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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B흔한 불페너의 첫사랑 이야기.jpg(Feat.실화)



출근은 했는데 오전에는 조금 한가해서 카톡친구, sns, 예전 메일함 등을 보다가


문득 아주아주 오래전 2003년도에 받았던 메일 한통을 발견했습니다.



첫사랑의 메일








혹시 시간 괜찮으신 분들 제 얘기한번 들어주세요ㅎㅎ


chp. 1 모든게 새로운 스무살


새로운 낭만이 시작되는 3월의 캠퍼스였습니다.

대학동기였는데 저는 본가가 학교 근처였고 그 애는 우리집이랑 같은 동네에서 자취를 했어요.


굉장히 이국적으로 생긴 친구였는데 스무살이라 풋풋하고 화장기 없는 그 얼굴이 저는 좋았습니다.

1학년때는 학교에서 시간표를 짜주니까 시간표가 같아서 늘 집까지 같이 걸어갔어요


지금도 생각나는건 같이 걷는 그 시간이 굉장히 빨리 흘렀다는것

늘 가방끈에 손을 올리고 걸었다는것 정도네요. 


한번은 자취방 주방등이 나갔다고 해서 꼴에 남자라고 큰소리치며 전등을 갈아주러

간적이 있었습니다. 아무런 티도 없이 이런것도 못하냐고 핀잔을 주곤 했지만


사실 여자방에 들어가본건 그때가 처음이라 심장이 쿵쾅거렸죠.

샴푸냄새 가득한 그 방에서 우린 자장면도 시켜먹고 과제도 했었습니다.



chp. 2 가질수 없는 너


정말 수수하게 생긴 그 친구는 여름방학 때 고향에 돌아가서는
살도 좀 빼고 화장도 배우고 앞머리도 길러서 넘기고 안경대신 렌즈를 끼고 치마도 입기 시작했죠


절세가인이 된건 아니었지만 달라진 그녀의 주변엔 저 말고도 항상 사람이 많아졌고
저의 정체성은 그냥 그애랑 약간 친한 애 정도가 되었습니다.


사실 그렇게 되기 전 그애와 같이 걷는 그 길에서부터 좋아하고 있었지만 

친구라는 가면을 쓰고 복학생 선배와 사귀게 된 그애를 축하해줬습니다.

그 후 전 군대를 갔고 훈련병때 받은 편지 2통과 전역하면 꼭 보자는 미니홈피의 방명록이 전부였죠.


chp. 3 가슴절절한 사랑은 아니었음을..


전역 후 다시 돌아온 캠퍼스는 여전했지만 저는 더 이상 주인공은 아니었습니다.

복학신청을 한 후에야 그애가 자퇴한 걸 알았지만 궁금함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기에

저는 저대로 학교생활을 이어갔습니다. 물론 다른사람처럼 CC도 하면서 말이죠.


chp. 4 지금 알고있는것을 그때도 알았더라면..


우연은 생각보다 늦게 찾아오더군요.

졸업을 1학기 남기고 취업준비를 위해 서울에 가있던 시절 모든게 낯설어 고향과 예전 20살때가 막 그립기 시작할 무렵 부산행 KTX를 기다리는데 누군가 다가와서 고개를 빼곰 내밉니다. 더욱 화려해지고 이뻐졌지만 한눈에 알아볼수 있는 그녀..


서울에서 방송쪽 아카데미를 다니고 있다는 그녀는 초라한 저와 다르게 세련되고 멋졌습니다.

무엇에 홀린듯 저는 기차를 타지 않았고 그녀가 지내고 있다는 강남으로 함께 가서 이름모를

선술집에 앉았습니다. 


살아온 얘기, 만났던 사람 얘기 등을 하면서 웃고 울며 시간가는줄 모르고 술을 마셨고

연락처를 교환하고 자주 보자고 약속을 하며 마지막 잔을 기울이던 그녀가

술기운인지 뭔지 이렇게 말하던군요 "얼마 살지도 않았지만 스무살의 봄이 제일 좋았던거 같다"고


아련한 첫사랑에게 뭔가 보상을 받는 듯한 기분이 들며 눈시울이 붉어졌습니다.


chp. 5 남자의 첫사랑이란..


그 후로 그녀를 더이상 보진 못했습니다.

궁금한건 사실이었지만 그땐 살아가는게 우선이었기에..

마지막 만남 후 벌써 10년이 지났고 그 사이 저는 결혼을 했고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딸과 아들도 얻었습니다.

무서운 마누라지만 세상에서 제가 제일 사랑하는 사람도 있구요.


다만 그냥 그때 그 시절이 그립기는 합니다. 세상을 잘 몰라 더없이 순수했던 그 시절..

과거의 그녀와 저는 아직도 여전히 그 골목길을 함께 걷고 있을테니까요..

댓글
  • 박병호♥ 2019/12/19 12:53

    필력이 ㄷ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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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쯔와찌 2019/12/19 12:54

    글 이쁘게 잘쓰시네요 피천득님 수필본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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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헤븐이즈 2019/12/19 12:55

    메일 이미지파일이 안 나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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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달님짱 2019/12/19 12:55

    자주보자고했르면서 왜 연락도 안 하셨나요?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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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2년가입 2019/12/19 12:56

    천득이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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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바보주전자 2019/12/19 12:56

    아련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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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調律 2019/12/19 12:57

    너무 술술 읽히네요
    그 감정도 너무 공감되구요
    그런 아련한 추억들 너무 그립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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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피장 2019/12/19 12:57

    사랑이라면 사랑이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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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marky792 2019/12/19 14:27

    다른 곳에 퍼가도 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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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4Justice 2019/12/19 14:31

    좋네요. 이루어지지 않은 사랑이라서 더 아련하고 평생 간직할 수 있는 것 같아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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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WhiteCrow 2019/12/19 14:49

    그래도 추한 모습 안보인 담백한 헤어짐이었기에 더 아련한 추억으로 남는거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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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불꽃남자혁 2019/12/19 14:52

    이뤄지지않은 첫사랑이야기가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받는 이유가 바로 이거죠
    그시절 우린 미숙했고 사랑을 시작하는 법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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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보성LG태윤 2019/12/19 15:25

    잘읽었습니다...
    첫사랑 생각나네요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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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슈가 2019/12/19 15:40

    좋네요 저도 어릴적 첫사랑 떠오르게 하는 글이네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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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호야가자 2019/12/19 16:34

    박병호♥// 필력이랄것도 없습니당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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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호야가자 2019/12/19 16:34

    쯔와찌// 피천득님이라뇨 아닙니다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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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호야가자 2019/12/19 16:34

    헤븐이즈// 왜 안나올까요??ㅠ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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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호야가자 2019/12/19 16:35

    달님짱// 그 당시 기억을 더듬어보면 취업준비에 허덕였고
    주머니 사정도 좋지않아 선뜻 보자고 하기가 힘들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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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호야가자 2019/12/19 16:35

    marky792// 넵 괜찮습니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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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라인드라입 2019/12/19 16:41

    우와... 형 멋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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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클립쉬 2019/12/19 17:25

    캬~~~~~~~~~~~~~~~~
    누구에게나 20살의 설레임은 다 있는 듯 하네요....
    저도 비슷한 경험을 해서 더더욱 그런지 몰라도..
    오랜만에 좋은 글 잘 읽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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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cott 2019/12/19 17:47

    답글달려고 로그인 합니다.
    윤종신의 "오래전 그날" 노래를 들으면 그냥 눈가가 촉촉해지면서 아련하게 떠오르는 몇가지 장면이 있습니다.
    이 글이 절 또 그렇게 만드네요......
    교복을 벗고 처음으로 만났던 너
    그 때가 너도 가끔 생각나니
    뭐가 그렇게도 좋았었는지 우리들만 있으면
    너의 집 데려다주던 길을 걸으며
    수줍게 나눴던 많은 꿈
    너를 지켜주겠다던 다짐 속에
    그렇게 몇해는 지나
    너의 새 남자친구 얘길 들었지
    나 제대하기 얼마 전
    이해했던 만큼 미움도 커졌었지만
    오늘 난 감사드렸어
    몇 해 지나 얼핏 너를 봤을 때
    누군가 널 그토록 아름답게 지켜주고 있었음을
    그리고 지금 내 곁엔
    나만을 믿고 있는 한 여자와
    잠 못 드는 나를 달래는 오래전 그 노래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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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트정 2019/12/19 19:37

    아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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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마운틴듀 2019/12/19 19:51

    얘기 잘 들었어요 ㅎㅎ
    글이 담백해서 더 좋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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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침산라이온즈 2019/12/19 20:01

    자취방 얘기에서 설렌건 저 뿐인가요...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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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ilikeom 2019/12/19 20:23

    마지막 만남에서 반전이 없어 더 좋네요
    혹여나 첫사랑이 지금 나랑 사는 사람임 이럴줄 알았는데 ㅎㅎㅎ
    좋은글 잘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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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미파이브 2019/12/19 21:24

    그 때는 너무나 어렸었기에~ 그녀의 소중함을 알지 못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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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여운형 2019/12/19 22:18

    피천득 선생과 다른 행보를 하셨군요. 요동치는 가슴을 부여잡으며 읽었습니다. 오늘 이글 덕분에 감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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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vhftiq 2019/12/19 23:14

    와 저랑비슷한세대신가봐요 저도2001년메일보면 첫사랑이보내준게있는데 절대못지우고 가끔 박정현노래들으며 그당시회상해요 정말 그2001년도 저와 그친구는 어디로갔을지 같이이야기하던 그날밤이떠오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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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물병자리 2019/12/19 23:17

    저도 스무살 어느 봄날 그녀와 걸을 때 스쳐지나간 바람이 오래 기억되더라고요
    지금도 4월 밤바람이 살결에 닿으면 으레 그시절이 생각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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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호야가자 2019/12/19 23:22

    아이고 청승한번 떨었는데 좌담에 올라가다니요..
    추천해주신 분들 감사합니다.
    사는게 갑갑해도 우리도 가장 찬란했던 순간 하나쯤은 있는거라고
    생각하고 싶네요
    저의 글로 인해 잠시나마 행복하셨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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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엑셀시어 2019/12/20 00:16

    20살 때 울고 웃고 많이 한거 같네요. 이 글을 보니 그 당시의 아련함이 느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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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Massimo 2019/12/20 00:37

    절절하지 않아서 더 좋네요 ㅎㅎ 아련함으로 남아서 좋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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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룩킹삼진 2019/12/20 01:00

    아.... 아련......
    세번째는 아니 만나는 것..... 은 개뿔...
    늦어도 괜찮으니 저에게도 그런 우연이 한번만 왔으면 좋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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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간지후폭풍 2019/12/20 01:16

    매년 봄이 오면 보고 싶은 한편의 독립영화 같은 내용의 글이네요. 시나리오 작가로 활동하셔도 될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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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tlranfdnjs 2019/12/20 01:55

    아진짜 아련하네요
    아주 좋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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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tlranfdnjs 2019/12/20 01:57

    마지막문장보니 어제 유튜브에서본 다중우주론이 생각나네요
    어째든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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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평행선 2019/12/20 02:22

    아련해지네요
    저에게도 있었던 스무살의 그 때
    좋은 글, 좋은 기억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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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브랑쿠시 2019/12/20 02:35

    정말 아련해지는 글이네요. 글 잘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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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성 2019/12/20 02:42

    필력은 좋은데 뭔가 내용은 많이 부족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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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하늘하늘새 2019/12/20 03:31

    부럽네요 좋아했던 사람과의 추억이 있다는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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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델리피 2019/12/20 03:32

    chp.4 제목보고 깜짝 놀랐네요. 선명해 지는 시간 가사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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