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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설이 된 가족 - 10화

민경은 자신의 방 침대에 누워있었다.
잠든 것처럼 평온한 모습이었다.
마스크 창에 서린 김과 몸의 온기를 확인하고 나서야 남훈은 안도했다.
가냘프던 몸이 더욱 수척해졌지만 다른 문제가 있어 보이진 않았다.
얼굴 전체를 가리는 두건형 방독면을 착용하고 있었고, 사용이 끝난 필터와 정화통이 바닥에 떨어져 있었다.
“해수야, 민경이 깨워 봐! 일으켜 세워!”
해수가 민경의 몸을 흔들어 보지만 약에 취한 듯 의식이 없다.
남훈은 의자에 걸린 백팩을 집어 들고 민경의 소지품을 챙기기 시작했다.
옷장을 열고 손에 잡히는 대로 속옷과 바지, 티셔츠 등을 가방에 쑤셔 넣었다.
“민경아, 민경아! 일어나! 신민경!”
목덜미를 잡고 반쯤 앉혀놓아도 몸에 힘이 들어가질 않았다.
“못 일어나?”
“의식이 없어요.”
“업어!”
다시 비가 내릴 때까지 기다릴까도 생각해봤지만, 위험요소가 너무 많았다.
폴라리스를 잃어버린다거나, 일행 중 부상자가 생긴다면 농장으론 영영 돌아갈 수 없을지 모른다.
마음이 급해진 해수는 민경을 둘러업고 뛰었다.
현관을 나서던 남훈은 뒤를 돌아보며 밝은 목소리로 소리쳤다.
“현모야, 우리 간다!”
늘 보던 사람들의 일상적인 인사처럼 들렸다.
“콰앙!”
현관문의 자동힌지와 바람은 요란한 소리를 남겼다.
앞이 보이질 않는 현모는 마지막으로 딸의 얼굴을 떠올리고 있었다.
“헉헉”
공동주택의 계단을 뛰어 내려온 그들은 1층 유리문 앞에 멈췄다.
문을 나서면 맞닥트려야 하는 위험을 인지하고 있었다.
해수는 업혀있던 민경을 내리고 팔을 끼어 부축한다.
남훈은 아들을 헬멧을 토닥인다.
“괜찮지? 할 수 있지?”
“네, 문제없어요.”
골목엔 아직 포마렐루의 모습이 보이진 않았다.
호흡을 가다듬었다.
“민경이가 가운데!”
“네!”
“헬멧이 없으니까 몸은 최대한 숙이도록 해주고.”
“네!”
“가자!”
우렁찬 엔진소리와 함께 폴라리스의 시동이 걸렸다.
남훈이 액셀러레이터를 끝까지 밟자 폴라리스는 굉음을 내며 앞으로 튀어 나갔다.
골목에서 포마렐루를 맞닥트리고 싶지 않았다.
1000cc 엔진의 폴라리스로는 놈들을 받아버릴 힘도 없을뿐더러, 무게중심이 높아 전복의 위험성도 있었다.
남훈은 빨리 골목길을 벗어나려 했다.
그때였다.
“피슈웅~” “퍼억!”
그들을 노린 첫 번째 총알이 둔탁한 소리를 내며 적재함에 부딪혔다.
터무니없이 날카로운 속도였고 어딘가 분명 찌그러졌을 만큼 무시무시한 위력이었다.
“피유웅~” “피슝피슝”
어디서 격발됐는지 모르는 탄환이 계속 날아왔다.
농업용 UTV는 시속 30km에서 리미트가 걸려있다.
더 이상의 속도는 낼 수가 없었다.
RPM 바늘은 터질 듯 위로 솟구쳤고, 폴라리스는 검은 연기를 뿜어내며 덜컹거렸다.
“큰길! 큰길로 가요!”
“노력하고 있어!”
멀리 골목 귀퉁이에 서 있던 포마렐루 한 마리가 남훈의 폴라리스를 겨냥하고 있었다.
발사까지 대략 2~3초가 소요되는 것 같았다.
“피슝-”
제대로 정면이다.
“빡!”
앞 유리 전체가 출렁였고, 유리를 잡아주던 부품이 튀어나올 정도로 강한 충격이었다.
엄지손톱만 한 탄환은 깊게 팬 흔적을 남겼고 여러 갈래의 금이 생겼다.
‘재장전까지 걸리는 시간은 얼마나 될까?’
‘1초, 2초. 이런 제길!’
이미 엄청난 속도로 날아오고 있다.
“퍼벅!”
다행히 유탄이 된 총알은 보닛을 스치며 담벼락에 꽂혔다.
순간 남훈은 밀고 가버리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지금 여기서 멈추면 옴짝달싹 못 하게 될 것이다.
남훈은 액셀러레이터를 더 깊게 밟았다.
성인 남성과 비슷한 덩치.
정면충돌한다면 탑승자에게도 상처를 입힐 수 있다.
“꽉 잡아!”
해수의 왼손이 본능적으로 민경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
“퍼퍼퍽”
폴라리스의 오른쪽 범퍼가 놈의 몸통에 비스듬히 충돌했다.
놈은 유연했지만, 너무 느린 탓에 피하질 못했다.
옆구리가 깊게 파이며 여러 조각의 파편이 허공에 튀었다.
바퀴에 깔린 지주근도 몇 마디쯤 썰려 나간 것 같다.
“다친 사람? 해수야 괜찮아?”
“네 괜찮아요.”
폴라리스 역시 큰 충격을 받아 민경은 대시보드에 등과 어깨를 부딪쳤다.
해수도 머리를 들이받았다. 헬멧을 쓰고 있었지만, 얼굴이 쓸렸다.
민경의 ㅅㅇ이 잠깐 들린 것 같다.
보닛 위에 붙은 포마렐루의 살덩이가 출렁거렸다.
차량은 심하게 덜컹거리며 골목의 끝을 향해 돌진하고 있었다.
“아빠! 아빠!”
“뭐야!”
골목이 끝난 지점에선 낮게 위치한 하천이 보였는데
그들을 기다리는 수백 마리 포마렐루의 머리가 석양에 비쳐 반짝거렸다.
도시의 모든 포마렐루가 이곳으로 모여드는 것 같았다.
숫자는 계속 늘어나고 있었다.
이제 석사천의 경계와는 불과 수십 미터 떨어져 있을 뿐이다.
“아…. 제발…….”
“현모야 제발 도와주라…….”
“간다아!!!”
골목을 통과하자마자 수백 개의 탄환이 폴라리스를 향해 날아왔다.
‘우당탕’ 거리며 앞 유리가 출렁거렸고 수천 개의 잔금이 생겼다.
총알은 쉴 새 없이 쏟아졌다.
폴리카보네이트는 튼튼했지만, 방탄유리는 아니었다.
안쪽에 테이프를 덧대지 않았다면 산산이 조각났을 것이다.
“여긴 안 되겠어요!”
“알아! 안다고!”
“빨리, 빨리!”
남훈은 급하게 핸들을 꺾었다.
녀석들의 무리를 오른쪽에 두고 폴라리스는 석사천을 빠져나가려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의미 없지만, 계속 풀 액셀. 전속력으로 달리는 중이다.
남훈의 열렬한 추종자처럼 하천에 일렬로 늘어섰던 포마렐루 무리는 폴라리스가 사정권에 들어오자마자 미친듯 총알을 쏘아댔다.
얼마나 정신없이 쏘아대는지 같은 편끼리 총에 맞는 사고도 있었다.
머리에 구멍이 뚫리며 파편이 여기저기로 튀었다.
폴라리스를 정면에서 겨냥하던 어떤 포마렐루는 한쪽 잎이 몸에서 떨어져 나갔다.
표피와 점액질이 터지며 일정한 형체가 없는 끈적한 물보라가 만들어졌다.
훈련되지 못한 군대처럼 우왕좌왕하는 모습도 있었지만, 녀석들은 ‘타고난’ 명사수였다.
해수가 앉은 조수석 쪽으로 집중적인 총알이 날아왔다.
움직이는 피사체를 놈들은 비교적 정확히 맞춰 나가고 있었다.
“빠다닥닥!”
이미 여려 겹의 렉산을 붙여 만든 조수석 창문은 너덜너덜해진 상태가 됐다.
“으! 으윽!”
해수가 손도끼와 자신의 팔로 유리창이 안쪽으로 무너지지 않도록 간신히 막아내고 있을 뿐이었다.
“빠악!”
뚫린 틈으로 기어코 총알 한 방이 날아왔다.
헬멧에 정통으로 맞은 모양이다. 아프거나 놀라진 않았지만, 해수는 멍한 상태로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머릿속에 천둥이 치는 것 같았다.
“해수야! 해수야! 괜찮아?”
차는 정신없이 위아래로 덜컹거렸고 총알은 쉬지 않고 쏟아졌다.
오른팔은 부러졌거나 잘려나간 것 같다. 더는 아프지 않았다.
해수는 잠시 정신을 잃었다.
“야! 정신 차려 인마!”
남훈이 주먹으로 해수의 헬멧을 후려쳤다.
흐릿하게 하이마트 앞 사거리가 보였다.
석사천 옆의 자전거 도로와 헤어지는 분기점이다.
“조금만, 조금만 더 참아!”
해수는 너무 졸렸다. 잠들고 싶었다.
그때 무릎에 엎드려있던 민경의 몸이 움찔거리며 떨리는 것을 느꼈다.
떨리는 손으로 자신의 허벅지를 있는 힘껏 움켜쥐고 있었다.
“민경이 잡으라고!”
남훈은 계속 해수에게 소리를 질러댔다.
‘알았어, 알았다고요.’
해수는 무릎 위에 엎어진 민경의 머리를 자신의 몸으로 감싸 안았다.
결국, 폴라리스는 개활지로 빠져나왔다.
여전히 주위엔 포마렐루가 있었지만, 그들과의 거리는 점점 멀어지고 있었다.
해수의 눈에 바닥에 떨어진 포마렐루의 탄환이 보였다.
마치 흑단 나무로 만든 공예품처럼 매끄럽고 길쭉한 모양이었다.
그것이 녀석들의 씨앗이라고는 아직 생각지 못했다.
폴라리스는 포마렐루의 사정거리에서 벗어나고 있었다.
“따닥, 따닥!”
여전히 총알 부딪히는 소리가 들린다.
도로 옆에 서 있던 녀석들이 쉬지 않고 총알을 날렸지만, 위협적인 상황은 아니었다.
외곽도로를 따라 이 속도면 10분 후엔 마을에 닿을 것이다.
남훈은 긴장을 풀지 못하고 있었다. 어디선가 또 다른 포마렐루 무리가 나타날 것만 같았다.
구름이 짙어지며 날이 어둑해지는가 싶더니 도로의 색이 갑자기 검게 변했다.
“비? 비예요?
만신창이가 된 유리 때문에 앞이 보이지 않았다.
“비! 비가 와요!”
“우하핫!”
“살았다! 살았어!”
더는 운행이 불가능할 정도 비가 내린다.
폴라리스는 속도를 줄였다.
“해수야, 다쳤어?”
남훈의 목소리가 여유로워졌다.
“괜찮아요.”
“민경이 봐줘. 방독면도 벗기고.”
해수는 땀에 젖은 민경의 머리가 방독면에 끼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두건을 끌렀다.
“민경아, 괜찮아?”
아직 민경은 무릎 위에 엎드린 채 말이 없었다.
울고 있는 것 같았다.
뜨거운 눈물이 해수의 바지를 적셨다.
해수는 남훈을 향해 고개를 저었다.
‘울고 있어요.’
남훈은 고개를 끄덕인다. 그녀에겐 시간이 필요했다.
흐느끼는 소리가 점점 커졌지만,
거세진 빗소리와 엔진소음에 묻혀버렸다.
“아저씨…. 감사해요.”
“일어났구나….”
“.......”
“아까 대시보드에 세게 부딪혔는데 아픈 곳은 없니?”
“네 괜찮아요.”
남훈도 더는 말을 꺼낼 수 없었다.
현모 생각에 눈물부터 쏟아질 것 같았다.
“헬멧 좀 받아줄래.”
남훈은 헬멧을 민경에게 넘기며 그녀의 옆얼굴을 쳐다봤다.
언제부터 울고 있었는지 눈은 퉁퉁 부어 있었다.
공포에 갇혀있던 소녀는
어쩌면 갇혀있던 내내 울고 있었는지 모르겠다.
3인승이라고는 하지만, 폴라리스의 실내는 어깨를 맞대야 할 만큼 좁았다.
민경의 젖은 머리 때문에 해수의 긴장은 나른하게 풀려버렸다.
그녀의 익숙한 체취가 느껴졌다.
“차가 엉망이겠구나.”
“네에.”
“많이 망가졌을 거예요.”
“네 엄마에게 한 소리 듣겠는걸.”
아차 싶었을 땐 이미 헬멧 위로 민경의 눈물이 떨어지고 있었다.
두 명의 남자 모두 낭패 가득한 표정이 되었다.
“민경아 미안하다. 아저씨가 위로는 못 해줄망정….”
“.......”
“아저씨….”
울먹거리던 민경이 고개를 들었다.
“집에 방독면 세 개가 있었어요.”
“알고 있지. 내가 권해준 모델이니까.”
“정화통도 아홉 개나 있었고요.”
“.......”
민경은 계속 훌쩍였다.
“그런데 왜 저만 방독면을 쓰고 있었는지 아세요?”
“........”
“민경아….”
민경은 헬멧을 쥐어뜯으며 다시 고개를 숙인다.
“저만, 저만 살았어요.”
“........”
“어흑, 흐흐흑.”
“나 때문에, 나 때문에 엄마가….”
“어휴….”
16세 소녀가 감당하기엔 너무 깊은 상처였다.
남훈은 가슴도 갈라지는 있었다.
누군가 심장으로 파고들어 잘근잘근 씹고 있는 느낌이다.
어떤 부모라도 그렇게 했을 거라고,
인제 그만 아파하라고 말해주고 싶었지만.
누구도 지금의 그녀를 위로해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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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2ENi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