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의 앵커 브리핑을 시작하겠습니다.
"신에게는 12척의 배가 있습니다."
일본이 수출 규제로 공격해온 이 후에 명량에서 일본의 적선을 맞이한 이순신의 12척이 입길에 올랐습니다.
'누가 이순신이고 누가 선조인가?' 논란이 일었고 배는 12척이 아니라 그 배 한 척이라는 막 말이 돼 막말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조롱마저 등장했습니다.
논란은 분분하지만 움직일 수 없는 사실은 딱 한가지, 그날 그 명량의 바다에서 이순신은 전선 단 12척을 거느리고 출정 할 수 밖에 없었다는 사실이었죠.
그리고 그가 그 보잘 것 없는 배 12척으로 바다를 가득 매운 전선을 맞이할 수 밖에 없었던 필연적인 이유는 바로 내부의 존재했다는 사실입니다.
조정을 능멸하고 임금을 기만했으며, 기동 출격 명령에 따르지 않은 죄,
바다를 지키던 그는 느닷없이 포승줄에 엮여 도성으로 압송 됐는데 그 배경에는 임금의 두려움과 불신, 주변의 시샘과 잘못된 정보들, 관계가 좋지 않았던 또 다른 장수와의 갈등이 있었습니다.
그러니 이순신의 그 배, 12척이라는 상황을 만들어낸 것은 누구도 아닌 바로 내부의 적,
즉 끊임없이 분열하고, 자신의 탐욕만을 앞세우던 당시의 위정자들이었다는 것.
또한 그보다 중요한 것은 아마도 그 배 열 두 척을 지켜낸 이들은 국난의 시기에 늘 그래왔듯이 그 뒤를 따르던 백성들의 작은 어선이었다는 것이었습니다.
역사는 그렇게 말해주고 있죠.
결국 왜란을 이겨냈던 것은 외부의 적 앞에서 분열 했던 위정자들이 아니라 민초들이였다고 말입니다.
또한 늘 그랫듯 역사는 되풀이 되는 것인가.
가고 싶던 여행을 포기하고, 버릇처럼 손이 갔던 맥주 한 캔에도 손을 거두어들이는 애뜻한 마음들은 그 12척의 배를 지켜낸 백성들의 마음과 닮아있습니다.
그러니 지금 누가 이순신인가는 중요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오늘의 앵커 브리핑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