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유게에 다른 사람이 올렸던걸로 내용을 어렴풋이 기억하는데 주간지 언론인가에서 일본에서 논개 위패를 가져가서 섹♡의 신으로 둔갑시키는 왜곡이 이루어지고 있단걸 밝히고 진주시민들이랑 시민단체에서 항의했다고 했던걸로 기억함
정작 웃긴건 위패 기증 당시 진주시장이었던 사람은 이게 다 한일친선을 위한거라고 변명해댔다던데
미스터 AaA2019/06/21 19:57
저런 발상을 내뱉는 녀석들은 병1신이 접신해서 저럼.
kissong2019/06/21 19:58
선동과 날조의 국가가 한건했네
아시타카™2019/06/21 19:58
하여튼 왜곡 하나는 기막히게 잘해 미췬것들이 ㅋㅋㅋ
Darks0ul2019/06/21 19:58
역사왜곡은 왜놈의 패시브지 으이구
나152019/06/21 20:06
왜곡으로 진실이 바뀐다고 생각하는 얼간이들인가..ㅋㅋㅋ 잘쳐봐야 사람들이 오해하는거고 진실은 결코 변함이 없는데.
디바이드로끌려간NCR말년병장2019/06/21 20:06
일본에 강림한 태양의 신 (핵분열)
묵월야2019/06/21 20:11
나는 이제 죽음이요, 세상의 파괴자가 되었도다.
하즈스2019/06/21 20:12
아마테라스가 핵을 예언하는 신화였던건가...
자기전에 양치질2019/06/21 20:15
태양? 그럼 핵융합으로 또 터진다는걸 암시하는건가?
케네디스2019/06/21 20:27
너무나 강렬하여 눈과 몸이 전부 타들어가 대대손손 축복(병.신)이 이어뎠다고..
루리웹-35470715762019/06/21 20:41
이런 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지나쳐요.
변기가좌변기2019/06/21 21:04
와 크투가!
죄수번호-28025164802019/06/21 21:47
위대한 원자님을 말씀하시는 거십니다.
안작은하마2019/06/21 20:08
강1간이 문화인 나라답게 다른나라 강1간하는솜씨가 일품이군 발정난 고블린원숭이새끼들
블랙메이든2019/06/21 20:08
조작의 나라
벨훼골2019/06/21 20:11
진주가서 저런말 하면 남강 의암에다가 대가리를 깨버림....
고양이라도괜찮아2019/06/21 20:11
조작이고 나발이고 논개가 죽였다는거부터가 학계에선 인정도 못 받는 전설이라 설이야 만들면 그만임
고양이라도괜찮아2019/06/21 20:12
실제로 쟤가 고향 돌아가서 잘 살다 죽었다는 설도 있는 마당에
고양이라도괜찮아2019/06/21 20:13
쟤가 잘못한건 조작이라기보단 진주시 당사자들을 기만했다는거 뿐이지
꽃초2019/06/21 20:29
잘살다 죽었다는 증거 제시를 하면서 그리 말해야지
고양이라도괜찮아2019/06/21 20:35
뭐 논개가 실존했다는 증거도 없는데 도찐개찐 아닌지
달팽달팽이2019/06/21 20:43
"공의 부실(副室)이 공이 죽던 날 좋은 옷을 입고 강가 바위에서 거닐다가 적장을 유인해 끌어안고 죽어 지금까지 사람들은 의암이라고 부른다 (且其副室 公死之日 盛服婆娑於江中巖石 誘賊長因而俱墜死 至今人稱義巖)"
"1625년(인조 3년) 논개가 순국한 지 32년 뒤 논개가 떨어져 죽은 바위에는 진주의 백성들의 입에서 입으로 논개의 이야기가 전해져 오고 있었는데, 함경도 의병장 정문부의 둘째 아들 정대륭이 진주로 이사를 와서 의암(義巖)이라는 글씨를 써서 바위에 새겼다."라는 기록들이 있는데요?
고양이라도괜찮아2019/06/21 20:43
"진주의 백성들의 입에서 입으로 논개의 이야기가 전해져 오고 있었는데"
난독임?
고양이라도괜찮아2019/06/21 20:44
구전 설화를 증거로 들면 뿅뿅 콩쥐팥쥐도 실존 인물이죠?
달팽달팽이2019/06/21 20:45
지역 주민들은 누군지 잘 몰라서 논개라고 불렀는데 알고 보니 병마절도사 최경회의 후처였다는 기록이에요.
고양이라도괜찮아2019/06/21 20:47
최경회가 발령난게 1579년 3월임 그럼 첩인 논개 나이는 몇살이다?
스타코라삿사2019/06/21 20:48
전쟁중 기록에 실존인물의 후처라고 나오는 거만으로 충분히 교차검증된 기록임. 만약 아니었을 경우 가문이 열녀문 허위보고한 죄로 뎅겅당하거든.
고양이라도괜찮아2019/06/21 20:48
논개가 죽었다는 년도는 1593년이고 그럼 첩을 몇살때 한거냐??
고양이라도괜찮아2019/06/21 20:50
그 사료 좀 보자
꽃초2019/06/21 20:50
그렇게까지 실존하지 않았던 사람으로 만드는 이유가 뭐임?
스타코라삿사2019/06/21 20:50
거 살아서 잘 살앗다는 사료부터 제시해 주시죠. 원래 대중의 정론에 반대할 땐 선제시 모름?
고양이라도괜찮아2019/06/21 20:52
존재하지도 않는 사람보고 실제인거마냥 대하는게 이해가 안됨
킹갓히오스2019/06/21 20:54
찾아보니 생각보다 논개 실존에 대한 근거 자료가 없긴하구나
그래도 단순히 사실관계에 대해서 집착하기보다는 논개라는 인물이 구전되어온 의미에 대해서
생각해보면 딱히 사실관게에 대해서 열 올릴것도 없다고 생각되는데
만년필군2019/06/21 20:54
논개가 그저 설화라고 하더라도 저 새끼들이 우리나라 설화 가져다가 좋같이 왜곡했다는건 안 변한단다 빡대가리 병.신아
고양이라도괜찮아2019/06/21 20:56
이 묘비가 게야무라가 일본으로 돌아와서 죽었다닌 "설"의 근거임
Kasumigaoka_Utaha2019/06/21 21:00
이름도 재대로 안보이는 묘비 띡 던져놓고 자료는 왜 안갖고옴?ㅎ
스타코라삿사2019/06/21 21:02
그 무덤이 기타 마고베가 가부키로 유명해진 뒤에 등장한다는 점은 모르시나 봄?
기록이 내내 없고 가문 기록에서도 등장하지 않다가 가문 외의 땅에서 갑자기 여기가 묘다 하고 후대에 등장하는데, 거기까진 안 찾아보셨나 보죠?
고양이라도괜찮아2019/06/21 21:04
아 글케 치면 논개 근거도 돌덩이에 글 새긴거임 ㅋㅋ
Kasumigaoka_Utaha2019/06/21 21:05
들고올거면 좀 보이는거 갖고오라고 하나도 안보이잖아
고양이라도괜찮아2019/06/21 21:05
난 게야무라가 일본에서 죽었다라는 설 지지하는게 아니라 이러니 저러니 양측 다 설에 불과하다는거
스타코라삿사2019/06/21 21:06
福岡県添田町、大分県中津市山国町毛谷村には木田孫兵衛(毛谷村六助)の墓なるものがあり地元ではこの地で62歳で亡くなったと伝えているが、歌舞伎等で有名になった後に作られたものである可能性もある。佐賀県唐津市名護屋には、六助社というお堂がある。朝鮮で討たれた貴田孫兵衛統治は、塩漬けにされて名護屋へ輸送された。そして名護屋に埋葬され、六助社が建ったと言われている。
무덤은 가짜일 가능성이 높다. 다른 사당에 전해지는 이야기에 따르면 소금절임이 되어 나고야에 반송되어 사당이 지어졌다고 알려짐.
응 정설은 조선에서 죽은 뒤에 나고야에 묻힌 거임. 그게 더 기록 들장이 빠름,
스타코라삿사2019/06/21 21:07
살아서 돌아갔다는 설은 일본에서도 안 믿는 설임. 어쨌건간에 죽어서 어디에 묻혔다는 기록까지 있는데 뭐? 그걸로 양비론 세울 거면 더 정설인 이걸 들고와야지 가부키로 생긴 가짜 무덤 가져와서 뭐?
스타코라삿사2019/06/21 21:09
六助の晩年については、いくつかの説がある。第一が病死説である。古文書「毛谷村六助略縁起」(1716年写、1902年再写)によれば、文禄の役後、毛谷村に戻り、62才で病死したという。第二が戦死説である。『清正記』では、六助は「おらんかい」(中国東北部)で敵兵に首を取られたと伝える。
そして第三が、論介共死説である。文禄の役において、晋州城(慶尚道)が日本軍の猛攻によって陥落した際、朝鮮の官妓論介が「倭将」を掻き抱いて河に投じて死んだという。この倭将が毛谷村六助というのである。論介が倭将を道連れに水死したという話は、早くも17世紀には広まっていた(『於于野談』など)。しかし、この倭将が六助であることを証明する当時の史料は存在せず、両者の関係が明確に言及されたのは、20世紀初頭のことである。したがって、毛谷村六助・論介共死説は、近代に生まれた虚構の可能性が高いと推測されている。〔以上、崔官『文禄・慶長の役』講談社選書メチエ・1994、田畑博子「『彦山権現誓助剣』論」『国文学:解釈と鑑賞』61-5・1996、岩谷めぐみ「論介における説話の変遷」『立教大学日本学研究所年報』4・2005、「案内板」による〕
무덤 관리하는 단체의 인터넷 내용임
제1설은 병사
제2설은 전쟁 중에 무명의 병사에게 목이 잘렸다
제3설은 논개가 죽였다.
자료 여기서 다 첨부하고 있는데 여기도 살아 돌아갔단 건 가부키 전설이라고 딱 선을 긋고 있네요.
스타코라삿사2019/06/21 21:10
심지어 저 죽은 장수가 게야무라라는 설은 20세기에 등장하는 상당히 후대 학설임. 다른 장수였을 설도 제기되고 있음.
게야무라로 비정한 건 심지어 한국 학자가 아님. 일본 학자임. 죽어서 시체를 반송했다는데 어디서 죽었는지 언급이 없는 희귀 케이스라, 생애의 궤적이 겹치는 논개에 의해 죽어서 전장에서 죽은 게 아니라 장계에 빠진 것 아닌가 하는 설을 제시한 거고.
스타코라삿사2019/06/21 21:12
니가 그 올린 그 이미지의 무덤을 관리하는 단체라면 당연히 나머지 학설을 부정하고 자기 무덤의 전설을 홍보하겠지. 그게 근거가 있다면 말야.
그런데 제1,제2 사망설과 제3의 논개 사망설의 분배가 1:1:3 정도로 논개를 깊게 다루고 있네? 또 양비론 드실 거임?
고양이라도괜찮아2019/06/21 21:16
아 좀 더 깊게 다룬 설은 사실을 기반으로 하는거다?
고양이라도괜찮아2019/06/21 21:17
어쨌든 이거나 저거나 논개 설이 사실이라는 근거도 매한가진데
스타코라삿사2019/06/21 21:21
저족에서도 비중을 1:1로 안 두는데 양비론 펼친 니가 실수지.
그럼 이제 님이 증거 제시해보심 어떰? 필살의 자료가 어디의 뭔지 파악됐으니 이제 더 무리임?
고양이라도괜찮아2019/06/21 21:22
내가 논개가 사실이 아니라는 증거?
스타코라삿사2019/06/21 21:24
이게 진짜 한일간의 입장이 다르면요, 이런 사이트에서도 이야기가 달라져요. 아직도 백제 무열왕에 대한 기록은 한일이 충돌하고 있고, 한산도 대첩의 전황이나 노량해전의 전황, 그리고 명량대첩 이후 일본군이 왜 진격을 포기했나 등은 양쪽이 다 달라서 한국과 일본 사이트 간에 차이가 매우 크다구요.
근데 이건 양쪽이 뉘앙스가 동일함. 차이라면 주력설로 논개를 제시하고 차력설로 다른 걸 제시하는 게 한국, 세 개 설을 병렬제시하고 논개에 방점을 두는 게 일본.
스타코라삿사2019/06/21 21:24
네 또 뭐 들고 올 거임? 궁금함, 이렇게 쉽게 반박되는 거 말고 좀 대단한 걸로 부탁함
D5002019/06/21 21:28
일뽕님은 후쿠시마에나 가서 먹어서 응원하세요 ㅎ
고양이라도괜찮아2019/06/21 21:31
첫째로 진주시에서 입에서 입으로 내려온 "구전"설화임 이걸 기반으로 만든게 어우야담이었고 여기서도 이를 인지함 둘째 등장은 1740년에 충을 강조한다며 이 설화를 기반으로 의인 21명을 지정해서 기린데서 나옴 근거라고 하는 것도 다 실록에 등장하지도 않고 야사임
스타코라삿사2019/06/21 21:35
응 그래서요? 논개가 없엇다는 증거를 들고 오셔야죠. 자기는 사후 200년 지나서 가부키 등장인물로 유명해져서 만들어진 무덤이 증거로 제시한 건 잊었음?
논개에 대해서 의문을 제기할 수 있는데, 없엇단 반박 증거가 없구요, 일본 학계에서도 채용하고 있으면 그게 정설이에요. 우리가 왜 쿠푸 왕 피라미드 건축 자료를 헤로도토스 자료로 보는지 암? 2000 년 뒤인데 그게 유일하기 때문임. 반박 자료가 없으면 그건 역사적으로 참으로 가정하는 거에요.
신라와 백제와 고구려의 연대기는 셋 다 망하고 100년도 넘은 뒤에 삼국유사랄 삼국사기에서 처음 기록되는데 그럼 님은 이 둘도 부정하심?
일본사는 최초로 사초가 나오기 시작하는 게 백제 멸망 이후부턴데, 그럼 그 이전의 데이터, 이주갑인상된 데이터도 기본적으로 믿는 건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함?
고양이라도괜찮아2019/06/21 21:36
둘째로 그 논개가 최경회의 양첩이었다는 이야기는 논개 이야기자체를 기반으로 한다는 어우야담에서조차 논개를 기생이라고 하고 있는거랑 맞지가 않고 최경회의 첩이었다고 하는 최초 근거가 장수군 교육청이다
스타코라삿사2019/06/21 21:37
사료란 건 그런 거임. 특정 사건에 대한 교차검증을 했을 때 부정할 근거가 없으면 그건 참이에요. 논개 전설이 왜 역사에 들어왓냐면, 실제 진주성 전투에서 실종된 일본 장군들이 꽤 많거든. 저거 일본 전국시대 연구에 도입한 릿쿄대학, 도시샤대학, 교토대학의 연구는 그럼 님 입장에선 헛짓거리겠네요?
스타코라삿사2019/06/21 21:38
그게 확실한가에 대해서 의문을 가질 수 있지만, 그게 확실히 아니란 사료는 어디에도 없는데요? 모순되는 게 있으면 논개 전설은 하루아침에 무너질 텐데 그게 없는걸요? 있으면 당장 써서 학계에 제출해주세요. 선생님 논문이 학계에서 주목받길 빕니다^^
고양이라도괜찮아2019/06/21 21:38
신이 있다는 증거를 가져와야지 없다는 증거 찾아오라는거랑 똑같구만 ㅋㅋ 너도 있었다는 실록 증거 못 가져오네
고양이라도괜찮아2019/06/21 21:39
그 논리면 기독교도 하루아침에 무너졌어야지
미르스띤곰2019/06/21 21:39
븅...신 시키...
고양이라도괜찮아2019/06/21 21:44
삼국사기의 근거는 당시 근거와 "중국"의 기록을 교차검증했기에 나온거임 니 생각대로 맨땅에 쓴 소설이 아님
스타코라삿사2019/06/21 21:44
종교를 가져와서 역사에 비비기 시작하시네? 기독교학은 정확히 19세기 비엔나 대학교 학제 개편 때 무너졌구요, 성서비평학 성서고고학이 진지하게 학문으로 취급받는 거라고 생각하심? 종교는 입증이 안 되도 사라지는 물건이 아니구요, 학설은 입증이 안 되면 사라져요.
선생님이 아주 좋아하실 징기스칸 미나모토노 요시츠네 설은 어떠심? 이거 일본 사무라이가 몽골 곳곳에서 용병으로 쓰였다는 기록이 날조기록으로 논파되면서 사라졌는데요, 가설이 사라지는 과정은 이런 거에요. 선생님이 논개가 가짜라고 믿으시든 아니시든 그게 가짜라는 근거가 잇음 이미 옛적에 사라졌음.
논개가 있다는 증거는 제시해주셔서 감사하구요, 채록시간에 차이가 있어도 부정할 교차근거가 없으면 그건 충분히 유효한 근거가 됩니다^^ 크세르크세스 왕의 유대인 인구 조사가 성경이라는 자료만 있을 땐 참이엇는데, 현지 유물 조사 결과 그게 거짓말임이 밝혀져서 이제 역사학계에선 아무도 정설로 안 보네요. 반박증거가 더 있으시면 제가 번호 하나 알려드릴게요.
02-8805-3167
여기 연락하시면 선생님의 논문에 대해 검증해줄 겁니다
스타코라삿사2019/06/21 21:45
네 그래요? 삼국사기의 근거는 위서 동이지와 양서 일부분인데, 그 참고했다는 부분이 없어졌거든요? 심지어 발견된 권의 그 위치에 그 내용이 없는 부분도 있구요.
특히 위서와 양서의 고구려/백제 기록은 당대로부터 100-200년 뒤에 뭉뚱그려 기록한 건 아실려나 모르겠네요.
꽃초2019/06/21 22:02
님은 존재하지도 않는 사람보고 실제인거마냥 대하는게 이해가 안되서 그러는게 아니라
그냥 여자에 의해 왜장이 죽은거에 ㅂㄷㅂㄷ해서 이러는거 같음
결정타법2019/06/21 20:12
니미... 저놈들은 역사 기록을 뭘로 아는거야?
고양이라도괜찮아2019/06/21 20:19
논개는 역사적 실존 인물이 아닙니다 고객님
루리웹-65065369482019/06/21 20:47
어떻게 그렇게 확실하게 대답할 수 있죠? 역사적 인물인지 실존 인물이지 조차 구분이 안가는데 그렇게 확답할수가있죠? 아닌 증거 있나요? 반대로 있는 증거라는 개소리는 하지마세요. 일딴 명확하지 않은 시점에서는 그렇게 확답하는 거아닙니다.
서슬달2019/06/21 20:55
있다고 주장하는 쪽에서 증거를 가져와야지 없다는 증거를 어떻게 가져옴 뭔 미투 무죄증명도 아니고 ㅋㅋ
루리웹-65065369482019/06/21 20:58
난 있다고 주장하는게 아니라, 없다고 주장할꺼면 없는 증거를 가져오라는거죠. 저렇게 확답할게아니라 그리고 없다고 주장하면 증거없어도 다 돼나요? 그럼 일본초계기 사건도 우리는 공격한적 없으니깐 증거 안줘도 되겠네요? 말도 안되는 소리 그만좀;
고양이라도괜찮아2019/06/21 21:01
첫째로 진주시에서 입에서 입으로 내려온 구전설화임 첫 등장은 어우야담이었고 둘째 등장은 1740년에 이 설화를 기반으로 의인 21명을 지정해서 기린데서 나옴
둘째로 임진왜란 당시 양국의 사례들을 교차 검증해도 이런 충격적인 사건이 기록되어 있지가 않음
역사적 사료에도 안 나오는 인물을 있다고 우기는건 콩쥐팥쥐가 사람들 사이에서 구전되어온 이야기이니 실존인물일거다라는 논리와 똑같음
루리웹-65065369482019/06/21 21:04
그래요. 확답할꺼면 그렇게 증거 달고 쓰세요. 잘했어요.
아리아~2019/06/21 20:14
우리나라 논개 위키랑 일본 게야무라 위키 검색해보니 논개가 죽인 무장이 게야무라가 아닐 가능성도 있다던데 잘아시는분없나?ㅠ
난차라리삐에로쇼핑이좋아2019/06/21 20:30
그냥 저 카드짤은 언제나 있어 왔던 100%구라짤이라고 생각하시면 되고요. 논개 자체가 학계에서는 100%야담으로 역사적 증거가 1도 없는 인물입니다. 그냥 야사죠. 100번 양보해서 논개나, 혹은 논개의 모티브가 된 인물이 왜군을 죽였다고 해도 그건 이름도 없는 지나가던 1인에 불과합니다. 왜냐하면 이름이 있는 놈이면 일본사에서도 교차검증이 가능해야 하는데 지금까지 진주지방에서 기생에 의해 죽은 왜군은 찾을 수 없거든요.
물론 이렇게 말하면 '간악한 왜놈들이 자기들에게 불리한 증거를 당연히 없앴을 것이다!' 라고 말하는 분들이 있는데, 일본애들이 근대이전에는 생각보다 솔직하게 기록을 남긴 친구들입니다. 뭐 그래도 '아무튼 왜놈이 지웠을 거고, 논개는 진짜있음!' 이런식으로 생각하신다면 저도 딱히 더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WJBM2019/06/21 20:44
어차피 여기서 일본까는 글은 주작을 해도 아무도 검증안함...
스텐레스쟁반2019/06/21 20:14
그래서 맨날 니세모노 뿅뿅 해대는구나.
짜가의 나라.
조작의 나라.
알라리크2019/06/21 20:15
(빡침)
みかん2019/06/21 20:17
논개설화가 실제 역사인지 아닌지도 불분명해서 걍 자기가 믿고싶은걸 믿으면 그만이긴 하지
아리아~2019/06/21 20:18
그리고 임란때 쇼군으로 승승장구 라는 말자체가 안맞는거아님?? 그 히데요시도 쇼군이 되고싶었는데 평민출신이란 한계때문에 쇼군직은 못얻은걸로 알고있는데
난차라리삐에로쇼핑이좋아2019/06/21 20:26
맞음. 일본사에서 쇼군은 미나모토 요리토모이전 동북지역을 처벌하는 일개 임시 관직(그래도 꽤 높지만)으로서 정이대장군(쇼군)이 있고, 미나모토 요리토모 이후 우리가 익히 아는 정이대장군(쇼군)이 있음.
미나모토 요리토모의 핏줄이 1이라도 섞여야(구체적으로는 섞였다고 구라를 칠 수 있을 정도의 수준이어야)쇼군이 가능함. 그래서 히데요시도 쇼군을 못하고 대신 관백(간파쿠)를 한거임. 관백은 천황(덴노)가 내려주는 작위라서 꼭 미나모토 요리토모의 혈통이 없어도 먹을 수 있는 자리였기 때문.
따라서 임란 때 쇼군으로 승승장구 했다는 이야기는 걍...어떻게 손댈 수도 없는 가짜이야기임. 일본사에서 쇼군을 하고 싶으면 가마쿠라 시절 이전에 태어나서 동북지방을 정벌하던가 가마쿠라 이후 태어나서 미나모토씨족하고 한끗발이라도 이어져있으면서 휘하세력이 쩔던가 둘 중 하나임.
baka12019/06/21 21:10
그건 아님.
당장 미나모토 요리모토의 피가 전혀 흐르지 않았던.
오다 노부가나도 3직 선택권이라 해서 관백 태합 쇼군 세게중 하나 선택하라 했지만 거절함.
그 뒤 히데요시는 태합을 선택한거고.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일단 희미하게라도 미나모토씨(혹은 그렇게 주장) 했기에 전통성을 강조하기 위해서 쇼군을 한거고.
baka12019/06/21 21:16
태합이란다
일단 삼직 추인은 태정대신 쇼군 관백중 원하는걸 골라서 가지라했고.
노부가나는 거절하고 혼노지에서 사망
이후 히데요시는 관백을 받은거고.
dasdd2019/06/21 20:23
한국에서도 조선의 폭정(?)덕에 쪽/바/리 군대를 반기다가
쪽/바/리들 세금이 더세다는걸알고(?) 반항하기 시작했다 라는 개소리를 퍼뜨리는 놈들이 있었지
고려때부터 미개하게 훈도시하나 쳐입고 약탈 방화 납치하고 다니던 쪽/바/리들 군대를 반겨???
한국에도 그딴 개소리하는 애들이 있을정도니
일본에서도 임진왜란을 무슨 해방전쟁 취급하지 ㅉㅉ
스타코라삿사2019/06/21 20:53
전자는 일본 기록에서 나온 이야기임. 당시 우리나라 백성들의 기록이 자세한 게 아니니 알 수 없지만. 고니시 유키나가쪽 기록에 “점령지라서 세금을 매우 후하게 매겼는데 많다고 반발하는 게 이해가 안 감”은 있긴 하다. 그리고 이 사실이 통계자료로 검증이 되어서, 반겼다 빼면 맞는 부분이지.
그나마 다행인건 저 꼬라지를 알게 된 진주사람들이 털어버렸담서
선동과 날조의 국가가 한건했네
하여튼 왜곡 하나는 기막히게 잘해 미췬것들이 ㅋㅋㅋ
일본에 강림한 태양의 신 (핵분열)
조작의 나라
그나마 다행인건 저 꼬라지를 알게 된 진주사람들이 털어버렸담서
정확한 경위를 알려줬으면 좋겠다
저 개같은 짓거리한다는건 알고 있었는데
진주사람이면 진주만 때 미군?
이건 무슨 뿅뿅 개소리여
개썰렁한 농담 아니야?
이게 쳐돌았나 이딴 댓글을 쓰네
알어. 너무 어이가 없어서 그럼.
관련 내용 볼 수 있음? 개꿀잼일거같은데
예전에 유게에 다른 사람이 올렸던걸로 내용을 어렴풋이 기억하는데 주간지 언론인가에서 일본에서 논개 위패를 가져가서 섹♡의 신으로 둔갑시키는 왜곡이 이루어지고 있단걸 밝히고 진주시민들이랑 시민단체에서 항의했다고 했던걸로 기억함
정작 웃긴건 위패 기증 당시 진주시장이었던 사람은 이게 다 한일친선을 위한거라고 변명해댔다던데
저런 발상을 내뱉는 녀석들은 병1신이 접신해서 저럼.
선동과 날조의 국가가 한건했네
하여튼 왜곡 하나는 기막히게 잘해 미췬것들이 ㅋㅋㅋ
역사왜곡은 왜놈의 패시브지 으이구
왜곡으로 진실이 바뀐다고 생각하는 얼간이들인가..ㅋㅋㅋ 잘쳐봐야 사람들이 오해하는거고 진실은 결코 변함이 없는데.
일본에 강림한 태양의 신 (핵분열)
나는 이제 죽음이요, 세상의 파괴자가 되었도다.
아마테라스가 핵을 예언하는 신화였던건가...
태양? 그럼 핵융합으로 또 터진다는걸 암시하는건가?
너무나 강렬하여 눈과 몸이 전부 타들어가 대대손손 축복(병.신)이 이어뎠다고..
이런 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지나쳐요.
와 크투가!
위대한 원자님을 말씀하시는 거십니다.
강1간이 문화인 나라답게 다른나라 강1간하는솜씨가 일품이군 발정난 고블린원숭이새끼들
조작의 나라
진주가서 저런말 하면 남강 의암에다가 대가리를 깨버림....
조작이고 나발이고 논개가 죽였다는거부터가 학계에선 인정도 못 받는 전설이라 설이야 만들면 그만임
실제로 쟤가 고향 돌아가서 잘 살다 죽었다는 설도 있는 마당에
쟤가 잘못한건 조작이라기보단 진주시 당사자들을 기만했다는거 뿐이지
잘살다 죽었다는 증거 제시를 하면서 그리 말해야지
뭐 논개가 실존했다는 증거도 없는데 도찐개찐 아닌지
"공의 부실(副室)이 공이 죽던 날 좋은 옷을 입고 강가 바위에서 거닐다가 적장을 유인해 끌어안고 죽어 지금까지 사람들은 의암이라고 부른다 (且其副室 公死之日 盛服婆娑於江中巖石 誘賊長因而俱墜死 至今人稱義巖)"
"1625년(인조 3년) 논개가 순국한 지 32년 뒤 논개가 떨어져 죽은 바위에는 진주의 백성들의 입에서 입으로 논개의 이야기가 전해져 오고 있었는데, 함경도 의병장 정문부의 둘째 아들 정대륭이 진주로 이사를 와서 의암(義巖)이라는 글씨를 써서 바위에 새겼다."라는 기록들이 있는데요?
"진주의 백성들의 입에서 입으로 논개의 이야기가 전해져 오고 있었는데"
난독임?
구전 설화를 증거로 들면 뿅뿅 콩쥐팥쥐도 실존 인물이죠?
지역 주민들은 누군지 잘 몰라서 논개라고 불렀는데 알고 보니 병마절도사 최경회의 후처였다는 기록이에요.
최경회가 발령난게 1579년 3월임 그럼 첩인 논개 나이는 몇살이다?
전쟁중 기록에 실존인물의 후처라고 나오는 거만으로 충분히 교차검증된 기록임. 만약 아니었을 경우 가문이 열녀문 허위보고한 죄로 뎅겅당하거든.
논개가 죽었다는 년도는 1593년이고 그럼 첩을 몇살때 한거냐??
그 사료 좀 보자
그렇게까지 실존하지 않았던 사람으로 만드는 이유가 뭐임?
거 살아서 잘 살앗다는 사료부터 제시해 주시죠. 원래 대중의 정론에 반대할 땐 선제시 모름?
존재하지도 않는 사람보고 실제인거마냥 대하는게 이해가 안됨
찾아보니 생각보다 논개 실존에 대한 근거 자료가 없긴하구나
그래도 단순히 사실관계에 대해서 집착하기보다는 논개라는 인물이 구전되어온 의미에 대해서
생각해보면 딱히 사실관게에 대해서 열 올릴것도 없다고 생각되는데
논개가 그저 설화라고 하더라도 저 새끼들이 우리나라 설화 가져다가 좋같이 왜곡했다는건 안 변한단다 빡대가리 병.신아
이 묘비가 게야무라가 일본으로 돌아와서 죽었다닌 "설"의 근거임
이름도 재대로 안보이는 묘비 띡 던져놓고 자료는 왜 안갖고옴?ㅎ
그 무덤이 기타 마고베가 가부키로 유명해진 뒤에 등장한다는 점은 모르시나 봄?
기록이 내내 없고 가문 기록에서도 등장하지 않다가 가문 외의 땅에서 갑자기 여기가 묘다 하고 후대에 등장하는데, 거기까진 안 찾아보셨나 보죠?
아 글케 치면 논개 근거도 돌덩이에 글 새긴거임 ㅋㅋ
들고올거면 좀 보이는거 갖고오라고 하나도 안보이잖아
난 게야무라가 일본에서 죽었다라는 설 지지하는게 아니라 이러니 저러니 양측 다 설에 불과하다는거
福岡県添田町、大分県中津市山国町毛谷村には木田孫兵衛(毛谷村六助)の墓なるものがあり地元ではこの地で62歳で亡くなったと伝えているが、歌舞伎等で有名になった後に作られたものである可能性もある。佐賀県唐津市名護屋には、六助社というお堂がある。朝鮮で討たれた貴田孫兵衛統治は、塩漬けにされて名護屋へ輸送された。そして名護屋に埋葬され、六助社が建ったと言われている。
무덤은 가짜일 가능성이 높다. 다른 사당에 전해지는 이야기에 따르면 소금절임이 되어 나고야에 반송되어 사당이 지어졌다고 알려짐.
응 정설은 조선에서 죽은 뒤에 나고야에 묻힌 거임. 그게 더 기록 들장이 빠름,
살아서 돌아갔다는 설은 일본에서도 안 믿는 설임. 어쨌건간에 죽어서 어디에 묻혔다는 기록까지 있는데 뭐? 그걸로 양비론 세울 거면 더 정설인 이걸 들고와야지 가부키로 생긴 가짜 무덤 가져와서 뭐?
六助の晩年については、いくつかの説がある。第一が病死説である。古文書「毛谷村六助略縁起」(1716年写、1902年再写)によれば、文禄の役後、毛谷村に戻り、62才で病死したという。第二が戦死説である。『清正記』では、六助は「おらんかい」(中国東北部)で敵兵に首を取られたと伝える。
そして第三が、論介共死説である。文禄の役において、晋州城(慶尚道)が日本軍の猛攻によって陥落した際、朝鮮の官妓論介が「倭将」を掻き抱いて河に投じて死んだという。この倭将が毛谷村六助というのである。論介が倭将を道連れに水死したという話は、早くも17世紀には広まっていた(『於于野談』など)。しかし、この倭将が六助であることを証明する当時の史料は存在せず、両者の関係が明確に言及されたのは、20世紀初頭のことである。したがって、毛谷村六助・論介共死説は、近代に生まれた虚構の可能性が高いと推測されている。〔以上、崔官『文禄・慶長の役』講談社選書メチエ・1994、田畑博子「『彦山権現誓助剣』論」『国文学:解釈と鑑賞』61-5・1996、岩谷めぐみ「論介における説話の変遷」『立教大学日本学研究所年報』4・2005、「案内板」による〕
무덤 관리하는 단체의 인터넷 내용임
제1설은 병사
제2설은 전쟁 중에 무명의 병사에게 목이 잘렸다
제3설은 논개가 죽였다.
자료 여기서 다 첨부하고 있는데 여기도 살아 돌아갔단 건 가부키 전설이라고 딱 선을 긋고 있네요.
심지어 저 죽은 장수가 게야무라라는 설은 20세기에 등장하는 상당히 후대 학설임. 다른 장수였을 설도 제기되고 있음.
게야무라로 비정한 건 심지어 한국 학자가 아님. 일본 학자임. 죽어서 시체를 반송했다는데 어디서 죽었는지 언급이 없는 희귀 케이스라, 생애의 궤적이 겹치는 논개에 의해 죽어서 전장에서 죽은 게 아니라 장계에 빠진 것 아닌가 하는 설을 제시한 거고.
니가 그 올린 그 이미지의 무덤을 관리하는 단체라면 당연히 나머지 학설을 부정하고 자기 무덤의 전설을 홍보하겠지. 그게 근거가 있다면 말야.
그런데 제1,제2 사망설과 제3의 논개 사망설의 분배가 1:1:3 정도로 논개를 깊게 다루고 있네? 또 양비론 드실 거임?
아 좀 더 깊게 다룬 설은 사실을 기반으로 하는거다?
어쨌든 이거나 저거나 논개 설이 사실이라는 근거도 매한가진데
저족에서도 비중을 1:1로 안 두는데 양비론 펼친 니가 실수지.
그럼 이제 님이 증거 제시해보심 어떰? 필살의 자료가 어디의 뭔지 파악됐으니 이제 더 무리임?
내가 논개가 사실이 아니라는 증거?
이게 진짜 한일간의 입장이 다르면요, 이런 사이트에서도 이야기가 달라져요. 아직도 백제 무열왕에 대한 기록은 한일이 충돌하고 있고, 한산도 대첩의 전황이나 노량해전의 전황, 그리고 명량대첩 이후 일본군이 왜 진격을 포기했나 등은 양쪽이 다 달라서 한국과 일본 사이트 간에 차이가 매우 크다구요.
근데 이건 양쪽이 뉘앙스가 동일함. 차이라면 주력설로 논개를 제시하고 차력설로 다른 걸 제시하는 게 한국, 세 개 설을 병렬제시하고 논개에 방점을 두는 게 일본.
네 또 뭐 들고 올 거임? 궁금함, 이렇게 쉽게 반박되는 거 말고 좀 대단한 걸로 부탁함
일뽕님은 후쿠시마에나 가서 먹어서 응원하세요 ㅎ
첫째로 진주시에서 입에서 입으로 내려온 "구전"설화임 이걸 기반으로 만든게 어우야담이었고 여기서도 이를 인지함 둘째 등장은 1740년에 충을 강조한다며 이 설화를 기반으로 의인 21명을 지정해서 기린데서 나옴 근거라고 하는 것도 다 실록에 등장하지도 않고 야사임
응 그래서요? 논개가 없엇다는 증거를 들고 오셔야죠. 자기는 사후 200년 지나서 가부키 등장인물로 유명해져서 만들어진 무덤이 증거로 제시한 건 잊었음?
논개에 대해서 의문을 제기할 수 있는데, 없엇단 반박 증거가 없구요, 일본 학계에서도 채용하고 있으면 그게 정설이에요. 우리가 왜 쿠푸 왕 피라미드 건축 자료를 헤로도토스 자료로 보는지 암? 2000 년 뒤인데 그게 유일하기 때문임. 반박 자료가 없으면 그건 역사적으로 참으로 가정하는 거에요.
신라와 백제와 고구려의 연대기는 셋 다 망하고 100년도 넘은 뒤에 삼국유사랄 삼국사기에서 처음 기록되는데 그럼 님은 이 둘도 부정하심?
일본사는 최초로 사초가 나오기 시작하는 게 백제 멸망 이후부턴데, 그럼 그 이전의 데이터, 이주갑인상된 데이터도 기본적으로 믿는 건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함?
둘째로 그 논개가 최경회의 양첩이었다는 이야기는 논개 이야기자체를 기반으로 한다는 어우야담에서조차 논개를 기생이라고 하고 있는거랑 맞지가 않고 최경회의 첩이었다고 하는 최초 근거가 장수군 교육청이다
사료란 건 그런 거임. 특정 사건에 대한 교차검증을 했을 때 부정할 근거가 없으면 그건 참이에요. 논개 전설이 왜 역사에 들어왓냐면, 실제 진주성 전투에서 실종된 일본 장군들이 꽤 많거든. 저거 일본 전국시대 연구에 도입한 릿쿄대학, 도시샤대학, 교토대학의 연구는 그럼 님 입장에선 헛짓거리겠네요?
그게 확실한가에 대해서 의문을 가질 수 있지만, 그게 확실히 아니란 사료는 어디에도 없는데요? 모순되는 게 있으면 논개 전설은 하루아침에 무너질 텐데 그게 없는걸요? 있으면 당장 써서 학계에 제출해주세요. 선생님 논문이 학계에서 주목받길 빕니다^^
신이 있다는 증거를 가져와야지 없다는 증거 찾아오라는거랑 똑같구만 ㅋㅋ 너도 있었다는 실록 증거 못 가져오네
그 논리면 기독교도 하루아침에 무너졌어야지
븅...신 시키...
삼국사기의 근거는 당시 근거와 "중국"의 기록을 교차검증했기에 나온거임 니 생각대로 맨땅에 쓴 소설이 아님
종교를 가져와서 역사에 비비기 시작하시네? 기독교학은 정확히 19세기 비엔나 대학교 학제 개편 때 무너졌구요, 성서비평학 성서고고학이 진지하게 학문으로 취급받는 거라고 생각하심? 종교는 입증이 안 되도 사라지는 물건이 아니구요, 학설은 입증이 안 되면 사라져요.
선생님이 아주 좋아하실 징기스칸 미나모토노 요시츠네 설은 어떠심? 이거 일본 사무라이가 몽골 곳곳에서 용병으로 쓰였다는 기록이 날조기록으로 논파되면서 사라졌는데요, 가설이 사라지는 과정은 이런 거에요. 선생님이 논개가 가짜라고 믿으시든 아니시든 그게 가짜라는 근거가 잇음 이미 옛적에 사라졌음.
논개가 있다는 증거는 제시해주셔서 감사하구요, 채록시간에 차이가 있어도 부정할 교차근거가 없으면 그건 충분히 유효한 근거가 됩니다^^ 크세르크세스 왕의 유대인 인구 조사가 성경이라는 자료만 있을 땐 참이엇는데, 현지 유물 조사 결과 그게 거짓말임이 밝혀져서 이제 역사학계에선 아무도 정설로 안 보네요. 반박증거가 더 있으시면 제가 번호 하나 알려드릴게요.
02-8805-3167
여기 연락하시면 선생님의 논문에 대해 검증해줄 겁니다
네 그래요? 삼국사기의 근거는 위서 동이지와 양서 일부분인데, 그 참고했다는 부분이 없어졌거든요? 심지어 발견된 권의 그 위치에 그 내용이 없는 부분도 있구요.
특히 위서와 양서의 고구려/백제 기록은 당대로부터 100-200년 뒤에 뭉뚱그려 기록한 건 아실려나 모르겠네요.
님은 존재하지도 않는 사람보고 실제인거마냥 대하는게 이해가 안되서 그러는게 아니라
그냥 여자에 의해 왜장이 죽은거에 ㅂㄷㅂㄷ해서 이러는거 같음
니미... 저놈들은 역사 기록을 뭘로 아는거야?
논개는 역사적 실존 인물이 아닙니다 고객님
어떻게 그렇게 확실하게 대답할 수 있죠? 역사적 인물인지 실존 인물이지 조차 구분이 안가는데 그렇게 확답할수가있죠? 아닌 증거 있나요? 반대로 있는 증거라는 개소리는 하지마세요. 일딴 명확하지 않은 시점에서는 그렇게 확답하는 거아닙니다.
있다고 주장하는 쪽에서 증거를 가져와야지 없다는 증거를 어떻게 가져옴 뭔 미투 무죄증명도 아니고 ㅋㅋ
난 있다고 주장하는게 아니라, 없다고 주장할꺼면 없는 증거를 가져오라는거죠. 저렇게 확답할게아니라 그리고 없다고 주장하면 증거없어도 다 돼나요? 그럼 일본초계기 사건도 우리는 공격한적 없으니깐 증거 안줘도 되겠네요? 말도 안되는 소리 그만좀;
첫째로 진주시에서 입에서 입으로 내려온 구전설화임 첫 등장은 어우야담이었고 둘째 등장은 1740년에 이 설화를 기반으로 의인 21명을 지정해서 기린데서 나옴
둘째로 임진왜란 당시 양국의 사례들을 교차 검증해도 이런 충격적인 사건이 기록되어 있지가 않음
역사적 사료에도 안 나오는 인물을 있다고 우기는건 콩쥐팥쥐가 사람들 사이에서 구전되어온 이야기이니 실존인물일거다라는 논리와 똑같음
그래요. 확답할꺼면 그렇게 증거 달고 쓰세요. 잘했어요.
우리나라 논개 위키랑 일본 게야무라 위키 검색해보니 논개가 죽인 무장이 게야무라가 아닐 가능성도 있다던데 잘아시는분없나?ㅠ
그냥 저 카드짤은 언제나 있어 왔던 100%구라짤이라고 생각하시면 되고요. 논개 자체가 학계에서는 100%야담으로 역사적 증거가 1도 없는 인물입니다. 그냥 야사죠. 100번 양보해서 논개나, 혹은 논개의 모티브가 된 인물이 왜군을 죽였다고 해도 그건 이름도 없는 지나가던 1인에 불과합니다. 왜냐하면 이름이 있는 놈이면 일본사에서도 교차검증이 가능해야 하는데 지금까지 진주지방에서 기생에 의해 죽은 왜군은 찾을 수 없거든요.
물론 이렇게 말하면 '간악한 왜놈들이 자기들에게 불리한 증거를 당연히 없앴을 것이다!' 라고 말하는 분들이 있는데, 일본애들이 근대이전에는 생각보다 솔직하게 기록을 남긴 친구들입니다. 뭐 그래도 '아무튼 왜놈이 지웠을 거고, 논개는 진짜있음!' 이런식으로 생각하신다면 저도 딱히 더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어차피 여기서 일본까는 글은 주작을 해도 아무도 검증안함...
그래서 맨날 니세모노 뿅뿅 해대는구나.
짜가의 나라.
조작의 나라.
(빡침)
논개설화가 실제 역사인지 아닌지도 불분명해서 걍 자기가 믿고싶은걸 믿으면 그만이긴 하지
그리고 임란때 쇼군으로 승승장구 라는 말자체가 안맞는거아님?? 그 히데요시도 쇼군이 되고싶었는데 평민출신이란 한계때문에 쇼군직은 못얻은걸로 알고있는데
맞음. 일본사에서 쇼군은 미나모토 요리토모이전 동북지역을 처벌하는 일개 임시 관직(그래도 꽤 높지만)으로서 정이대장군(쇼군)이 있고, 미나모토 요리토모 이후 우리가 익히 아는 정이대장군(쇼군)이 있음.
미나모토 요리토모의 핏줄이 1이라도 섞여야(구체적으로는 섞였다고 구라를 칠 수 있을 정도의 수준이어야)쇼군이 가능함. 그래서 히데요시도 쇼군을 못하고 대신 관백(간파쿠)를 한거임. 관백은 천황(덴노)가 내려주는 작위라서 꼭 미나모토 요리토모의 혈통이 없어도 먹을 수 있는 자리였기 때문.
따라서 임란 때 쇼군으로 승승장구 했다는 이야기는 걍...어떻게 손댈 수도 없는 가짜이야기임. 일본사에서 쇼군을 하고 싶으면 가마쿠라 시절 이전에 태어나서 동북지방을 정벌하던가 가마쿠라 이후 태어나서 미나모토씨족하고 한끗발이라도 이어져있으면서 휘하세력이 쩔던가 둘 중 하나임.
그건 아님.
당장 미나모토 요리모토의 피가 전혀 흐르지 않았던.
오다 노부가나도 3직 선택권이라 해서 관백 태합 쇼군 세게중 하나 선택하라 했지만 거절함.
그 뒤 히데요시는 태합을 선택한거고.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일단 희미하게라도 미나모토씨(혹은 그렇게 주장) 했기에 전통성을 강조하기 위해서 쇼군을 한거고.
태합이란다
일단 삼직 추인은 태정대신 쇼군 관백중 원하는걸 골라서 가지라했고.
노부가나는 거절하고 혼노지에서 사망
이후 히데요시는 관백을 받은거고.
한국에서도 조선의 폭정(?)덕에 쪽/바/리 군대를 반기다가
쪽/바/리들 세금이 더세다는걸알고(?) 반항하기 시작했다 라는 개소리를 퍼뜨리는 놈들이 있었지
고려때부터 미개하게 훈도시하나 쳐입고 약탈 방화 납치하고 다니던 쪽/바/리들 군대를 반겨???
한국에도 그딴 개소리하는 애들이 있을정도니
일본에서도 임진왜란을 무슨 해방전쟁 취급하지 ㅉㅉ
전자는 일본 기록에서 나온 이야기임. 당시 우리나라 백성들의 기록이 자세한 게 아니니 알 수 없지만. 고니시 유키나가쪽 기록에 “점령지라서 세금을 매우 후하게 매겼는데 많다고 반발하는 게 이해가 안 감”은 있긴 하다. 그리고 이 사실이 통계자료로 검증이 되어서, 반겼다 빼면 맞는 부분이지.
헉
????
이게 사실이면 일본놈들은 정말 사람 엿 먹이는데는 타고난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