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택동의 푸짐한 빅똥을 그나마 어느정도 치워주던 저우언라이가 있었기 때문.
이 사람이 없었으면 중국이 망해서 더 좋지 않았냐 하는데
이 사람 덕분에 문화대혁명시기에 살아남은 고구려 유적들도 있고,
항일시기에 조선독립군에게 많은 도움을 주신 분이기도 하다.
또한 1960년대의 중국의 역사왜곡에 대해 비판하고,
고구려의 역사는 한국의 역사라고 말한 인물이기도 하다.
윗 내용의 출처: 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28&aid=0000073370
모택동이 한국전쟁 파병하려 했을 때도 이 양반은 파병에 반대했다지?
중국의 마지막 남은 양심이였네
ㅇㅇ. 어차피 북한은 버려도 국경지대에서 막을수 있다고 했었지
이미 착한중국인이 되셨네요
한국인이 보면 덩샤오핑과 저우언라이가 없었으면 중국은 100년간 한국을 못 따라왔음
중국의 마지막 남은 양심이였네
중국은 애국자의 피땀을 먹고 똥을 싸는구나
이미 착한중국인이 되셨네요
모택동이 한국전쟁 파병하려 했을 때도 이 양반은 파병에 반대했다지?
ㅇㅇ. 어차피 북한은 버려도 국경지대에서 막을수 있다고 했었지
한국인이 보면 덩샤오핑과 저우언라이가 없었으면 중국은 100년간 한국을 못 따라왔음
등소평의 업적
천안문에서는 아무일도 없었다
저분 사망한걸 계기로 천안문 일어나지않음?
그건 딱히......
딱히 라는게 무슨 의미인지 모르겠는데
중국내에서도 최후의 양심이라 생각해서 따르던 계파가 있었고
저우언라이가 사망하면서 이대로 있어서는 안되겠다고 행동해서 생긴게 그 사건이라서
저분 이름 나오면 당연히 그사건도 나오지않음?
아니 천안문이 1989년에 일어났고 저우언라이가 1976년에 죽었는데
연관이 될리가 없잖아.
직접 계기 까진 아닌데 사망 후 기일이었나 그 때 추모하려고 모여서 이야기 하다가 점점 정권비판도 나오고 그러다가 커진 건 맞을 걸?
아 명칭이 같아서 햇갈렸네
1차랑 2차가 다른사건이네
아 1차2차가 따로있구나;; 나도 미안;
1차가 저우언라이 2차는 후야오방의 추모였네
지도부는 외국과의 계약 사항을 준수하고 국제적 평판을 유지하기 위해 곡물 수출을 늘리기로 결정했고 1960년에는 <수출 제일> 정책이 채택될 정도였다. ... 전체적으로 조달 곡물 가운데 베이징과 상하이, 텐진, 랴오닝 성을 먹여 살리고 수출 시장을 유지하기 위해 국가가 가져간 양은 매 분기마다 증가하여... 이런 정책 우선순위의 순수 효과는 많은 농촌 주민들의 목숨을 빼앗는 결과를 가져왔다...
저우언라이로 말하자면 그는 갈수록 더 많이 징발하도록 사정없이 밀어붙였다. 그는 농촌에서 충분한 곡물을 공출하여 도시를 먹이고 외화를 벌어야 할 책임을 질 사람이었다. 그는 직접 만나서나 전화로, 때로는 대리로 보낸 보좌관들과 쉴 새 없이 발송한 <긴급> 이라고 찍힌 전보를 통해 지방 성장들을 닦달했다. 그 역시 국가 ㅡ 그 자신이 대표하는 ㅡ 의 이해관계들 앞에서 농촌의 필요는 양보해야 한다는 예민한 위계의식 의식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마오쩌둥의 과격한 추종자인 리징취안이 그에게 넘겨준 막대한 양의 곡물은 쓰촨에서 대규모 기근 상황을 낳을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 프랑크 디쾨터 <마오의 대기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