이 없다는 게 가장 괴롭습니다.
그렇게 35살이 되었어요.공장도 취업이 안되서 물류일용직 다니고 있어요. 너무 비참합니다. 하루 벌어 하루살다시피 하고 있습니다.더이상 살아갈 자신이 없어요.
아무 것도 보이질 않습니다.혹시 제가 이해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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