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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젠 밤 늦게 커피를 마시니 잠을 설치는군요...

일단 나이부터 밝히자면 35세 한창 돌도 씹어먹긴 하지만 배는 좀 아플 나이입니다.
커피를 좋아해서 마시는 것 뿐 아니라 내리는 것도 점차 다양하게 익혀왔습니다.
원체 카페인을 안 타는 체질이다보니 하루에 몇 샷을 마시건 수면에 영향이 없었습니다.
자기 직전에 커피를 마시는 제게 누군가가, 잠에 방해가 되지않냐고 물으면 되려
"난 오히려 따뜻한 물이 몸에 들어와서 그런지 잠이 더 잘 와."라고 대답하곤 했습니다.
그런데 딱 35세가 된 올해 4월부터, 어느날 갑자기 거짓말처럼 잠을 설치더군요. 처음엔 불면의 원인을 몰랐습니다만 패턴이 반복되면서 한 2주만에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게 참 불쾌한 느낌이더군요.
또렷한 정신으로 유지되는 것이 아니라, 마치 금방이라도 잠이 들 것 같은 느낌이 밤새 내내 2~3분 간격으로, 왔다가 금새 저만치 달아나고, 눈 앞까지 왔다가 다시 훅 떠나가고, 이런 술래잡기가 유지되었습니다.
그 원인이 커피에 있었다는 것과 오후 7시 이후에 영향을 받게 된다는 것을 경험적으로 알게 된 후로는 하루에 4샷(보통 아메리카노 두 잔)을 초과하지 않으려고 신경썼고, 특히 어두워진 뒤로는 섭취를 절제하였습니다.
그런데 어제 그 사실을 까맣게 잊고 매우 정성스럽게도, 제가 가장 좋아하는 추출 조건 -15기압으로 30초- 를 맞춰서 투샷을 진하게 내렸고 250ml, 92도의 물과 함께 고소하고 진득한 크레마를 만끽해버렸지 뭡니까.
얼마나 까맣게 잊었냐면, 방금까지도 잠을 설치는 원인을 몰랐답니다. 새벽 5시가 되어서야 간밤 늦게 마신 커피가 원인이란걸 생각해냈고 혼자 큭큭거리며 실소를 하였습니다.
3년 전이었을까요.
커피를 좋아해서 사비로 사무실에 머신까지 사다놓고 마셔대던 저에게 지긋한 동료분께서 하셨던 말씀이 떠올랐습다.
"나도 자네 만할 때는 하루에 몇 잔이고 마셔도 전혀 문제가없었어. 그런데 이제는 아니야. 언제부터인지는 모르겠어. 자네도 언젠가는 그럴거야. 너무 많이 마시지 말고, 그럴 때가 오면 그러려니 해."
저에게 그 순간이 서른 다섯 어느 봄날이었다는, 비교적 정확한 시점으로 기억할 수 있다는 사실이 묘하게 뿌듯합니다. 빈 텀(term)을 두지 않고 뭔가를 계속 해왔기에 그로 인한 변화를 보다 세밀하게 나뉜 시간의 간격으로 알아차릴 수 있었다는 이유에서일까요.
한 시간 반 뒤에 부모님과 함께 진안 용담호로 물안개를 찍으러 가기로 했습니다. 운전하는 동안에 미뤄진 잠이 찾아올까 살짝 걱정이 되기도 합니다.
오늘은 어제보다 맑고 화창한 날입니다. 남은 주말 잘 보내시고 몇 시간이라도 짬이 나면 소중한 사람과 깊어가는 가을을 만끽하는 기회를 가지시길 기원합니다.
Contax S2 / BW400CN(유통기한 2004년9월) / Opticfilm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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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nnon nF-1 / Reala100(유통기한 2007년4월)/ Opticfilm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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