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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피노키오의 꿈

말하는 목각인형, '피노키오'가 나타났다는 소문이 돌았다.

인증과 제보가 잇따르자, 흥미를 느낀 한 방송국에서 취재를 떠났다.
소문의 진원지는 산속에서 자연인처럼 홀로 사는 한 노인의 집이었는데, 그곳에 도착한 방송국은 경악했다!

[ 안녕하세요? 오늘은 손님이 많네요! ]

혼자서 움직이고 말하는 목각인형, 피노키오가 정말로 존재하고 있었다!
방송국은 당장 검증에 들어갔다. 노인의 복화술도 아니었고, 어떤 기계적 장치도 아니었다. 
진짜 나무인형에 생명이 깃든 피노키오였다! 
다만,

" 저, 저기! 거짓말 한 번만 해볼래? "

[ 또 이러시네! 전 피노키오가 아니라니까요? 거짓말을 한다고 코가 길어진다는 게, 현실적으로 말이나 돼요? ]

" 아.. 그, 그래? 미안.. "

목각인형의 이름은 '철수'였다. 노인이 지어준 이름이었다.
그래도, 방송 타이틀은 '피노키오'로 나갔다. 파급력을 생각하면 당연한 결정이었다.

방송이 나가자마자, 산속 노인의 피노키오는 세계적으로 유명해졌다. 
사실상, 실존하는 '기적'이라 불리며 세상 사람들의 모든 관심이 집중된 것이다.
노인은 어쩔 수 없이 산에서 내려올 수밖에 없었다.

곧바로 전 세계 생방송 무대가 꾸며지고, 피노키오의 신비한 모습을 전 인류가 볼 수 있게 되었다. 
그 무대에서, 노인에게 당연한 질문이 쏟아졌다.

" 어떻게?? 도대체 어떻게 된 일입니까? "

노인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그냥 어느 날 일어나보니 이미 그렇게 되어 있었습니다. "
" 아. 어느 날 갑자기요? "
" 예. 저는 그냥, 신께서 외로운 제게 선물을 주신 거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
" 아~ 신께서-... "

노인의 대답은 사람들의 미간을 좁히게 만들었지만, 사실 그런 대답이 아니면 설명이 되지 않았다.
사회자가 이끌어낸 좀 더 자세한 사정은 이랬다. 

10년 전 가족을 잃고 속세를 등진 노인이, 외로움에 나무를 깎아 목각인형을 만들어 말벗으로 삼았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일어나보니 목각인형에 생명이 깃들어 있었다. 노인은 자신의 독실한 신앙심에, 신께서 선물을 주신 것으로 생각하고 살았다.

납득할 순 없었지만, 노인의 말이 거짓말 같지는 않았다.
결국, 사회자는 피노키오에게 물었다.

" 저기, 너는 어떻게 생겨난 거니? "

의자의 피노키오는 어린 소년의 모습처럼, 나무 팔다리를 흔들며 장난기 어린 말투로 대답했다.

[ 어디부터 말씀드려요? 나무였던 시절부터요? ]

" 음...처음부터 뭐든지 기억나는 대로 부탁할게. "

[ 음~ 한 9년 전이었나? 할아버지께서 정성을 다해 저를 조각하셨어요. 아마 처음이셨을 거예요! 그러니까 이렇게 못생겼지! ]

" 아 그래? 내가 보기엔 귀여운데? "

[ 에이 거짓말~ 헤헤.. 아무튼, 할아버지는 항상 저를 애지중지 아끼셨어요. 혼자서 말도 안 되는 대화도 많이 하셨고요. 하하 ] 

" 그래그래. "

[ 그러다 한~ 5년쯤 전? 새벽이었어요. 할아버지의 소원을 들어주러 신이 찾아왔어요! ]

" 신? "

[ 예! 할아버지는 주무시느라 기억 못 하시지만, 분명 그건 신이었어요! 신은 할아버지의 소원을 들어주었고, 그때부터 저는 움직일 수가 있게 되었죠! 할아버지는 더는 혼자서 대화할 필요도 없어졌고 말이에요! 하하 ]

" 으음... "

결국, 결론은 '신'이었다.
이 방송으로 인해 인류는 신의 존재를 믿게 되었다. 그게 아니고서는 피노키오의 존재를 설명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물론, 수많은 과학자와 연구진이 피노키오에게 달라붙었다. 하지만,

[ 아앗! 그렇게 아프게 만지지 마세요! 저 아픈 건 싫어요! 그리고 나무가 불에 얼마나 약한지 아시죠? 조심해요! ]

" 아, 미안하다. 살살할게. "

실제 아이처럼 행동하는 피노키오를 정밀하게 해부한다거나, 가혹한 실험을 시도해볼 순 없었다.
이미 방송을 통해 어마어마한 팬덤이 형성되어 있었기에 더욱 그랬다.
끝내 과학은 피노키오의 정체를 증명해내지 못했고, 피노키오는 사랑스러운 '신의 기적'으로 남겨졌다.

이후 피노키오와 노인에게는 정말로 많은 일이 생겼다. 
수많은 방송에 출연하고, 전 세계를 순방하면서 어마어마한 팬덤을 형성했다.
국가는 발 빠르게 피노키오에게 국적을 부여하고 철저하게 보호했다. 또한 인형을 비롯한 관련 굿즈와 관광산업, 재단설립, 자선행사, 영화출연 등등.. 국가 차원에서 피노키오를 관리하고 지원했다.
당연한 일이었다. 피노키오는 현재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존재였으니까.

또한, 당연한 수순으로, 노인이 믿는 종교가 전 세계적으로 대부흥 했다. 피노키오의 존재 자체가 신의 증명이었기 때문이다. 
그와 동시에 또 한 가지 현상이 벌어졌는데, 제2의 피노키오를 꿈꾸는 사람들의 등장이었다. 
그들은 저마다 나무를 깎아 목각인형을 조각했고, 간절하게 기적을 바랐다.
누군가는 외로워서, 누군가는 유명해지고 싶어서, 누군가는 신에 대한 믿음으로... 사람들은 제2의 피노키오를 꿈꾸며 나무를 조각했다.
하지만 누구도 성공하지 못했고, 피노키오는 유일했다.

그래서 피노키오는 소중했고, 누구든 피노키오의 영향력을 이용하고 싶어 했다. 
대표적으로, 국가와 종교의 힘겨루기가 있었다.

종교는 신을 핑계로 피노키오를 총단의 관리하에 두기를 원했고, 국가는 국적을 핑계로 회피해왔다.
한데 시간이 지날수록 종교의 영향력은 강해졌고, 국적을 부여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느낀 국가는, 노인에게 피노키오를 자식으로 입양할 것을 권했다.
노인은 마다치 않았고, 피노키오는 정식으로 노인의 호적에 올랐다. 그러면서 피노키오를 학교에 입학까지 시켰다.

국가의 전략은 정확히 적중했다.
전 세계의 팬들은, 피노키오가 평범한 아이처럼 행복해지길 바랐지, 종교적인 상징으로 총단에 남겨지기를 바라진 않았던 것이다.

결국, 종교 총단은 피노키오를 소유하는 것을 포기했다. 대신, 피노키오에게 공식적으로 '신의 사자' 자격을 부여하겠다며, 총단에 한번 방문해줄 것을 요청했다. 
그것까지는 국가가 막지 않았다.

모든 이들이 주목하는 가운데, 피노키오가 총단을 방문했다.
그것은 종교인들에게 하나의 축제였고, 전 세계인에게도 마찬가지였다.

전 세계에 실시간 생방송으로 화면이 송출되는 가운데 수여식이 진행됐다. 
한데 그때,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 너희들의 믿음이 하늘에 닿았구나 ]

하늘 위에, 진짜 '신'이 등장한 것이다!

" 우와앗-! "
" 오오오-! "

진짜 신의 등장에, 너나 할 것 없이 모든 사람들이 놀라고, 또 감격했다.
피노키오는 신을 가리키며 발랄하게 말했다.

[ 우와! 그때 그 신이다! 모두 내 말이 맞죠? 그쵸? 헤헷 ]

신은 인자한 미소를 지으며 피노키오를 향해 말했다.

[ 무엇이든 네 소원을 한가지 들어주겠다. ]
[ 우와! 정말요?! 무엇이든지요?! 만세-! ]

" 오오오~! "
" 와아아~! "

전 세계의 사람들은 신의 말에 환호했다! 
피노키오의 꿈이 무엇인지는 뻔한 것이었다.
눈치 좋은 카메라는 피노키오와 노인의 모습을 번갈아 비췄는데, 노인은 어느새 감격으로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전 세계의 사람들도 드디어 피노키오가 꿈을 이루는 날이 왔다며 감동했고, 노인처럼 벌써 눈물을 흘리는 이들도 있었다.


기뻐서 펄쩍펄쩍 뛰던 피노키오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얼굴로, 신을 향해 소원을 빌었다.


[ 저는, 건강한 소나무가 되고 싶어요! ]


" ... "

피노키오는 나무였다. 다시 예전처럼 건강한 나무가 되고 싶은 게 당연한 소원이었다.

사람들은 할 말을 잃었다. 
왜 당연히 인간이 되고 싶어할꺼라 생각했을까?
무슨 권리로, 무슨 짐작으로, 무슨 염치로?

행복한 피노키오는 다시, 소나무가 되었다.

이 사건으로 충격에 빠진 인류는, 한마음으로 자연보호를 약속했다.
나무들은 쑥쑥 자랐다. 인간의 거짓말을 알고 있는 것처럼.

댓글
  • 복날은간다 2017/02/28 22:05

    초기에 쓴 이야기들을 다시 보면서, 약간 그때 느낌을 살려보려고 해봤어요. 그래서 초기처럼 덜컥덜컥 거릴 지도 모르겠네요 하하하하
    항상 감사합니다! 행복하세요~~~  저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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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도레솔 2017/02/28 22:11

    아....
    인간의 오만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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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처음타본UFO 2017/02/28 22:36

    '피노키오는 생각하는 것을 그만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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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둘후믹 2017/02/28 23:43

    원래의 나 로 돌아가고 싶은 피노키오
    원래의 나 로 돌아갈수 없는 이 세상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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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june0422 2017/02/28 23:44

    인간에 대한 통찰력이 근사하십니다 ㅎㅎ
    멋져요 정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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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TwiMyWaifu 2017/02/28 23:57

    와 막줄 소름돋아서 폰 내려놓다가 떨어져서 필름깨짐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여러모로 인상깊네요 항상 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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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主希 2017/03/01 00:11

    와... 대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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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노군 2017/03/01 00:41

    마지막줄이 정말... 마음에 남네요... 피노키오라는 제목이랑 너무 잘 어울리는 엔딩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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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뭣이중헌디 2017/03/01 00:51

    할아버지가 걱정이 되네요..
    근데 피노키오도 이해가 됨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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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죠르노_죠바나 2017/03/01 00:53

    피노키오가 어떤 마음인지 알 것 같네요.
    다만 그후 할아버지가 걱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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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클리셰마스 2017/03/01 00:58

    와...나무가 되고싶을거라곤 생각도 못해봤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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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남우극성맘 2017/03/01 01:40

    복날은간다님! 요즘 인생노잼의 시기를 보내고있는 사람입니당 그 와중에 타 사이트에서 다른사람이 퍼온 복날님 글을 접하게되었고, 언제 새글이 올라오나 오매불망 기다리다가 결국 여기까지 찾아오게됐습니다! 노잼하루를 보내고 침대에서 복날님 글 읽다가 잠드는게 요즘 저의 가장큰 재미랍니다
    사실 눈팅만하면서 글 아껴보고있었는데요, 오늘 글읽으니 회원가입하고 댓글을 남길 수 밖에 없네요....재밌는 글 올려주셔서 항상 감사하다고 느끼고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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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arp 2017/03/01 01:54


    굿! 베리 굿! 베리베리 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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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Y- 2017/03/01 02:26

    즐겁게 봤습니다!
    언제나 좋은 글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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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새로운소원 2017/03/01 02:47

    으아 소름이 쫙 ㅎㅎ 오늘도 잘 보고갑니다! 항상 감사해요 좋은글 읽게 해주셔서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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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월령검사 2017/03/01 05:04

    와....인간들을 모두 목각인형으로 만들줄 알았는데....
    이건 그것보다 더 반전이네요.
    건강한 소나무라니..ㅎㄷㄷ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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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hemingaway 2017/03/01 05:26

    하긴... 인간이었는데 갑자기 나무가 나를 들고 막 이리저리 변형시키더니 왠 나무 비슷하게 만들어놓고 계속 말걸다가 신이 진짜 나무 행세를 하게 해줬다면 나무인척은 하겠으나 인간으로 돌아가고 싶을듯...
    나같아도 소원들어달라고 할때 인간으로 다시 되돌려달라고 할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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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투맘 2017/03/01 07:13

    복날님(아니 혹부리아저~었씨) 오랜만에
    베오베에서 뵙게 되네요
    요새는 공게를 못가봤어요
    시기가 시기인지라 아무래도 시사쪽으로
    눈과손이 움직이네요
    무슨 손가혁도 아닌것이 말이죠 ㅋ
    어찌되었거나 복날님 너무 반가워요
    앞으로도 이곳에서 자주 만날수 있었으면
    조~옼 켔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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