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 사진은 최초의 주미 공사관
‘피서옥(LEGATION OF KOREA, WASHINGTON)’에서 거주했던
박정양 초대 주미 조선국 공사와 그 일행 10명이다.
1888년도에 촬영했다.
앞줄 왼쪽부터 서기관 이상재(왼쪽 첫번째)· 참찬관 이완용(당시 30세, 왼쪽 두번째)· 주미 공사 박정양(왼쪽 세번째)· 서기관 이하영(왼쪽 네번째)· 번역관 이채연(왼쪽 다섯번째). 뒷줄은 수행원(경호원 1명, 수원 2명, 하인 2명)들이다.
이완용 부인이었던 양주 조씨(1887년 워싱턴, 당시 31세)
서양식 가죽장갑을 낀 모습이 인상적이다.
주미공사관 참찬관으로 부임하던 이완용을 따라 미국 워싱턴에서 찍은 사진으로
워싱턴 이브닝 스타지에 소개된 최초의 한국여성이다.
명문 양주조씨 태생으로 할아버지는 판서 조재순, 숙부는 영의정 조병세였다.
뛰어난 사교술과 적극적인 성격으로
미국 외교가에서 인기가 높은 부인이었다고 한다.
미국 국무부에서 우리 공사관으로 보내온 각국 외교관들의 명단.
1893년 10월 미국 국무부가 워싱턴 D.C.에 주재하고 있는
각국 대사관과 공사관의 목록 등의 현황을 정리해 펴낸 자료이다.
한문으로는 -주미 각관 관안초- 라고 적혀있다.
관안은 우리나라 말로 현직 관리들의 명부를 지칭한다.
1893년 10월 4일 공사 박정양이 공석이 되어서
우리측 외교관 이승수가 주미 공사관 서리공사를
맡고 있다는 사실을 정확하게 표기하고 있다.
미국 워싱턴에서는 한국(조선)도 당당한 주권 국가로서
여러 나라들과 대등하게 외교관계를 맺고 있었다.
주미 공사 박정양(1841∼1905)이
1888년 6월 12일 미국 워싱턴에서 서울로 부친 편지이다.
조선에 파견된 미국인 친구이자 육군교사(陸軍敎師·군사교관)
존 G. 리에게 보낸 서한이다.
------------------------------
한문 편지 해석
“리니(利尼, 존 리) 대인 귀하.
지난번 우리나라에서 온 서신으로 인해
귀 대인께서 경성(서울)에 편안하게 잘 도착했다는
소식을 듣고 정말 기쁘고 위로가 되었습니다.
연무공원(鍊武公院)은 제 생각으로는
이미 개설됐을 것으로 짐작되오니,
(한국) 군대의 위용은 이제부터 더욱 빛날 것입니다.
오직 바라는 바는 귀 대인께서 뜻대로 가르치셔서
정예병으로 키워주시는 것뿐입니다.
그렇게 해주신다면 참으로 다행이겠습니다.
편안하시길 바라며 이만 줄입니다.
무자년(1888년) 5월 2일
박정양 돈수(고개를 숙입니다).”
-------------------------------------------
영문 편지 해석
고향으로부터 편지를 받아보고는
당신께서 잘 계시다는 걸 알았습니다.
서울은 어찌 좋은 거 같습니까?
저는 당신이 동료들과 좋은 시간을 가지시길 희망합니다.
우리들은 모두 이곳(워싱턴)에 잘 있습니다.
변함없는 우리의 우정을 다짐하면서...
C. Y. Pak(박정양)
한문과 영문 모두
주미 조선국 공사 박정양의 친필로 보이는데
특히,
박정양이 쓴 영문 필기체의 유려함이 돋보인다.
박정양은 자신의 저서인 미속습유에서
"미국이란 나라는
여러 사람이 마음을 합해 만든 나라로
권리가 주인인 백성에게 있다.
그러므로 비록 보잘것없는 평민이라 할지라도,
나랏일을 자기 일처럼 돌보고
마음과 몸을 다해 극진히 하지 않음이 없다."
라면서 미국의 민주주의를 회상했다.
아래는 오늘날 복원한 주미 대한제국 공사관의 내부 모습.
한미우호의 요람, 주미대한제국공사관
미국 워싱턴 D.C. 백악관 북동쪽 로건서클에 위치한 주미대한제국공사관 건물은 미국 해군 출신 정치가이자, 외교관이었던 세스 L. 펠프스(Seth L. Phelps)의 저택으로 1877년도에 건립되었다.
구한말에 고관인 조씨는 전부 풍양 조씨인줄 알았는데 아니네요. 조병세는 을사조약을 반대하다 연금당했는데 그 조카가 이완용 부인이라.. 잘 봤습니다.
ffelix//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풍양조씨 말고도 양주조씨도 정말 대단했던 명문가입니다. 이완용이 그 집안의 사위였죠...고맙습니다!
박정양이라 함은 박정양 진보내각 할때의 그 박정양인가요
CHIMMY// 넵! 맞습니다...
좋은 자료, 글 잘 읽었습니다.
곁가지 이야깁니다만, 19세기에는 이씨를 영어로 Ye 라 표현했군요. 두음법칙을 적용하면 이게 Lee 나 Rhee 보다 우리 발음에 더 가까운데 어쩌다 안 쓰게 되었는지 모르겠습니다.
풍데쿠// 저도 그부분이 궁금합니다. 저땐 박씨도 park이 아니라 pak이라고 쓴 거 같습니다!
장수찬// 그냥 짐작인데, 흔하진 않지만 Lee 나 Park 이라는 미국 성씨가 있다는게 차츰 차츰 영향을 준게 아닌가 싶어요. 우리나라는 인명이든 지명이든 우리 발음에 최대한 가깝게 영문표기를 하는게 아니라 외국인들이 읽기 편하게 표기하자는 주의가 더 지배적이라 점점 Lee 나 Park으로 표기가 굳어졌지만, 19세기 말에는 아직 그런 경향도 없고, 미국인 Lee 씨나 Park 씨가 있는지 조차 잘 모르던 시절이라 저리 표기한 거 같네요. 좀 아쉽네요, Ye, Pak 저는 좋은데 ㅎㅎ
항상 재밌게 보고 있습니다.
대한제국에 대해서 인식정립을 더 올려줬으면 하네요
과거 구태들이 일제 타당성 주장하면서
조선중 흑역사인 말기를 그렇게 까는데
에초에 조선말기 다음은 대한제국이조
대한제국으로 바로 바로 가고 있는데
그걸 침략한게 일제입니다
조선과 대한제국은 어차피 같은거고
조선말기가 문제니 외세침략을 정당하다
이게.문제죠
조선의 연속성은 연속성이 있으니
그건 무관한건 맞죠
그러나 대한제국으로 오면서 이뤄지는 근대화노력을
모두 조선으로 몰아 비하시키는데 문제고
그게 지금까지도 쓰입니다
대한제국을 바로 정립해주는게
근대사를 정립해주는거라 봅니다
여기 작년 가을에 다녀왔는데 정말 잘해놨습니다. 근무하시는 분께서 해설도 자세히 해주십니다. 디씨 방문하면 꼭 들리시길 추천합니다
대한제국이 바로 가고 있었다고 하기엔
고종. 민비 삽질이.. 망하는길로 가고 있지 않았나요.
그냥 저는 조선,고려,삼국시대는 뿌리같은거고 우리 대한민국은 임시정부부터 새로 시작했다보면 맞는것 같음... 조선을 너무 미화할 필요도 없고... 폄하할 필요도 없고,,,
다만... 조선을 까면서 일제정당성을 이야기하는 사람들은 경계해야한다고 봅니다..
저당시에 갔다온 사람들은 공자왈 맹자왈하는 국내사정이 얼마나 한심해보였을까요? 괴리감이 엄청 컸을듯 물론 반민족행위를 한것에 대해서는 죽어마땅하나 내가 저상황이어도 임금이나 나라에대한 현타는 엄청왔을듯
박경림이 보이는것 같기도 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