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들 조공이라고 하면 상당히 굴욕적인 외교관계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그렇지만 조공이라는 관계가 썩 나쁜 것은 아니였는데
기본적으로 조공은 일종의 무역이였다.
그런데 이런 조공관계는
기본적으로 상국인 명나라가 체면때문이라도 번국이 바친 공물보다
더 많은 양을 선물로 하사해야했다
그러니깐 조공이란 관계는 경제적으로 명나라에게는 손해를,
조선에게는 이익을 안겨주는 셈이였다.
특히 조선은 다른 나라와 다르게 엄청난 특혜를 받았었는데
일본은 10년에 한 번 조공을 바칠 수 있거나 이마저도 못 가는 경우가 많았고
베트남과 태국은 3년 1공,
류쿠왕국은 2년 1공이였던 반면,
조선은 황제의 생일, 황비의 생일, 정월 대보름을 경축한다는 명분으로
무려 1년 3공이라는 파격적인 해택을 받고 있었다
이 때가 태종 이방원이 집권하던 시절이였는데,
태종은 이러한 조공관계를 철저히 조선의 국익을 위해 아주 잘 써먹고 있었다
ex) 여진---(말)--→조선(댓가로 면포 45필 지급)
조선---(말)--→명(댓가로 면포 500필 받음...)
태종 이방원(조선 3대 국왕):ㅋㅋㅋㅋㅋㅋ 이 명나라에게서 돈이나 빼먹으니
기분이 썩 괜찮아
영락제(명나라 3대 황제): 저 새1끼들만 이득보니 배알이 꼴리네...
야 이방원!
하하, 황제님 안녕하셨습니까!
기존의 1년 3공에서 3년 1공으로 바꾼다
이의 없겠지
!
할꺼지? ㅎㅎㅎ
(시X)
뭐 그렇다면 3년 2공은 어떤가?
(이러면 순순히 승낙하겠지?)
1년 3공
이러니 명이 조선의 상국이었지. 그런데 대국 쌉소리 시전하는 조렬한 지금의 중국은 무엇?
사실 영락제 성깔 생각하면 진짜 다행임
명나라 주변국 조공 횟수
조선 : 1년에 3번
오키나와 : 2년에 1번
베트남/태국 : 3년에 1번
일본 : 10년에 1번
일본은 왜구 단속 못한다고 영락제가 빡돌아서 10년에 1번으로 제한해버림
그러다보니 일본은 외래문물에 대한 갈증이 커서 포르투갈 등 서양 상선이 왔을 때 교류에 아주 적극적이었음
영락제는 당시에 사실상 난일으켜서 즉위했으니 외부세력 건드려봐야 좋지 않았던 점도 한 몫 했을듯.
근데 청나라 들어서고는 시이발 일방적으로 뺏기는 입장이 되버려서...
사실 영락제 성깔 생각하면 진짜 다행임
이방원 : 그 명나라 다녀와봤는데 왜요 ㅎㅎ
이러니 명이 조선의 상국이었지. 그런데 대국 쌉소리 시전하는 조렬한 지금의 중국은 무엇?
영락제는 당시에 사실상 난일으켜서 즉위했으니 외부세력 건드려봐야 좋지 않았던 점도 한 몫 했을듯.
저런거 보면 이방원이 진짜 대단한 사람이었구나 싶음
대단하지. 자기 처가도 쓸어버리고 공신들 목 쳐버리고 세종 처가까지 쓸어버렸는데.
아니 미친 영락제 때 저랬다고?
근데 청나라 들어서고는 시이발 일방적으로 뺏기는 입장이 되버려서...
명나라 주변국 조공 횟수
조선 : 1년에 3번
오키나와 : 2년에 1번
베트남/태국 : 3년에 1번
일본 : 10년에 1번
일본은 왜구 단속 못한다고 영락제가 빡돌아서 10년에 1번으로 제한해버림
그러다보니 일본은 외래문물에 대한 갈증이 커서 포르투갈 등 서양 상선이 왔을 때 교류에 아주 적극적이었음
나중엔 몰래 밀무역하다가 걸려서 가정제 때 아예 조공무역이 금지당함
일본이 임진왜란을 일으킨 것도 중국과의 교역을 재개하려는 의도도 있었음
그러면서 공녀와 환관은 왜 바쳤는지;; 거기다 국내 금/은광 광업이 쇠퇴한 걸 보면;;
영락제:대신 많고 많은 매를 내놔라
한반도의 똘끼는 저것도 글치만 진짜 화려하게 미친짓했던건 고려죠
누군가 아래로 고려의 만행?을 올려주실테니 전 이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