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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로 살면서 경험한 썰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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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배드림을 우연한 계기에 알게되어 글을 본지 삼일째입니다.


저는 평생 공부만 하고 지냈습니다. 저와 다른 삶을 사신 분들의 이야기를 접하니 참 즐겁고 새로웠습니다.


저 또한 다른분들에게 흥미로움을 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글을 써볼까 합니다.


(참고로 현재는 대학병원을 떠나 병원에 근무하고 있습니다)


좋아하는 웹툰이나 소설을 볼땐 왜 감질맛나게 질질끄나 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막상 제 이야기를 곰곰히 생각해 써내려가려하니 놓치고 싶지 않은 과거들이 계속해서 떠오릅니다. 나이가 들수록 욕심을 버려야한다는데 그 아쉬움을 글쓰기로 풀고 싶나봅니다.


한가지 궁금한건 의사로 일했던 순간보다 간호사와의 추억/대화가 더 또렷하게 기억나는건 왜때문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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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인턴 수료증 대학병원을 떠나다


인턴을 수료했다. 학생에서 갓 벗어나 몸부림 치던 3월을 기억한다. 무수히 많은 환자들이 팔을 찔렀고 합법적으로 그들에게 생채기를 냈다. 칼을 들고 사람을 찔러서 혼나지 않는 직업은 의사가 유일할 것이다. 우리는 칼로 사람을 찌르면서도 죽이지 않는 방법을 알고 있다. 그것에 대한 자격이 의사 자격증이고 그러므로 살인자가 되지 않기 위해 평생을 노력해야한다.

인턴을 마쳤다고 뭐 대단한 능력을 갖게 된 것은 절대 아니다. 의사 사회에선 적어도 1년간 도망가지 않은 끈기 있는 놈이라는 훈장정도는 되겠지만...

어쨌든 1년만에 대학병원을 나오게 되었다. 당직 침대를 정리했다. 속옷 책 거울 로션... 로션은 사러갈 시간이 없어 친구놈껄 며칠간 썼다. 대개 1년정도 머물다 나오면 짐이 늘어나기 마련인데 들어올 때 1박스 그대로 가지고 나왔다. 병원에선 딱히 짐이 필요 없었다. 치열하게 살았던 1년동안 그래도 나만의 공간이었던 침대를 쳐다보니 눈물이 났다. 환자에 욕먹고 윗년차 선생님에게 욕먹고 간호사 콜 안받았다고 계속 윽박 지르는 상황에서 그나마 위로가 됐던 나만의 공간이었다. 4인 1실의 공간의 중앙 테이블은 성토의 장소였다. 

환자에게 멱살이 잡혀 들어온 한 동생이 욕을 하며 들어오길래 몰래 숨겨놨던 미니 냉장고속 맥주를 꺼내 동생에게 주었다. 차가운 맥주는 달아오른 동생의 화를 순간적으로 낮추어 주었다. 나머지 인턴들이 동생의 말이 귀를 기울이며 같이 욕 한바가지를 해준다.

동생은 본인이 잘못한게 아니라 환자가 잘못한것이라 생각해주는 든든한 지원군을 얻었다. 실제 상황이 어찌됐건 우리는 맥주 하나로 노여움을 풀곤 했다. 나를 제외한 나머지 3명은 본인들이 원하던 과에 합격하여 픽스턴을 돌고 있었고 그 방의 짐은 오로지 내것만 남아 있었다. 잠시 테이블을 쳐다보며 그때의 환상을 떠올리다 이내 깼다.

나는 다시 박스를 집어들고 병원 가운은 저 구석에 쳐박아둔채 나왔다. 마지막 자존심이었다. 내가 내 의지로 이 대학병원을 떠난다는 기백이라도 보여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20XX. 03. 01~ 20XX. 02. 28 의사 O O O  인턴 수료




2. 따뜻한 홍차의 기억



그녀와 대학병원에 있을때만큼 마주치지 못해 아쉽기는 했다. 수술방에서 지나가며 몰래 윙크하던 짜릿한 순간을 이제는 만들수 없게 되었다. 둘은 비밀 만남이 완벽하다 생각 했지만 또 누가 눈치채고 있었는지는 모르겠다. 

ㅈㅅㅇ 간호사와는 어느새 통화하는 사이가 되었다. 통화를 시작하면 2시간을 넘기기 일쑤였다. 내색하지 않았지만 서로 보고싶다는 말을 하지 못해 빙빙 둘러 2시간동안 한것 아니었을까 싶다. 한주가 흐르고 ㅈㅅㅇ 간호사의 오프날이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 나는 확인도 하지 않고 당연히 된다는 말과 맛있는거 먹으러 가자는 메시지를 남겼다.

3월이 되었고 어느새 날도 따뜻해지고 있었다. 우리의 옷차림도 많이 가벼워졌다. ㅈㅅㅇ 간호사도 병원 생활에 적응을 했는지 많이 밝아진 느낌이었다. 나또한 인턴 생활을 끝내 마음에 여유가 생기니 긍정적인 생각이 많아졌다. 자연스레 우리의 대화는 웃음꽃을 피웠다.

우리는 처음으로 카페에 갔다. ㅈㅅㅇ 간호사가 처음 받는 연오프날이었기 때문이다 (연오프란 토요일 일요일 연속 휴무일을 말한다)

홍차와 따뜻한 아메리카노. 차마시는 순간은 매우 소중하다. 대화를 하는 도중 마시는 차 한잔의 순간은 쉼표같은 대화의 묘로 사용할 수 있다. 그러나 식사는 그렇지 않다. 밥 먹는 순간은 맹그러온 분위기를 차갑게 만들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녀와 따뜻한 차를 마시고 싶었다.

3월이 되고 길가에 언 눈이 녹아가고 있었다. 잔디밭의 눈이 녹고 잔디가 돋아나면 어느새 푸르러질것이다. 우리도 겨우내 힘들었던 순간들을 벗어내고 기지개를 펴기위해 서로에게 따스함을 가하고 있었다. 

따뜻한 홍차가 식도를 타고 들어가니 몸의 근육이 이완된다. 그녀 또한 편하게 의자뒤로 몸을 기울였다. 홍차의 쉼표, 대화, 커피의 쉼표, 대화 가 반복되는 순간을 기억해 내려고 노력했으나 기억나지 않았다. 그 순간은 마치 햇빛에 녹아버린 눈밭처럼 순식간에 사라져 버렸고 그저 따뜻해졌구나 하는 느낌만이 남아있었다.

우리는 무슨 대화를 했을까? 기억 나지 않아도 좋다. 뭉뚱그려 따뜻했던 한순간으로 추억되어 있으니 말이다.


대화를 하다보니 10시가 훌쩍넘었다. 내 얼굴에는 매우 아쉬운 표정이 가득했다. 내 마음속 악마와 천사가 싸우기 시작했다.

악마 : 내일 오프라며? 그럼 맥주라도 한잔 더하자고 해!!!!

천사 : 아니야 악마의 유혹에 넘어가지마


 악마와 천사가 한참을 싸우고 오더니 천사는 어느순간 사라지고 없었다. 분명 악마의 논리에 KO 당한게 뻔했다.

나는 그녀의 오피스텔로 데려다주는 도중 과감하게 말했다.

" 혹시 맥주 한잔 할래요?"

"네 저도 아쉬웠는데 간단하게 맥주 한잔만 해요"


역시 악마가 옳았다. 천사놈이 진정한 악마임에 틀림없다. 악마가 아니었다면 난 그대로 훈련소에 끌려가 5주내내 후회만 했을것이다.


오랜만에 마시는 맥주가 정말 맛있었다. 편해진 복장만큼이나 우리의 사이도 편해진듯 했다. 맥주 한잔이 더욱 우리를 가까워지게 할줄은 몰랐다. 좋아하는 사람과 좁은 선술집에 앉아 오손도손 이야기하는 순간은 정말 행복했다. 맥주는 나를 행복하게 한다. 그녀도 나를 행복하게 한다. 나는 너무 행복한 사람이다. 더 과감해진다. 그러다 더 자주 만나고 싶었다는 말을 무심결에 내뱉었다.

그녀는 고맙다고 했다. 타지에서 올라와 힘든 자기에게 처음으로 힘이 되어준 사람이라고 말했다. 나도 고맙다고 말했다. 나의 의도를 나쁘게 보지 않고 봐주려고 생각해줘서 고맙다고 말했다. 우리는 그날 서로에게 하고 싶은 말을 내뱉었다. 문득 첨밀밀의 한장면이 스쳐 지나갔다. 이러다 키스를 해야 영화가 되겠지만 현실은 달랐다.

심장을 가로막고 있던 속마음을 하나둘씩 내뱉으니 심장이 겉잡을수 없이 뛰기 시작했다. 건장한 청년은 심박수가 200회이상 뛸수 없는데 조만간 제세동기가 필요할것 같았다. 그녀의 큰 눈을 보니 가만히 있을수 없었다. 곧장 일어나 손을 잡고 공원으로 달렸다.

그러지 않았다면 나는 쓰러졌을지도 모르겠다.


너무 행복했고 그녀에게도 행복을 주고 싶었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준비는 하지 못했지만 솔직한 마음을 담아 고백했다.

ㅈㅅㅇ 간호사도 고맙다는 눈빛과 함께 내 손을 꼬옥 잡아주었다.

우리는 그렇게 커플이 되었다.

그순간은 누구도 부럽지 않은 커플이었다. 나는 그녀를 집앞까지 데려다주고 연신 애정의 눈빛을 보내며 그녀를 보내줬다. 그리고 돌아서 우리집까지 쉬지않고 달렸다. 



다음 이야기 : 20대 후반에 강제로 당한 곰신이야기

댓글
  • 삐지 2019/12/21 20:55

    아싸 1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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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편단심들레 2019/12/21 20:55

    아싸 2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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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가진것없는자 2019/12/21 20:56

    의미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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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가진것없는자 2019/12/21 20:56

    아싸 3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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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낙화유수84 2019/12/21 21:01

    내가 오빠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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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흑늑대 2019/12/21 21:02

    현기증 난다구요. 후속 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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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가대표 2019/12/21 21:07

    아싸 4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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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닉아갈 2019/12/21 21:08

    군복과 간호복이라.. 어디서 많이 본 그림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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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와난천재인가봐 2019/12/21 21:09

    어? 검정스타킹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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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0살에첫차살꼬야 2019/12/21 21:09

    아니 이형 글 왜이리 잘써;; 갬성 터진다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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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햇귀 2019/12/21 21:09

    자까님!!
    계속 이렇게 우리를 애간장태우며 기다리게 하면
    어떻게 되는지 알아요?
    보배횽아들 풀어서 납치강금한다음에
    군만두만 주면서 글쓰게 하는수가 있습니다!!
    좋은말로 할때 빨리 다음편 내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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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동팔 2019/12/21 21:09

    아~ 지상열 간호사를 집에 보냈다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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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갬성폭발 2019/12/21 21:10

    아오 간질나네요 ㅋㅋ 다음편은 언제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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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04년식할머니소나타 2019/12/21 21:11

    10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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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엄마도방탄좋아 2019/12/21 21:14

    쌤~
    어지러워요
    담회 빨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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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주성아이제밥묵자 2019/12/21 21:15

    지상열 간호사랑 어디까지 진전이 아~~
    5편 빨리요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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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개독새k 2019/12/21 21:16

    헉.늦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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