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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원사교육 영어 선생님으로서 갑자기 드는 생각들

 

안녕하세요.

대한민국 최고의 영어선생님을 꿈꾸는 대구 수성구의 작은 영어 공부방을 운영하는 사람입니다. 지난번에 불펜에 수업하는 내용을 공유하여 난생 처음 좌측담장에 가기도 했는데요.

저의 하루 일과는 보통의 직장인 보다는 늦게 일어나서 그 날의 수업 설계를 하고 점심을 먹고 부지런히 수업을 하고 수업을 다 마치면 다음날의 수업 준비를 하고 새벽 네시 쯤 잠자리에 드는 루틴을 가지고 있습니다. 수업을 마치고 난 후 잠자리에 들기 전 까지의 밤 늦은, 그리고 이른 새벽시간을 저는 참으로 좋아합니다. 고요한 분위기 속에서 저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지요. 그 날의 수업을 되돌아보고 부족한 점은 메모를 해 두었다가 보완하기도 하고 혼자만의 명상에 잠기기도 합니다.

오늘 문득 저의 삶을 돌아보니 대학을 졸업하고 학생을 가르치기 시작한 지 10년차가 되는 해가 올해이더군요. 물론 대학생 시절 어설픈 강의를 하며 학원에서 아르바이트도 했지만(얘들아 미안하다 ㅠㅠ) 제가 진정으로 자격을 갖추고 수업을 시작한 지 10년차가 되었더라구요. 그리고는 지금의 저를 있게 해준 여러 선생님들이 스쳐 지나가더라고요. 초등학생때 무서워 했던 선생님부터 중학교, 고등학교때 까지. 그리고 대학생의 기억을 다시 살려봅니다. 불펜에는 이상하고 고약한 선생님을 경험한 분들이 많아서 어떻게 이야기 해야 할 지 조심스럽긴 하네요.

특별했던 선생님이 참 많았다고 생각하지만 그 중에 대학생때 저에게 많은 영감을 주었던 Jason Renshaw 선생님이 특히 기억에 떠오르더라구요. 구글링을 해보니 그 선생님이 직접 쓰신 책도 나오고 얼굴도 나오네요. 오랜만에 그 얼굴을 보니 얼마나 반가운지요. 그 선생님은 영어 교육을 위한 책도 쓰셨는데 특히 그 선생님께서 쓰신 첫 책을 대학 강의 시간에 저에게 선물 하며 몇 권 남지 않은 귀한 책인데 선물로 주는거라고, 언젠가는 좋은 선생님이 될 거라고 용기를 주셨던 제가 참 좋아하고 잘 따른 선생님이셨어요.




한 번은 수업에서 좋은 선생님은 잠을 잘 잔다고. 왜 인지 이유를 설명할 수 없지만 잠을 잘 잔다고 말씀하셨던 것이 떠오릅니다. 학생을 가르치기 시작한 지 10년이 된 지금 그 선생님의 말씀을 돌아보니 이제야 그 이유를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것 같습니다.

선생님으로서의 몇 가지 희열이 있습니다. 유희열이요. 는 아재개그.

학생들은 "개똥아 수업시간에 떠들지 마라." 라는 직선의 명령어에 잘 반응하지 않습니다. 잠시 조용할 뿐 이내 다시 소음을 일으키지요. 저는 그래서 학생의 변화를 이끌어 내기 위해서 아주 큰 밑그림을 그려 나갑니다. 학생을 완전히 파악하는데 세 달~여섯 달 정도 시간을 보내고(학생을 파악하는데 뭐가 그렇게 오래 걸리냐는 분도 계시겠지만 우리 아이를 보면 지금껏 약 10년 혹은 그 이상을 키워와도 가끔은 야가 우리 아이가 맞나 싶을 정도로 낯설때도 아마 있으실 겁니다. 10년을 봐 와도 낯선 모습이 있는데 선생님으로서 며칠만에 학생을 파악하는 것이 가능하다면 그 분은 아마 사람이 아니라 신 일지도요.) 파악한 것을 바탕으로 부족한 부분을 보완하기 위한 큰그림을 그리지요. 저만의 가설을 세웁니다. 이렇게 진행하면 학생이 이렇게 따라 오겠다는 저만의 가설이지요. 이 가설은 실패할 수도 있지만 꽤 높은 확률로 성공합니다. 제가 세운 가설 대로 학생이 따라올 때의 희열은 무척이나 짜릿한데요. 예컨대 작년 9월 부터 수업을 들은 현재 초등학교 4학년 여학생의 경우 학원을 다닌 경험이 없어서 다행이 제가 처음으로 학생을 저의 입맛대로 길들일 수 있었습니다. 영어에 관한 부분은 아니고요. 학습 태도가 정상적으로 성장을 한다면 영어 실력 뿐만 아니라 모든 학습에서 빠른 성장을 이룰 수 있습니다. 이 학생은 "선생님 잘 모르겠어요. 가르쳐주세요." 라는 소리를 수업 시간에 거의 하지 않습니다. 선생님에게 묻지마라고 이야기 한 적은 한 번도 없지만 저에게 잘 묻지 않는데 그 이유는 제가 학생이 잘 모르더라도 끝까지 고민하는 공부 습관을 들이기 위해서 노력해 왔기 때문입니다. 그 결과요? 수 년간 다른 곳에서 영어를 배워온 한 학년 위의 학생과 지금 같은 반에서 수업을 하고 있지요. 이 친구는 제가 첫 사교육 영어 선생님입니다. 물론 영어 유치원을 나왔다거나 특별히 영어를 많이 배우고 온 친구도 아니고요. 요즘 이 친구를 보면 너무 뿌듯해서 수업이 즐겁습니다. 물론 이녀석은 저에게 원숭이 닮았다고 원숭이 선생님이라고 놀리지만요 ㅠㅠ

제가 학교에 근무할때는 1년에 한번정도 제 스스로가 소름돋는 수업 경험을 하곤 했었습니다. 제가 수업을 진행하는데 모든 학생이 저의 말, 손동작 하나하나에 잘 반응하여 마치 제가 오케스트라의 지휘자가 되어 학생들을 지휘하는 것 같은 착각에 빠지는 순간에는 정말 소름이 돋습니다. 그리고 어제 또 그런 소름을 경험했습니다. 학생들의 100퍼센트 완전한 몰입. 모든 학생이 몸만 수업을 듣기 위해서 와 있는 상태가 아니라 한 명도 빠짐없이 완전한 몰입상태. 그리고 그 몰입의 결과로 고민을 거듭하던 영어 유치원을 나온 한 친구의 입에서 나온 깨달음의 말 "아! 뭔지 이제 알겠다!" 저는 너무 기분이 좋아서 "아! 뭔지 이제 알겠다!" 라고 칠판에다가 적어봅니다. 이 말이 참 중요한 말입니다.

또,

제가 사교육을 시작하면서 저를 처음으로 믿고 맡겨준 어머님이 계십니다. 참 고마우신 분이지요.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저의 수입에 대해서는 별로 생각해 본 적이 없습니다. 열심히 가르치면 당연히 수입은 보장된다고 믿고 어떻게 하면 "잘" 가르칠 수 있을지를 많이 고민하고 있지요. 어제는 저에게 교습비 올리셔야 되지 않냐고 먼저 이야기를 해 주시더라고요. 참 기분이 좋은 말씀이었어요. 수입이 늘어날 생각에 기분이 좋은 것이 아니라 그냥 제 수업을 인정해 주시는 말씀이잖아요. 그리고 수업료를 올려서 보내주셨더라고요. 학부모님께서 먼저 교습비를 올려주시겠다고 한 것은 이번이 두 번째 경험입니다. 교습비가 많고 적음은 제가 수업을 준비하면서 전혀 영향을 받는 요소가 아닙니다. 그저 모두가 저의 소중한 제자 일 뿐이고 모든 수업에서 최선을 다해서 가르칠 뿐이지요. 이 친구들의 수업에서도 고민을 참 많이 했습니다. 형제의 수업이었는데 작년 기준 초등학교 4학년인 형 보다 언어적 센스가 초등학교 1학년인 동생이 좋아서 형의 영어에 대한 자존감이 많이 낮았어요. 수업시간에 저는 형의 이름을 부르기 보다는 "형아가 한번 이야기 해보자." 라는 방식으로 동생의 입장에서 형을 부르는 것 처럼 학생을 많이 불러줍니다. 사실 이렇게 부르는 것 하나하나 까지 저의 의도가 들어가 있는 것인데요. 이과적 성향이 매우 강하게 보이는 형과 언어적 센스가 타고난 동생 모두에게 좋은 수업이 되도록 준비하기와 수업 진행하기가 쉽지는 않지만 학생들이 너무도 잘 따라와 주고 따로 게임을 하는 것이 아님에도 학습으로서의 수업 자체를 즐기기 때문에 또 힘을 내서 수업 설계를 해 봅니다.

요즘을 참 잠을 잘 잡니다. 이렇게까지 삶이 행복해도 되나 싶을 만큼 참 행복하고요. 저의 행복을 이 글을 읽으시는 모든 불페너 분들도 나누어 가지면 좋겠습니다.


댓글
  • 날아랏승화 2019/04/19 02:19

    좋네요 추천하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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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휘스터치62 2019/04/19 02:24

    이런 분이 정작 학교에서 공교육으로 학생들에게 접근하면 좋을텐데, 지금 학교 영어교육은 대부분 학생들 시험점수 평가밖에 되지않죠. 안타깝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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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qinqin 2019/04/19 02:26

    잘읽었습니다
    공교육이든 사교육이든 선생님 같은 분이 계시니 참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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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겨줘밥풀 2019/04/19 02:29

    중계동 학원가 수능영어강사입니다. 이 글 안에서 강사로서 많은 반성을 하게 될 수 있어, 글을 써 주신데에 감사드립니다. 또한 동시에 많은 배울점을 얻어갑니다. 언제나 건승, 그리고 잘 아시겠지만 저희 직업의 숙명인 건강, 꼭 챙기시길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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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번역의탄생 2019/04/19 02:44

    참 멋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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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옆그레이드 2019/04/19 02:52

    저번에 어떤분 글보니 학생수가 급감해서 수입이 많이 줄었다던데 님은 괜찮으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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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닉냄뭐하지 2019/04/19 03:24

    날아랏승화// 추천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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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닉냄뭐하지 2019/04/19 03:24

    휘스터치62// 학교에도 좋은 선생님이 많이 계시지요. 저는 능력이 안돼서 학교는 높은 벽입니다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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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닉냄뭐하지 2019/04/19 03:25

    qinqin// 어디서 가르치는지 무슨 신분으로서 가르치는 것 보다 더 중요한 것은 "잘" 가르치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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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닉냄뭐하지 2019/04/19 03:26

    이겨줘밥풀// 저는 사교육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아서 아직 괜찮지만 몸관리 열심히 하겠습니다. 좋은 말씀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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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닉냄뭐하지 2019/04/19 03:27

    번역의탄생//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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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닉냄뭐하지 2019/04/19 03:27

    옆그레이드// 저는 작년에 시작해서 이제 자리잡아가는 과정이라서 당연히 시작할 때 보다는 지금이 낫습니다^^ 염려 고맙습니다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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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거레알 2019/04/19 03:44

    연구 많이 하시는 모습 보기좋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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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닉냄뭐하지 2019/04/19 04:48

    이거레알// 연구를 많이 할수록 수업이 편하더라구요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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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슈키라 2019/04/19 08:39

    멋진선생님을 만난 아이들이 부럽네요. 지금처럼 그 열정 그대로 변치않길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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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john316 2019/04/19 23:39

    [리플수정]안녕하세요! 글 너무 잘 읽었습니다. 반갑네요. 저는 지금 대구에서 초6 아이 영어 가르치고 있네요(과외).
    지금 기초가 많이 부족한 아이라 아주 쉬운 책으로 하고 있어요.
    실례지만, 문법책과 독해책, 듣기책 추천 한가지씩만 부탁드려도 될까요.^^ 제가 초등 책들은 잘 몰라서 이렇게 여쭙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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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닉냄뭐하지 2019/04/20 00:12

    슈키라// 네 단순히 나의 직업은 선생이라는 마인드가 아니라 개인의 미래를 바꿀 수 있는 사람이라는 사명감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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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닉냄뭐하지 2019/04/20 00:14

    john316// 같은 업계에 계시는군요. 저는 사실 대부분의 수업자료는 직접 만들기 때문에 시중에 나와있는 책 제가 추천할 수 있을 만큼은 잘 모릅니다. 도움이 되지 못해서 죄송합니다.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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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john316 2019/04/20 00:33

    닉냄뭐하지// 괜찮습니다.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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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쫑쫑이 2019/04/20 01:03

    수성구에 사는 두아이 아빠인데 인연이있다면 언젠가는 제아이의 선생님이 되시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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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닉냄뭐하지 2019/04/20 01:16

    쫑쫑이// 인연이 있다면 좋은 인연이 되겠지요? 교육이라는 것이 참 어려운 것이어서 아이 키우기가 쉽지 않으실것 같습니다.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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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삼성이승엽 2019/04/20 10:43

    진짜 프로가 무엇인지 한 수 배우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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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인트찰스 2019/04/20 20:10

    인간적으로 훌륭하심이 보이네요. 글솜씨도 대단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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