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이 체제가 붕괴되서 망하고 말지 원래 300원작에선 이러한 아이러니함을 보여주는 장면중 하나였는데.. 잭 스나이더가 영화를 흥미위주로 만든답시고 스파르타를 무슨 자유의 투사로 둔갑시켜버리는 바람에 그만..
스파르탄 개개끼...
댓글
너구리대장2019/01/25 13:01
헐...300재미있게 봤는데 이건 또 몰랐네요 너무 왜곡했구나..ㄷㄷ
굳이왜2019/01/25 13:01
원래 역사가 다 그래요... 전세계를 다니며 식민지 만들고 피칠갑하던 영국이 정의의 국가가 되는 그런거...
ㅎㅌ이젠틀맨2019/01/25 13:07
잭 스나이더는 배댓슈 보면 알겠지만 각본을 어떻게 만지고 스토리를 어떻게 조지고 이럴 능력 자체가 없어요
감독 타입으로 치자면 각본가 형이 아닌 영상미 형 감독의 표본이라 할 수 있는데
그래서 원작이 있는 작품 촬영할 때랑 아닐 때랑 차이가 극명하게 갈림
영화 300 같은 경우도 잘 생각하셔야 되는 게
1962년 영국 영화인 300 스파르탄에서 영향을 받아 2000년도 넘어서 그래픽노블인 300이 태어났고
잭 스나이더 감독은 이 그래픽노블 300을 바탕으로 영화를 찍었기 때문입니다
글을 읽다 문뜩 생각난건데요 그리스인들의 시각이 그정도 밖에 안되니 어쩌면 더 합당한 대사가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뿌룩뿌룩뿌루룩2019/01/25 16:13
페르시아가 진짜 크세르크세스 말처럼 관대했다고 하던데 ㅋㅋ
키다리아져씨2019/01/25 16:15
아 토탈워 로마2에서 스파르타로만 통일 4번 했는데
페르시아로 통일 해야겠네
말하다끊는사2019/01/25 17:06
중근동 패자 계보를 보면 앗시리아, 신바빌로니아 이후가 페르시아의 시대죠. 앗시리아와 신바빌로니아가 강력한 철권통치로 점령국들을 지배한 반면 페르시아는 피지배 민족들이 어느정도 자치를 누릴 수 있게 풀어주고 종교적 자유도 보장해줬죠.
바빌론 마지막 왕은 안그래도 암군이었는데 종교까지 바빌론 전통 종교 말고 다른걸 들여와서 강요하며 자기 백성을 종교탄압 해버렸습니다. 당연히 백성들의 불만이 막심했는데, 페르시아의 키루스2세가 이 틈을 노리고 바빌론 백성들의 종교 자유를 보장해주고 포로백성은 다 자기 터전으로 돌려보내 알아서 잘 살도록 보장해줄테니 항복하라고 꼬드기는 삐라(역사에 남은 최초의 삐라..이자 최초의 인권선언문)를 뿌렸지요. 이게 바로 본문 사진 속 원통형 물건인 ‘키루스 실린더’입니다. 종이에 적어 뿌린 삐라가 아니라 점토 원통에 빼곡하게 글자 새겨서 보낸 삐라였죠.
이런 포용정책이 먹혀들어 바빌론 백성들은 항복했고, 바빌론에게 점령당했던 속국들도 자연스럽게 페르시아 영토로 넘어갔습니다. 다만 페르시아의 온건한 지배정책에 힘입어 포로백성들은 각자 자기 터전으로 돌아가 자신들의 전통 종교를 믿으며 어느정도의 자치권을 보장받았고, 이 덕에 페르시아 제국은 번성하고 오래 유지될 수 있었습니다. 바빌론에게 멸망당해 나라를 잃고 포로로 끌려간 이스라엘 민족들 역시 이때 예루살렘과 유다 땅(현 팔레스타인 지역)으로 돌아옵니다.
중근동은 페르시아가 패권을 잡고 오래오래...버텼지만 알렉산드로스 3세에게 개발살나며 헬라시대로 넘어가지요. 더 자세한 중근동 역사 이야기가 듣고 싶으시다면[더보기]
백색마법사2019/01/25 17:12
이집트 피라미드 건설현장에 관한 석판 해석도 듣고 놀랐었는데...
성경에서 말하듯이 막 채찍으로 (하앍 쓰읍) 때리고 그러진 않았고 급여도 주고 병가도 있었다고
cogito2019/01/25 18:10
저러한 페르샤 제국의 후예 이란은 왜 그리 정치적으로 꽉 막혔는지....
축구는 잘 한다만...
돼재앙2019/01/25 18:56
왓치맨 과 맨오브스틸 이외엔 저와 코드가 맞지 않아서
믿고 거르는 감독이네요
울트라맨포도2019/01/25 19:37
백인이 세상 최고라는 그릇된 이념이 결과라고 해야 할까요?
실질적으로 우리 관대하씨 영화에 나오는 외형을 보세요.
세상 야만인 처럼 해놨는데
사실은 그때 유럽 보다 과학 기술이며 문화가더 발달했다고 하더라구요.
이게 다 '아시아 인은 유럽보다 미개해!' 라는 인식이 박혀서 나온 결과라고 생각해요.
괴도로젠2019/01/26 13:57
크세르크세스를 비롯한 아케메네스왕조 페르시아는 절대 저런 흑형일리 없음 백인들을 코카서스인들이라 부르는데 코카서스가 바로 이란에 있는 코카서스 산맥에 있는 곳임 즉 당시 페르시아야말로 혈통적으로 내츄럴 백인들이 많았던 곳.
의외로 고증이 괜찮아서 놀랐던건 맨처음 레오니다스 어린시절임. 예전에는 무슨 왕자를 저리 훈련시키냐 뻥도 정도껏좀 이라 생각했지만 스파르타의 아고게를 알고나서 음~ 의외로 비슷한거였구나~
게다가 레오니다스는 왕족이긴 해도 서열이 많이 밀려서 전사로서 아고게받고 자랐지만 위의 형들이 다 죽어버려서 아고게출신 왕으로 유명했음
제피르2019/01/26 14:51
애초에 테르모필레 전투가 300명 + 800명으로 길막을 시전한게 아니라 전제부터가 틀렸어요.
10만정도의 전투병력을 가진 페르시아군에 대항해서
기병과 궁병을 쓰기 힘들고 보병전에 최적화된 길목을 골라서
1만~2만정도의 정상적인 규모의 그리스 연합군이 길목을 틀어막고 싸운거고
이틀간 완승을 거뒀으나 사흘째에
샛길을 알게된 페르시아군 일부가 배후에서 접근하자
철수하기로 하면서 기병의 추격으로 전멸당하는 것을 우려해서
스파르타에서 아들이 있는 노병 300명을 포함해 테베군, 테스피아군 등 1500명이 몰살을 남아서 반나절간 페르시아군의 발을 묶고
나머지는 안전하게 철수해서 다음 전투를 기약했다는게 전투의 흐름인데
영화와 그래픽노블에서는 처음부터 300명으로 틀어막으려 한 것처럼 묘사되서 의미가 많이 달라졌더군요.
헐...300재미있게 봤는데 이건 또 몰랐네요 너무 왜곡했구나..ㄷㄷ
원래 역사가 다 그래요... 전세계를 다니며 식민지 만들고 피칠갑하던 영국이 정의의 국가가 되는 그런거...
잭 스나이더는 배댓슈 보면 알겠지만 각본을 어떻게 만지고 스토리를 어떻게 조지고 이럴 능력 자체가 없어요
감독 타입으로 치자면 각본가 형이 아닌 영상미 형 감독의 표본이라 할 수 있는데
그래서 원작이 있는 작품 촬영할 때랑 아닐 때랑 차이가 극명하게 갈림
영화 300 같은 경우도 잘 생각하셔야 되는 게
1962년 영국 영화인 300 스파르탄에서 영향을 받아 2000년도 넘어서 그래픽노블인 300이 태어났고
잭 스나이더 감독은 이 그래픽노블 300을 바탕으로 영화를 찍었기 때문입니다
뭐 귀에걸면 귀걸이 코에걸면 코걸이가 되는게 역사관이라 ㅋㅋ 걍 웃으면서 영상미나 관람합시다.
저 변태 남정네들 우락부락한 근육 봐라 캬~~
( 그래서 패러디도 나왔다고 아는데 맞나요 ㅋ )
꼬죠
글을 읽다 문뜩 생각난건데요 그리스인들의 시각이 그정도 밖에 안되니 어쩌면 더 합당한 대사가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페르시아가 진짜 크세르크세스 말처럼 관대했다고 하던데 ㅋㅋ
아 토탈워 로마2에서 스파르타로만 통일 4번 했는데
페르시아로 통일 해야겠네
중근동 패자 계보를 보면 앗시리아, 신바빌로니아 이후가 페르시아의 시대죠. 앗시리아와 신바빌로니아가 강력한 철권통치로 점령국들을 지배한 반면 페르시아는 피지배 민족들이 어느정도 자치를 누릴 수 있게 풀어주고 종교적 자유도 보장해줬죠.
바빌론 마지막 왕은 안그래도 암군이었는데 종교까지 바빌론 전통 종교 말고 다른걸 들여와서 강요하며 자기 백성을 종교탄압 해버렸습니다. 당연히 백성들의 불만이 막심했는데, 페르시아의 키루스2세가 이 틈을 노리고 바빌론 백성들의 종교 자유를 보장해주고 포로백성은 다 자기 터전으로 돌려보내 알아서 잘 살도록 보장해줄테니 항복하라고 꼬드기는 삐라(역사에 남은 최초의 삐라..이자 최초의 인권선언문)를 뿌렸지요. 이게 바로 본문 사진 속 원통형 물건인 ‘키루스 실린더’입니다. 종이에 적어 뿌린 삐라가 아니라 점토 원통에 빼곡하게 글자 새겨서 보낸 삐라였죠.
이런 포용정책이 먹혀들어 바빌론 백성들은 항복했고, 바빌론에게 점령당했던 속국들도 자연스럽게 페르시아 영토로 넘어갔습니다. 다만 페르시아의 온건한 지배정책에 힘입어 포로백성들은 각자 자기 터전으로 돌아가 자신들의 전통 종교를 믿으며 어느정도의 자치권을 보장받았고, 이 덕에 페르시아 제국은 번성하고 오래 유지될 수 있었습니다. 바빌론에게 멸망당해 나라를 잃고 포로로 끌려간 이스라엘 민족들 역시 이때 예루살렘과 유다 땅(현 팔레스타인 지역)으로 돌아옵니다.
중근동은 페르시아가 패권을 잡고 오래오래...버텼지만 알렉산드로스 3세에게 개발살나며 헬라시대로 넘어가지요. 더 자세한 중근동 역사 이야기가 듣고 싶으시다면[더보기]
이집트 피라미드 건설현장에 관한 석판 해석도 듣고 놀랐었는데...
성경에서 말하듯이 막 채찍으로 (하앍 쓰읍) 때리고 그러진 않았고 급여도 주고 병가도 있었다고
저러한 페르샤 제국의 후예 이란은 왜 그리 정치적으로 꽉 막혔는지....
축구는 잘 한다만...
왓치맨 과 맨오브스틸 이외엔 저와 코드가 맞지 않아서
믿고 거르는 감독이네요
백인이 세상 최고라는 그릇된 이념이 결과라고 해야 할까요?
실질적으로 우리 관대하씨 영화에 나오는 외형을 보세요.
세상 야만인 처럼 해놨는데
사실은 그때 유럽 보다 과학 기술이며 문화가더 발달했다고 하더라구요.
이게 다 '아시아 인은 유럽보다 미개해!' 라는 인식이 박혀서 나온 결과라고 생각해요.
크세르크세스를 비롯한 아케메네스왕조 페르시아는 절대 저런 흑형일리 없음 백인들을 코카서스인들이라 부르는데 코카서스가 바로 이란에 있는 코카서스 산맥에 있는 곳임 즉 당시 페르시아야말로 혈통적으로 내츄럴 백인들이 많았던 곳.
의외로 고증이 괜찮아서 놀랐던건 맨처음 레오니다스 어린시절임. 예전에는 무슨 왕자를 저리 훈련시키냐 뻥도 정도껏좀 이라 생각했지만 스파르타의 아고게를 알고나서 음~ 의외로 비슷한거였구나~
게다가 레오니다스는 왕족이긴 해도 서열이 많이 밀려서 전사로서 아고게받고 자랐지만 위의 형들이 다 죽어버려서 아고게출신 왕으로 유명했음
애초에 테르모필레 전투가 300명 + 800명으로 길막을 시전한게 아니라 전제부터가 틀렸어요.
10만정도의 전투병력을 가진 페르시아군에 대항해서
기병과 궁병을 쓰기 힘들고 보병전에 최적화된 길목을 골라서
1만~2만정도의 정상적인 규모의 그리스 연합군이 길목을 틀어막고 싸운거고
이틀간 완승을 거뒀으나 사흘째에
샛길을 알게된 페르시아군 일부가 배후에서 접근하자
철수하기로 하면서 기병의 추격으로 전멸당하는 것을 우려해서
스파르타에서 아들이 있는 노병 300명을 포함해 테베군, 테스피아군 등 1500명이 몰살을 남아서 반나절간 페르시아군의 발을 묶고
나머지는 안전하게 철수해서 다음 전투를 기약했다는게 전투의 흐름인데
영화와 그래픽노블에서는 처음부터 300명으로 틀어막으려 한 것처럼 묘사되서 의미가 많이 달라졌더군요.
그냥 스파르타를 모티브로 잘 만든 무협영화~ ㅎ
아~이런 글 잼나 좋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