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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차 1대가 북한군 500여명과 싸운 실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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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레이지 2019/06/23 17:13

    와 메달 오브 아너를 우리나라에서 받은 사람이 있었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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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결혼하지마 2019/06/23 17:27

    실화라 더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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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검은늑대™ 2019/06/23 17:36

    250명의 날파리들을...그때 전략 전술이 뭔지 알지도 못하는 애들 풀어놨을테니 가능할지도...그래도 정말 신기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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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키에리엘 2019/06/23 18:04

    헐.. 메달 오브 아너 받을만 했네... 탄 떨어졌으면 후퇴해야지... 해치열고 기관총 난사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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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에르지야스 2019/06/23 18:22

    요세 하도 짜집기 된 가짜 뉴스가 많아서 진짜인가 찾아봤는데 진짜였음.
    6.25때 낙동강에서 강 건너오는 북한군 막고, 미군 부대 밀려서 후퇴하는데 혼자 남아서 후퇴하는거 커버 쳐주고 결국 북한군에 둘러싸였는데, 그걸 뚫고 다시 본부로 복귀하는 과정에서 북한군 기관총 위치 잡은데도 3군대 부수고 옴. 이유는 총알 떨어져서....권총하고 수류탄 등 있는 총알은 다 소비한 듯. 이 모든걸 발하고 어께에 부상 입은 상태에서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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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dagdha 2019/06/23 19:03

    [부연설명]
    이 이야기는 왜 이렇게 되었는지 당시 6.25 전쟁 상황과 관련한 부연설명이 필요함.
    6.25 당시 북한군은 소련에게 원조받은 T34와 T85를 보유하고 있었음. 국군 입장에서는 진짜 난생 처음으로 탱크를 보게 되었고 당연히 대전차 무기가 없어서 육탄으로 전차를 저지할 수밖에 없었음.(배달의 기수에 옛날에 나오고 그랬지....) 근데 문제는 우리는 전차를 처음 봤지만 북한군도 전차를 처음 써본 것임. 당연히 어떻게 운용하는지를 알지 못했던 북한군은 초기에 엄청난 전적을 세운 탱크를 몰고 파죽지세로 경상도까지 내려왔음.
    여기서 중요한 건 북한군은 탱크를 "몰고" 경상도까지 내려왔다는 것임. 사람들은 탱크가 매우 튼튼하고 막 굴려도 되는 걸로 알고 있지만 의외로 예는 델리케이트함. 오죽하면 옛날에 '탱크주의' 광고가 나왔을 때 전차병 출신들은 비웃으면서 '사지 말아야겠네' 라고 했다는 얘기도 있었을 정도. 하여간, 전차는 자체 중량이 엄청 무거운데다 포를 한번 쏠때마다 그 충격이 동체에 고스란히 가해지기 때문에 고장이 잦고 제품의 마모가 빨라짐. 그래서 장거리 이동을 할 때는 기차나 트럭(트레일러) 등을 이용해서 옮겨야 함. 근데 위에서 얘기했듯 북한군은 그걸 모르고 경상도까지 탱크를 '몰고' 내려오다보니 상당수의 전차가 고장이 나서 작동불능이 됨.
    게다가 미국이 F-51D 무스탕과 F4U 콜세어로 제공권만은 확실하게 잡고 있었어서 북한 탱크를 계속 솎아내었고, 더욱이 보급-전선의 길이가 길어지고 제공권이 잡히자 북한은 내려와 있는 탱크를 수리할 예비 부품의 조달이나 새 탱크의 보급이 점점 더 어려워지는 악순환에 빠져 결국 6.25 개전 후 6개월이 지났을 무렵 북한은 기갑전력이 전멸해 버리게 됨.
    아울러 미국의 원조로 1950년 8월부터 당시 미군의 주력 전차인 M-26 퍼싱이 전선에 투입되었는데, 이 친구는 북한군 주력인 T34/85를 성능에서 압살해 버렸음. 게다가 북한군은 탱크로 국군 보병을 상대하느라 전차 대 전차전이 익숙치 않았고, 상대 전차를 만나도 습관적으로 대인유탄을 쏘는 등의 실책을 저질러서 미리 M-26을 발견하고도 격파지 못하고 반격당하는 일이 비일비재했음.
    이렇게 자신들의 기갑전력이 전멸해 버리자 북한군은 자신들의 기갑전력이 바닥을 드러내자 전술을 바꿔서 남은 탱크를 넓~~~게 산개시켜놓고, 미군의 탱크에 수십, 수백명의 보병들이 미군 전차에 달려들어 해치를 열고 그 안에 수류탄을 던지는 육탄전술을 사용했음. 전쟁 극초기와 완전 반대의 상황이 되어버린 것임.
    그 와중에 1950년 8월 31일. 뒤대의 M-26 퍼싱 전차가 지키던 방어거점에 500명이 넘는 북한군 보병이 돌격했는데, M-26 한대는 고장으로 퍼지고, 남아 있던 미군 보병도 철수한 상황에서, 단 한대의 퍼싱 전차가 무려 아홉시간동안 250명의 북한군을 사살하는 성과를 거두었는데 바로 이게 이 글의 '어니스트 리차드 코우마' 상사의 이야기임. 코우마 상사는 포와 50구경 기관총을 쏘고, 기관총 총알이 다 떨어지자 권총과 수류탄을 던져 적들이 전차로 올라오는 것을 막았고 심지어 전차포를 돌려 전차위로 올라온 북한군을 떨어뜨려가면서 250명의 적군을 사살하고 3개의 기관총 진지를 파괴하며 아군이 후퇴하여 방어선을 구축할 충분한 시간을 확보할 수 있었음.
    이후 어니스트 상사는 6.25 당시 미군 전차병으로 최초로 명예 훈장을 받게 되었음.(원래 DSC를 받을 예정이었는데 격상되었음) 부상으로 입원중에도 빨리 전선으로 내보내 달라고 청원했던 코우마는 6.25 전쟁 후 켄터키의 포트 녹스 기지에서 훈련병을 교육하다 1971년 52세의 나이로 퇴역했고 1993년 사망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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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Cadenza 2019/06/23 20:53

    2차 대전의 태평양 전선이나 독소전 일화는 꿰뚫고 있다고 자부하는데 우리 땅에서 벌어진 전쟁에 대하여는 모르는게 너무 많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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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뭐꼬? 2019/06/23 21:20

    살아 남아서 영광메달 받으려면 저 정도 해야하는구나 ㄷㄷ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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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커피 2019/06/23 22:00

    6.25때 이때는 전차가 정말 중요했군요.
    전쟁초기 우세했던 북한은 남한쪽으로 탱크를 몰고 쭈욱 밀고 내려왔고.  미국과 유엔의 참전으로 탱크를 몰고 북까지 전진했는데 이때 탱크나 전차까지 산악지대로(?) 끌고 갔더라면 통일도 했을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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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이돌 2019/06/23 23:15

    문득 궁금한건데 저 시절 탱크에 기름은 어떻게 조달햇을까요 주유소도 없었을텐데요
    차에 대량으로 싣고 다니다가 조달했겠죠??
    탱크 기름도 엄청 많이 먹을텐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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