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 개새끼가 경제를 살렸니.... 우리나라 근대화를 주도했다느니... 하는 개소리가 있어서
그의 업적(?)을 정리해봄....
-프롤로그-
우선 근대사의 비밀(?)아닌 비밀이 나오게 된 배경은
1978년 10월 31일에 미국의회에 제출된 프레이저 보고서다.
이는 박정희의 최측근이었던 강형욱이 1977년 미국 청문회에서 모두 폭로하고 살해됨으로써 정리가 가능했다.
박정희는 당연히 사실무근이라고 국민들을 속였다.
그 이후 김재규에 의해 제거된 후에 국민들에게 사실이 밝혀지는가 했었지만...
전두환의 쿠데타에 의해 칼같이 언론통제를 당하면서 국민들에게 숨겨졌다.
그러면서 군부 쿠데타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 박정희의 거짓된 경제신화를 사실인 마냥 날조했다.
- 박정희의 개같은 업적(?) -
1. 일단 미국의 세웠던 이승만 정권은 완전 실패한 정권이었다.
미국의 일본을 의식한 막대한 원조에도 불구하고 친일파 숙청이 제대로 되지 않았기에 부정부패로 인해
경제상황은 완전 개판이었다. 오죽했으면 같은선상에서 시작한 북한과 대한민국의 경제 순위가 50위와
101위로 그 격차가 참담했다.
여기서 4.19혁명으로 이승만이 미국으로 망명하면서 그 당시의 미국 대통령이었던 케네디는 대한민국의
공산화가 염려되어 그를 극복하기 위한 방안으로 경제성장을 선택한다.
그래서 탄생한것이 장면정부시절에 미국의 태스크 포스팀의 전략수립을 통해 완성된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이다.
이러한 상황에 박정희가 1961년 5월 16일에 쿠데타를 통해 정권을 찬탈한것이다.
이 당시 박정희는
- 1944년 1월 일본 군사학교에서 임관 후 만주에서 우리 독립군들을 핍박.
- 1949년 체포 후 공산주의자로 판결을 받고 사형될것이었으나 300명의 동료들을 팔아먹고 사형을 면제 받음.
- 이때 별명을 받은것이 뱀같이 소름끼치는 사내라고 해서 스네이크박 이었음.
이런 배경을 가진 인물이었기에 일본은 친일파인 박정희를 반기는 분위기였다.
당시는 미국은 한국의 경제를 살려야 하는것이 목표였고 일본은 경제식민지화 하는게 목표였다.
이런 상황에 박정희는 미국 독립기념일에 반공법을 선포하고 공산주의와 대적함을 표방함.
문제는 이 반공법을 통해 무고한 사람들이 희생당했다는것이다..
이때 희생당했던 분들 중에 47년 후에 무죄를 받으신 분도 있다.(조용수 민족일보 사장님)
박정희 개새끼...
2. 1961년 11월 11일 박정희가 일본과 미국의 권력자를 만나러 출국함...
여기서 일본의 만주군관학교 출신의 나구모 장군에게 감사인사를 하고 요정에 초대받아 일본 명치유신의 지사들을
존경한다고 발언함...우리가 많이 들은 이토 히로부미 같은 작자들이 명치유신의 지사들임... 아 개새끼...
3. 일본은 박정희라면 경제식민지가 가능하다고 생각해서 박정희에게 1961년부터 1965년까지 현재돈으로 약 2조 1천억
에 달하는 돈을 건네줌. 대한민국이 대일 무역적자의 수렁에 빠질수 밖에 없던 이유임...
아 진짜 나라 팔아먹었네...
4. 1961년 11월 14일 미국 도착. 미국의 경제 개발 계획을 무시하고 자체적인 경제개발 계획을 가지고 미국에 원조를
요청함.(2억 5천만 달러) 여기서 케네디 당황함.
이미 그 계획의 허술함에 대해서 경고했지만...
일본 등에 업고 막무가내였음...
미국의 유수의 경제학자들도 어이없어 하는 경제 성장률 7.1%...
그것도 토끼털, 생선, 돼지를 키워서 수출흑자를 통해 올리자는 그의 어이없는 말은 미국의 설득에도 바뀌지 않았다.
결국 박정희는 자신만만해 하면서 계획을 밀어붙였고 "우리 민족의 나갈 길"이라는 책을 통해 의지를 내 비췄다.
이때 박정희를 말리지 못한것이 어찌보면 대한민국의 경제성장이 늦어지게되는 원흉이었다.
5. 1962년 5월 대한민국 증권시장이 완전히 파탄났다.
박정희 조카사위였던 김종필의 부하들이 정치자금을 마련한다고 주식사기를 쳤다.
현재 돈으로 약 9천억 정도... 경제 성장을 위해 달려야할 대한민국 경제의 다리가 완전히 박살나 버렸다...
10년... 시장이 정상궤도에 다시 오르기 위해 필요한 시간이었음...
경제 성장의 중요한 시기에 10년을 허비한 것은 너무나 큰 대한민국의 악재 중의 악재였다.
6. 증권시장 사고에 이어 박정희는 믿을 수 없을 만큼 멍청한 짓을 저질렀다.
1962년 6월 10일 화폐개혁을 진행해 기존 화폐를 폐기하고 새 화폐를 발행함.
예금 인출을 통제해서 돈의 유통이 멈추게 해서 국가적인 대혼란이 초래됬다.
이유는 황당했다 지하자금을 뽑아내서 쓰겠다는거였는데 그 금액이 얼마되지도 않았고 경제적 공황은 상상을
초월했다. 이때 전체 공장의 절반이상이 가동을 멈추게 되는 사태가 발생할 정도로 심각했다고 함.
7. 5번과 6번과 같은 이유로 결국 미국이 칼을 빼들었다.
언론에 박정희의 경제정책에 직격탄을 날리면서 미국의 원조가 끊길수도 있다는 기사를 내게되고 그동안 눈가림
당하고 있던 국민들이 동요하기 시작했고 박정희는 정권유지를 위해 국민들의 지지가 필요했었다.
박정희는 미국이 한국의 문제에 간섭할 권한이 없다고 버텼으나 결국 원조 철회의 강력한 수에 꼬리를 내리게 된다.
그리하여 박정희식 경제개발계획은 막을 내리게 되고 주변의 참모와 경제관료들 또한 다 물갈이 하게 된다.
1962년 11월 26일 새로운 경제관료들은 1차 경제개발계획을 완전히 뜯어 고침.
드디어 대한민국 신화의 밑거름이 된 수출을 증대시키는 정책으로 전환이 된것이다.(이후의 역사가 말해줌..ㅋ)
이 순간에도 박정희는 수출 보다는 국민의 돈을 끌어모아서 종합제철소를 짓는 전략을 자꾸 들먹임. 조낸 뻔뻔...;;;
그러나 한번 당한 미국이 두번은 안당해 줌.
박정희가 개소리하면 경제 원조 책임자를 한국에서 철수 시키는 실력행사를 통해 깨갱거리게 만듬.
8. 미국이 박정희에게 썼던 채찍과 당근!!!!
채찍
미국의 세금제도 개혁 주문 -> 박정희:시행하기 힘들다 앵앵 -> 원조 중단 스킬 시전 -> 깨갱 하기는 할게...
-> 아 C8 당장 안하냐? 할때까지 원조 안해!!! -> ㅠㅠ 할게요.. 하면되잖아요 ㅠㅠ
이로인해 증가된 세수는 엄청났음....
당근
환율안정금...
자국 경제 상황보다 정권유지를 위한 지지기반이 더 중요한 박정희.. 이 시팔럼...
환율 개혁하면 수출이익이 상승한다. 하지만 반대로 수입 가격도 오른다. 결과적으로 물가도 오른다.
박정희가 이 정책을 반대하면서 미국에 앵앵거린 이유는 단 하나 물가가 올라 서민들의 불만이 커져서 정권 지지도가
떨어질까봐....ㅡㅡ;;;
향후 수출주도형의 경제구도를 확고히 하기 위해서는 무조건 필요한것이 환율 개혁이었음.
이거 안하면 좆도 되는거 하나도 없음. 그른데 대통령이라는 새끼가 반대함..것두 어이없는 이유로...ㅡㅡ;;;;
그래서 미국이 박정희 살살꼬시면서 당근으로 제시한게 환율안정금....
1964년 5월 3일 환율 개정, 환율 안정금 1달러당 255원 책정.
산업 모든 전반에서 생산이 급속히 향상되는 결과가 도출됨....
9. 결과적으로 미국의 주도아래
GNP 1964년 ~ 1965년 6%
1964년 1억 2천만불 수출
1965년 1억 7천만불 수출
1961년 대비 6배 증가!!!!
이쯤되면 박정희가 아무리 돌대가리래도 느끼는바가 있었을건데....있기는 개뿔...시밸럼의 짜쓱....
쑈하기 시작함....
기자 부르고 카메라 앞에서 손가락도 휘두르고...
일잘하는 산업현장가서 사람들도 괴롭히고...
조국의 성장을 자신의 지도력 덕분이라고 국민들이 믿게끔 세뇌작업을 독하게 진행함...ㅡㅡ;;;;
아주 태생부터 가지고 있는 사기꾼 개새끼 근성이 확실히 돋보이는 행동을 함....ㅡㅡ;;;
10. 결론적으로 아직도 박정희가 대한민국 경제발전의 신화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좀 깨어나길 바란다...
역사를 바로 보지 않는 민족에게 내일이란 없다..
이미 박정희 딸 박근혜에게 속아보지 않았던가...
제발 이제는 국민 스스로가 깨어나서 제대로된 판단을 하기를 바란다.