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머천국 코하비닷컴
https://cohabe.com/sisa/1030975

문화오랜만에 쓰는 맛집 이야기...JPG


입맛은 내 의지와는 전혀 상관없이 DNA라는 녀석에 의해 선천성을 띠기도 하고 오랜 시간 환경과 사회로부터 축적된 학습된 결과물일 수도 있습니다. 속된 말로 개취라는 의미지요. 다분히 주관적일 수 밖에 없긴 하지만 그래도 많은 이들의 입맛을 만족시켜 주고 입에서 입으로, 손에서 손으로 회자되는 일명 맛집이라는 곳에 대한 일종의 설렘과 기대감이라는 것은 존재하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맛집을 향한 욕구는 끊을 수가 없네요.
친구들끼리 쌈짓돈 모아서 단백질 보충하던 학창 시절에 비하면 그래도 지금은 소확행이니 욜로니 스스로 안위하면서 찰나의 행복을 위해 기꺼이 기십이라도 쓸 수 있는 여유는 생겼지만 그렇다고 예전에 비해 탁월하게 맛있는 집을 새롭게 발견하거나 새로운 미식 스타일에 빠져 한동안 헤어나오지 못하는 일은 흔치 않습니다. 오히려 가벼운 주머니 털어 발품 팔아가며 찾아 다니던 그 시절의 맛집들에 대한 향수가 더 짙은 여운이 되기도 하니까요.
예전 대학 시절 신촌 창서초교 뒷골목에 친구들과 겨울마다 신발이 닳도록 찾아 다니던 방앗간이 하나 있었습니다. 20대 초중반 청춘들의 뜨거운 활기와 욕망으로 불타던 신촌 바닥이지만 구석구석 중년 아재들이나 찾을 법한 메뉴와 자기만의 스타일로 승부하시는 괴짜 사장님들이 계셨지요.  시멘트가 고스란히 노출된 바닥과 벽면 그리고 구식 양철 테이블과 플라스틱 테이블 예닐곱개에 포장마차 의자가 전부인 한마디로 인테리어 감각이라고는 전혀 찾아 보기 힘든 그런 실내 포차였습니다.
메인 메뉴는 꿈틀꿈틀 살아 있는 산꼼장어... 항상 똑같은 스포츠 헤어에 팔등의 흉터와 불편하신 한쪽 다리로 부지런히 산꼼장어를 손질하고 휴지로 연신 산꼼장어 핏기를 닦아내시던 사장님께선 필시 왕년에 비린내 나는 부둣가를 제 세상마냥 활보하시던 전설의 주먹쯤 되는 포스였지요. 외모만큼이나 상남자다운 말투로 투박하고 거칠게 우리를 대하긴 하셨지만 매번 방문할 때마다 귀에 딱지가 앉을 정도로 산꼼장어에 대한 부심과  산꼼장어를 맛있게 먹는 법에 대해 일장연설하시고 씨알 좋고 싱싱한 석화부터 심지어 당시에 서울에서 구경하기도 힘들던 고래고기까지 서비스로 내내어 주시기도 했던 츤데레셨습니다.
그 사장님 덕에 20대 중반이 되어서야 처음 산꼼장어를 접한 제게 새로운 미식의 세계가 열렸지요. 제가 대학 졸업하고 친구들도 하나 둘 결혼해서 신촌 바닥을 떠나 각자의 삶을 찾아간 뒤에도 겨울에 신촌에서 약속이 잡히면 항상 1차는 그 곳에서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제가 사업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2010년 경에 홀연히 그 사장님께서 다른 분께 업장을 넘기셨더라고요. 그 뒤에도 그 곳은 다른 사장님께서 계속 산꼼장어를 메인으로 걸고 장사를 이어가긴 했지만 저와 친구들에겐 추억이 깃든 맛집 하나가 통째로 사라진 상실감이랄까 섭섭함이랄까 그런 감정 때문에 더는 발길이 닿지 않게 되더군요.
그래서 그 때 그 추억의 산꼼장어 집을 대체할 우리만의 맛집을 찾자해서 찾은 곳이 이수역 근방의 오땡땡 산아나고 집이었습니다. 대학 친구 녀석이 꽤나 오랫동안 이수역 근처에서 서식했던 탓에 자연스럽게 모임이 그 쪽에서 잦아지던 차에 얻어 걸린거죠. 처음 방문했을 때는 일단 신촌의 산꼼장어 집에 비해 너무나도 사악했던 가격에 내심 놀랐지만 그나마 다들 제 밥벌이들은 하고 있던터라 서로 자존심 세운다고 그랬던지 가성비 타령은 안하더군요...;;; 지금도 여전히 가성비 좋은 곳은 아닙니다. 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만한 가격을 지불하더라도 먹고 싶은 맛과 퀄리티는 유지되고 있다 정도...
개인적으로 이 집을 찾기 시작한 지 거의 8-9년 정도 된 것 같은데 일단 아나고와 꼼장어 선도와 크기가 아주 괜찮았습니다. 그리고 당시에 살아있는 꼼장어를 직접 숯불 위에 올려서 구워 먹는 방식 역시 신촌의 산꼼장어 집과 대동소이(신촌은 연탄)했기 때문에 그 점이 우리 발길을 계속 이끄는 가장 강력한 힘이 되긴 했었지요. 하지만 그건 결국 핑계였고 이 집을 계속 찾게 만드는 힘은 잘 익은 파김치와 바다향 가득 품은 멍게젓 그리고 후식으로 먹는 멍게비빔밥이 아니었을까 생각합니다. 삭힌 홍어까지 섭렵할 정도로 음식 안 가리는 제가 해산물 중 유독 편견이 있었던 멍게에 대한 생각을 완전히 바꿔준 계기가 된 곳이었으니 제 개인적인 맛집 리스트에 빠질 수가 없는 곳입니다.
친구들과 틈나는대로 들락거리기 시작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배용준의 그녀께서 한창 주가를 올리던 그 프로까지 이 집을 방송에 소개하는 등 여기저기 맛집으로 도배가 되더니 평일 저녁에도 웨이팅이...ㅠㅠ 그렇게 상종가를 몇 년 치면서 여전히 맛집으로 유명세를 떨치긴 했지만 근처 이자카야 자리로 새롭게 이전 오픈하고 나서부터 조금씩 여유가 생기더니 최근에는 예전만큼의 명성은 많이 사라진 것 같더군요. 맛이야 그 때나 지금이나 별반 차이가 없는데 아무래도 산아나고나 산꼼장어가 그렇게 웨이팅까지 해가며 자주 먹는 외식 메뉴는 아니니 관심도가 많이 줄긴 했을 겁니다.
글을 갈무리할 때가 되자 오땡땡의 파김치도 좋고 명이나물도 좋고 멍게젓과 멍게비빔밥도 여전히 좋지만 그 때 세상더러 덤비라고 겁없이 까불어대던 철없는 청춘들에게 투박하지만 소박한 인정과 추억을 남겨 주신 신촌의 그 사장님께선 잘 살고 계신지 궁금해지는군요. 혹시나 해서 신촌과 홍대 마포 연남동 죄다 구글링 해 봐도 그 사장님께서 새로 업장을 내신 흔적이 보이지 않아 못내 아쉽기만 합니다. 그나마 예전 그 가게를 추억하게 하는 블로그 1-2개 정도 찾아낸 게 소득이라면 소득이랄까... 추억이란게 이렇게 무섭습니다.  바야흐로 완연한 봄날입니다. 저는 친구 녀석들과 소주잔 기울이며 추억 삼매경에 빠져 볼랍니다. 여러분도 맛있는 추억 만드는 연휴 되시길...
댓글
  • 마포쌥쌥이 2019/05/05 11:20

    줄 바꿈을 좀 해주셨으면
    모바일 유저들도 편히 볼수있었을듯..

    (i47gPc)

  • 마포쌥쌥이 2019/05/05 11:21

    저도 창서초교 나와서 그쪽은 자주갑니다ㅎㅎ

    (i47gPc)

  • 流水不爭先 2019/05/05 11:25

    마포쌥쌥이// 앗... 수정했습니다.

    (i47gPc)

  • park61 2019/05/05 11:32

    장어는 넘 비쌈 ㅡㅜ

    (i47gPc)

  • 마포쌥쌥이 2019/05/05 11:38

    제가 아직도 연남동에 사는데
    혹시 신촌에서 대학 다니면서
    저기 말고 다른 숨은 맛집 아시는곳 있으신가요ㅎㅎ
    고래고기까지.. 최고였겠네요.

    (i47gPc)

  • 流水不爭先 2019/05/05 11:45

    마포쌥쌥이// 40대 중반 바라보는 아재라 입맛이 비슷하실런지.ㅎㅎㅎ

    (i47gPc)

  • 마포쌥쌥이 2019/05/05 11:49

    헐 감사합니다.
    시간내서 한번 가볼게요.
    와 사진들 진짜 좋네요..

    (i47gPc)

  • 문재인 2019/05/05 22:11

    해산물은 정작 별로 안좋아하는데 글이 재미있어서 쭈욱 읽었네요 잘봤습니다!

    (i47gPc)

  • 호랑이조제 2019/05/05 22:28

    사진이 ㅎㅎ
    추천드립니다

    (i47gPc)

  • 신난봉래 2019/05/05 22:34

    진짜 글잘쓰시네요ㅋㅋ
    아 신촌살때봣어야햇는데...

    (i47gPc)

  • Go!Twins! 2019/05/06 01:19

    [리플수정]혹시 그 꼼장어집 이름이 꼼생꼼사였나요? 꼼생꼼사도 그즈음 없어진듯..정말 좋아했던 집이었는데ㅜ

    (i47gPc)

  • 에바케시디 2019/05/06 01:20

    한 문단읽고 내렸습니다..

    (i47gPc)

  • 流水不爭先 2019/05/06 01:26

    Go!Twins!// 아... 꼼생꼼사는 그 당시에도 있었고 지금도 있어요. 제가 자주 다녔던 곳은 대왕꼼장어였습니다.

    (i47gPc)

  • 流水不爭先 2019/05/06 01:31

    에바케시디// 쓸데없이 글이 길어서 죄송합니다...ㅎㅎㅎ

    (i47gPc)

  • 라니라니 2019/05/06 08:09

    나중에 가보고파요

    (i47gPc)

(i47gP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