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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이 대약진운동,문화대혁명등의 대형사고를 쳐도 남아있던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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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택동의 푸짐한 빅똥을 그나마 어느정도 치워주던 저우언라이가 있었기 때문.

 

 

이 사람이 없었으면 중국이 망해서 더 좋지 않았냐 하는데

 

이 사람 덕분에 문화대혁명시기에 살아남은 고구려 유적들도 있고,

 

항일시기에 조선독립군에게 많은 도움을 주신 분이기도 하다.

 

 

또한 1960년대의 중국의 역사왜곡에 대해 비판하고,

 

고구려의 역사는 한국의 역사라고 말한 인물이기도 하다.

 

윗 내용의 출처: 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28&aid=0000073370

 

 


 

 

 

댓글
  • 츠키노 우사기 2019/04/30 12:10

    모택동이 한국전쟁 파병하려 했을 때도 이 양반은 파병에 반대했다지?

  • 꼬ㅡ부기 2019/04/30 12:10

    중국의 마지막 남은 양심이였네

  • 낚시요시 2019/04/30 12:11

    ㅇㅇ. 어차피 북한은 버려도 국경지대에서 막을수 있다고 했었지

  • 타우렌칩턴 2019/04/30 12:10

    이미 착한중국인이 되셨네요

  • 청년인물 2019/04/30 12:22

    한국인이 보면 덩샤오핑과 저우언라이가 없었으면 중국은 100년간 한국을 못 따라왔음

  • 꼬ㅡ부기 2019/04/30 12:10

    중국의 마지막 남은 양심이였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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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왕수 2019/04/30 12:10

    중국은 애국자의 피땀을 먹고 똥을 싸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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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타우렌칩턴 2019/04/30 12:10

    이미 착한중국인이 되셨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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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츠키노 우사기 2019/04/30 12:10

    모택동이 한국전쟁 파병하려 했을 때도 이 양반은 파병에 반대했다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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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낚시요시 2019/04/30 12:11

    ㅇㅇ. 어차피 북한은 버려도 국경지대에서 막을수 있다고 했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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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청년인물 2019/04/30 12:22

    한국인이 보면 덩샤오핑과 저우언라이가 없었으면 중국은 100년간 한국을 못 따라왔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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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루리웹-3838139212 2019/04/30 12:51

    등소평의 업적
    천안문에서는 아무일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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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ALTF4 2019/04/30 12:41

    저분 사망한걸 계기로 천안문 일어나지않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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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낚시요시 2019/04/30 12:41

    그건 딱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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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ALTF4 2019/04/30 12:43

    딱히 라는게 무슨 의미인지 모르겠는데
    중국내에서도 최후의 양심이라 생각해서 따르던 계파가 있었고
    저우언라이가 사망하면서 이대로 있어서는 안되겠다고 행동해서 생긴게 그 사건이라서
    저분 이름 나오면 당연히 그사건도 나오지않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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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낚시요시 2019/04/30 12:44

    아니 천안문이 1989년에 일어났고 저우언라이가 1976년에 죽었는데
    연관이 될리가 없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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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35739 2019/04/30 12:45

    직접 계기 까진 아닌데 사망 후 기일이었나 그 때 추모하려고 모여서 이야기 하다가 점점 정권비판도 나오고 그러다가 커진 건 맞을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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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ALTF4 2019/04/30 12:45

    아 명칭이 같아서 햇갈렸네
    1차랑 2차가 다른사건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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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낚시요시 2019/04/30 12:46

    아 1차2차가 따로있구나;; 나도 미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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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35739 2019/04/30 12:50

    1차가 저우언라이 2차는 후야오방의 추모였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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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기가 먹고싶어요 2019/04/30 12:59

    지도부는 외국과의 계약 사항을 준수하고 국제적 평판을 유지하기 위해 곡물 수출을 늘리기로 결정했고 1960년에는 <수출 제일> 정책이 채택될 정도였다. ... 전체적으로 조달 곡물 가운데 베이징과 상하이, 텐진, 랴오닝 성을 먹여 살리고 수출 시장을 유지하기 위해 국가가 가져간 양은 매 분기마다 증가하여... 이런 정책 우선순위의 순수 효과는 많은 농촌 주민들의 목숨을 빼앗는 결과를 가져왔다...
    저우언라이로 말하자면 그는 갈수록 더 많이 징발하도록 사정없이 밀어붙였다. 그는 농촌에서 충분한 곡물을 공출하여 도시를 먹이고 외화를 벌어야 할 책임을 질 사람이었다. 그는 직접 만나서나 전화로, 때로는 대리로 보낸 보좌관들과 쉴 새 없이 발송한 <긴급> 이라고 찍힌 전보를 통해 지방 성장들을 닦달했다. 그 역시 국가 ㅡ 그 자신이 대표하는 ㅡ 의 이해관계들 앞에서 농촌의 필요는 양보해야 한다는 예민한 위계의식 의식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마오쩌둥의 과격한 추종자인 리징취안이 그에게 넘겨준 막대한 양의 곡물은 쓰촨에서 대규모 기근 상황을 낳을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 프랑크 디쾨터 <마오의 대기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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