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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때 승병들이 당한 취급.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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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92년 음력 8월18

2차 금산성 전투

 

1592년 음력 7월10일,

의병장 고경명과 관군의 연합부대가

고바야카와 다카카케가 이끄는 왜 6군이 점령 중인 금산성의 탈환을 시도하였다가

궤멸되었었다

 

이때 잠시 부대를 정비하기 위하여 금산성에서 철수하였던

왜6군은 조선군의 반격이 없자 다시 금산성을 점령하였고,

이후로 몇몇 의병대와 조선관군이 성의 탈환을 시도하였으나

번번히 실패하였다

 

음력 8월1일,

청주에서 히치스카 이에마사가 지휘하는

왜5군 후방부대를 격파하여 청주성을 탈환한

의병장 조헌과 승병장 영규가

선군이 번번히 탈환에 실패한 금산성을 목표로 진군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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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헌과 영규의 연합부대는

의병 1,000과 승병 800으로 구성된

약 1,800의 부대였다

 

자신들 단독의 힘만으로 노리기에는

금산성의 왜6군은 만만치 않은 부대였고

따라서 조헌은 각지의 관군과 의병대에 지원을 요청하였다

 

하지만,

충청도 순찰사 윤선각은 병력의 낭비를 우려하여 거절.

전라도 관찰사 권율은 금산성의 중요도가 낮다고 판단하여 거절.

경상도 의병장 곽재우 역시 다른 지역들의 우선도가 더 높다고 판단하여 거절.

 

거의 모든 관군과 의병대가 조헌의 지원요청을 거부하였다

결국 조헌과 영규는 단독으로 금산성을 공략하러 진군하였다

 

마지막으로 충청도 관찰사 허욱이 전령을 보내어

금산성 공략을 금지하는 경고를 하였고,

충청도 순찰사 윤국형이 의병대를 가로막아

진군을 방해하였다

 

이러한 사유로 그들이 금산성에 도달하였을 때는

사기저하로 인해 의병 300이 부대를 이탈하여

최종적으로 의병 700, 승병 800의 1,500의 병력만이 남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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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산성에 주둔하고 있는

고바야카와 다카카케의 왜6군은 약1만명

 

거기다 왜6군은 임진왜란 발발 이후 꾸준하게 전라도의 침공을 시도하여,

이를 방어하는 조선군과의 전투 경험도 쌓은 상대하기 버거운 적이었다

 

음력 8월17일

고바야카와는 조헌의 부대가 후방지원이 없는 단독 소부대인 것을 파악하여

그들을 포위섬멸하려 하였다

 

승병장 영규는 이대로는 승산이 없으니 조헌에게 철수를 건의하였으나,

 

"이 적은 본래 우리가 대적할 수 없는 것인데도 내가 속히 싸우려고 하는 것은,

오직 충의의 격동으로 사기가 한창인 이 때를 이용하려는 것이오."

 

라고 답하며 계속 싸우기를 원하였다

 

이튿날 새벽,

고바야카와는 비교적 진영이 잘 꾸려진 영규의 승군보단,

조헌의 의병대를 먼저 공격하기 시작했다

 

조헌의 의병대가 무너지자 영규의 승병대까지 순신간에 전열이 무너지며

조헌이 먼저 전사하였다

 

영규의 부하 중 누군가가 영규에게 도피를 건의하였으나

영규 역시 끝까지 싸우다가 전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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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투가 끝난 다음날

조헌의 동생인 조범이 시신을 수습하였다

 

음력 8월 22일

조헌의 제자인 박정량과 전승업이 모여와

장례를 치르고

칠백의사총(七百義士塚)

이라고 이름을 붙여 무덤을 만들어 주었다

 

왜 700인가?

총 병력은 1,500이었는데.

 

이 이유에 대한 민담이 존재하는데,

언제 왜군이 다시 올지 몰라서 급히 조헌의 병력만 수습해서 칠백의사총을 만들었고,

나머지 승군들의 시신은 방치했다라는 것이다

 

이는 당시 조선에 팽배하였던

불교 천시사상에 의한 불상사였다

 

물론 선조에게 직접 임명을 받은 8도 도통관 사명당 정도 되는 스님이었다면

얘기가 달랐겠지만,

평범한 승병장이었던 영규로서는 당시엔 큰 의미를 갖지 못했던 것이다

 

불교의 위상이 비교적 높아진 것은 임진왜란의 중반 이후부터였다

 

이로 인해 현대까지도 불교계에서는

칠백의총을 천오백의총으로 바꿔야한다고 이따금 주장하고 있다

 

베스트에 조헌 관련 글이 있길래 올려봄

댓글
  • 봉완미 2019/12/30 09:16

    임진왜란보면 노블리스 오블리제를 실현한 선비들이 많음. 그런데 실리보다 명분에 집착하다가 전황을 오히려 안좋게 만든 결과를 가져오는 문제점도 있었음.
    그렇지만 나라가 어려운데 스스로들고 일어난 진정한 선비들이라 뭐라 비판하기도 그렇다.

  • TheSalaryHunter 2019/12/30 09:15

    에휴..

    (ZzqPWb)

  • 봉완미 2019/12/30 09:16

    임진왜란보면 노블리스 오블리제를 실현한 선비들이 많음. 그런데 실리보다 명분에 집착하다가 전황을 오히려 안좋게 만든 결과를 가져오는 문제점도 있었음.
    그렇지만 나라가 어려운데 스스로들고 일어난 진정한 선비들이라 뭐라 비판하기도 그렇다.

    (ZzqPWb)

  • 루리웹-2200133966 2019/12/30 09:16

    조헌 이놈 트롤러잖아

    (ZzqPWb)

(ZzqPW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