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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금여친이랑 헤어지고 한양 도성길에서 풍류를 즐기던 커플 본 썰

 


머리가 복잡할 때 자주 가는 장소들이 있어요.


비교적 한산하고 탁 트인 공간을 주로 찾는데

용봉정 공원, 부군당 공원, 옛 러시아 공사관 터, 남산이 대표적입니다.

그 중 남산은 여러 루트가 있어 질리지 않아 제가 특히 더 좋아하는데

위 사진들이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포인트들입니다.

조명도 잘 되어 있어 삘 받으면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가기에도 좋아요.
때는 작년 여름이었네요

당시 만나던 여자친구가 밤에 갑자기 북악산 타령을 해대서

어디 높은데 가고 싶으면 남산 데려다 줄테니까 산책 좀 하다 그냥 우리집서 자고가라 했더니

평소에 뒷담화 앵간히 하던 직장 동료 인스타에 자랑 사진 올라와서

지도 죽어도 팔각정을 가야겠답디다.

스팀 올라오지만 좀 참고 용산에서 김포까지 가서 태운 뒤에 콧구멍에

그토록 원하시던 팔각정 밤바람 쐬주었더랬죠.
솔직히 평소에 지 친구들 남자친구 비교질에 좀 지쳐왔는데다가

이 밤에 김포 데려다주고 다시 와서 내일 출근할거 생각하니 깝깝~하이

제 표정도 제법 썩어 있었을 거에요

무튼 그 뒤는 다툼의 클리셰였습니다

기왕 온거 기분 좋게 있으면 안되냐, 얼굴 표정은 왜 그러냐, 여자친구 부탁 들어주기가 그렇게 싫냐 등등 하다가

'그 얼마 되도 않는 아반떼 타고 다니면서 유세질이야'

이 한마디에 자격지심이 터져 팔각정에 버리고 왔습니다.
회상하는데도 갑자기 빡이 올라와서 이야기가 좀 샜네요.

무튼 그 길로 돌아와서 징징대는 전화기 차단해 버리고

열 좀 식혀야겠다 싶어서 남산 올라갔습니다.

후암동이 오래되고 좀 낙후된 동네긴 한데 골목길이 의외로 걷다보면

노란색 나트륨 가스등이랑 빨간 벽돌이랑 제법 잘 어우러져 맘이 좀 차분해 집니다.

용산고 지나서 신흥로 주욱 따라 올라가다 보면 소월로 중간에 남산으로 올라가는 샛길이 있어요
샛길타고 남산타워 밑자락까지 갔다가 동쪽으로 내려오다 보면 중간에 전망포인트 있고

거기서 야경 좀 보다가 더 내려가다 보면 국립극장 다와가기 전에 좌측에 한양 도성길이라고

계단 무지하게 많은 길이 있는데 여기 계속 올라가면 위에 첫 사진 포인트가 나옵니다.
땀도 뺄겸 야경이나 보러가자 싶어서

당시에 꽂힌 주토피아ost 캐샤의 트라이 애브리띵 무한반복 하면서 올라갔네요

제일 위에는 나무덱으로 된 전망대가 있는데

워낙 계단이 많기도 해서 많이 안오는 포인트기도 하고

더군다나 밤이니 누가 오겠습니까.
근데 왜 그런거 있지 않나요 오래달리기나 뭐나 거의 다와 갈수록 더 힘들게 느껴지는거.

한번도 안쉬고 올라가다 폐 터질 것 같다 싶어서 계단에 앉아서 이어폰 빼는데

그 조용한 산 속 귀뚜라미 찌르륵 찌르륵 박자보다 좀 더 빠르게

리드미컬한 살 부딪치는 소리가 들리는 겁니다. 간간히 ㅅㅇ소리랑 같이요.

순간 심장이 이게 내가 계단 오르기 때문에 뛰는건지 흥분해서 뛰는건지 모르겠더라구요 ㅋㅋ

솔직히 제가 제일 처음 그 포인트 갔을때 저 상상 했었거든요

사람 생각하는거 다 비슷하구나 싶었습니다


무튼 결국 그 날은 전망 보지 못하고 그냥 내려왔고

집에 와서 시원하게 치고 잤습니다.
"도성의 둘레는 40리인데, 이를 하루 만에 돌면서 성안팎을 감상하는 것을 좋은 구경거리로 여겼다. 이른 새벽에 오르기 시작하면 해 질 무렵에 마치게 되는데, 산길이 험하여 포기하고 돌아오는 사람도 있다" -유득공, 경도잡지

댓글
  • 원더K 2020/04/29 12:52

    ㅋㅋㅋㅋㅋㅋㅋ글 잘쓰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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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셀러비 2020/04/29 12:52

    사진도 좋고 글도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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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직구만던져 2020/04/29 12:52

    기승전딸 ㄷㄷ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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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알묘 2020/04/29 12:52

    팔각정에 버리고 온 여친과는 그 후 어떻게 됐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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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기하라 2020/04/29 12:52

    재밌는 글 잘읽었네요
    애들 좀 크면 가족끼리 함 가봐야겠어요 낮에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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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엄준식엄 2020/04/29 12:52

    ㅎㄷ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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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BurgerQ 2020/04/29 12:54

    필력 ㄷㄷ 남산에 야노 야섹 즐기는 분들 킹근히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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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거실영웅담 2020/04/29 12:54

    글 잘쓰시네요 간만에 글이 살아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추천 박습니다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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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색단청 2020/04/29 12:54

    알묘// 쫑냈죠 뭐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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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해피한인생 2020/04/29 12:55

    글 읽고나서 북풍님인줄 알고 닉 확인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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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KISARAZU 2020/04/29 12:55

    글발이 이야 기가 막힙니다. 생생한 글발 덕에 몰입해서 읽었습니다.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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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색단청 2020/04/29 12:59

    BurgerQ// 글쿤요 ㄷㄷ 전 머리털 나고 처음 겪어봤어요 층간소음 경험도 전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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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GRIT 2020/04/29 13:00

    필력이 ㅋㅋㅋ 순식간에 읽었네요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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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색단청 2020/04/29 13:00

    수기하라// 낮애 가도 좋습니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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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호기심천국 2020/04/29 13:00

    결론은 ......쳤네 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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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Jisoo 2020/04/29 13:07

    잘헤어지셨습니다. 좋은 인연 만나실거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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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색단청 2020/04/29 13:26

    다들 감사합니다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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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ark61 2020/04/29 13:27

    필력이 펄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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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킹두기 2020/04/29 16:35

    스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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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Gerrard 2020/04/29 16:41

    아.. 그때가 좋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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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調律 2020/04/29 17:11

    자주 놀러 가는 동네 후암동 용산고 반갑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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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볼모차르트 2020/04/29 17:13

    잘 헤어지셨네요. 비교질은 점점 강도가 세지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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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조2 2020/04/29 18:50

    야노커플 일치렀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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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익스큐즈47 2020/04/29 19:19

    필력에 추천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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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진핑 2020/04/29 20:19

    아반떼든 r8이든.. 시간 내서 함께 한거 고맙다곤 못할망정.. 말뽄새가 못됐네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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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포칼라 2020/04/29 20:53

    ㅋㅋㅋㅋ 추천 박고 갑니다
    사람 생각하는게 다 비슷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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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비나리 2020/04/29 21:22

    글 잘 읽었습니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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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결혼기념일 2020/04/29 21:30

    후암동 거닐만하죠. 나름 운치있어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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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지터 2020/04/29 22:33

    이야 순간 심장이 이게 내가 계단 오르기 때문에 뛰는건지 흥분해서 뛰는건지 모르겠더라구요 ㅋㅋ
    이 부분부터 해서
    '짐승같이' 이후 최고 명문이네요 '시원하게'
    참고로 주토피아 케샤가 아니라 샤키라...한가지 흠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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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규콜하지 2020/04/29 22:36

    여담으로 12.12때 박통이 통행제한둔 북악산을 노통이 개방했죠. 서울을 끼고 있는 한양도성을 1주하는 코스가 있습니다.
    창의문, 숙정문, 흥인지문, 숭례문등을 나눠서 도는 코스가 아주 좋아요
    특히 북악산에서 청와대 - 경복궁 - 세종로 - 숭례문으로 이어지는 線이 정말 시원합니다.
    그 중간에 총독부건물이 있다고 생각하면 끔찍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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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키미영 2020/04/29 22:54

    신변잡기 수필 읽는 느낌이었습니다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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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알았어 2020/04/29 23:21

    교과서에 실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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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FLML 2020/04/29 23:28

    이따 다녀올까하는데, 네비는 어디로 찍어야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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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lgtwins23 2020/04/29 23:35

    아반떼.. ㅡㅡ 저도 아반떼 첫차로 잘타고 지금은 싼타페 갈아탔지만 차종류로 긁는거 남여불문 진짜 별로네요.. 하지만 기승전딸 ㅋㅋㅋ 재밌게 읽고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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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TheAdvisor 2020/04/29 23:59

    진성 불페너 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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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웁스 2020/04/30 00:19

    산속에 모기 많던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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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템페스트 2020/04/30 01:23

    헤어질 여친이라고 팔각정에 버리고 왔다니...재 정신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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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색단청 2020/04/30 03:30

    어이쿠.. 새벽에 일어나서 보는데 담장 걸렸네요;; 다들 감사합니다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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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색단청 2020/04/30 03:30

    오지터// 아 맨날 헷갈리네요 샤키라 캐샤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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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색단청 2020/04/30 03:31

    승규콜하지// 도성길 돌기 언젠가 한번은 하자고 생각은 하는데 좀처럼 잘 안되네요 ㅎㅎ 팁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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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색단청 2020/04/30 03:34

    FLML// 자정 다 되어가는 밤에는 남산공원 공영 주차장 찍고 가시는게 편할 것 같습니다 ㅎ 거기서부터 올라가다 보면 두번째 사진 포인트 나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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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색단청 2020/04/30 03:35

    템페스트// 어.. 좀 더 정확히 말하면 제가 팔각정에서 쫒겨난거지만....ㅋㅋ 만약 기분 상하셨다면 미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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